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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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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3. 好戰之臣 不可不察也니라
羞小恥以構大怨하며 貪小利以亡大衆 春秋有其戒하니 晉先軫是也
先軫欲要功獲名하야 則以秦不假道之故 請要秦師하다
襄公曰 不可하다이어늘
先君一日薨 而興師擊之 是孤之負吾先君이요 敗隣國之交하야 而失孝子之行也니라
先軫曰 先君薨而不弔贈 是無哀吾喪也 興師徑吾地而不假道 是弱吾孤也
어늘 無哀吾喪也하고 興師하니이다
卜曰 大國師將至하리니 請擊之하노라 則聽先軫興兵하야 要之라가
擊之하야 匹馬隻輪 無脫者
大結怨構禍於秦하야 接刃流血하고 伏屍暴骸하며 糜爛國家하니
十有餘年 卒喪其師衆하고 禍及大夫하며 憂累後世


전쟁戰爭을 좋아하는 신하는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작은 치욕恥辱을 부끄럽게 여겨 큰 원한을 지으며, 작은 이익利益을 탐내어 많은 군사를 잃은 경우를 《춘추春秋》에서 경계하였으니 나라 선진先軫이 그런 사람이다.
선진이 공명功名을 얻고자 나라가 〈나라 영토를 지나가면서도〉 길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나라 군대를 길에서 막고 공격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진 양공晉 襄公은 말하였다. “안 되오. 진백秦伯과 우리 선군先君께서 결맹結盟한 일이 있소.
선군이 돌아가신 지 얼마 안 되었는데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공격하면 이는 내가 우리 선군을 저버리는 것이고, 이웃 나라와의 친교親交를 무너뜨려 효자孝子의 도리를 잃는 행위인 것이오.”
이에 선진은 말하였다. “선군께서 돌아가셨는데 조문弔文부의賻儀를 하지 않은 것은 우리의 상사喪事를 슬퍼하지 않는 것이고, 군대를 일으켜 우리의 영토를 지나가면서 길을 빌려달라고 하지 않은 것은 우리 새 임금을 약하게 여긴 것입니다.
또 선군의 영구靈柩가 아직 빈소殯所에 있는데 끝내 우리의 상사喪事에 슬픔을 표시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점을 쳤더니 “대국大國의 군대가 장차 이를 것이니, 공격하기를 요청한다.”라는 점괘가 나왔다.
그리하여 선진의 요청을 따라 군대를 일으켜 효산殽山에서 기다리다가 공격하여 말 한 필, 수레 한 채도 벗어나 도망치지 못하게 하였다.
〈그로 인해〉 나라와 큰 원한을 맺어 전쟁으로 칼날이 부딪혀 땅에 피가 흐르며 시체가 엎어지고 해골이 나뒹굴며 국가가 훼상毁傷되고 말았다.
10여 년 만에 끝내 많은 군대를 잃었고, 대부大夫에게 환난이 미쳤으며, 후대에게 근심을 끼쳤다.
그러므로 전쟁을 좋아하는 신하는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된다.


역주
역주1 秦伯與吾先君有結 : 秦伯은 秦 穆公이고, 先君은 晉 文公이다. 곧 진 목공과 진 문공이 結盟한 일을 말한다.
역주2 柩畢尙薄屋 : 《說苑校證》에 “‘柩尙畢塗屋’이 되어야 할 듯하니, 殯의 위를 모두 지붕처럼 덮어 바르는 것이다. 이는 임금을 殯하는 제도로 晉 文公의 靈柩가 아직 殯에 있고 매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른 것이다.” 하였으므로 이를 따라 번역하였다. 《禮記》 〈喪大記〉 참조.
역주3 : 지금의 河南省 洛寧縣 북쪽에 있는 산으로, 函谷關이 이곳에 있어 지세가 매우 험준하다.
역주4 好戰之臣……不可不察也 : 이 章은 저본에 위의 章과 이어져 있었으나 《群書拾補》와 《說苑校證》에 따라 別章으로 하였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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