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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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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2. 問於事趙簡子久矣어늘 其寵不解 奚也
공숙문자公叔文子사유史臾에게 물었다. “무자 승武子 勝조간자趙簡子를 섬긴 지 오래되었는데 그의 총애가 해이해지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이오?”
史(叟)[臾]曰 武子勝博聞多能而位賤하야 君親而近之 致敏以愻하고 藐而疏之 則恭而無怨色하며
사유가 말했다. “무자 승武子 勝견문見聞이 넓고 재능才能이 많으면서 지위地位가 낮아 주군主君이 친근히 하면 민첩함을 다하면서 겸손하고 소원히 하면 공손하면서 원망하는 기색이 없으며,
入與謀國家하고 出不見其寵하며 君賜之祿 知足而辭 故能久也니라
조정에 들어와서는 함께 국가의 일을 의논하고 조정에서 나가서는 총애받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임금이 주는 녹봉祿俸에 만족할 줄을 알아서 많이 주는 것을 사양하였소. 이 때문에 총애가 오래 이어진 것이오.”
역주
역주1 公叔文子 : 춘추시대 衛나라 大夫 公叔發로, 衛 獻公의 손자이다. 시호가 貞惠文子이므로 대개 文子라 한다. 《論語 憲問》‧《禮記 檀弓》‧《春秋左氏傳 襄公 29년》
역주2 史(叟)[臾] : 저본에는 ‘叟’로 되어 있으나, 《群書拾補》와 《經傳小記》에 의거하여 ‘臾’로 바로잡았다. 춘추시대 衛나라 大夫로, 字는 子魚, 史鰌‧史鰍로도 쓴다. 衛 靈公이 蘧伯玉을 재상으로 임용하지 않고 彌子瑕를 퇴출시키지 않자, 죽을 때 아들에게 “내 살아서 거백옥을 등용시키지 못하고 미자하를 퇴출시지 못하였으니, 正堂에 殯을 하지 말고 방에 殯하라.”고 유언하였다. 조문을 온 靈公이 그 까닭을 물으니, 아버지의 유언을 들려주자 영공은 자기의 잘못이라 하고 바로 거백옥을 등용하고 미자하를 퇴출시켰다 한다. 이를 죽어서 시체로 諫하였다 하여 ‘屍諫’으로 일컫는다. 《韓詩外傳 7》‧《大戴禮記 保傅》
역주3 武子勝 : 춘추시대 趙簡子의 家臣이다.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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