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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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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8. 하야之內하시고 하시며 七日不食하시고 이라 弟子皆有飢色호되 讀詩書治禮不休하시다
子路進諫曰 凡人爲善者 天報以福하고 爲不善者 天報以禍니이다 今先生積德行爲善久矣로되 意者컨대 尙有遺行乎잇가 奚居隱也잇고
孔子曰 由하라 汝不知니라하라 吾語汝호리라 子以夫知者爲無不知乎 何爲剖心而死 以諫者爲必聽耶
伍子胥 何爲抉目於吳東門 子以廉者爲必用乎 伯夷叔齊 何爲餓死於首陽山之下 子以忠者爲必用乎
終身不顯하고 抱木而立枯하며 登山焚死 故夫君子博學深謀로되 不遇時者衆矣 豈獨丘哉리오 賢不肖者才也 爲不爲者人也 遇不遇者時也 死生者命也
有其才不遇其時 雖才不用이나 苟遇其時 何難之有리오
故舜耕하고於河畔호되 立爲天子 則其遇堯也 負壤土라가 釋板築하고 而立佐天子 則其遇 伊尹 有莘氏 負鼎俎하고 調五味하야 而佐天子 則其遇成湯也 行年五十 賣食於하고 行年七十 屠牛라가 行年九十 爲天子師 則其遇文王也 管夷吾束縛膠目하야 居檻車中이라가 自車中起爲仲父 則其遇齊桓公也 自賣取五羊皮하야 이라가 以爲卿大夫 則其遇秦穆公也 名聞天下하야 以爲令尹이나 而讓孫叔敖 則其遇楚莊王也
伍子胥前多功이나 後戮死 非其智益衰也 前遇闔閭하고 後遇夫差也니라 夫驥厄罷鹽車 非無驥狀也 夫世莫能知也 使驥得 驥無千里之足乎
芝蘭生深林 非爲無人而不香이라 故學者非爲通也 爲窮而不困也하며不衰也 此知禍福之始而心不惑也 聖人之深念하야 獨知獨見이니라 舜亦賢聖矣 南面治天下 惟其遇堯也 使舜居桀紂之世 能自免刑戮 固可也어늘 又何官得治乎 夫桀殺하고 而紂殺王子比干하니 當是時하야 豈關龍逢無知하고 而比干 此桀紂無道之世然也 故君子積學하고 修身端行하야 以須其時也니라


공자孔子께서 나라와 나라 사이에서 곤액困厄을 당하여 좁고 누추한 집에 거처하시고 삼경三經을 펼쳐놓은 자리에 앉아 계시며, 7일 동안 밥을 먹지 못하시고 쌀을 넣지 않은 명아주 나물국을 드셨다. 제자들이 모두 굶주린 기색이 있었으나 공자는 《시경詩經》‧《서경書經》을 읽고 를 연구하는 일을 쉬지 않았다.
자로子路가 와서 뵙고 말했다. “선행善行을 하는 사람은 하늘이 으로 갚아주고, 불선不善을 행하는 사람은 하늘이 재앙으로 갚아준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선생님께서는 을 쌓고 한 일을 행하신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생각건대 도리어 잘못하신 행위가 있습니까? 어찌 이처럼 곤궁한 처지에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중유仲由야, 이리 오너라. 너는 잘 알지 못한다. 앉아라. 내 너에게 말해주리라. 너는 지혜가 있는 사람은 모르는 것이 없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왕자王子 비간比干은 어찌하여 심장이 쪼개져서 죽었느냐? 하는 말은 반드시 따른다고 여기느냐.
오자서伍子胥는 어찌하여 눈알이 뽑혀 나라 도성都城의 동쪽 문에 걸렸느냐? 너는 청렴한 사람은 반드시 등용된다고 여기느냐. 백이伯夷 숙제叔齊는 어찌하여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굶어죽었느냐? 너는 충성하는 사람은 반드시 임용任用된다고 여기느냐. 그렇다면 포장鮑莊은 어찌하여 살이 말라 죽었느냐?
형공 자고荊公 子高는 죽을 때까지 현달顯達하지 못하였고, 포초鮑焦는 나무를 안고 말라 죽었으며, 개자추介子推는 산에 올라가 불에 타 죽었다. 그러므로 군자君子는 학식이 넓고 계획이 깊으나 때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으니, 어찌 나만 그렇겠느냐. 현명하고 불초不肖한 것은 재주에 따른 것이고, 큰일을 하고 못 하는 것은 사람에 따른 것이며, 기회를 만나고 못 만나는 것은 때에 달린 것이고,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에 매인 것이다.
