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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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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3. 한대 懷公召國人曰 欲與荊者하고 欲與吳者하라 當公而進曰 吳未有福이요 荊未有禍니이다
나라 군대가 ()나라를 침입했을 적에 오왕吳王(합려闔廬)이 회공懷公을 불렀는데, 회공懷公도성都城 사람들을 불러놓고 말했다. “초나라와 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왼쪽에 서고, 오나라와 친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오른쪽에 서라.”방활逢滑회공懷公의 정면으로 나아가 말했다. “오나라는 〈할 만한〉 이 없고, 초나라는 〈할 만한〉 가 없습니다.”
公曰 國勝君出이어늘 非禍而奚
회공懷公이 말했다. “나라는 승리하고 초나라 군주는 달아났는데, 가 아니고 무엇인가?”
對曰 小國有是猶復이어든 而況大國乎잇가 楚雖無德이나 亦不斬艾其民이요 吳日弊兵하야 暴骨如莽하니 未見德焉이라 天其或者正訓荊也니이다 禍之適吳 何日之有리잇가 陳侯從之하다
방활은 이렇게 대답했다. “작은 나라에 이런 사태가 있어도 오히려 회복할 수 있는데, 하물며 큰 나라이겠습니까? 초나라가 은 없지만 그래도 백성을 마구 살해하지는 않았습니다. 나라는 날마다 전쟁으로 피폐해져서 군사의 시체가 들판에 잡초처럼 버려져 있으니, 덕을 보인 것이 없습니다. 하늘이 아마 초나라를 바르게 훈계하는 것인 듯합니다. 가 오나라로 가는 데 얼마나 걸리겠습니까.”이에 진후陳侯가 그 말을 따랐다.
역주
역주1 吳人入荊 : 춘추시대 魯 定公 5년(B.C. 505)에 오나라의 闔廬가 楚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초나라 수도 郢에 들어갔던 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定公 4‧5년, 哀公 元年》 荊은 楚나라의 옛 이름이다.
역주2 陳懷公 : 춘추시대 陳나라 군주로, 이름은 柳이다. 吳나라가 楚나라를 격파하고 懷公을 불렀으나 逢滑이 諫하는 말을 듣고 가지 않았다. 뒤에 吳나라가 다시 부르자 두려워 吳나라에 갔으나 吳王이 전에 오지 않은 일로 노하여 懷公을 억류하여 끝내 그곳에서 죽었다.
역주3 逢(방)滑 : 춘추시대 陳 懷公 때의 大夫이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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