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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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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5. 春秋 記國家存亡하야 以察來世하니 雖有廣土衆民 堅甲利兵 威猛之將이라도 士卒不親附 不可以戰勝取功이니라
故語曰 文王不能使不附之民하고 不能戰不敎之卒하며 不能以敝車不作之馬 趨疾而致遠하고 不能以枉矢弱弓으로 射遠中微 故强弱成敗之要 在乎附士卒敎習之而已니라


춘추春秋》에 국가의 존망存亡을 기록하여 후세 사람들이 살펴보는 거울이 되게 하였다. 넓은 국토와 많은 백성, 견고한 갑옷과 날카로운 무기, 용맹한 장수가 있더라도 사졸士卒들이 친근히 따르지 않으면 전쟁에 승리하여 전공戰功을 세울 수 없다.
진후晉侯에서 사로잡혔고, 나라의 자옥子玉 득신得臣성복城濮에서 패배하였으며, 나라는 적군의 공격을 기다리지도 않고 군사들이 흩어져 달아났다.
그러므로 옛말에 ‘주 문왕周 文王도 친근히 따르지 않는 백성은 부릴 수가 없고, 선진先軫도 훈련시키지 않은 군사로는 전쟁하지 못하며, 조보造父왕량王良도 망가진 수레와 일어나지 못하는 말로는 빨리 달려 먼 곳까지 이르지 못하고, 羿봉몽逢蒙도 굽은 화살과 약한 활로는 먼 곳의 작은 표적을 맞히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 때문에 강약强弱성패成敗의 요체는 사졸들이 친밀히 따르게 하고 그들을 가르쳐 훈련시키는 데 달려 있을 뿐이다.


역주
역주1 晉侯獲於韓 : 魯 僖公 15년(B.C. 645)에 晉나라와 秦나라가 韓原(당시 晉나라 땅으로, 지금의 山西省 芮城縣에 있는 韓亭이라는 설과 河津縣과 萬榮縣 중간에 있다는 등의 여러 설이 있다.)에서 벌인 전쟁에서 晉나라가 大敗하여 晉侯 惠公(夷吾)이 秦 穆公에게 사로잡혀 秦나라로 끌려간 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15년》
역주2 楚子玉得臣敗於城濮 : 魯 僖公 28년(B.C. 632) 楚나라 令尹 成得臣이 城濮(당시 衛나라 땅으로, 지금의 山東省 鄄城縣 서남에 위치)의 전쟁에서 晉나라 군대에게 大敗하여 죽은 일을 말한다. 子玉은 득신의 字인데, 姓은 成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28년》
역주3 蔡不待敵而衆潰 : 魯 僖公 4년(B.C. 656)에 齊 桓公이 魯‧宋‧陳 등 일곱 諸侯國과 연합하여 蔡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채나라 군대가 적군의 공격을 기다리기도 전에 흩어져 도망친 일을 말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4년》
역주4 先軫 : 본서 권8 〈尊賢〉 02의 주5) 참고.
역주5 造父王良 : 造父는 周 穆王의 御者로서 수레를 잘 몰아 목왕의 天下 周遊를 수행한 사람이다. 徐 偃王이 반란을 일으키자, 八駿馬를 몰아 하루에 천 리를 달려가서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趙城을 하사받고 趙氏의 선조가 되었다. 《史記 趙世家》‧《水經注 河水》 王良은 춘추시대 晉나라의 말을 잘 몰던 사람이다. 趙簡子가 寵臣 嬖奚를 태워 사냥하게 했을 때 말을 법도에 어긋나지 않게 몰았다 한다. 《孟子 滕文公 下》‧《論衡 率性》
역주6 羿逢(방)蒙 : 羿는 夏나라 때 활을 잘 쏘았다는 有窮國의 군주이다. 夏后 相을 축출하고 王이 되었으나 정치에는 힘쓰지 않고 사냥에 빠졌다가 부하 寒浞에게 매수된 자기의 家衆에게 살해당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4년》 逢蒙은 고대의 활의 명사수로, 羿에게 활쏘기를 배워 활쏘는 법을 완전히 터득하자 천하에 예만이 자기를 이길 수 있다고 여겨 예를 죽였다 한다. 《孟子 離婁 下》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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