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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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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5. 楚昭王召孔子하야 將使執政而封以七百이러니 謂楚王曰 王之臣 用兵有如子路者乎잇가 使諸侯有如宰予者乎잇가 有如子貢者乎잇가 昔文王處하시고 武王處하시니 酆鎬之間 百乘之地로되 伐上殺主하고 立爲天子 世皆曰聖王이라하니이다
초 소왕楚 昭王공자孔子를 불러 국정國政을 맡기고 700리 되는 서사書社의 땅을 봉하려고 하였는데, 자서子西초왕楚王에게 말했다. “의 신하 중에 용병用兵자로子路처럼 하는 이가 있습니까? 제후에게 보낼 사신으로 재여宰予 같은 이가 있습니까? 오관五官(백관百官)을 관리할 관원 중에 자공子貢 같은 이가 있습니까? 예전에 문왕文王에 계셨고 무왕武王에 계셨는데, 의 사이는 병거兵車 100이 나올 정도의 작은 땅이었지만 윗사람을 토벌하여 주왕紂王을 죽이고 즉위하여 천자天子가 되었으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성왕聖王이라고 합니다.
今以孔子之賢으로 而有書社七百里之地하고 而三子佐之 非楚之利也니이다 楚王遂止하다 夫善惡之難分也 聖人獨見疑어든 而況於賢者乎 是以賢聖罕合하고 諂諛常興也 故有千歲之亂하고 而無百歲之治하나니 孔子之見疑 豈不痛哉
지금 공자孔子같이 현명한 사람으로서 700리나 되는 서사書社를 소유하게 하고, 이 세 사람이 보좌하면 나라에 이롭지 않습니다.”이에 초왕楚王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선악善惡은 분별하기 어려우니 성인聖人도 오히려 의심을 받는데, 더구나 현인賢人이겠는가! 이 때문에 현인賢人성인聖人은 때를 만나기 어렵고, 아첨하는 사람은 언제나 흥성한 법이다. 그러므로 천 년의 혼란한 시기는 있고, 백 년 동안의 짧은 치세治世도 없었으니, 공자孔子께서 의심을 받으신 일이 어찌 통탄스럽지 않은가!
역주
역주1 書社 : 周代에 25家를 단위로 社를 세워 社內의 田地와 戶口를 장부에 기록하는 일을 말한다. 또는 장부에 등록된 人口와 田地를 말하기도 한다. 《春秋左氏傳 哀公 15년》‧《呂氏春秋 愼大》
역주2 子西 : 춘추시대 楚나라 公子 申이다. 子西는 그의 字이다. 楚 平王의 庶子로, 令尹 子常이 王으로 추대하려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昭王을 세우고 令尹이 되었다. 뒤에 白公 勝의 반란에 피살되었다. 《春秋左氏傳 成公 6‧15‧17년, 襄公 2년, 哀公 6년》
역주3 長官五官 : 百官을 관장할 우두머리 官員을 말한다. 五官은 殷周 때 政事를 分掌하던 다섯 고위 관직인데, 여기서는 百官을 가리킨다. 《禮記 曲禮 下》‧《周禮 春官 小宗伯》
역주4 : 본래 商나라 때 崇侯 虎의 邑이었으나, 周 文王이 崇을 멸한 후 이곳에 도읍하였다. 지금의 陝西省 戶縣 북쪽에 있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
역주5 : 西周시대의 國都 鎬京이다. 周 武王이 商나라를 멸하고 酆에서 이곳으로 遷都하여 國都가 되었다. 지금의 陝西省 西安市 서남쪽 灃水 가에 있었다. 宗周 또는 西都라고도 부른다. 《詩經 大雅 文王有聲》‧《逸周書 作雒》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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