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고전종합DB

說苑(2)

설원(2)

출력 공유하기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URL 오류신고
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1. 曰 夫談說之術 齊莊以立之하며 端誠以處之하며 堅强以持之하며 譬稱以諭之하며 分別以明之하며憤滿以送之하야 寶之珍之하며 貴之神之 如是則說常無不行矣 夫是之謂能貴其所貴
傳曰 唯君子라야 爲能貴其所貴也라하고 라하니라
辯之明之하며 持之固之하고 又中其人之所善이면 其言神而珍하고 白而分하야 能入於人之心하나니 如此而說不行者 天下未嘗聞也 此之謂善說이라하니라
子貢曰 出言陳辭 身之得失 國之安危也라하고 라하니 夫辭者 人之所以自通也
曰 人而無辭 安所用之리오하니라하고 하고 하고 하니 夫辭者 乃所以尊君重身安國全性者也 故辭不可不修 而說不可不善이니라


손경孫卿이 말했다. “말을 하는 방법은 엄숙하고 장중하게 임하며, 단정하고 성실하게 대하며, 자기의 주장을 굳고 강하게 지키며, 비유하는 말로 깨우쳐주며, 사리를 분별하여 밝히며, 기쁨과 분노하는 감정을 전하여, 듣는 사람이 보물로 여기고 진귀하게 여기며 귀중하게 여기고 신묘하게 여기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이 하면 내가 하는 말이 언제나 통하지 않는 경우가 없다.
에 ‘군자君子라야 자기가 귀중히 여기는 것을 귀중히 여긴다.’ 하였다.”《시경詩經》에 “가볍게 말하지 말며, 구차하게 말하지 말라.” 하였고,
귀곡자鬼谷子는 “사람의 불선不善한 일을 바로잡는 것은 어렵다. 설득하는 말이 시행되지 않고, 해준 말을 따르지 않는 것은 그 말이 명백하지 않기 때문이고, 명백하게 말했는데도 시행되지 않는 것은 지키는 것이 견고하지 않기 때문이며, 지키는 것이 견고한데도 시행되지 않는 것은 그 사람의 마음에 좋게 여기는 것을 적중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분명하게 말하고 명백하게 말하며, 주장을 굽히지 않고 견고하게 지키며, 또 그 사람이 좋게 여기는 것을 적중시키면 그의 말이 신묘하고 진귀하며 명백하고 조리가 있다고 여겨 사람의 마음에 먹혀들어가게 된다. 이와 같이 했는데도 그의 말이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은 천하에서 일찍이 듣지 못하였으니, 이를 ‘선설善說’이라고 한다.” 하였다.
자공子貢은 “말을 하여 언론을 발표하는 것은 자신의 득실得失과 국가의 안위安危에 관계된다.” 하였고, 《시경詩經》에 “말이 온화하면 백성이 편안하다.” 하였으니, 말은 사람이 스스로 소통하는 도구이다.
주보언主父偃은 “사람이 조리 있는 말을 하지 못하면 어디에 쓰겠는가.”라 하였다. 예전에 자산子産이 말을 잘하자 조무趙武가 공경을 표하였고, 왕손만王孫滿대의大義를 분명하게 말하자 초 장왕楚 莊王이 부끄러워하였으며, 소진蘇秦합종설合縱說을 진행하자 여섯 제후국諸侯國이 편안해졌고, 괴통蒯通이 그의 처지를 잘 말하자 몸이 보전되었다. 말은 곧 임금을 높이고, 자신을 귀중하게 하며, 나라를 편안하게 하고, 성명性命을 보전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을 수식하지 않을 수 없으며, 담론談論을 잘하지 않을 수 없다.


역주
역주1 孫卿 : 荀子이다. 본서 권2 〈臣術〉 21의 주1) 참고.
역주2 (忻)[欣] : 저본에는 ‘忻’으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의거하여 ‘欣’으로 바로잡았다. 《荀子》 〈非相〉에는 ‘欣驩’으로 되어 있다.
역주3 詩云……無曰苟矣 : 《詩經》 〈大雅 抑〉에 보인다.
역주4 鬼谷子曰……此之謂善說 : 鬼谷子는 전국시대 楚나라 사람으로 縱橫家이며 蘇秦‧張儀의 스승이다. 鬼谷에 은거했으므로 鬼谷子 또는 鬼谷先生이라 한다. 이 내용은 현재의 《鬼谷子》에는 없는데, 《說苑校證》에 “이 내용은 아마도 蘇秦과 張儀의 글에서 나온 듯하다.” 하였다.
역주5 詩云……民之莫矣 : 《詩經》 〈大雅 板〉에 보인다.
역주6 主父(보)偃 : 西漢 때의 大臣으로 臨淄 사람이다. 主父는 複姓이다. 《漢書》 〈藝文志〉의 縱橫家類에 《主父偃》 28편이 있다고 하였다.
역주7 子産修其辭 而趙武致其敬 : 子産은 춘추시대 鄭나라의 正卿이다. 본서 권2 〈臣術〉 04의 주4) 참고. 趙武는 춘추시대 晉나라 卿으로 시호는 文이다. 朔의 아들로, 屠岸賈에게 趙氏 일족이 멸망당했을 때 유복자로 태어나 程嬰‧公孫杵臼의 도움으로 화를 면하고 卿이 되어 平公 때 執政이 되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25년에 보인다.
역주8 王孫滿明其言 而楚莊以慙 : 王孫滿은 周 定王 때의 大夫로, 楚 莊王이 帝位를 욕심내어 鼎의 크기와 무게를 묻자, 제위는 德에 있는 것이지 鼎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답하여 장왕의 야심을 그치게 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3년에 보인다.
역주9 蘇秦行其說 而六國以安 : 蘇秦은 전국시대 東周 洛陽 사람이다. 鬼谷子에게 縱橫術을 익혀 燕‧齊‧韓‧魏‧楚‧趙의 合從을 성공시키고 6국의 相印을 차고 秦에 대항하게 하였다. 뒤에 燕의 樂毅가 齊를 공격할 때 反間의 혐의를 받아 車裂刑에 처해졌다. 《史記》 〈蘇秦列傳〉에 자세히 보인다. 《戰國縱橫家書 5》
역주10 蒯通陳其說 而身得以全 : 蒯通은 漢初의 遊說家로 涿郡 范陽 사람이다. 본래의 이름은 徹인데, 후대에 漢 武帝 劉徹의 諱를 피하여 通으로 고쳐 썼다. 武信君에게 유세하여 燕‧趙의 30여 城을 싸우지 않고 얻게 하였다. 뒤에 韓信에게 齊나라 땅을 차지하여 劉邦을 배반하고 自立하라고 권하였다가 韓信이 처형된 뒤에 잡혀갔으나 말을 잘하여 사면되었다. 《史記》 〈淮陰侯列傳〉에 보인다. 《漢書 蒯伍江息夫傳》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우)03140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7길 52 낙원빌딩 411호

TEL: 02-762-8401 / FAX: 02-747-0083

Copyright (c) 2022 전통문화연구회 All rights reserved. 본 사이트는 교육부 고전문헌국역지원사업 지원으로 구축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