재주는 있으나 때를 만나지 못하면 재주가 있어도 펼치지 못하지만 만일 때를 만나면 재주를 펼치는 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그 때문에 역산歷山에서 농사짓고 황하黃河 가에서 질그릇을 구웠으나 즉위하여 천자天子가 된 것은 를 만났기 때문이고, 부열傅說이 흙을 져서 담을 쌓다가 담틀과 공이를 버리고 천자의 보좌가 된 것은 무정武丁을 만났기 때문이며, 이윤伊尹유신씨有莘氏잉신媵臣이니, 솥과 도마를 짊어지고 오미五味로 음식을 조리하여 천자를 보좌한 것은 성탕成湯을 만났기 때문이고, 여망呂望이 나이 50세에 극진棘津에서 밥을 팔고 나이 70세에 조가朝歌에서 소를 잡다가 나이 90세에 천자의 스승이 된 것은 문왕文王을 만났기 때문이고, 관이오管夷吾가 결박을 당하고 눈이 가려진 채 함거檻車 안에 있다가 함거에서 일어나 중부仲父가 된 것은 제 환공齊 桓公을 만났기 때문이며, 백리해百里奚가 스스로 다섯 마리 양가죽에 팔려가 진백秦伯의 양치기가 되었다가 경대부卿大夫가 된 것은 진 목공秦 穆公을 만났기 때문이고, 침윤沈尹이 천하에 명망이 드러나 영윤令尹이 되었으나 손숙오孫叔敖에게 양보한 것은 초 장왕楚 莊王을 만났기 때문이다.
오자서伍子胥가 전에는 많은 을 세웠으나 뒤에 죽음을 당한 것은 그의 지혜가 전보다 많이 쇠퇴했기 때문이 아니라, 전에는 합려闔閭를 만났고 뒤에는 부차夫差를 만났기 때문이다. 천리마[]가 소금 수레를 끄는 액운을 만나 피폐해진 것은 천리마의 형상이 없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 세상에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일 천리마가 왕량王良조보造父를 만났다면 하루에 천 리를 달리는 천리마의 발이 없겠느냐?
지란芝蘭이 깊은 숲속에 자랄 적에 감상하는 사람이 없다 하여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때문에 학문하는 사람은 현달하기 위해 학문하는 것이 아니라, 빈궁貧窮에 처해도 곤궁을 표하지 않으며, 우환憂患 중에 있어도 지기志氣가 쇠퇴하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화복禍福이 시작되는 조짐을 미리 알아 마음이 현혹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인聖人은 깊이 생각하여 그만이 이를 알아 보는 것이다. 순도 성현聖賢이지만 남쪽을 향해 앉아서 천하를 다스린 것은 다만 요를 만났기 때문이다. 가령 순이 의 시대에 살았다면 스스로 형륙刑戮에서 벗어나는 것은 진실로 가하지만 또 어떻게 벼슬을 얻어 천하를 다스리겠느냐? 걸은 관룡봉關龍逢을 죽였고, 주는 왕자 비간을 죽였다. 당시에 어찌 관용방은 무지無知하고 비간은 지혜가 없어서 죽었겠느냐? 이는 걸‧주의 무도한 세태世態가 그렇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학문을 쌓고 몸을 수양해 행실을 단정히 하여 때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孔子困於陳蔡之間 : 본서 권11 〈善說〉 10의 주8) 참고.
역주2 環堵 : 사방을 1丈 높이로 빙 둘러 친 흙담을 말한다. 가난한 사람이 거처하는 좁고 누추한 방을 형용하는 말이다. 《禮記 儒行》‧《淮南子 原道訓》
역주3 席三經之席 : 세 部의 經書가 펼쳐져 있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말이다. 세 부의 경서는 아래에 보이는 《詩經》‧《書經》‧《周禮》인 듯하다.
