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說苑(2)

설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賢人君子者 通乎盛衰之時하고 明乎成敗之端하며 察乎治亂之紀하고 審乎人情하야 知所去就
故雖窮이나 不處亡國之勢하고 雖貧이나 不受之祿이라 是以太公年七十而不自達하고 孫叔敖三去相而不自悔하니 何則 不强合非其人也니라
太公一合於周하야 而侯七百歲하고 孫叔敖一合於楚하야 而封十世하니라 大夫種存亡越而霸句踐호되 賜死於前하고 積功於秦호되 而卒被이라
盡忠憂君하고 危身安國 其功一也어늘 或以封侯而不絶하고 或以賜死而被刑하니 所慕所由異也 故箕子棄國而佯狂하고 范蠡去越而易名하며 去君弟而更姓하니
皆見遠識微하고 而仁能去富勢하야 以避萌生之禍者也니라 夫暴亂之君 孰能離縶以役其身하야 而與于患乎哉 故賢者 非畏死避害而已也 爲殺身無益이요 而明主之暴也
比干死紂而不能正其行하고 子胥死吳而不能存其國하니 二子者 强諫而死하야 適足明主之暴耳 未始有益如秋毫之端也 是以賢人閉其智하고 塞其能하야 待得其人然後合이라
故言無不聽하고 行無見疑하야 君臣兩與하야 終身無患이니라 今非得其時 又無其人이어늘 直私意不能已하야 閔世之亂하고 憂主之危하야 以無貲之身으로 涉蔽塞之路하야 經乎讒人之前하고 造無量之主하야 犯不測之罪하야 傷其天性이면 豈不惑哉
李斯 天下所謂賢也 爲國計하야 揣微射隱하니 所謂無過策也 戰勝攻取하니 所謂無强敵也
積功甚大하고 勢利甚高로되 賢人不用하고 讒人用事하니 自知不用호되 其仁不能去 制敵積功 不失秋毫어늘 避患去害 不見丘山이라 積其所欲하야 以至其所惡하니 豈不爲勢利惑哉 라하니 此之謂也니라


현인賢人 군자君子성쇠盛衰시기時機에 통달하고 성패成敗의 단서에 밝으며, 치란治亂의 준칙을 잘 살피고 사람의 상정常情을 자세히 알아서 거취去就할 바를 안다.
그러므로 곤궁하더라도 멸망할 형세의 나라에는 살지 않고, 가난하더라도 무도無道한 임금의 녹봉은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강태공姜太公은 나이가 일흔이 되도록 스스로 현달을 구하지 않았고, 손숙오孫叔敖는 세 번이나 재상의 자리를 떠났으나 스스로 후회하지 않았으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적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억지로 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공은 한번 나라와 뜻이 투합하여 그 후손이 700년 동안 제후諸侯 노릇하였고, 손숙오는 한번 나라와 뜻이 투합하여 10대 동안 봉지封地를 소유하였다. 대부大夫 문종文種은 망하게 된 나라를 보존하고 구천句踐에게 패업霸業을 이루어주었으나 구천의 면전面前에서 사사賜死되었고, 이사李斯나라에 많은 을 쌓았으나 끝내 오형五刑을 당하였다.
충성을 다해 임금을 걱정하고 몸을 위험하게 하면서 나라를 안정시킨 공은 똑같다. 그런데 어떤 이는 제후에 봉해져서 가 끊어지지 않았고, 어떤 이는 사사되어 사형을 당했으니, 이는 사모하는 와 지나온 길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기자箕子는 나라를 버리고 거짓으로 미친 체하였고, 범려范蠡는 월나라를 떠나면서 이름을 바꾸었으며, 지과智過는 임금의 아우라는 신분을 버리고 을 고쳤다.
이들은 모두 먼 앞날을 내다보고 일의 기미를 알았으며, 인자仁者부귀富貴권세權勢를 버려서 화환禍患이 싹트기 전에 미리 피한 사람들이다. 사납고 혼란한 임금에게 누가 구속되어 몸 바쳐 일하면서 그와 함께 환난에 참여하겠는가. 그러므로 어진 이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재해災害를 피하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으니, 자기의 몸을 희생하여도 유익함이 없고 임금의 포악함만 드러내기 때문이다.
비간比干를 위해 죽었으나 그의 행위를 바르게 하지 못했고, 오자서伍子胥나라를 위해 죽었건만 그 나라를 보존하지 못하였으니, 이 두 사람은 강력하게 하다가 죽어서 다만 임금의 포악함만 드러내기에 충분했을 뿐, 일찍이 털끝만큼도 유익한 단서는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어진 이는 그의 지혜를 감추고 능력을 숨겨서 적절한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린 뒤에 뜻이 투합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하면 따르고 하는 일을 의심하지 않아서 임금과 신하가 함께 신뢰하여 일생을 마칠 때까지 근심이 없었다. 지금 그런 시기를 만나지 못했고, 또 그런 임금이 없는데, 단지 자기의 사사로운 생각을 그만두지 못하여 세상의 혼란을 안타까워하고 임금의 위험을 근심하여 값을 따질 수 없는 귀한 몸을 가지고 막혀 있는 벼슬길을 가려고 참소하는 사람의 앞을 지나고 도량이 없는 임금에게 나아가 헤아릴 수 없는 죄를 지어 자기의 천성天性을 손상시킨다면 어찌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
그 때문에 문신후文信侯이사李斯는 천하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말하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한 계책을 세워 은미隱微한 일을 헤아리고 살피니, 이른바 잘못된 계책이 없다는 것이고, 전쟁하면 승리하고 공격하면 빼앗으니, 이른바 그 앞에 강한 이 없다는 것이다.
쌓은 공로가 매우 크고 권세權勢재리財利가 매우 높았으나, 어진 이가 등용되지 않고 참소하는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였다. 그러니 자기가 중용重用되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인자한 마음에 차마 떠나지 못하였다. 적을 제압하고 공을 쌓을 때에는 털끝만큼의 실수도 없었는데, 환난患難위해危害를 피할 때에는 산처럼 큰 재난을 보지 못하였다. 이는 자기의 욕망을 쌓아 자기가 싫어하는 데에 이른 것이니, 어찌 권세와 재리에 현혹되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시경詩經》에 “사람들이 하나만 알고, 다른 것은 알지 못한다.” 하였으니, 이를 두고 이른 말이다.


