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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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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楚令尹曰 臣聞奉公行法이면 可以得榮이요 能淺行薄이면 無望上位 不名仁智 無求顯榮이요 才之所不著 無當其處라호이다
나라 영윤令尹 우구자虞丘子장왕莊王에게 고하여 말했다. “은 들으니, 공적인 일을 봉행奉行하고 법을 살펴 집행하면 영광을 얻을 수 있고, 재능이 보잘것없고 행실이 천박하면 높은 지위를 바랄 수 없으며, 인애仁愛지혜智慧가 있다고 이름이 나지 않으면 영화롭고 높은 지위를 구하지 못하고, 재주가 남보다 드러나지 않으면 그 자리를 감당할 수 없다고 합니다.
臣爲令尹十年矣어늘 國不加治하며 獄訟不息하며 處士不升하며 淫禍不討하니이다 久踐高位하야 妨群賢路하며 尸祿素하야 貪欲無厭하니 臣之罪當稽於理니이다
신이 영윤이 된 지 10년이 되었건만, 나라는 더 잘 다스려지지 않고 옥송獄訟이 그치지 않았으며, 처사處士는 등용되지 못하고 큰 화란禍亂을 응징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높은 벼슬을 차고 앉아서 많은 현인賢人의 진출하는 길을 방해하며 일은 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고서 녹봉을 받아먹어 만족할 줄 모르고 탐욕을 부리니, 신의 죄는 응당 법에 따라 처벌하여야 합니다.
臣竊選國俊下里之士하니하니 秀羸多能하고 其性無欲하니 君擧而授之政이면 則國可使治하고 而士民可使附리이다
신은 삼가 시골에 사는 국가의 뛰어난 인재를 선발하였는데, 그 이름을 손숙오孫叔敖라고 합니다. 그는 수려하고 가냘프며 천성은 욕심이 없으니, 임금께서 그를 등용하여 정치를 맡기시면 나라를 잘 다스리게 할 수 있고 백성들을 친근히 따르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莊王曰 子輔寡人일새 寡人得以長於中國하고 令行於絶域하야 遂霸諸侯하니 非子如何
장왕이 말했다. “그대가 과인寡人을 보필하였기 때문에 과인이 중원中原에서 어른 노릇을 하고 명령이 먼 지역에까지 시행되어 마침내 제후의 패자霸者가 되었으니, 그대가 아니면 이를 어떻게 이루었겠소?”
虞丘子曰 久固祿位者 貪也 不進賢達能者 誣也 不讓以位者 不廉也 不能三者 不忠也니이다 爲人臣不忠이어늘 君王又何以爲忠이니잇고 臣願固辭하노이다
우구자가 말했다. “오랫동안 녹봉과 벼슬을 차지함은 탐욕이요, 현인과 재능이 있는 사람을 추천하지 않음은 속임[]이며, 현인에게 벼슬을 양보하지 않음은 청렴하지 않은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잘하지 못하면 충성스럽지 못한 행위입니다. 신하가 되어서 불충不忠을 행하고 있는데, 군왕君王께서는 어찌 충성스럽다고 여기십니까? 신은 굳이 사직하기를 원합니다.”
莊王從之하야 賜虞三百하고 號曰國老라하다 以孫叔敖爲令尹하다 少焉 虞丘子家干法하니 孫叔敖執而戮之하다 虞丘子喜하야 入見於王曰 臣言孫叔敖果可使持國政이로소이다 奉國法而不黨하고 施刑戮而不骫하니 可謂公平이로소이다 莊王曰 夫子之賜也已로다
장왕은 그의 뜻을 따라 우구자에게 300채읍采邑을 주고 국로國老라 호칭하였다. 그러고는 손숙오를 영윤으로 삼았다. 얼마 안 되어 우구자의 집안 사람이 법을 범하니, 손숙오가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였다. 우구자가 기뻐하면서 궁중에 들어가 장왕을 뵙고 말했다. “신이 천거한 손숙오는 정말 국정國政을 주관하게 할 만합니다. 국법國法봉행奉行하여 사당私黨에 치우치지 않고 형륙刑戮을 시행하면서 왜곡함이 없으니, 공평公平하다고 이를 만합니다.”장왕이 말했다. “이는 모두 그대 덕분이오.”
역주
역주1 虞丘子復於莊王 : 虞丘子는 춘추시대 楚나라의 令尹을 지낸 사람이다. 楚 莊王에게 孫叔敖를 영윤으로 추천하여 霸業을 이루게 하였다. 《列女傳》 〈賢明〉‧《新序》 〈雜事〉‧《韓詩外傳》 권2‧《呂氏春秋》 〈贊能〉 등에는 모두 ‘沈尹莖’으로 되어 있는데, 우구자가 바로 심윤경이라고 한다.
역주2 (飱)[餐] : 저본에는 ‘飱’으로 되어 있으나,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餐’으로 바로잡았다.
역주3 孫叔敖 : 춘추시대 楚나라의 令尹을 지낸 사람이다. 本姓은 蔿氏로, 賈의 아들이다. 孫叔은 字인데, 일설에는 複姓이라 한다. 어릴 때 兩頭蛇를 보고는 다른 사람이 죽을까 걱정되어 죽여서 땅속에 묻은 일화가 전한다. 莊王 때 영윤이 되어 나라를 부강하게 하였고, 邲의 전쟁에서 晉나라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霸業을 이루게 하였다. 《春秋左氏傳 宣公 12년》‧《史記 楚世家》
역주4 〈丘〉 : 저본에는 ‘丘’자가 없으나, 《群書拾補》와 《說苑校證》에 의거하여 보충하였다.
역주5 采地 : 고대 卿大夫의 封地이다. ‘采’는 ‘官’의 뜻으로, 벼슬로 인하여 농사지을 땅을 받기 때문에 이르는 말이다. 《韓詩外傳 8》‧《漢書 刑法志》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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