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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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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以五百里地한대 鄢陵君辭而不受하고 使謝秦王하다
진왕秦王이 500리의 땅을 가지고 언릉鄢陵과 바꾸자고 하였는데, 언릉군鄢陵君은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면서 당저唐且를 보내 진왕에게 사과하도록 하였다.
秦王曰 秦破韓滅魏어늘 鄢陵君 獨以五十里地存者 吾豈畏其威哉 吾多其義耳니라 今寡人以十倍之地易之어늘 鄢陵君辭而不受하니 是輕寡人也로다
진왕이 말했다. “나라는 나라를 격파하고 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언릉군만 50리의 땅을 가지고 생존한 것은 내가 어찌 그 위세를 두려워해서겠는가. 내가 그 도의道義를 훌륭하게 여겨 멸망시키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 과인寡人이 열 배의 땅을 가지고 바꾸자고 하는데 언릉군이 받아들이지 않고 거절하니, 이는 과인을 경멸하는 것이다.”
唐且避席對曰 非如此也니이다 夫不以利害爲 鄢陵也니이다 夫鄢陵君 受地於先君而守之하니 雖復千里라도 不得當이어늘 豈獨五百里哉잇가
이에 당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해利害를 가지고 어떤 일을 하게 할 수 없는 사람은 언릉군입니다. 언릉군이 선군先君에게 땅을 받아 지키고 있으니, 다시 천 리의 땅을 가지고 바꾸자 하더라도 합당하지 않을 텐데, 어찌 단지 500리의 땅이겠습니까.”
秦王忿然作色하야 怒曰 公亦曾見天子之怒乎
진왕이 벌컥 성을 내어 안색이 변하면서 분노하여 말했다. “도 일찍이 천자天子가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唐且曰 臣未曾見也니이다
당저가 말했다. “은 일찍이 보지 못했습니다.”
秦王曰 天子一怒 伏尸百萬이요 流血千里니라
진왕이 말했다. “천자가 한 번 분노하면 백만 명의 시체가 땅바닥에 엎어지고 천 리까지 피가 흐르게 된다.”
唐且曰 夫王亦嘗見夫布衣韋帶之士怒乎잇가
당저가 말했다. “께서도 일찍이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勇士가 분노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秦王曰 布衣韋帶之士怒也 解冠徒跣하고 以頭頓地耳 何難知者리오
진왕이 말했다.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하면 을 벗고 맨발로 머리를 땅바닥에 찧을 뿐이니, 어찌 알기가 어렵겠는가.”
唐且曰 此乃匹夫愚人之怒耳 非布衣韋帶之士怒也니이다 彗星襲月하고 奔星晝出하며 蒼隼擊於臺上하고 白虹貫日하니 此三人 皆夫布衣韋帶之士怒矣 與臣將四니이다 士含怒未發 搢厲於天하나니 無怒卽已어니와 一怒 伏尸이요 流血五步니이다
당저가 말했다. “이는 곧 보잘것없고 어리석은 남자가 분노한 모습일 뿐이고,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하는 모습은 아닙니다. 전제專諸왕료王僚를 찔러 죽일 적에 살별의 광채가 달빛을 가리고 유성流星이 낮에 나타났으며, 요리要離왕자王子 경기慶忌를 찔러 죽일 적에 푸른 새매가 높은 누대에 들이쳤고, 섭정聶政한왕韓王계부季父를 찔러 죽일 적에 흰 무지개가 태양을 가로질렀습니다. 이 세 사람은 모두 베옷에 가죽띠를 맨 용사가 분노한 모습이니, 신과 함께 앞으로 네 사람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용사가 분노한 마음을 품고 아직 성을 내지 않았을 때 좋지 않은 징조가 하늘에 먼저 나타나는 것입니다. 용사가 분노하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한번 분노하면 두 명의 시체가 땅바닥에 엎어지고 다섯 걸음까지 피가 흐릅니다.”
卽案匕首하고 起視秦王曰 今將是矣리이다
그러고는 즉시 비수를 잡고 일어나 진왕을 노려보면서 말했다. “지금 당장 이렇게 하겠습니다.”
秦王變色長跪曰 先生 就坐하라 寡人喩矣로라 秦破韓滅魏어늘 鄢陵獨以五十里地存者 徒用先生之故耳로다
진왕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면서 허리를 세우고 꿇어앉으며 말했다. “선생은 자리에 앉으시오. 과인은 알게 되었소. 진나라가 한나라를 격파하고 위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언릉군만 50리의 땅을 가지고 생존한 것은 단지 선생을 등용했기 때문이구려!”
