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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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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37. 할새 獸已聚矣 田車合矣러니 傳來告曰 하니이다
한무자韓武子가 사냥할 적에 짐승을 몰아서 이미 한군데 모았고 사냥하는 수레가 이미 포위하였는데, 전령이 와서 “진공晉公이 죽었습니다.”라고 보고하였다.
武子謂曰 子亦知好田獵也
한무자가 난회자欒懷子에게 말했다. “내가 사냥을 좋아함은 그대도 알고 있소.
獸已聚矣 田車合矣 吾可以卒獵而後弔乎
짐승을 몰아서 이미 한군데 모았고 사냥하는 수레가 이미 포위하였으니, 내가 사냥을 마치고 난 뒤에 조문弔問해도 괜찮겠는가?”
懷子對曰 之亡也 多輔而少拂이니
난회자가 대답했다. “범씨范氏가 망한 것은, 돕는 사람은 많고 바로잡는 사람은 적었기 때문입니다.
今臣於君 輔也 於君 拂也 君胡不問於畾也잇고
지금 저는 당신에 있어 돕는 사람이고, 는 바로잡는 사람인데 당신은 어찌 뇌에게 묻지 않습니까?”
武子曰 盈而欲拂我乎 而拂我矣어늘 何必畾哉 遂輟田하다
한무자가 말했다. “난영欒盈아, 너는 나를 바로잡으려는 것이냐? 네가 나를 바로잡았는데 어찌 굳이 뇌에게 묻겠느냐!” 그리고는 마침내 사냥을 중지하였다.
역주
역주1 韓武子 : 춘추시대 晉나라 大夫이다. 晉나라에는 두 명의 韓武子가 있다. 하나는 曲沃莊伯의 아우 韓萬으로, 武公이 翼을 칠 때 禦戎이 되어 翼侯를 사로잡는 데 공을 세워 韓原에 봉해지자 韓으로 氏를 삼았다. 또 하나는 韓康子의 아들 啓章으로, 鄭나라를 쳐서 鄭 幽公을 죽였다. 여기서의 武子는 韓萬인 듯한데, 다만 欒懷子(欒盈)와의 연대가 맞지 않다. 《春秋左氏傳 桓公 3년》‧《潛夫論 志氏篇》‧《資治通鑑前編 18》
역주2 晉公 : 晉 武公을 이른다. 武公은 춘추시대 曲沃莊伯의 아들로, 이름은 稱이다. 哀侯와 小子侯를 죽이고 晉侯 緡을 토벌하여 멸한 후 모든 寶器를 周나라에 뇌물로 바치자 周 釐王이 그를 晉君으로 삼아 제후가 되었다. 晉나라 국토를 모두 병합하고 처음으로 晉에 도읍하여 國號를 晉이라 하였다. 《史記 晉世家》
역주3 欒懷子 :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으로, 平公 때 下卿이 되었다. 范宣子의 무고로 쫓겨나 楚나라로 달아났다가 齊나라로 가 있다가 晉나라에 잠입하여 敗戰한 뒤 曲沃으로 달아났으나 滅族되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21년》‧《史記 齊世家》
역주4 (君)[吾] : 저본에는 ‘君’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楚府本에 의거하여 ‘吾’로 고쳤다.” 하였고, 《說苑校證》에 “明鈔本에도 ‘吾’자로 썼다.” 한 것에 따라 ‘吾’로 바로잡았다.
역주5 范氏 : 춘추시대 晉나라의 大夫家이다. 뒤에 晉나라에서 반란을 일으켜 趙盟과 싸우다가 魯 哀公 5년에 멸망하였다.
역주6 : 사람 이름으로, 姓과 행적은 미상이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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