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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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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0. 이라가 中路而止하니 引車吏進問호되 君何爲止잇고
조간주趙簡主진양晉陽에서 한단邯鄲으로 가다가 중도에서 멈추니, 수레를 끌고 가던 관리가 앞에 와서 물었다. “주군主君은 무엇 때문에 멈추십니까?”
簡主曰 在後니라
조간주가 말했다. “동안우董安于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吏曰 此三軍之事也어늘 君奈何以一人으로 留三軍也잇고 簡主曰 諾
관리가 말했다. “이는 삼군三軍의 일인데 주군은 어찌 한 사람 때문에 삼군을 멈추게 하십니까?” 조간주가 말했다. “옳다.”
驅之百步라가 又止한대 吏將進諫이러니 董安于適至하다
백 보쯤 몰아가다가 또 멈추자 관리가 앞에 가서 하려고 하였는데, 마침 동안우가 도착하였다.
簡主曰 秦道之與晉國交者 吾忘令人塞之호라
조간주가 말했다. “나라의 길이 나라와 통하는 곳을 내가 사람을 시켜 막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董安于曰 此安于之所爲後也니이다
동안우가 말했다. “이것이 저 안우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簡主曰 官之寶璧 吾忘令人載之호라
조간주가 말했다. “관청의 보물을 내가 사람을 시켜 싣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對曰 此安于之所爲後也니이다
동안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저 안우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簡主曰 年長矣 言未嘗不爲晉國法也어늘 吾行忘令人辭且聘焉호라
조간주가 말했다. “행인行人 촉과燭過는 나이가 많고 그의 말은 일찍이 나라의 규범規範이 되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내가 길을 떠나면서 사람을 시켜 하직과 안부를 묻는다는 것을 깜빡 잊었노라.”
對曰 此安于之所爲後也니이다
동안우가 대답하였다. “이것이 저 안우安于가 뒤에 처진 원인입니다.”
簡主 可謂內省外知人矣哉인저 故身佚國安이로다
조간주는 안으로는 자신을 반성하고 밖으로는 사람을 알아보고서 잘 임용했다고 이를 만하니, 그 때문에 몸은 편안하고 국가는 안정되었다.
御史大夫曰 人主誠能如趙簡主 朝不危矣리라
어사대부御使大夫 주창周昌이 말했다. “임금이 진실로 조간주와 같으면 조정朝廷(국가)이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역주
역주1 趙簡(子)[主] : 저본에는 ‘子’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와 《說苑校證》에 모두 ‘主’로 고친 것을 따라 ‘主’로 바로잡았다. 趙簡主는 곧 趙簡子로, 춘추시대 晉나라의 正卿이다. 이름은 鞅, 簡은 諡號이다. 趙孟이라고도 한다. 衛나라를 쳐서 5백 家를 예속시켰고, 范氏와 中行氏를 격멸하고 鄭나라 군대를 물리치는 등 國政을 장악하여 뒷날 趙나라 開國의 기초를 다졌다. 《春秋左氏傳 昭公 29년‧定公 10‧13년》‧《史記 趙世家》
역주2 晉陽之邯鄲 : 晉陽은 춘추시대 晉나라 邑 이름이다. 지금의 山西省 太原市 남서쪽 지역이다. 춘추 말에 趙簡子의 아들 襄子가 智伯을 멸망시킨 곳으로 유명하다. 《漢書 地理志 上 太原郡》‧《讀史方輿紀要 山西 太原府》 邯鄲은 전국시대 趙나라의 都邑으로 河北城 남부에 있었다. 춘추시대에는 衛나라의 邑이었다.
역주3 董安于 : 춘추시대 晉나라 趙孟(趙簡子)의 家臣이다. 荀寅과 范吉射가 난을 일으켜 조맹을 치려 하자, 조맹에게 먼저 난을 일으켜 대비하도록 권하였다. 梁嬰父가 조맹이 먼저 난을 일으킨 죄를 물어 趙氏를 치려고 하자 목을 매어 죽음으로써 화를 면하게 하였다. 《春秋左氏傳 定公 30‧40년》‧《史記 趙世家》
역주4 行人燭過 : 行人은 朝覲과 聘問 등을 주관하던 벼슬을 이른다. 燭過는 당시 行人 벼슬을 맡았던 사람이다.
역주5 周昌 : 漢나라 沛 땅 사람이다. 漢 高祖를 따라 秦나라와 項羽를 격파하는 데 공을 세워 汾陰侯에 봉해지고, 벼슬은 御史大夫에 올랐다. 《史記 張丞相列傳》‧《漢書 張周趙任申屠傳》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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