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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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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8. 楚使使聘於齊한대 齊王饗之하다
나라가 사신을 파견하여 나라에 빙문聘問하자, 제왕齊王오궁梧宮에서 잔치를 베풀어 사신을 접대하였다.
使者曰 大哉 梧乎
사자使者가 말했다. “크기도 하구나. 오동나무여!”
王曰 江漢之魚呑舟하고 大國之樹必巨어늘 使何怪焉
제왕이 말했다. “장강長江한수漢水의 물고기는 커서 배를 삼키고, 큰 나라의 나무는 당연히 거대한 것인데 사자는 어찌 괴이하게 여기는가?”
使者曰 昔할새 遵雒路하야 渡濟橋하고하야 擊齊左而虛其右하니 하고 하니이다 飮馬乎하고 定獲乎하니 王與太后奔于하야 逃於之山하니 當此之時하야 則梧之大何如乎잇가
사자가 말했다. “옛날에 나라가 나라를 공격할 적에 낙수雒水 가의 길을 따라 진군進軍하여 제수濟水의 다리를 건너고 옹문雍門을 불태우고서 제나라의 왼쪽 지역을 습격하여 오른쪽 지역을 텅 비게 하니, 왕촉王歜두산杜山에서 목이 잘려 죽었고 공손차公孫差용문龍門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연나라 군대가 치수淄水민수澠水에서 말에 물을 먹이고 낭야琅邪에서 승리를 획득하니 왕과 태후太后로 달아나 성양城陽의 산중으로 도망쳤습니다. 이때에는 오동나무의 크기가 어느 정도였습니까?”
王曰 對之하라 陳子曰 臣不如이니이다
제왕이 말했다. “선생이 이 말에 대답하시오.”진자陳子가 말했다. “신은 조발刁㪍만 못합니다.”
王曰 刁先生應之하라
제왕이 말했다. “조선생이 대답하시오.”
刁㪍曰 使者問梧之年耶 昔者 爲無道하야 加諸하야 殺子胥父與其兄이라 子胥被髮乞食於吳하니 闔閭以爲將相하니라
조발이 말했다. “사자는 오동나무의 나이를 물으셨소? 옛날에 초 평왕楚 平王이 무도하여 신씨申氏에게 몹쓸 짓을 하여 오자서伍子胥의 아버지와 그 형을 죽였소. 오자서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나라에서 밥을 빌어먹었는데, 오왕吳王 합려闔閭장수將帥재상宰相으로 삼았지요.
三年 將吳兵하고 復讐乎楚하야 戰勝乎하니 級頭百萬이요 奔鄭하고 王保於 引師入하니 軍雲行乎郢之都하니라 子胥親射宮門하고 掘平王冢하야 笞其墳하고 數以其罪曰 吾先人無罪而子殺之로다 士卒人加百焉하고 然後止하니 當若此時하야 梧可以爲其러니라
3년이 지난 뒤에 오나라의 군대를 거느리고 초나라에 복수하여 백거柏擧에서 싸워 승리하니, 백만 명의 머리를 베었고 대장 낭와囊瓦나라로 달아났으며, 초왕은 나라로 달아나 목숨을 보존하였소. 오자서가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 수도인 으로 들어가니 오나라 군대가 영도郢都에 구름처럼 모였소. 오자서는 직접 초나라의 궁문宮門에 사격하고 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무덤의 시체에 매질을 하고 그의 죄를 열거하여 ‘나의 선인先人은 아무 죄가 없는데 그대가 죽였다.’ 하고는 사졸들을 불러 사람마다 백 번씩 때리게 하고 그만두었소. 이때에는 오동나무의 크기가 활의 줌통을 만들 만했을 것이오.”
역주
역주1 梧宮 : 齊나라의 궁전 이름인데,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역주2 燕攻齊 : 燕 昭王 28년(B.C. 285)에 燕나라 장군 樂毅가 秦‧韓‧魏‧趙‧燕의 5국 연합군을 이끌고 齊나라를 공격하여 靈丘를 빼앗고, 이듬해에는 연나라 군대만을 거느리고 제나라 수도 臨淄까지 쳐들어가서 70여 城을 항복받은 일을 말한다. 《史記 樂毅列傳》
역주3 雍門 : 齊나라 都城의 城門 이름이다. 燕나라 군대가 옹문 서쪽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옹문을 불태우고 수도 臨淄로 진입하였다.
역주4 王歜絶頸而死於杜山 : 王歜의 죽음은 본서 권4 〈立節〉의 21 참고. 杜山은 지금의 山東省 淄博市 臨淄 서쪽에 있는 社山이라고 한다.
역주5 公孫差格死於龍門 : 公孫差는 사람 이름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龍門은 여러 곳이 있으나,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역주6 淄澠(승) : 淄水와 澠水 두 물 이름이다. 치수는 지금의 山東省 淄博市 南魯山에서 발원하여 小淸河로 유입하는 淄河이다. 승수는 산동성 치박시 북동쪽에서 발원하여 북서쪽으로 흘러 博興縣 남동쪽에서 時水로 흘러들었으나, 오래전에 없어졌다. 《讀史方輿紀要 山東 6 淸州府 淄水‧澠水》
역주7 琅邪 : 춘추시대 齊나라의 邑 이름이다. 秦代에는 郡을 두었다. 지금의 山東省 膠南市 琅邪臺 서북쪽에 있었다. ‘邪’는 ‘琊’로도 쓴다. 《讀史方輿紀要 州域形勢 秦琅邪》
역주8 : 춘추시대 齊나라의 邑 이름이다. 지금의 山東省 莒縣에 있었다. 《春秋左氏傳 昭公 3년》
역주9 城陽 : 莒邑인데, 삼국시대 魏나라가 이 지역에 城陽郡을 두었다. 《讀史方輿紀要 山東 淸州府》
역주10 陳先生 : 齊나라 大夫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역주11 刁㪍(조발) : 齊나라 大夫인데, 행적은 미상이다.
역주12 荊平王 : 楚 平王이다. 본서 권4 〈立節〉 11의 주1) 참고.
역주13 申氏 : 伍子胥이다. 子胥가 吳나라로 망명해오자, 吳王이 申 땅을 采邑으로 주어 申胥로 불렀기 때문에 이른다. 《國語》 〈吳語〉‧《越絶書》에는 모두 申胥로 일컬었다.
역주14 柏擧 : 춘추시대 楚나라의 땅 이름으로, 湖北省 麻城縣에 있었다. B.C. 506년에 초나라 군대가 吳나라 군대에게 대패한 곳이다. ‘擧’는 ‘莒’로도 쓴다. 《春秋左氏傳 定公 4년》
역주15 囊瓦 : 춘추시대 楚 莊王의 아들로, 令尹을 지냈다. 昭王을 王으로 옹립하였고, 蔡‧唐‧吳와 전쟁하다가 패하여 鄭나라로 달아났다. 《春秋左氏傳 定公 4년》
역주16 : 周나라에서 봉한 작은 나라 이름이다. 지금의 湖北省 隨州市에 있었다. 《春秋左氏傳 桓公 6년》
역주17 : 춘추시대 楚나라의 수도이다. 지금의 湖北省 荊州市 서북쪽 10리쯤의 紀南省에 있었다. 《春秋左氏傳 文公 10년》‧《史記 楚世家》
역주18 : ‘弣’와 통용된다. 활의 줌통으로 활의 한가운데 손으로 쥐는 부분을 말한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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