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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1)

세설신어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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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說新語補序
余少時 得世說新語善本吳中하여 私心已好之하여 每讀 輒患其易竟이라 又怪是書 僅自後漢終於晉하여 以爲六朝諸君子 卽所持論風旨 寧無一二可稱者아하다
最後 得何氏語林한대 大抵規摹世說하고 而稍衍之하여 至元末이나 然其事詞錯出하여 不雅馴하니 要以影響而已
至於世說之所長하여는 或造微於單辭하고 或徵巧於隻行하며 或因美以見風하고 或因刺以通贊하여 往往使人으로 短詠而躍然하고 長思而未罄이어늘 何氏 盖未之知也
余治燕趙郡國獄 小間無事하여 探橐中所藏하니 則二書在焉이라 因稍爲刪定하고 合而見其類하니 盖世說之所去 不過十之二 而何氏之所采 則不過十之三耳
余居恒謂 宋時經儒先生 每譏讁淸言致亂하니 而不知晉宋之于江左一也 驅介胄而經生之乎인댄 則毋乃驅介胄而淸言也 其又奚擇矣리오
嘉靖丙辰季夏 琅琊王世貞하노라
【頭註】
李云 “與經生淸言竝稱, 似貶之太過. 王導․溫嶠․謝安皆淸言也, 用之介冑, 何如哉? 吾未見經生而介冑者也.”


