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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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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4. 晉文公入國할새 至於河하야 令棄하고 顔色黎黑하며 手足胼胝者在後러라
咎犯聞之하고 中夜而哭한대 文公曰
吾亡也 十有九年矣 今將反國이어늘 夫子不喜而哭 何也 其不欲吾反國乎
對曰 籩豆茵席 어늘 而棄之하고 顔色黎黑하며 手足胼胝 所以執勞苦어늘 而皆後之하니
臣聞國君 無所取忠臣이요 大夫 無所取忠友라호이다
今至於國이어늘 臣在所蔽之中矣하니 不勝其哀 故哭也니이다
文公曰 禍福利害 不與咎氏同之者 로다
祝之하고 乃沈璧而盟하다
之子九人 唯君在耳
天未絶晉인댄 必將有主하리니 主晉祀者 非君而何
唯二三子者 以爲己力이면 不亦誣乎
文公卽位하야 賞不及推하니 推母謂曰 盍亦求之
推曰 尤而效之 罪又甚焉이요 且出怨言하니 不食其食이니이다
其母曰 亦使知之하라 推曰 言 身之文也 身將隱이어늘 安用文이리잇가
其母曰 能如是 與若俱隱호리라 至死不復見하다
推從者憐之하야 乃懸書宮門曰
러니 頃失其所로다
從之하야 周徧天下로다
龍饑無食이어늘 一蛇割股로다
龍反其淵하야 安其壤土하고 四蛇入穴하야 皆有處所어늘 一蛇無穴하야 號於中野로다
文公出見書하고 曰 嗟 此介子推也로다
吾方憂王室하야 未圖其功이라하고
使人召之호되 則亡이라
遂求其所在하니 聞其入山中이라
於是文公表綿上山中而封之하야 以爲介推田하고 號曰介山이라하다


진 문공晉 文公나라로 들어올 때 하수河水 가에 이르러 그동안 사용했던 그릇과 자리를 버리게 하고,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인 사람들을 뒷자리에 있게 하였다.
구범咎犯이 이를 듣고 한밤중에 을 하자 문공이 말했다.
“내가 망명亡命한 지 19년이나 되었소. 이제야 나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그대가 기뻐하지 않고 을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이오? 내가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게요?”
구범이 대답하였다. “그릇과 자리는 관사館舍에서 늘 쓰던 것인데 버리고, 안색이 새까맣고 손발에 굳은살이 박인 것은 수고롭고 고생스런 일을 한 사람들인데 모두 뒷자리에 있게 했습니다.
저는 들으니, 임금이 선비를 버리면 충신忠臣을 얻을 수 없고, 대부大夫가 벗을 버리면 충직忠直한 벗을 얻을 수 없다고 합니다.
지금 나라로 가게 되었는데 제가 버림받을 사람들 속에 있으니, 그 슬픔을 견디지 못하겠기에 곡을 한 것입니다.”
문공은 말하였다. “화복禍福이해利害를 외삼촌과 공유共有하지 않는다면 저 맑은 물의 이 있어 증인이 될 것이오.”
이렇게 축원하고 곧 벽옥璧玉을 강물에 빠뜨려 맹세하였다.
개자추介子推가 말했다. “헌공獻公의 아들 아홉 명 중에 공자公子만 남아 있을 뿐이오.
하늘이 진나라를 단절斷絶하려 않는다면 반드시 계승할 임금을 둘 것이니, 진나라의 제사祭祀를 주관할 사람은 공자가 아니고 누구이겠소.
다만 그대들이 자기의 공로라고 여긴다면 속이는 일이 아니겠소?”
문공이 즉위하여 이 개자추에게는 내리지 않으니, 개자추의 어머니가 말했다. “왜 상을 요구하지 않느냐?”
개자추는 말했다. “〈자기의 공로라고 여기는 사람을〉 나무라고서 본받으면 죄가 더욱 심하고, 또 원망하는 말을 하였으니 그의 녹봉祿俸을 먹지 못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다시 말했다. “그래도 임금이 알도록 해라.” 개자추는 말했다. “말은 사람의 몸을 수식修飾하는 것입니다. 몸을 감추려고 하는데 수식을 해서 뭐하겠습니까?”
그의 어머니는 말했다. “능히 이같이 한다면 나는 너와 함께 은거隱居하겠다.” 그리하여 죽을 때까지 다시는 보지 못하였다.
