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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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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8. 하니 楚使으로 將兵救趙하고 亦矯奪하야 往救趙하다
평원군平原君이 이미 나라에 돌아오니 나라는 춘신군春申君을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구원하고 나라의 신릉군信陵君진비晉鄙의 군대를 속임수로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러 갔다.
未至 秦急圍邯鄲하니 邯鄲急且降이어늘 平原君患之하다
이들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때 나라 군대가 더욱 급하게 한단邯鄲을 포위하니 한단이 위급하여 항복해야 할 처지가 되자 평원군이 근심하였다.
邯鄲子李談 謂平原君曰 君不憂趙亡乎잇가
한단邯鄲 전사리傳舍吏의 아들 이담李談이 평원군에게 말했다. “당신은 조나라가 망하는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까?”
平原君曰 趙亡卽勝虜어늘 何爲不憂리오
평원군은 대답했다. “조나라가 망하면 나 은 곧 포로가 될 텐데 어떻게 걱정이 되지 않겠느냐?”
李談曰 邯鄲之民 炊骨易子而食之하니 可謂至困이어늘
이담은 말했다. “한단의 백성들은 사람의 뼈를 태워 밥을 짓고 서로 자식을 바꾸어 먹고 있으니, 극도로 어려운 상태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而君之後宮百數 婦妾荷綺縠하고 廚餘粱肉이니이다
그런데 당신의 후궁後宮에는 백 명쯤의 여인이 있고, 처첩妻妾들은 비단옷을 걸치고 있으며, 부엌에는 양식과 고기가 남아돌고 있습니다.
士民兵盡하야 或剡木爲矛戟이어늘 而君之器物鍾磬自恣니이다
병사와 백성들은 무기가 다하여 나무를 깎아 창을 만들어 쓰기도 하는데 당신은 기물器物종경鐘磬을 자기 마음대로 쓰고 있습니다.
若使秦破趙 君安得有此리오 使趙而全이면 君何患無有리오
만일 진나라가 조나라를 격파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이것들을 소유하겠습니까? 만일 조나라가 보전된다면 당신은 어찌 이런 물건들이 없을까 봐 걱정하겠습니까?
君誠能令夫人以下 編於士卒間하야 分功而作之하고 家所有 盡散以饗食士하소서
당신은 진실로 부인夫人 이하의 사람들을 사졸士卒 중에 편입시켜 공작工作을 나누어 담당시키고 집안에 있는 재물을 모두 풀어서 병사를 먹이십시오.
方其危苦時 易爲惠耳니이다
한창 어렵고 고통스러운 때에 은혜를 베풀기는 쉬운 법입니다.”
於是 平原君如其計하니 而勇敢之士三千人 皆出死하야 因從李談赴秦軍하다
이에 평원군이 그가 일러준 계책대로 시행하니 용감한 병사 3천 명이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나서 그대로 이담을 따라 진나라 군대에게 달려들었다.
秦軍爲却三十里하고 亦會楚魏救至하니 秦軍遂罷하다
진나라 군대는 이 때문에 30리를 퇴각하였고, 또 마침 초나라와 위나라의 구원병이 도착하니 진나라 군대는 마침내 전쟁을 중지하였다.
李談死하니 封其父爲하다
이담이 전사戰死하니 그의 아버지를 이후李侯에 봉하였다.
역주
역주1 平原君旣歸趙 : 平原君은 전국시대 趙나라 公子이다. 이름은 勝, 武靈王의 아들로 惠文王의 아우이다. 平原에 봉해졌고, 食客이 매우 많았다. 惠文王과 孝成王을 도와 여러 차례 국가의 위기를 구하여 孟嘗君‧春申君‧信陵君과 함께 戰國 四公子로 일컬어진다. 歸趙는 혜문왕 9년(B.C. 292년)에 秦나라 군대가 조나라 수도 邯鄲을 포위하자 楚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하여 合從하는 맹약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온 일을 이른다. 《史記 平原君列傳》
역주2 春申君 : 전국시대 楚나라 재상 黃歇의 封號로 莊王의 아우이다. 20년간 재상으로 있으면서 3천여 명의 食客을 두었다. 《史記 春申君列傳》
역주3 信陵君 : 전국시대 魏나라 公子로 이름은 無忌이며 昭王의 아들이다. 3천여 명의 食客을 두었고,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諸侯들이 위나라를 침입하지 않았다. 侯嬴의 계책을 이용하여 趙나라 平原君을 도와 조나라의 위기를 구하였다. 《史記 魏公子列傳》
역주4 晉鄙 : 전국시대 魏나라 장군이다. 邯鄲이 포위당한 趙나라의 위기를 구원하려는 信陵君의 속임수에 兵權을 빼앗기고 力士 朱亥에게 살해당했다. 《戰國策 魏策》‧《史記 魏公子列傳》
역주5 傳舍吏 : 驛站의 客舍를 관리하는 하급관리를 이른다. 傳舍는 行人들이 쉬거나 묵어가도록 역참에 지은 객사이다. 《戰國策 魏策 4》
역주6 (孝)[李] : 《群書拾補》에 “《太平御覽》 권201에 ‘李’자로 썼다.” 하였고, 《說苑校證》에 ‘李’자로 교정하였기에 따라 고쳤다. 《史記》 〈平原君列傳〉에 ‘李侯’로 썼는데, 徐廣은 “河內의 成皐에 李城이 있다.” 하였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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