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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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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秦始皇帝太后不謹하야 幸郞하야 封以爲長信侯하고 爲生兩子하다
毐專國事하야 浸益驕奢하야 與侍中左右貴臣으로 俱博飮하다
酒醉하야 爭言而鬪하면 瞋目大叱曰
吾乃皇帝之어늘 窶人子何敢乃與我고하니
所與鬪者走行하야 白皇帝한대 皇帝大怒하다
毐懼誅하야 因作亂하야 戰咸陽宮이라가 毐敗하다
始皇乃取毐하야 四肢車裂之하고 取其兩弟하야 囊撲殺之하다
取皇太后하야 遷之於하고 下令曰
敢以太后事諫者 戮而殺之하야 하야 而積之闕下호리라
諫而死者二十七人矣러라
齊客 乃往上謁曰
齊客茅焦 願上諫皇帝하노이다
皇帝使使者出問客호되 得無以太后事諫也
茅焦曰然하다 使者還白曰 果以太后事諫이로소이다
皇帝曰 走往告之호되 不見闕下積死人邪아하라
使者問茅焦한대 茅焦曰
臣聞之호니 天有二十八宿어늘 今死者已有二十七人矣
臣所以來者 欲滿其數耳
臣非畏死人也 走入白之하라
茅焦邑子同食者 盡負其衣物行亡하다
使者入白之한대 皇帝大怒曰
是子故來犯吾禁하니 趣炊鑊湯煮之하라
是安得積闕下乎 趣召之入하라
皇帝按劍而坐하니 口正沫出이러라
使者召之入한대 茅焦不肯疾行하고 足趣相過耳어늘
使者趣之하니 茅焦曰 臣至前則死矣어늘 君獨不能忍吾須臾乎
使者極哀之러라
茅焦至前하야 再拜謁起하고 稱曰
臣聞之호니 夫有生者 不諱死하고 有國者 不諱亡하나니
諱死者 不可以得生이요 諱亡者 不可以得存이니이다
死生存亡 聖主所欲急聞也
不審陛下欲聞之不잇가
皇帝曰 何謂也
茅焦對曰 陛下有狂悖之行이어늘 陛下不自知邪잇가
皇帝曰 何等也 願聞之하노라
茅焦對曰 陛下車裂假父하시니 有嫉妬之心이요 囊撲兩弟하시니 有不慈之名이요
遷母萯陽宮하시니 有不孝之行이요 從蒺蔾於諫士하시니 有桀紂之治니이다
今天下聞之하고 盡瓦解無嚮秦者하니
臣竊恐秦亡하야 爲陛下危之하노이다
所言已畢하니 乞行就하노이다
乃解衣伏質하니
皇帝下殿하야 左手接之하고 右手麾左右曰
赦之하라 先生就衣어다 今願受事하노라
乃立焦爲仲父하고 爵之上卿하다
皇帝立駕千乘萬騎하야 空左方하고 自行迎太后萯陽宮하야 歸於咸陽하다
太后大喜하야 乃大置酒하고 待茅焦하다
及飮 太后曰 抗枉令直하고 使敗更成하야 安秦之社稷하고 使妾母子復得相會者 盡茅君之力也라하다


진시황제秦始皇帝의 어머니 태후太后는 몸을 단속하지 아니하여, 낭관郎官 노애嫪毐를 사랑하여 장신후長信侯에 봉하고 두 아들을 낳았다.
노애는 국가의 정사를 전횡하여 점점 더욱 교만하고 사치하여 시중侍中 등 황제 측근의 존귀한 신하와 함께 도박하며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하여 언쟁言爭하며 싸우게 되면 눈을 부릅뜨고 크게 꾸짖었다.
“나는 황제의 의부義父이거늘 가난뱅이 주제에 감히 나와 대항하느냐!”
그와 싸우던 사람이 달려가서 진시황제에게 이 사실을 아뢰자 진시황제가 크게 노하였다.
그러자 노애는 주살誅殺될까 두려워서 곧장 반란을 일으켜 함양궁咸陽宮을 공격하였다가 패배하였다.
진시황제는 즉시 노애를 잡아다가 사지四肢를 수레에 묶어 찢어 죽이고, 두 아우를 잡아 자루에 넣어 때려 죽였다.
그러고는 황태후皇太后를 데려다가 부양궁萯陽宮에 옮겨 유폐시키고는 명령을 내렸다.
“감히 태후의 일로 간하는 자는 참살斬殺하여 가시나무로 등줄기와 사지를 꿰어 대궐 아래에 쌓아둘 것이다.”
그래도 간하다가 죽은 사람이 27명이었다.
지방에서 온 나그네 모초茅焦에 가서 이름을 말하고 뵙기를 청하였다.
지방에서 온 나그네 모초는 황제께 간언諫言을 올리기 원합니다.”
진시황제가 사자使者를 보내 나그네에게 묻게 하였다. “태후太后의 일을 간하려는 것이 아니냐?”
이에 모초는 대답하였다. “그렇소.” 사자는 돌아가서 보고하였다. “정말 태후의 일을 간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시황제가 말했다. “빨리 가서 그에게 말해주되 ‘너는 대궐 아래에 쌓여 있는 죽은 사람을 보지 못했느냐?’라고 하라.”
사자가 가서 모초에게 묻자 모초는 말하였다.
은 들으니 하늘에는 이십팔수二十八宿가 있는데 지금 죽은 사람이 이미 27인이오.
신이 여기 온 까닭은 그 28이라는 숫자를 채우려는 것이오.
신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니 빨리 들어가서 그렇게 아뢰시오.”
그러자 모초와 함께 밥을 먹던 동향同鄕 사람들이 모두 자기의 옷가지와 기물器物들을 짊어지고 도망쳐버렸다.
