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하고 三年
을 使不往來
하다 趙倉唐進稱曰 爲人子
하야 三年不聞父問
이면 不可謂孝
요 爲人父
하야 三年不問子
면 不可謂慈
니 君何不遣人使大國乎
잇가
太子曰 侯嗜
하시고 好
이시니라 於是
에 乃遣倉唐
하야 緤北犬
하고 奉晨鳧
하야 獻於文侯
하다
倉唐至
하야 曰 孽子擊之使者
는 不敢當大夫之朝
일새 請以燕閒
하야 奉晨鳧
하야 敬獻庖廚
하고 緤北犬
하야 敬上
하노이다
倉唐曰 唯唯니이다 如是者三에 乃曰 君出太子而封之國이어시늘 君名之는 非禮也니이다
倉唐曰 禮에 擬人을 必於其倫이니 諸侯無偶니 無所擬之니이다
倉唐曰 君賜之外府之裘
는 則能勝之
요 賜之
帶
는 則不更其造
니이다
文侯自讀晨風
하니 曰
彼晨風
이여 鬱彼北林
이로다 未見君子
라 憂心欽欽
하니 如何如何
오 忘我實多
로다
文侯復讀黍離하니 曰 彼黍離離하니 彼稷之苗로다 行邁靡靡하야 中心搖搖로다 知我者는 謂我心憂라하니 不知我者는 謂我何求오 悠悠蒼天아 此何人哉오
文侯於是
에 遣倉唐
하야 賜太子衣一襲
하고 勑倉唐以雞鳴時至
하다 太子
拜受賜
하고 發篋
하야 視衣
하니 盡顚倒
러라
太子曰 君侯賜擊衣
는 不以爲寒也
라 欲召擊
은 無誰與謀
라 故勑子以雞鳴時至
하시니라 로다하니라
遂西至謁하니 文侯大喜하야 乃置酒而稱曰 夫遠賢而近所愛는 非社稷之長策也라하고
乃出少子摯하야 封中山하고 而復太子擊하다 故曰 欲知其子인댄 視其友요 欲知其君인댄 視其所使라하니라
趙倉唐一使
에 而文侯爲慈父
하고 而擊爲孝子
하니라 太子乃稱
로다하니 舍人之謂也
니라
위 문후魏 文侯가 태자太子 격擊을 중산국中山國에 봉封하고 3년 동안 사자使者가 왕래하지 않았다. 사인舍人 조창당趙倉唐이 태자에게 나아가 말했다. “아들이 되어서 3년 동안 부친의 안부를 듣지 못한다면 효孝라고 말할 수 없고, 아버지가 되어서 3년 동안 자식의 소식을 묻지 않는다면 자애롭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주군主君께서는 어찌 사람을 파견하여 대국大國에 사자를 보내지 않습니까?”
태자가 말했다. “그렇게 하기를 원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보낼 만한 사자를 찾지 못했다오.”
그러자 창당倉唐이 나서며 말했다. “제가 명을 받들어 사자로 가기를 원합니다. 군후君侯께서는 무엇을 즐기고 좋아하시는지요?”
태자가 말했다. “군후君侯께서는 신부晨鳧의 요리를 즐기시고 북견北犬을 좋아하시지요.”이리하여 창당을 파견하여 북견北犬을 끌고 신부晨鳧를 받들고 가서 문후文侯에게 바치게 하였다.
창당이 도착하여 문후에게 알현하기를 청하였다. “서자庶子 격擊의 사자는 감히 대부大夫들의 조정 반열에 들 수 없기에 한가히 계실 때를 얻어 신부晨鳧를 받들어 삼가 포주庖廚에 바치고 북견北犬을 끌어다가 삼가 연인涓人에게 바치게 해주시기를 청합니다.”
문후는 기뻐하면서 말했다. “격이 나를 사랑하여 내가 즐기는 것을 알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아는구나.”
그런 다음 창당을 불러 만나고는 말했다. “격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가?”
창당은 대답하였다. “예예.”이와 같이 세 차례 문답한 뒤에 창당이 마침내 말했다. “임금께서 태자를 내보내 나라에 봉하시고 임금께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예禮에 맞지 않습니다.”
