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晉
擧
하니 晉君以爲中軍尉
러니 趙盾死
에 하다
至
三年
하야 趙朔爲晉將
하고 朔取
爲夫人
이러니 大夫
欲誅趙氏
하다
初
에 趙盾在
에 夢見
持
要而哭
하야 甚悲
라가 已而笑
하고 拊手且歌
하다
占曰 此甚惡
하니 非君之身
이면 及君之子
나 然亦君之咎也
니이다
屠岸賈者는 始有寵於靈公이러니 及至於晉景公하야 而賈爲司寇하다
에 盾雖不知
나 猶爲首賊
이라 臣殺君
이어늘 子孫在朝
면 何以懲罪
리오 請誅之
하노라
韓厥曰 靈公遇賊에 趙盾在外하니 吾先君以爲無罪라
故不誅어늘 今諸君將誅其後하니 是非先君之意而後妄誅라
妄誅면 謂之亂臣이요 有大事而君不聞이면 是無君也니라
賈不請
하고 而擅與諸將攻趙氏於下宮
하야 殺
趙括趙嬰齊
하고 皆滅其族
하다
朔妻成公姊有遺腹
하야 走公宮匿
이라가 後生男
하니 乳
에 朔客
이 持亡匿山中
하다
居十五年
에 晉景公疾
하야 卜之
하니 曰
之後 不遂者爲祟
라하야늘
夫自
으로 皆嬴姓也
니 中衍人面鳥喙
로 降佐殷帝大戊
하고 及周天子
하야 皆有明德
하니이다
下及
無道
하야 而叔帶去周適晉
하야 事先君
하고 至于成公
하야 世有立功
하야 未嘗有絶祀
러니이다
於是景公乃與韓厥로 謀立趙孤兒하고 召而匿之宮中하다
諸將入問疾
한대 景公因韓厥之衆
하야 以脅諸將而見趙孤
하니 孤名曰
라
諸將不得已하야 乃曰 昔下宮之難은 屠岸賈爲之하야 矯以君令하고 幷命群臣하니 非然이면 孰敢作難이리잇가
微君之疾이면 群臣固且請立趙後러니 今君有令하시니 群臣之願也로소이다
將軍遂返하야 與程嬰趙武攻屠岸賈하야 滅其族하고 復與趙武田邑如故하다
非程嬰이면 則趙孤不全이요 非韓厥이면 則趙後不復이니 韓厥可謂不忘恩矣로다
진晉나라 조돈趙盾이 한궐韓厥을 천거하니 진군晉君이 중군위中軍尉로 삼았는데, 조돈이 죽자 그 아들 조삭趙朔이 계승하여 경卿이 되었다.
경공景公 3년에 이르러 조삭은 진나라의 장군이 되었고, 진 성공晉 成公의 누이에게 장가들어 부인으로 삼았는데, 대부大夫 도안가屠岸賈가 조씨趙氏를 주멸誅滅하려고 하였다.
애초에 조돈이 살아 있을 때 꿈에 숙대叔帶가 손으로 허리를 잡고 매우 슬피 곡哭하다가 이윽고 웃고 손뼉을 치면서 또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보았다.
조돈이 점占을 치자 점에 나타난 균열이 끊어졌다가 뒤에 좋아졌다.
조씨의 사관史官 원援이 점조占兆를 이렇게 풀이하였다. “이 점은 매우 나쁘니 주군主君의 신상에 응험하지 않으면 주군의 아들에게 응험이 미치겠지만 이는 주군의 과오로 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 조삭에 이르러 가세家世가 더욱 쇠약해졌다.
도안가屠岸賈는 처음에 영공靈公의 총애를 받았는데, 진 경공晉 景公 때에 이르러 도안가를 사구司寇로 삼았다.
난을 일으키려고 할 때 영공을 시해한 적賊을 다스리면서 조돈에 연루시키고 여러 장수에게 두루 알리며 말하였다.
“조천趙穿이 영공을 시해할 때 조돈은 이를 알지 못했으나 그래도 역적逆賊의 우두머리요. 신하로서 임금을 시해하였는데 그의 자손이 조정에 있다면 어떻게 죄 있는 사람을 징벌懲罰하겠는가? 그들을 주살誅殺할 것을 청하오.”
