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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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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9. 秦穆公曰 古者明王聖帝 得國失國 當何以也
由余曰 臣聞之호니 當以儉得之하고 以奢失之니이다
穆公曰 願聞奢儉之節하노라
由余曰 臣聞堯有天下 飯於하고 啜於호되 其地南至하고 北至하며 東西至日所出入하야 莫不賓服하니이다
堯釋天下 舜受之하야 作爲食器호되 斬木而裁之하고 銷銅鐵하야 修其刃하고 猶漆黑之以爲器한대 諸侯侈하야 國之不服者 十有三이니이다 舜釋天下 而禹受之하야 作爲祭器호되 漆其外而朱畫其內하고 繒帛爲하며 觴勺有彩하야 爲飾彌侈하니 而國之不服者 三十有二니이다
夏后氏以沒 殷周受之하야 作爲大而建九하고 食器雕琢하며 觴勺刻鏤하고 四壁四帷하며 茵席雕文하야 此彌侈矣한대 而國之不服者 五十有二이니이다 君好文章이면 而服者彌侈 故曰儉其道也라하니이다
由余出커늘 穆公召而告之曰 寡人聞隣國有聖人이면 敵國之憂也라하더니 今由余聖人也 寡人患之하노니 吾將奈何
內史廖曰 夫戎辟而遼遠하야 未聞中國之聲也하니 君其遺之女樂하사 以亂其政하시고 而厚爲由余하야 以疏其間하소서 彼君臣有間이어든 然後可圖니이다
君曰 諾다하고 乃以女樂 遺戎王하고 因爲由余請期하다 戎王果見女樂而好之하야 設酒聽樂하야 終年不遷하니 馬牛羊半死러라 由余歸諫호되 諫不聽하니 遂去入秦하다
穆公迎而拜爲上卿하고 問其兵勢與其地利하다 旣已得矣 擧兵而伐之하야 兼國十二하고 開地千里하다 穆公奢主로되 能聽賢納諫이라 故霸西戎이요 西戎淫於樂하고 誘於利하야 以亡其國하니 由離質樸也일새니라


진 목공秦 穆公유여由余에게 물었다. “옛날의 현명하고 거룩한 제왕帝王이 나라를 얻고, 나라를 잃은 것은 오히려 무엇 때문이오?”
유여가 대답했다. “은 들으니, 당연히 검소儉素함으로 나라를 얻고, 사치奢侈함으로 나라를 잃었다고 하였습니다.”
목공이 말했다. “사치와 검소에 관한 일을 듣고 싶소.”
유여가 말했다. “신은 들으니, 제요帝堯가 천하를 소유했을 적에 토궤土簋에 밥을 담아 먹고, 토병土甁에 물을 담아 마셨지만 그의 강역疆域은 남쪽으로는 교지交趾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유도幽都에 이르렀으며, 동쪽과 서쪽은 해가 뜨고 지는 데까지 이르러 누구도 복종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요가 천하를 선양禪讓한 뒤에 제순帝舜이 이어받아 식기食器를 만들되 나무를 베어 제작하고, 구리와 쇠를 녹여 칼을 만들며, 게다가 검은 옻칠을 하여 기물器物을 만들자 제후諸侯들이 사치하여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13국이었습니다. 제순이 천하를 선양한 뒤에 하우夏禹가 이어받아 제기祭器를 만들되 겉은 검은 옻칠을 하고 안은 붉은색을 칠하였고, 비단으로 까는 자리를 만들었으며, 술잔과 구기는 채색으로 장식하여 더욱 사치스럽게 꾸미자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32국이었습니다.
하후씨夏后氏가 몰락한 뒤에 나라와 나라가 뒤를 이어 대로大路(대로大輅)와 구류九旒를 만들고, 식기에 조각을 하며, 술잔과 구기에 무늬를 아로새기고, 사면의 벽에 휘장을 치며, 까는 자리에는 꽃무늬를 수놓아 이처럼 더욱 사치하니, 복종하지 않는 나라가 52국이었습니다. 임금이 사치스럽게 꾸미기를 좋아하면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더욱 사치하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검소함은 나라를 얻는 도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여가 자리에서 나가자, 목공이 내사료內史廖를 불러 〈유여와 나눈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과인寡人은 들으니, 이웃나라에 성인聖人이 있으면 대등한 나라의 걱정거리가 된다고 했소. 그런데 지금 저 유여는 성인이오. 과인은 이를 걱정하고 있으니,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소?”