역주
역주1 汙君 : 無道하고 용렬한 임금을 이른다.
역주2 李斯 : 秦나라 上蔡 사람으로, 荀卿의 제자이다. 客卿을 지내고 始皇이 천하를 통일한 후에 丞相이 되었다. 郡縣制를 제정하고 禁書令을 내렸으며, 小篆을 만들어 표준 문자를 통일하였다. 시황이 죽자, 趙高의 계책에 따라 胡亥를 二世皇帝로 세웠다. 뒤에 아들 由가 반란에 가담했다는 조고의 모함으로 腰斬당하고 三族이 멸족되었다. 《史記 李斯列傳》
역주3 五刑 : 輕重이 각기 다른 다섯 가지 형벌이다. 秦代 이전에는 墨‧劓‧剕(刖)‧宮‧大辟(殺)을 五刑이라 하였고, 秦漢시대에는 黥‧劓‧趾‧梟首‧菹를 五刑이라 하였다. 《書經 虞書 舜典》‧《史記 秦始皇本紀》
역주4 智過 : 전국시대 趙나라 사람으로, 智伯의 家臣이다. 過는 果로도 쓰는데, 晉나라의 大夫로, 智氏의 일족이라고 한다. 《國語 晉語 9》‧《戰國策 趙策 1》‧《韓非子 十過》
역주5 文信侯 : 전국시대 말기 사람 呂不韋의 封號이다. 衛나라 濮陽(지금의 河南省 濮陽 西南) 사람으로, 원래 큰 商人이었다. 趙나라 首都 邯鄲에 있을 때, 人質로 조나라에 와 있던 秦나라 公子 異人(뒤에 이름을 子楚로 고쳤고 莊襄王이 됨)을 만나 그를 구출해주고, 자기와 通情하여 임신한 여인을 그에게 바쳐 아들 政을 낳았는데, 정이 王位를 이어 秦 始皇이 되었다. 뒤에 相國이 되어 仲父의 칭호를 받았으나, 太后와 간통한 죄가 드러날까 두려워하여 자살하였다. 賓客을 모아 《呂氏春秋》를 지었다. 《史記 呂不韋列傳》
역주6 詩云……莫知其他 : 《詩經》 〈小雅 小旻〉에 보인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