이에 한궐韓厥이 말했다. “영공이 적에게 해를 당할 때 조돈은 도망쳐 외지外地에 있었으니, 우리 선군先君께서 그는 죄가 없다 하였소.
그래서 그를 죽이지 않았는데 지금 여러분들이 그의 후대後代를 죽이려고 하니 이는 선군의 뜻이 아닌데 함부로 죽이는 것이오.
함부로 죽이면 이를 난신亂臣이라 하고 큰일을 저지르면서 임금께 보고하지 않으면 이는 임금을 무시하는 것이오.”
한궐이 조삭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말했으나 조삭은 따르려 하지 않으면서 말했다.
“그대가 기필코 조씨趙氏의 제사를 단절시키지 않는다면 나는 죽어도 유감이 있지 않을 것이오.”
한궐은 그렇게 하겠다고 허락하고 병을 핑계로 밖에 나가지 않았다.
도안가는 임금에게 요청하지도 않고 제 마음대로 여러 장수와 하궁下宮에서 조씨를 공격하여 조삭趙朔‧조동趙同‧조괄趙括‧조영제趙嬰齊를 죽이고 그들의 종족을 모두 멸하였다.
조삭의 아내 성공成公의 누이는 유복자遺腹子를 임신하고 있어서 공궁公宮으로 달아나 숨어 있다가 나중에 아들을 낳으니, 젖먹이 때에 조삭의 문객門客 정영程嬰이 이 아이를 데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숨어 살았다.
15년이 지난 뒤에 진 경공晉 景公이 병들어 점을 치니, 점괘에 “대업大業의 후예로서 뜻을 이루지 못한 사람이 빌미가 되었다.”라 하였다.
경공이 급히 한궐에게 묻자, 한궐은 조씨의 고아孤兒가 살아 있음을 알고 대뜸 말했다.
“대업大業의 후예로 진晉나라에 있으면서 제사가 끊어진 것은 아마 조씨일 것입니다.
중연中衍으로부터 모두 영씨嬴氏인데, 중연은 사람의 얼굴에 새의 부리로 탄생하여 은제殷帝 태무太戊를 돕고 주周 천자天子까지 도와 모두 밝은 덕행德行이 있었습니다.
아래로 내려와 유왕幽王‧여왕厲王의 무도無道한 때에 이르러 숙대叔帶가 주周나라를 떠나 진晉나라로 와서 선군先君 문후文侯를 섬겼고 성공成公대에까지 대대로 세운 공功이 있어서 일찍이 제사가 끊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 임금대에 이르러 유독 조씨의 종족을 멸하니 나라 사람들이 애통해합니다.
그래서 점괘에 나타난 것이니, 군주께서는 고려하십시오.”
이에 경공이 물었다. “조씨는 아직 후대 자손이 있소?” 한궐이 사실대로 빠짐없이 대답하였다.
이에 경공이 한궐과 함께 조씨의 고아를 세우기로 모의謀議하고 불러다가 궁중宮中에 숨겨두었다.
여러 장수가 들어와 문병하자, 경공이 한궐의 병력을 이용하여 여러 장수를 협박해서 조씨의 고아를 가서 보게 하니 고아의 이름을 무武라 하였다.
여러 장수는 부득이 말했다. “종전의 하궁下宮에서 있었던 난은 도안가가 주관하여 임금의 명령이라 속이고 아울러 군신群臣을 호령한 것이니, 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난을 일으키겠습니까?
임금께서 병이 나지 않았으면 군신群臣이 본디 조씨의 후손을 찾아 세울 일을 요청하려 했는데, 지금 임금께서 이렇게 명령하시니 군신群臣의 소원입니다.”
이렇게 하여 조무趙武와 정영程嬰을 불러와서 여러 장수에게 두루 절을 올리게 하였다.
장수들이 마침내 돌아가서 정영‧조무와 함께 도안가를 공격하여 그의 종족을 멸하고 다시 조무의 전지田地와 채읍采邑을 원래와 똑같이 주었다.
그러므로 사람이 어떻게 은혜를 베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곳에서 은혜를 베풀면 저곳에서 보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정영이 있지 않았으면 조씨의 고아는 보전되지 못했을 것이고, 한궐이 있지 않았으면 조씨의 후예는 다시 회복되지 못했을 것이니, 한궐은 은혜를 잊지 않았다고 이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