문후는 당황하여 안색을 고치고 물었다. “그대의 주군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는가?”
창당은 말했다. “제가 이곳으로 올 때 뜰에서 절하며 편지를 보내기까지 하였습니다.”
문후가 측근들을 돌아보고 가리키며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이 중에서 누구와 키가 같은가?”
창당은 말했다. “예禮에 사람을 견줄 적에는 반드시 그의 신분에 맞게 해야 됩니다. 제후는 그에 필적할 짝이 없으니, 견줄 수가 없습니다.”
문후는 말했다. “그의 키는 과인寡人과 견주어 어떤가?”
창당은 대답했다. “임금께서 하사하신 바깥 창고의 갖옷을 충분히 입을 수 있고, 하사하신 띠를 고쳐 만들지 않아도 될 정도로 컸습니다.”
문후는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무엇을 학습하는가?”
창당은 대답했다. “《시경詩經》을 학습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다시 물었다. “《시경詩經》에서 무슨 시詩를 좋아하는가?”
창당은 대답했다. “〈신풍晨風〉장章과 〈서리黍離〉장章을 좋아합니다.”
문후가 스스로 〈신풍〉장을 읽었다. “저 빨리 나는 신풍이여, 저 울창한 북쪽 숲속을 나네. 군자君子를 만나지 못했기에 근심하는 마음 서글퍼라. 어쩌면 좋을까! 어쩌면 좋을까! 참으로 나를 많이 잊었구나.”
문후가 말했다. “그대의 주군은 나를 잊었는가?”
창당이 말했다. “감히 잊지 못하여 때때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다시 〈서리〉장을 읽었다. “저 기장들 늘어져 있는데, 저 피의 싹들은 자라고 있구나. 길을 가는 일 더디고 더디어, 내 마음 마구 울렁이누나. 나를 아는 사람은 내 마음 근심에 싸였다고 말하는데, 나를 모르는 사람은 내게 무엇을 구하느냐고 하네. 아득히 먼 푸른 하늘이여, 이 어떤 사람인가.”
문후가 또 물었다. “그대의 주군은 나를 원망하는가?”
창당이 대답하였다. “감히 원망하지 못하여 때때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문후는 이에 창당을 보내면서 태자에게 옷 한 벌을 하사하고 닭이 울 무렵에 그곳에 도착하도록 당부하였다. 태자가 문후의 선물을 맞이하여 절하여 받고 상자를 열어 옷을 보니 모두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이것을 본 태자는 말했다. “서둘러 수레를 준비하라. 군후君侯께서 나를 부르신다.”
이에 창당은 말했다. “제가 올 때 그런 명령을 받지 못했습니다.”
태자는 설명했다. “군후께서 나에게 옷을 하사하신 것은 추위를 막으라는 것이 아니다. 나를 부르려는 것은 함께 일을 의논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대에게 닭이 울 무렵에 당도하라고 당부하신 것이다. 《시경詩經》에 ‘동방이 아직 밝지 않았는데, 옷을 거꾸로 뒤집어 입었구나. 거꾸로 뒤집어 입었으니, 군후가 나를 불렀기 때문이라네.’ 하였네.”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문후를 뵈니, 문후가 크게 기뻐하여 주연酒宴을 베풀면서 말했다. “어진 이를 멀리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만 친근히 하는 것은 사직社稷의 좋은 계책이 아니다.”
그러고는 작은 아들 지摯를 내보내 중산국에 봉封하고 태자 격을 돌아오게 하였다. 그래서 그의 아들을 알려고 하면 그와 사귀는 벗을 보고, 그의 임금을 알려고 하면 그가 보낸 사자使者를 보라고 하는 것이다.
조창당이 한번 사자로 가서 문후는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고 태자 격擊은 효자가 되었다. 태자는 곧 시詩를 읊어 칭송하였다. “봉황이 날아오름이여, 날개 소리 퍼덕이더니, 그칠 데에 내려앉았네. 왕실王室에 길사吉士가 많고 많으니, 군자君子가 사신 가서, 천자께 사랑을 받았네.” 이는 사인 조창당 같은 사람을 이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