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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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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1. 爲姦하야 穿北門垣하야 以爲하다 하야 貧無車馬하야 常步與走卒起居하니 所以慰愛走卒甚厚하다
효소황제孝昭皇帝 때에 북군北軍 감어사監御史가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하여 북문北門의 담장을 뚫어서 물건을 매매하는 장소로 만들었다. 호건胡建북군위北軍尉로 근무하면서 가난하여 거마車馬가 없어 항상 걸어다니며 사졸들과 생활하였다. 이 때문에 사졸들을 위로하고 사랑함이 매우 두터웠다.
建欲誅監御史하야 乃約其走卒曰 我欲與公有所誅하니 吾言取之則取之하고 斬之則斬之하라
호건이 감어사를 주살誅殺하려고 마침내 사졸들과 약속하여 말했다. “나는 그대들과 주살할 사람이 있으니, 내가 잡으라고 하면 잡고, 내가 참수斬首하라고 하면 참수하라.”
於是當選士馬日하야 하고 監御史亦坐하다 建從走卒趨至堂下하야 拜謁하고 因上堂하니 走卒皆上하다
이에 병마兵馬(군대)를 선발하는 날에 호군護軍과 여러 교위校尉들이 위에 벌여 앉았고 감어사도 앉아 있었다. 호건이 사졸들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당 아래에 이르러 배알拜謁하고 이어 당에 오르니 사졸들도 모두 올라왔다.
建跪指監御史曰 取彼하라 走卒前拽下堂하다
호건이 무릎을 꿇고 감어사를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저자를 잡아라.” 하니, 사졸들이 앞으로 나와 그를 끌고 당 아래로 내려갔다.
建曰 斬之하라 遂斬監御史하다 護軍及諸校皆愕驚하야 不知所以러라
호건이 말하기를 “참수하라.” 하니, 마침내 감어사를 참수하였다. 호군과 여러 교위들이 모두 놀라 어쩔 줄을 몰랐다.
建亦已有成奏在其懷하야 遂上奏以聞하야 曰 臣聞軍法 立武以威衆하고 誅惡以禁邪라호이다 今北軍監御史 公穿軍垣하야 以求賈利하야 私買賣以與士市하야 不立剛武之心 勇猛之意하야 以率先士大夫하니 尤失理不公이로소이다
호건은 또한 이미 작성한 상주문上奏文을 품속에 지니고 있다가 마침내 상주문을 올려 보고하였다. “신은 들으니, 군법軍法무위武威를 세워 군대에 위엄을 보이고 악한 사람을 주살하여 사악한 행위를 금지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북군 감어사는 개인적인 이익을 취하기 위해 공공연히 군영의 담을 뚫어 사사로이 군사들과 물건을 거래하여, 강한 무용武勇의 정신과 용감한 의지를 세워서 사대부士大夫들이 솔선하지 않으니, 더욱 불합리하고 불공정합니다.
臣聞 曰 壘壁已具어늘 行不由路 謂之姦人이니 姦人者殺이라호이다 臣謹以斬之하고 昧死以聞하노이다
신은 들으니, 《황제리법黃帝理法》에 ‘군영의 성벽城壁이 이미 완비되었는데 규정된 길을 따라 다니지 않으면 이런 이를 사악한 사람이라고 이르니, 사악한 사람은 죽여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신은 삼가 이런 사람을 참수斬首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보고합니다.”
라하니 建有何疑焉이리오 建由是名興하야 後至令死하니 至今渭城 有其祠也하니라
황제가 비답批答을 내렸다. “《사마법司馬法》에 ‘나라의 제도制度의절儀節은 군대에 적용하지 않고, 군대의 제도와 의절은 나라에 적용하지 않는다.’라 하였는데, 호건은 무엇을 의심하는가!”호건이 이 일 때문에 이름을 떨쳐서 뒤에 위성령渭城令에 이르러 임소에서 죽었는데, 지금까지 위성에 그의 사당이 있다.
역주
역주1 孝昭皇帝 : 漢나라의 제8대 황제이다. 이름은 弗陵인데, 武帝의 작은 아들이다. 霍光‧金日磾‧上官桀 등의 보좌로 국력의 회복에 힘썼다. 始元‧元鳳‧元平의 세 연호를 사용하였다. 《漢書 昭帝紀》
역주2 北軍監御史 : 北軍은 漢代에 京師를 守衛하던 屯衛兵이다. 한대의 未央宮은 京城 서남쪽에 있어서 그곳을 수위하는 군대를 南軍이라 하고, 長樂宮은 경성의 북쪽에 있어서 그곳을 수위하는 군대를 북군이라 하였다. 監御史는 곧 監軍御史로, 軍中을 감찰하던 임시 벼슬이다. 《史記 呂太后本紀》‧《漢書 楊胡朱梅云傳》‧《欽定歷代職官表 18》
역주3 賈(고)區 : 물품을 사고파는 작은 집이다. 《漢書 胡建傳》
역주4 胡建守北軍尉 : 胡建은 漢나라 河東 사람으로, 字는 子孟이다. 武帝 때 守君正丞이 되어 민심을 얻었고, 渭城令을 지냈다. 昭帝의 누이 蓋長公主의 情夫가 자객을 보내 京兆尹을 살해하고 개장공주의 집에 숨어 있는 것을 붙잡았는데, 개장공주가 호건에게 능욕을 당했다고 무고하자 자살하였다. 吏民들이 그의 원통함을 알고 사당을 세워 제사하였다. 《漢書 胡建傳》 守는 직무를 맡긴다는 뜻이다. 北軍尉는 北軍校尉로, 軍中의 법을 집행하는 벼슬이다.
역주5 護軍諸校列坐堂皇上 : 護軍은 秦漢시대에 장군들 사이의 관계를 조절하기 위하여 임시로 두었던 벼슬로, 護軍中尉가 있었다. 《史記 陳丞相世家》‧《漢書 韓王信傳》 堂皇은 관리가 집무하는 청사를 이른다. 《漢書》 〈胡建傳〉의 顔師古 注에 “사방에 벽이 없는 방을 皇이라 한다.” 하였다.
역주6 黃帝理法 : 黃帝의 이름을 가탁하여 征伐과 刑戮에 관한 일을 기록한 책이다. 《漢書》 〈胡建傳〉에는 黃帝李法으로 되어 있는데, 顔師古 注에 “李는 法官의 칭호이다. 정벌과 형륙에 관한 일을 총괄하여 주관하기 때문에 그 책 이름을 李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역주7 : 황제의 명령인데, 여기서는 批答으로 번역하였다.
역주8 司馬法……軍容不入國 : 《司馬法》은 兵書의 하나로, 本名은 《司馬穰苴兵法》이다. 전국시대 齊 威王이 大夫에게 예전의 司馬兵法을 追論하고 司馬穰苴의 병법을 그 안에 붙이게 하여 만들었다. 이 구절은 〈天子之義〉에 보인다. 《史記 司馬穰苴列傳》
역주9 渭城 : 漢代에 두었던 縣 이름이다. 治所는 지금의 陝西省 咸陽市 동북쪽의 渭城區 窑店镇 일대에 있었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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