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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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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晉獻公之時 有士焉하니이니 傅太子申生하다
公立驪姬爲夫人하야 而國多憂하니 狐突稱疾不出하다
六年 獻公以譖誅太子하니
太子將死
吾君老矣 國家多難하니 傅一出以輔吾君이면 申生受賜以死不恨하리라하고
再拜稽首而死하다
狐突乃復事獻公이러니 三年 獻公卒하다
狐突辭於諸大夫曰
突受太子之詔러니 今事終矣
與其久生亂世也 不若死而報太子라하고
乃歸하야 하다


진 헌공晉 獻公 때에 선비가 있었으니 이름을 호돌狐突이라 하였는데 태자太子 신생申生의 스승[]이었다.
헌공獻公여희驪姬를 세워서 부인夫人으로 삼자, 이 때문에 나라에 많은 우환이 생기니 호돌이 병을 핑계로 집에서 나가지 않았다.
6년이 지나 헌공이 참소를 믿고 태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태자가 죽음에 임하여 사람을 보내 말했다.
“우리 임금님은 늙으셨고 나라에는 환난患難이 많으니, 스승께서 한번 나와서 우리 임금님을 보필해주시면 신생申生은 죽음을 받아 죽더라도 유한遺恨이 없겠습니다.”
그러고는 두 번 절하면서 머리를 땅에 닿도록 조아리고 죽었다.
호돌이 마침내 다시 헌공을 섬겼는데 3년 만에 헌공이 죽었다.
호돌이 여러 대부大夫에게 하직하면서 말했다.
“나 호돌은 태자의 명을 받아 나왔었는데 이제 일이 끝났소.
난세亂世에 오래 사느니보다 죽어서 태자에게 보답하는 낫겠소.”
그리고는 곧 돌아가서 자살하였다.


역주
역주1 狐突 : 춘추시대 晉나라 大夫로, 晉 文公의 外祖父이다. 惠公(夷吾)이 죽고 懷公이 즉위한 뒤 重耳를 따라 망명한 그의 두 아들을 불러들이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아 죽임을 당하였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
역주2 使人謂狐突曰 : 《國語》 〈晉語 2〉에는 “猛足을 시켜 말하게 하였다.”로 되어 있다.
역주3 自殺 : 申生이 狐突에게 당부한 말이 《國語》 〈晉語 2〉와 《禮記》 〈檀弓〉에 모두 실려 있으나, 호돌이 자살했다는 말은 없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에는 “狐突이 狐毛와 狐偃 두 아들을 부르려고 하지 않자 懷公이 살해하였다.”로 되어 있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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