세설신어보世說新語補≫ 서문
내가 젊었을 때 ≪세설신어世說新語≫의 선본善本에서 얻고는 내심 매우 좋아하여, 읽을 때마다 번번이 빨리 끝나는 것을 아쉬워하였다. 또 이 책이 겨우 후한後漢에서 시작하여 에서 끝나는 것을 이상하게 여겨 ‘의 군자 중에 어찌 지론持論이나 풍지風旨 면에서 내세울 만한 한두 사람도 없었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왕세정王世貞왕세정王世貞
나중에 ≪하씨어림何氏語林≫을 얻었는데, 이 책은 대체로 ≪세설신어≫를 모방하였고 시대를 조금 늘려 원대元代 까지 다루었으나 일화와 담론이 섞여 나와 전아典雅하고 순정純正하지 못하였으니 요컨대 ≪세설신어≫의 그림자나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었다.
≪세설신어≫의 장점은 한마디 말에서 미묘함이 생기기도 하고 한 구절의 글에서 교묘함이 드러나기도 하며, 칭찬에 의지하여 풍자를 드러내기도 하고 비난에 의지하여 찬사와 통하기도 하여, 종종 사람으로 하여금 짧게 읊어도 놀라게 하며 길게 생각하여도 끝나지 않게 하는데, 는 이러한 것을 알지 못했다.
잠시 일이 없을 때 짐 속을 뒤져보니 이 거기에 있었다. 그리하여 대체로 ≪세설신어≫에서 없앤 것은 10분의 2를 넘지 않고 ≪하씨어림≫에서 채택한 것은 10분의 3을 넘지 않는다.
나는 평소에 늘 송나라 때 들이 매번 청언淸言이 난리를 초래하였다고 비난하나, 〈그것은〉 나라와 나라 때의 는 것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적의〉 군사를 축출하면서 이 되었다면 〈적의〉 과 같은 게 아니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을 또 어찌 구별한단 말인가.
가정嘉靖 병진년丙辰年(1556) 6월에 낭야琅琊이 찬술하다.
두주頭註
이지李贄경생經生청언淸言을 병칭한 것은 너무 지나치게 폄하한 듯하다. 〈나라에서〉 왕도王導온교溫嶠사안謝安은 모두 청언淸言을 하였으나 그들을 무장武將에 기용한 것이 어떠하였는가. 나는 〈나라에서〉 경생經生이면서 무장이었던 자를 보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吳中 : 오늘날의 江蘇省 吳縣 일대를 가리키며, 보통 吳地라고 한다. 吳地는 春秋시대 때 吳나라가 있던 지역인데, 東漢 때는 吳郡이라 하였다.
역주2 六朝 : 後漢이 멸망한 뒤 隋나라가 통일할 때까지 揚子江 남쪽에 있었던 여섯 왕조, 즉 吳․晉․宋․齊․梁․陳나라를 이른다.
역주3 何氏(何良俊) : 1506∼1573. 字는 元朗, 號는 柘湖이며 華亭(지금의 上海 松江) 사람이다. 아우인 何良傅와 함께 俊才로 이름이 났다. 嘉靖 11년(1532)에 國學에 들어가 공부하고 여러 번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합격하지 못하였다. 가정 31년(1552)에 추천을 받아 南京의 翰林院 孔目에 제수되었으나 얼마 후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왜구의 침입으로 蘇州로 옮겨갔으며 張之象․文徵明 등과 교유하였다. 저술로 ≪何氏語林≫ 30권, ≪四友齋叢說≫ 38권 등이 있다.
역주4 내가……있으면서 : 燕趙 지역은 戰國時代 때 연나라와 조나라가 있던 지역으로 지금의 河北省 북부와 山西省 서부 일대를 가리킨다. ≪왕세정연보≫에 의하면 왕세정은 가정 34년(1555) 12월에 北直隷의 獄을 살피라는 황제의 명을 받았고, 이때 그의 나이 30세였다. 그는 가정 35년 1월부터 5월까지 반 년 동안에 이 책을 刪定한 것으로 보인다.(鄭利華, ≪王世貞年譜≫ 99쪽)
역주5 두 책 : ≪世說新語≫와 ≪何氏語林≫을 말한다.
역주6 약간……보였으니 : ≪世說新語≫는 36개의 類門으로 구성되었고 ≪何氏語林≫은 거기에 〈言志〉와 〈博識〉이 더 있어 38개의 유문으로 되어 있었으나, 왕세정이 ≪世說新語補≫를 편찬할 때 〈언지〉와 〈박식〉을 제거하고 ≪世說新語≫의 체재를 따른 것을 말한다.
역주7 經儒先生 : 宋나라 때 經學만이 正道라고 주장하던 士人들을 말한다.
역주8 江左의 상황이 매한가지였다 : 강좌는 江東 즉 揚子江 이남의 동쪽 지역을 가리킨다. 西晉이 북방의 五胡의 공격을 받아 수도 洛陽이 함락되자 晉 왕조의 종실인 司馬睿가 양자강 이남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東晉이 시작되었다. 宋나라는 여진족이 세운 金나라의 공격을 받아 徽宗과 欽宗이 금에 잡혀가자, 高宗이 양자강 이남으로 건너와 臨安에 도읍을 정하고 南宋이 시작되었다. 여기서는 진나라와 송나라 모두 적에게 패하여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온 뒤 국토를 회복하기 위해 북벌전쟁을 수행하던 중이었다는 상황이 같다는 것을 말한다.
역주9 經生 : 經儒先生을 가리킨다.(≪世說音釋≫)
역주10 군사를……것 : 송나라가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온 후 다시 중원을 회복하기 위해 몇 차례의 北伐전쟁을 하는 중에 관료사대부들이 유교 경전의 연구에 몰두하였던 것이나, 晉나라가 五胡의 침략을 받아 양자강 이남으로 쫓겨 내려온 후 華北을 회복하기 위한 북벌전쟁을 하는 중에 사대부들 사이에 淸談이 유행하였던 것이나 마찬가지임을 지적한 것이다.
역주11 王世貞 : 1526∼1590. 字는 元美, 號는 鳳洲․弇州山人이다. 直隸 太倉州(지금의 江蘇 太倉) 사람으로, 明나라의 文學家이며 史學家이다. 李攀龍과 함께 ‘後七子’의 한 사람이다. ≪弇州山人四部稿≫ 174권, ≪弇山堂别集≫ 100권, ≪藝苑卮言≫ 12권, ≪鳴鳳記≫, ≪史乘考誤≫ 등이 전한다. 그가 ≪世說新語≫와 ≪何氏語林≫을 합하여 ≪世說新語補≫를 편찬하였다.

세설신어보(1) 책은 2023.12.18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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