伊尹
은 故
之
也
로되 湯立以爲三公
하야 天下之治太平
하고 管仲
은 故
之狗盜也
니 天下之庸夫也
로되 齊桓公得之以爲仲父
하니이다
百里奚
는 於路
라가 傳賣五羊之皮
로되 秦穆公委之以政
하고 甯戚
은 故
也
니 叩轅行歌於康之衢
한대 桓公任
以國
하니이다
호되 而卒相中山
하고 는 折脅拉齒於魏
로되 而後爲應侯
하니이다
太公望
은 故老婦之出夫也
요 也
며 也
로되 年七十而相周
하고 九十而封齊
하니이다
此七士者 不遇明君聖主런들 幾行乞丐라가 枯死於中野리니 譬猶綿綿之葛矣니이다
“이윤伊尹은 원래 유신씨有莘氏의 잉신媵臣이었으나 탕왕湯王이 등용하여 삼공三公으로 삼자 천하가 태평하게 다스려졌고, 관중管仲은 원래 성양成陽의 좀도둑이니 천하의 가장 용렬한 사내였으나 제 환공齊 桓公이 얻어서 중부仲父로 삼았습니다.
백리해百里奚는 길에 다니며 밥을 빌어먹다가 다섯 마리 양가죽에 몸이 팔렸으나 진 목공秦 穆公이 정치를 맡겼고, 영척甯戚은 원래 수레를 몰던 사람인데 수레끌채를 두드리며 큰 거리를 가면서 노래하자 제 환공齊 桓公이 나라를 맡겼습니다.
사마희司馬喜는 송宋나라에서 무릎뼈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나 마침내 중산국中山國의 재상이 되었고, 범저范雎는 위魏나라에서 갈비뼈와 이가 부러지는 박해를 받았으나 뒤에 응후應侯가 되었습니다.
태공망太公望은 원래 늙은 부인에게 쫓겨난 사내이고 조가朝歌에서 백정의 일을 도왔으며 극진棘津에서 손님이나 맞이하는 시종侍從이었으나 나이 일흔에 주周나라의 재상이 되고 아흔에 제齊나라에 봉해졌습니다.
이 때문에 《시경詩經》에 ‘끊어지지 않고 뻗은 칡덩굴, 넓은 들판에 나 있구나.
좋은 직공織工 이를 얻어, 갈포葛布와 마포麻布를 만들었지.
좋은 직공이 이를 얻지 않았다면, 들에서 말라 죽었을 거야.’라 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일곱 사람이 명철明哲하고 거룩한 임금을 만나지 못했던들 아마 길에서 밥을 빌어먹다가 들판에서 말라 죽었을 것이니, 비유하자면 ‘끊어지지 않고 뻗은 칡덩굴’과 같았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