역주4 藜羹不糝 : 나물국에 쌀을 넣어 끓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藜羹은 명아주잎으로 끓인 국으로 맛없고 거친 음식을 형용하며, 糝은 쌀이나 쌀가루를 음식에 버무려 조리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5 〈之〉 : 저본에는 ‘之’자가 없으나, 《群書拾補》에 《韓詩外傳》 권7과 《孔子家語》 〈在厄〉에 의거하여 ‘之’자를 보충하였고, 《說苑校證》도 이를 따라 보충하면서, 《荀子》 〈宥坐〉에도 ‘之’가 있다고 한 것을 따라 보충하였다.
역주6 王子比干 : 본서 권4 〈立節〉 02의 주5) 참고.
역주7 則鮑莊 何爲而肉枯 : 鮑莊은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則鮑叔 何爲而不用”으로 되어 있다.
역주8 荊公子高 : 어떤 사람인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葉公子高’로 되어 있는데, ‘섭공자고’는 춘추시대 楚나라 葉縣尹 沈諸梁으로, 子高는 字이다.
역주9 鮑焦 : 춘추시대 周나라의 隱士이다. 세상을 비난하며 天子에게 신하 노릇하지 않고 諸侯와 벗하지 않으면서 홀로 가난하고 깨끗하게 살았다. 子貢이 그의 행실을 꾸짖자, 나무를 끌어안고 죽었다. 《莊子 盜跖》‧《韓詩外傳 1》‧《風俗通 愆禮》
역주10 介子推 : 본서 권6 〈復恩〉 04의 주7) 참고.
역주11 歷山 : 舜이 天子가 되기 전에 농사를 지은 곳이라는 옛 山 이름이다. 그 위치에 대해서는 여러 說이 있다. 山西省 永濟縣 남동쪽에 있는 일명 雷首山, 浙江省 永康縣 남쪽에 있는 일명 釜歷山, 河南省 范縣(옛 濮陽)의 남동쪽, 山東省 濟南市 남동쪽에 있는 千佛山(일명 舜耕山) 등의 설이 있다. 《書經 虞書 大禹謨》‧《史記 五帝本紀》‧《讀史方輿紀要 浙江 金華府 永康縣》
역주12 (逃)[陶] : 저본에는 ‘逃’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陶’로 바로잡았다.
역주13 傅說(열) : 본서 권11 〈善說〉 10의 주1) 참고.
역주14 武丁 : 본서 권1 〈君道〉 27의 주1) 참고.
역주15 媵臣 : 옛날 諸侯의 딸이 시집갈 때 파견하여 隨行하는 사람을 媵臣이라 하였다. 《史記 殷本紀》‧《史記 秦本紀》
역주16 呂望 : 본서 권1의 〈君道〉 16의 주1) ‘太公’ 참고.
역주17 棘津 : 河南省 滑縣 남서쪽의 黃河 가에 있던 나루 이름이다. 南津‧石濟津이라고도 한다. 《春秋左氏傳 昭公 17년》‧《史記 游俠列傳》
역주18 朝歌 : 河南省 북쪽 淇縣의 縣 所在地이다. 예전의 沬邑인데, 商나라 말기에 朝歌로 고치고 帝乙과 帝辛의 別都가 되었다. 周 武王이 상나라를 멸한 뒤 이곳에 康叔을 봉하여 衛나라가 되었다. 《書經 周書 酒誥》‧《淮南子 說山訓》‧《漢書 地理志 上》
역주19 百里奚 : 본서 권2 〈臣術〉 09의 주2) 참고.
역주20 伯氏牧羊 : 伯氏는 秦伯, 곧 秦 穆公을 말한다. 《韓詩外傳》 권7에는 “爲秦伯牧牛”로 되어 있다.
역주21 沈尹 : 누구인지 미상이다. 《韓詩外傳》 권7에는 ‘虞丘’로 되어 있고, 본서 권14 〈至公〉 13에는 ‘虞丘子’로 되어 있다.
역주22 王良造父 : 본서 권15 〈指武〉 05의 주5) 참고.
역주23 〈而志〉 : 저본에는 없으나, 《群書拾補》에 “‘而志’ 2자가 빠졌는데 《韓詩外傳》에 근거하여 보충하였다.”라고 한 것을 따라 보충하였다.
역주24 關龍逢(방) : 본서 권9 〈正諫〉 02의 주3) 참고.
역주25 無惠 : 《說苑校證》에 “‘無惠’가 《韓詩外傳》에는 ‘不惠’로 되어 있다. ‘惠’는 ‘慧’와 통용이다.”라고 하였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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