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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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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3. 智伯與趙襄子 戰於晉陽下而死하니 智伯之臣者怒하야 以其精氣能使襄子動心이라하야 乃漆身變形하고 呑炭更聲하다
襄子將出할새 豫讓僞爲死人하야 處於梁下러니 驚不進이라
襄子動心하야 使使視梁下하야 得豫讓호되 襄子重其義하야 不殺也하다
又盜爲抵罪하야 被刑人赭衣하고 入繕宮이러니 襄子動心하야 則曰 必豫讓也라하고 襄子執而問之曰
子始事中行君하야 智伯殺이어늘 子不能死하고 還反事之러니
今吾殺智伯 乃漆身爲癘하고 呑炭爲啞하야 欲殺寡人하니 何與先行異也
豫讓曰 中行君 衆人畜臣하니 臣亦衆人事之하고 智伯 朝士待臣하니 臣亦朝士爲之用이니라
襄子曰 非義也 子壯士也로다 乃自置車庫中하고 水漿毋入口者三日하야 以禮豫讓하니 讓自知하고 遂自殺也하다


지백智伯조양자趙襄子진양성晉陽城에서 싸우다가 죽으니, 지백의 신하 예양豫讓이 분노하여 〈원수를 갚으려 하였으나〉 자신의 정기精氣양자襄子의 마음을 움직여 느끼게 할 수 있다고 여겨, 마침내 몸에 옻을 발라 형체를 변경하고 숯불을 입에 물어 목소리를 바꾸고 벙어리가 되었다.
양자가 출행出行하려 할 적에 예양은 거짓으로 죽은 사람처럼 꾸며 다리 아래에 있었는데, 사마駟馬가 놀라면서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양자는 마음이 움직여 느낌이 들자 사람을 보내 다리 밑을 살펴보게 하여 예양을 잡았으나 양자는 그의 의리義理를 존중하여 죽이지 않았다.
예양은 또 도둑질을 해 죄를 지어 붉은 죄수복을 입고 양자의 궁중에 들어가 집을 수리하고 있었는데, 양자는 이번에도 마음이 움직여 느낌이 들자 “틀림없이 예양일 것이다.” 하고 양자가 잡아다가 물었다.
“그대는 처음에 중항군中行君을 섬겨 지백智伯이 중항군을 죽였는데, 그대는 그를 위해 죽지 않고 도리어 지백을 섬겼다.
지금 내가 지백을 죽이자, 이내 몸에 옻을 발라 문둥이가 되고 숯불을 입에 물어 벙어리가 되어 과인寡人을 죽이려고 하니 어째서 앞의 행동과 다른가?”
예양은 대답했다. “중항군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하였으니 나도 보통 사람의 신분으로 섬겼고, 지백은 나를 조정의 로 대하였으니 나도 조정의 신분으로 그에게 쓰임이 된 것이오.”
양자는 “의리에는 맞지 않으나 그대는 장사壯士로구나!” 하고는 스스로 차고車庫 안에 들어가 3일 동안 물도 입에 대지 않으면서 예양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니, 예양이 이를 알고 마침내 자살하였다.


역주
역주1 豫讓 :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이다. 처음에 范中行氏를 섬기다가 智伯이 범중항씨를 멸하자 지백을 섬겨 총애를 받았다. 뒤에 지백이 趙襄子에게 죽자, 그의 원수를 갚으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잡혀 죽었다. 《呂氏春秋 論威》‧《史記 刺客列傳》
역주2 駟馬 : 한 채의 수레를 끄는 네 마리의 말을 이른다. 顯貴한 사람이 타는 높은 수레를 이른다. 《史記 管晏列傳》‧《淮南子 說山訓》
역주3 中行(항)君 : 춘추시대 晉나라의 卿 荀寅이다. 中行을 氏로 삼기 때문에 이르는 말로, 中行文子라고도 한다. 荀吳의 아들로 晉나라 六卿의 하나인데, 晉 定公 15년에 趙鞅에게 패하여 齊나라로 달아났다. 《春秋左氏傳 昭公 29년, 定公 4‧8‧13년, 哀公 3‧4‧5년》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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