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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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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 하야 絶糧하니 弟子皆有饑色이어늘 孔子歌兩柱之間하시다
子路入見曰 夫子之歌禮乎잇가
孔子不應하시고 曲終而曰 由 君子好樂 爲無驕也 小人好樂 爲無懾也하나니 其誰知之리오 子不我知而從我者乎
子路不悅하야 干而舞라가 而出하다 及至七日토록 孔子修樂不休하시니 子路慍見曰 夫子之修樂 時乎잇가
孔子不應하시고 樂終而曰 由 昔者 하고 하며 故居不幽 則思不遠이요 身不約이면 則智不廣하나니 庸知而不遇之리오
於是興이러니 明日免於厄하다 子貢執轡하고 曰 二三子從夫子而遇此難也하니 其不可忘니이다
孔子曰 惡 是何也 語不云乎 라하니라 夫陳蔡之間 丘之幸也 二三子從丘者 皆幸人也니라 吾聞人君不困이면 不成王이요 列士不困이면 不成行이라호라 昔者 하고 하고 하고 하고 하고 夫困之爲道 從寒之及暖이요 暖之及寒也 惟賢者 獨知而難言之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나라와 나라 지경에서 곤경을 당하시어 양식마저 떨어지자 제자들이 모두 굶주린 기색이 있었는데,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셨다.
자로子路가 들어와 뵙고는 말했다. “부자夫子께서 노래를 부르시는 것이 에 맞는 일입니까?”
공자는 응답하지 않고 부르던 노래를 마친 다음에 말씀하셨다. “중유仲由(자로子路의 성명)야. 군자君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교만함을 없애기 위해서이고, 소인小人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인데, 누가 이런 도리道理를 알겠느냐? 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면서 나를 따라 배우려는 것이냐?”
자로가 기뻐하지 않으면서 방패를 잡고 춤을 추다가 세 이 끝나자 나가버렸다. 7일이 되도록 공자가 그치지 않고 음악을 연주하니, 자로가 성이 나서 공자를 뵙고 말했다. “부자夫子께서 음악을 연주하시는 것이 때에 맞는 일입니까?”
공자는 응답하지 않으시고 연주하던 음악을 마치고 말씀하셨다. “중유야. 옛날 제 환공齊 桓公나라에 망명했을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고, 구천句踐회계산會稽山에서 곤욕을 치를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으며, 진 문공晉 文公여씨驪氏에게 모함을 당할 때 패자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므로 유폐 같은 곤경에 처해보지 않으면 생각이 원대하지 않고, 몸이 제약을 받아보지 않으면 지혜가 넓지 못한 법이다. 네가 어찌 나의 불우不遇함을 알겠느냐?”
이에 모두 진작振作되었는데, 이튿날 곤액에서 벗어났다. 자공子貢이 말고삐를 잡고 말했다. “제자들이 부자를 따르다가 이러한 재난을 만났으니, 아마 잊을 수 없을 듯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 이 무슨 말인가! 고어古語에 말하지 않았더냐? ‘팔이 세 번 부러져보아야 양의良醫가 된다.’고 하였다. 진나라와 채나라 사이에서 당한 일은 나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러니 나를 따르는 너희들은 모두 행운이 있는 사람이다. 나는 들으니, 임금이 곤경을 겪지 않으면 왕도王道를 이루지 못하고, 명망名望 있는 선비가 곤액을 겪지 않으면 좋은 품행品行을 이루지 못한다 하였다. 예전에 상탕商湯에서 곤경에 처했고, 문왕文王유리羑里수감收監되었으며, 진 목공晉 穆公효산殽山에서 패배하였고, 제 환공齊 桓公장작長勺에서 곤액을 당했으며, 구천句踐은 회계에서 곤욕을 치렀고, 진 문공晉 文公여씨驪氏에게 고초를 겪었다. 곤액의 규칙은 차가운 것으로부터 따뜻하게 변하고, 따뜻한 것으로부터 차갑게 변하니, 오직 어진 이만 이를 알 수 있으나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주역周易》에 “은 형통하고 곧다. 대인大人이라 하고 허물이 없으니, 말을 하면 믿지 않는다.” 하였으니, 성인이 사람들에게 말로 표현하기 어려움을 믿겠다.


역주
역주1 孔子遭難陳蔡之境 : 본서 권11 〈善說〉 10의 주8) 참고.
역주2 (授)[援] : 저본에는 ‘授’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援’이 옳다.”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孔子家語》 〈困誓〉에 ‘援戚而舞’로 되어 있다.”라고 한 것에 의거하여 ‘援’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三終 : 三章의 음악 연주를 마치는 일이다. 《儀禮 大射禮》‧《禮記 鄕飮酒禮》
역주4 齊桓霸心生於莒 : 齊 襄公이 無道하여 제나라가 혼란하자 公子 小白(후의 桓公)이 莒나라로 도망쳐서 難을 피하였는데, 이때 莒나라에서 無禮하게 대하니, 公子 小白이 이에 자극을 받아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莒는 지금의 山東省 莒縣에 있던 周代의 제후국이다. 《春秋左氏傳 隱公 2년, 莊公 8년, 昭公 3년》
역주5 句踐霸心生於會稽 : 句踐이 會稽山에서 곤욕을 치른 후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본서 권9 〈正諫〉 20의 주7) 참고.
역주6 晉文霸心生於驪氏 : 晉 獻公의 寵姬 驪姬가 자기의 친아들 奚齊를 세우기 위해 太子 申生을 참소하여 죽였고, 公子 重耳(후일의 晉 文公)와 夷吾는 외국으로 달아났다. 중이는 19년 동안 여러 나라를 유랑하면서 많은 고초를 겪었는데, 이때에 霸者가 되려는 마음이 생겼다는 말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4‧23‧24년》
역주7 (也)[已] : 저본에는 ‘也’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已’로 바로잡았다.
역주8 三折肱而成良醫 : 자기의 팔이 세 번 부러져보아야 良醫의 치료법을 안다는 뜻이다. 《春秋左氏傳 定公 13년》‧《孔叢子 嘉言》
역주9 湯困於呂 : 夏桀이 夏臺라는 감옥에 湯王을 가두었다는 기록이 《史記》 〈夏本紀〉에 실려 있으나, 呂에서 곤욕을 받은 일은 미상이다.
역주10 文王困於羑里 : 商紂가 잔인무도한 일을 자행하자 西伯 昌(후일의 周 文王)이 탄식하였는데, 崇侯 虎가 이를 紂에게 참소하여 羑里라는 감옥에 갇힌 일을 말한다. 羑里는 감옥 이름인데, 일설에는 지금의 河南省 湯陰縣 북쪽에 있던 地名이라고 한다. 《莊子 盜跖》‧《史記 殷本紀》
역주11 秦穆公困於殽 : 魯 僖公 33년(B.C. 627)에 晉 襄公이 殽에서 秦 穆公의 군대를 섬멸한 일을 말한다. 殽는 崤로도 쓰며, 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서북쪽에 있는 山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33년》
역주12 齊桓困於長勺 : 魯 莊公 10년(B.C. 684)에 齊 桓公이 魯나라를 침공, 長勺에서 전쟁하여 齊나라가 패배한 일을 말한다. 長勺은 지금의 山東省 莱蕪縣 동북쪽에 있던 地名이다. 《春秋左氏傳 莊公 2년》
역주13 句踐困於會稽 : 본서 권9 〈正諫〉 20과 주7) 참고.
역주14 晉文困於驪氏 : 앞의 주6) 참고.
역주15 易曰……不信 : 《周易》 〈困卦 卦辭〉에 보인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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