내사요가 말했다. “서융西戎이 사는 곳은 외지고 아주 멀어서 중국中國의 음악을 들어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임금께서는 여자 악공樂工을 보내시어 그 나라의 정치를 어지럽게 하시고, 유여는 후대厚待하여 이곳에 오래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여 그들의 군신君臣 사이를 소원하게 하십시오. 저들의 군신 사이에 간격이 생기거든 그런 다음에 그들을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목공이 “그렇게 하겠소.” 하고는 곧 여자 악공 16명을 서융 왕에게 보내고, 아울러 유여를 오래 머물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다. 서융 왕은 과연 여자 악공을 보고는 좋아하여 술자리를 열고 음악 연주를 듣느라 한 해가 다 가도록 유목遊牧하는 장소를 옮기지 않아 말‧소‧양의 무리가 반이나 죽었다. 유여가 귀국하여 서융 왕에게 간언諫言을 올렸으나 간언을 따르지 않으니, 마침내 그곳을 떠나 나라로 들어오고 말았다.
목공은 그를 맞이하여 상경上卿에 임명하고, 서융의 병력兵力의 정황과 지리의 형세를 물었다. 이미 서융의 병력과 지리를 알고 난 뒤에 군대를 출동시켜 토벌하여 열두 나라를 겸병하고 천 리의 영토를 개척하였다. 진 목공은 원래 사치하는 군주였지만 어진 신하의 말을 따르고 간언을 수용하였다. 그러므로 서융 지역의 패자霸子가 되었고, 서융 왕은 음악에 빠지고 이익에 유혹 당하여 나라를 멸망시키고 말았으니, 질박質朴의 원칙에서 떠났기 때문이다.


역주
역주1 {閒} : 저본에는 ‘閒’자가 있으나, 《群書拾補》에 ‘閒’자는 衍文이라 하였고, 程翔의 《說苑譯注》에 “敦煌文獻의 唐代 寫本 《說苑》 〈反質〉의 殘卷에 ‘閒’자가 없다.”라고 한 것을 따라 衍文으로 처리하였다.
역주2 由余 : 본서 권8 〈尊賢〉 02의 주7) 참고.
역주3 土簋 : 진흙을 빚어 만든 그릇이다. 簋는 옛날 음식을 담는 그릇으로, 대부분 둥근 모양이다. 《韓非子 十過》‧《史記 太史公自序》
역주4 土甁 : 진흙으로 빚어 만든 그릇으로, 물이나 국을 담는다.
역주5 交趾 : 중국 남부의 五嶺 남쪽 지역을 두루 가리킨다. 漢 武帝 때에 두었던 13刺史 관할의 하나로, 지금의 廣東‧廣西 대부분 지역과 越南의 北部‧中部가 이에 해당한다. 後漢 말기에 交州로 고쳤다. 《禮記 王制》‧《漢書 地理志 8》‧《後漢書 郡國志 郡國 5》
역주6 幽都 : 북방의 먼 변방 지역이다. 《書經 虞書 堯典》
역주7 茵褥 : 침상에 까는 자리이다. 《抱朴子 譏惑》
역주8 (器)[路] : 저본에는 ‘器’로 되어 있으나, 《韓非子》에 ‘路’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 ‘路’로 바로잡았다. ‘路’는 ‘輅’와 통용이다. 大輅는 천자가 타는 수레이다.
역주9 (傲)[旒] : 저본에는 ‘傲’로 되어 있으나, 《韓非子》에 ‘旒’로 되어 있는 것을 따라 ‘旒’로 바로잡았다. 九旒는 깃발 위에 아홉 가닥의 기드림이다. ‘旒’는 ‘游’로도 쓴다.
역주10 內史廖 : 內史는 벼슬 이름이고, 廖는 王子廖이다. 본서 권8 〈尊賢〉 02의 주7) 참고.
역주11 請期 : 이곳에 장기간 머물기를 西戎의 임금에게 요청하게 한다는 말이다.
역주12 (三九)[二八] : 저본에는 ‘三九’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에 “‘三九’는 《史記》 〈秦本紀〉에 ‘二八’로 되어 있으니, 옳다. 고대의 춤은 모두 8명으로 춤추는 대열을 만든다.”라고 하였고, 《說苑校證》에는 “《韓非子》 〈十過〉와 《呂氏春秋》 〈不拘〉에 ‘二八’로 되어 있고, 《韓詩外傳》 권8에는 ‘二列’로 되어 있으니, 모두 같은 뜻이다.”라고 한 것을 따라 ‘二八’로 바로잡았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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