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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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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 하야 大勝之하야 至於 五敗荊人하다
闔廬之臣五人進諫曰 夫深入遠報 非王之利也 王其返乎인저하고將鍥頭하다
闔廬未之應 五人之頭墜於馬前이라
闔廬懼하야 召伍子胥而問焉한대 子胥曰 五臣者懼也니이다 夫五敗之人者 其懼甚矣 王姑少進하소서
遂入郢하야 南至江하고 北至하야 方三千里 皆服於吳矣러라


오왕吳王 합려闔廬()나라 사람과 백거柏擧에서 전쟁하여 크게 승리해 교외郊外에 이르기까지 다섯 차례나 형나라 사람을 패배시켰다.
합려의 신하 다섯 사람이 간언諫言을 올렸다. “적국에 깊숙이 들어가고 먼 곳에 와서 원한을 갚는 것은 께 이롭지 않으니, 왕께서는 그만 돌아가셔야 됩니다.”그러고는 다섯 사람이 자신의 머리를 베어 간하려고 하였다.
합려가 미처 대답하지도 않았는데, 다섯 사람의 머리가 합려의 말 아래 떨어졌다.
합려가 두려워서 오자서伍子胥를 불러 묻자, 오자서가 말했다. “이 다섯 사람의 신하는 두려워한 것입니다. 남을 다섯 번 패배시킨 사람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심하니, 왕께서는 우선 조금 천천히 진군하십시오.”
마침내 에 들어가 남쪽으로는 장강長江까지, 북쪽으로는 방성方城까지 전진해 가서 사방 3천 리가 모두 오나라에 복종하였다.


역주
역주1 吳王闔廬與荊人戰於柏擧 : 闔廬는 본서 권8 〈尊賢〉 05의 주1) 참고. 荊은 楚나라의 옛 이름이다. 柏擧는 본서 권12 〈奉使〉 18의 주14) 참고.
역주2 郢郊 : 郢은 춘추전국시대 楚나라의 國都이다. 지금의 湖北省 江陵縣 紀南城에 있었다. 楚 文王이 이곳에 도읍을 정하였고, 楚 懷公 30년(B.C. 278)에 秦나라에 함락되어 진나라의 南郡이 되었다. 紀山 남쪽에 있다 하여 紀郢이라고 하며, 또 초나라의 남쪽 지역에 있다 하여 南郢이라고도 한다. 《春秋左氏傳 文公 10년》‧《史記 楚世家》
역주3 〈人〉 : 저본에는 ‘人’자가 없으나, 《群書拾補》에 따라 ‘人’자를 보충하였다.
역주4 方城 : 춘추시대 楚나라 북쪽에 있던 長城 이름이다. 하남성 方城縣에서 시작하여 伏牛山을 지나 동쪽으로 鄧縣에까지 이른다. 중국 九塞의 하나이다. 《春秋左氏傳 僖公 4년》‧《淮南子 墜形訓》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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