역주
역주1 秦王 : 秦 始皇 嬴政이다.
역주2 鄢陵 : 周나라 초의 鄢國으로, 춘추시대에 鄭나라에 예속되어 鄢邑이 되었다가 뒤에 鄢陵으로 고쳤다. 전국시대에는 韓나라에 예속되었다가 뒤에 魏나라에 예속되어 安陵이라 하였다. 지금의 河南省 鄢陵縣 서북쪽에 있었다. 아래의 ‘鄢陵君’은 곧 安陵君으로, 魏 襄王이 그 아우에게 내려준 封號이다.
역주3 唐且(저) : ‘且’는 ‘雎’로도 쓴다. 전국시대 魏나라 사람으로, 鄢陵君의 신하이다. 전국시대 魏나라에는 두 사람의 唐且가 있었다. 하나는 魏 公子이고, 하나는 秦 昭王을 설득하여 魏나라를 구한 사람인데, 여기 나오는 唐且는 동일 인물이 아니다. 《戰國策 魏策》‧《史記 魏世家》
역주4 趣(촉) : 어떤 일을 억지로 하게 한다는 뜻이다.
역주5 {王} : 저본에는 ‘王’자가 있으나, 《群書拾補》에는 ‘主’자로 고치고 “‘主臣’은 惶恐하다는 뜻이다.”라 하였다. 그러나 《說苑校證》에 “《戰國策》 〈魏策〉에 ‘臣未之聞也’로 되어 있고 ‘主’자가 없다.”고 한 것에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6 專諸(저)刺王僚 : 專諸는 춘추시대 吳나라의 자객이다. 伍子胥의 추천으로 公子 光을 위해 吳王 僚를 시해하였으나 僚의 신하에게 살해되었다. 鱄設諸‧鱄諸‧剸諸로도 쓴다. 《春秋左氏傳 昭公 27년》‧《史記 吳泰伯世家‧刺客列傳 專諸》 吳王 僚는 춘추시대 오나라 군주로 餘昧의 아들이다. 季札이 왕위를 사양하자 왕에 추대되었으나 공자 광이 보낸 자객에게 살해되었다. 《史記 吳泰伯世家》
역주7 要離刺王子慶忌 : 要離는 춘추시대 吳나라 용사이며, 慶忌는 吳王 僚의 아들이다. 吳王 僚가 시해당한 후 경기는 화를 피해 衛나라로 달아났는데, 吳王 闔閭(公子 光)는 후환을 없애기 위해 경기를 죽이려 하였다. 요리는 합려에게 자신의 처자를 죽이게 하고 죄를 지어 衛나라로 도망온 것처럼 가장하여 경기에게 신임을 받은 뒤 경기를 죽이려다 실패하자 이를 수치로 여겨 자살하였다. 《呂氏春秋 忠廉》‧《吳越春秋 闔閭內傳》
역주8 聶政刺韓王之季父 : 聶政은 전국시대 韓나라 자객이고, 韓王의 季父는 韓 烈侯의 숙부 韓傀(字는 俠累)이다. 聶政이 살인을 하고 齊나라로 도피하여 도살장에 은거하였다. 韓나라 大夫 嚴遂가 國相 韓傀와 원수를 맺고 도망쳐 와서 聶政이 용감하다는 말을 듣고 많은 재물을 가지고 원수를 갚아달라고 요청하였다. 聶政은 老母가 있다는 이유로 거절했다가 어머니가 죽자 嚴遂를 위해 韓傀를 찔러 죽이고 자신도 자살하였다. 《戰國策 韓策 2》‧《史記 刺客列傳 聶政》
역주9 (一)[二] : 저본에는 ‘一’자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二’로 고쳤고, 《說苑校證》에 “《戰國策》 〈魏策〉에 ‘二’로 썼고, 《藝文類聚》 〈匕首〉와 《太平御覽》 권346‧437‧483‧779 등에 모두 똑같이 ‘二’로 썼다.”고 한 것에 의거하여 ‘二’로 바로잡았다.
역주10 〈其〉 : 저본에는 ‘其’자가 없으나, 《說苑校證》에 “《藝文類聚》 〈匕首〉와 《太平御覽》의 인용문에 모두 ‘其’가 있다.”라고 한 것에 따라 보충하였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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