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晉文公入國
할새 至於河
하야 令棄
하고 顔色黎黑
하며 手足胼胝者在後
러라
吾亡也 十有九年矣라 今將反國이어늘 夫子不喜而哭은 何也오 其不欲吾反國乎아
對曰 籩豆茵席
은 어늘 而棄之
하고 顔色黎黑
하며 手足胼胝
는 所以執勞苦
어늘 而皆後之
하니
臣聞國君
면 無所取忠臣
이요 大夫
면 無所取忠友
라호이다
今至於國이어늘 臣在所蔽之中矣하니 不勝其哀라 故哭也니이다
天未絶晉인댄 必將有主하리니 主晉祀者는 非君而何오
推曰 尤而效之면 罪又甚焉이요 且出怨言하니 不食其食이니이다
其母曰 亦使知之하라 推曰 言은 身之文也니 身將隱이어늘 安用文이리잇가
龍反其淵하야 安其壤土하고 四蛇入穴하야 皆有處所어늘 一蛇無穴하야 號於中野로다
於是文公表綿上山中而封之하야 以爲介推田하고 號曰介山이라하다
진 문공晉 文公이 진晉나라로 들어올 때 하수河水 가에 이르러 그동안 사용했던 그릇과 자리를 버리게 하고,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들을 뒷자리에 있게 하였다.
구범咎犯이 이를 듣고 한밤중에 곡哭을 하자 문공이 말했다.
“내가 망명亡命한 지 19년이나 되었소. 이제야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대가 기뻐하지 않고 곡哭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내가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게요?”
구범이 대답하였다. “그릇과 자리는 관사館舍에서 늘 쓰던 것인데 버리고,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인 것은 수고롭고 고생스런 일을 한 사람들인데 모두 뒷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저는 들으니, 임금이 선비를 버리면 충신忠臣을 얻을 수 없고, 대부大夫가 벗을 버리면 충직忠直한 벗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제가 버림받을 사람들 속에 있으니,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겠기에 곡을 한 것입니다.”
문공은 말하였다. “화복禍福과 이해利害를 외삼촌과 공유共有하지 않는다면 저 맑은 물의 신神이 있어 증인이 될 것이오.”
이렇게 축원하고 곧 벽옥璧玉을 강물에 빠뜨려 맹세하였다.
개자추介子推가 말했다.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명 중에 공자公子만 남아 있을 뿐이오.
하늘이 진나라를 단절斷絶하려 않는다면 반드시 계승할 임금을 둘 것이니, 진나라의 제사祭祀를 주관할 사람은 공자가 아니고 누구이겠소.
다만 그대들이 자기의 공로라고 여긴다면 속이는 일이 아니겠소?”
문공이 즉위하여 상賞이 개자추에게는 내리지 않으니,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했다. “왜 상을 요구하지 않느냐?”
개자추는 말했다. “〈자기의 공로라고 여기는 사람을〉 나무라고서 본받으면 죄가 더욱 심하고, 또 원망하는 말을 하였으니 그의 녹봉祿俸을 먹지 못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임금이 알도록 해라.” 개자추는 말했다. “말은 사람의 몸을 수식修飾하는 것입니다. 몸을 감추려고 하는데 수식을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능히 이같이 한다면 나는 너와 함께 은거隱居하겠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 다시는 보지 못하였다.
개자추를 따르던 사람이 이를 가련하게 여겨 마침내 이런 글을 궁문宮門에 걸어놓았다.
“날래고 씩씩한 용龍이 있었는데, 잠시 제자리를 잃었구나.
다섯 마리 뱀이 그를 따라, 천하를 두루 다녔다네.
용은 굶었으나 먹을 것이 없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네.
용은 연못으로 돌아와, 옛 땅에서 편안히 지내고, 뱀 네 마리는 굴에 들어가, 모두 살 곳이 있건만, 뱀 한 마리는 굴이 없어서, 들에서 울고 있구나!”
문공이 궁문을 나서다가 이 글을 보고 말했다. “아, 이는 개자추로구나!
내가 한창 왕실王室의 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의 공로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하였으나 그는 달아나고 없었다.
마침내 그가 있는 곳을 찾으니, 그가 면상綿上의 산속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문공은 면상의 산속에 있는 땅을 표시하고 봉封하여 개자추의 제전祭田으로 삼고 개산介山이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