사자가 들어가 이 말을 아뢰자 진시황제는 크게 노하여 말하였다.
“이 사람이 고의로 와서 내가 금지한 명령을 어겼으니 속히 가마솥에 불을 지피고 물을 끓여 삶아 죽여라.
이 사람의 시체를 어찌 대궐 아래에 쌓아두랴. 속히 불러들여라.”
진시황제가 을 잡고 앉아 있는데 입에는 거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자가 불러 들어오게 하자 모초는 빨리 가려고 하지 않으면서 한 걸음씩 발을 서로 스치며 걸을 뿐이었다.
사자가 재촉하자 모초는 말했다. “저는 황제의 앞에 나가면 죽을 텐데, 그대는 다만 나를 위해 잠깐의 시간조차 참지 못하는가?”
그러자 사자가 몹시 측은히 여겼다.
모초가 황제 앞에 이르러 두 번 절하고 알현한 뒤 일어나 말했다.
“신은 들으니 살아 있는 사람은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지 않아야 하고, 나라를 소유한 사람은 나라가 망하는 데 대한 말을 꺼리지 않아야 한다고 합니다.
죽음에 대한 말을 꺼리는 사람은 삶을 얻을 수 없고, 나라가 망하는 데 대한 말을 꺼리는 사람은 나라를 보전할 수 없는 법입니다.
사생존망死生存亡에 대한 말을 거룩한 군주君主는 시급히 듣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모르겠습니다만 폐하陛下께서는 그 말을 듣기 바라십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듣고 난 진시황제는 말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냐?”
모초는 말했다. “폐하에게는 광란狂亂하고 패역悖逆스런 행위가 있는데 폐하께서는 자신이 이를 모르십니까?”
진시황제는 말했다. “어떤 것들이냐? 들어보련다.”
이에 모초는 대답하였다. “폐하께서 의부義父거열형車裂刑에 처하셨으니 질투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인 것이며, 두 아우를 자루에 넣어 때려 죽였으니 인자仁慈하지 못하다는 이름이 있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를 부양궁萯陽宮에 옮겨 유폐시켰으니 불효不孝한 행위가 있게 되었고, 간하는 인사人士를 가시나무로 등줄기를 꿰었으니 와 같은 폭정暴政이 있음을 보인 것입니다.
지금 천하의 사람들이 이를 듣고 모두 마음이 와해瓦解되어 나라로 향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신은 진나라가 망하여 폐하께서 위험해질까 걱정됩니다.
할 말을 이미 마쳤으니 작두 위에 나아가 형을 받겠습니다.”
그러고는 곧 옷을 벗고 작두 위에 엎드렸다.
이에 진시황제가 殿에서 내려와 왼손으로는 모초를 잡아 일으키고, 오른손은 주변 사람들에게 내저으며 말하였다.
“사면하라. 선생은 옷을 입으시오. 지금 가르쳐주는 일을 듣고 싶소.”
곧 모초를 중부仲父로 삼고 벼슬을 내려 상경上卿으로 삼았다.
진시황제는 즉시 수많은 수레와 말을 준비시켜 왼쪽 자리를 비워두고, 직접 부양궁萯陽宮에 가서 태후太后를 맞이하여 함양咸陽에 돌아왔다.
태후는 크게 기뻐하여 곧 크게 주연酒宴을 베풀어 모초를 대접하였다.
술을 마실 때에 태후는 말했다. “잘못된 일에 항거하여 바르게 하고 실패한 일을 고쳐 성공으로 만들어, 진나라의 사직社稷을 안정시키고 나의 모자母子가 다시금 서로 만나게 한 것은 모두 모군茅君의 공이다.”


역주
역주1 嫪毐(로애) : 전국 말기의 秦나라 사람이다. 거짓으로 거세하여 환관이 된 후 秦始皇의 생모 趙姬의 총애를 받고 私通하여 두 아들을 낳았다. 뒤에 권세를 남용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처형당했다. 《史記 呂不韋列傳》
역주2 假父 : 義父이다. 秦始皇의 母后 趙姬가 嫪毐와 私通하는 관계였기 때문에 과장하여 말한 것이다.
역주3 : ‘抗’과 통용하며, ‘대항하다. 항거하다’의 뜻이다.
역주4 萯陽宮 : 秦漢時代 황실 離宮의 하나로, 위치는 미상이다. 棫陽宮이라야 된다고 한다. 저본의 原註에 “一本에 棫陽으로 썼다.” 하였고, 《群書拾補》와 《說苑校證》에 모두 棫陽宮이 옳다고 하였다.
역주5 從蒺蔾其脊{肉}幹四肢 : 《說苑校證》에 “‘肉’자는 衍文이니 《史記》 〈秦始皇本紀〉에 ‘거열형에 처하여 시체를 전시하고 그 종족을 멸하였다.[車裂以徇 滅其宗]’ 아래 張守節의 〈正義〉의 인용문에 ‘肉’자가 없다. ‘從’은 ‘縱’자로 읽어야 된다.” 한 것에 의거하여 저본의 ‘肉’은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蔾’는 ‘藜’와 같다.
역주6 茅焦 : 전국시대 齊나라 사람으로, 과감하게 諫하는 일로 이름이 있었다. 《史記 秦始皇本紀》‧《史記 呂不韋列傳》
역주7 : ‘너’의 뜻으로, ‘汝’와 같게 쓰인다.
역주8 : ‘작두의 바탕’으로, ‘鑕’과 통용한다.
역주9 〈爲〉 : 저본에는 ‘爲’가 없으나, 《群書拾補》의 “宋本과 元本에 ‘爲’자가 있고, 《太平御覽》 권445에도 같다.”는 說에 의거해 보충하였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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