개자추를 따르던 사람이 이를 가련하게 여겨 마침내 이런 글을 궁문宮門에 걸어놓았다.
“날래고 씩씩한 이 있었는데, 잠시 제자리를 잃었구나.
다섯 마리 뱀이 그를 따라, 천하를 두루 다녔다네.
용은 굶었으나 먹을 것이 없자, 뱀 한 마리가 허벅지 살을 베어 먹였다네.
용은 연못으로 돌아와, 옛 땅에서 편안히 지내고, 뱀 네 마리는 굴에 들어가, 모두 살 곳이 있건만, 뱀 한 마리는 굴이 없어서, 들에서 울고 있구나!”
문공이 궁문을 나서다가 이 글을 보고 말했다. “아, 이는 개자추로구나!
내가 한창 왕실王室의 일에 마음을 쓰느라 그의 공로를 고려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사람을 보내 불러오게 하였으나 그는 달아나고 없었다.
마침내 그가 있는 곳을 찾으니, 그가 면상綿上의 산속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문공은 면상의 산속에 있는 땅을 표시하고 하여 개자추의 제전祭田으로 삼고 개산介山이라 불렀다.


역주
역주1 籩豆茵席 : 그릇과 바닥에 까는 자리이다. 籩은 대오리를 엮어 만들어 과일을 담고, 豆는 나무로 만들어 고기 따위를 담는 祭器인데, 여기서는 음식을 담는 그릇의 뜻으로 썼다. 茵席은 풀을 엮어 만든 자리이다.
역주2 所以官者也 : 《太平御覽》 권487에는 ‘이용했던 것[所資者也]’이라 하였고, 일설에는 “‘官’자는 곧 ‘館’의 古字이니, 먹고 눕는 것이 모두 館中의 일이다.” 하였다. 곧 망명생활 중에 쓰던 물건을 이른 말인 듯하다.
역주3 〈者也〉 : 《太平御覽》에 ‘者也’ 두 글자가 있어서 보충하였다는 《說苑校證》을 따라 보충하였다.
역주4 蔽士 : ‘蔽’는 ‘屛’의 뜻과 같고, ‘屛’은 ‘물리치다, 廢棄하다’의 뜻이 있다.
역주5 蔽遊 : 벗과 사귐을 폐기함을 이른다.
역주6 有如白水 : 맹세하는 말이다. 白水의 神이 있어 증인이 된다는 뜻으로, 《詩經》 〈王風 大車〉의 “밝은 해가 있어 증인이 될 것이다.[有如皦日]”와 같은 뜻이다. ‘有如’는 맹서하는 말에 많이 쓰는 복합동사로 증명할 대상을 이른다.
역주7 介子推 : 춘추시대 晉나라 사람이다. 子는 어조사이다. 推는 이름이다. 晉 文公(重耳)이 公子로서 망명했을 때 19년 동안 따라다니며 온갖 고생을 다하며 모셨으나, 귀국하여 즉위한 뒤 봉록을 주지 않자 綿上의 介山에 은거하였다. 뒤늦게 깨달은 문공이 산에서 나오도록 산에 불을 질렀으나 나오지 않고 불에 타 죽었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史記 晉世家》
역주8 獻公 : 춘추시대 晉나라 임금이다. 이름은 詭諸로 武公의 아들이다. 晉의 公子들을 몰살하고 도읍을 絳으로 옮겼다. 二軍을 만들어 虢나라와 虞나라를 멸망시키고, 河西 땅을 빼앗아 秦나라와 국경을 마주하였다. 《史記 晉世家》
역주9 有龍矯矯 : 龍은 晉 文公을 비유한 말이다. 용은 임금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矯矯는 날래고 씩씩한 모습이다.
역주10 五蛇 : 晉 文公이 망명생활을 할 때 따르던 다섯 신하를 비유한 말이다. 곧 狐偃‧趙衰‧魏武子‧司空季子‧介子推를 이른다. 《史記 晉世家(司馬貞 索隱)》 일설에는 趙衰‧狐偃‧賈他‧魏犨‧介子推라고 한다. 《呂氏春秋 介立(高誘 注)》
역주11 綿上 : 춘추시대 晉나라의 땅이다. 山西省 介休縣 남동쪽 介山 아래에 있다. 介子推가 은거하다가 죽은 곳이라고 한다. 《春秋左氏傳 僖公 24년》‧《史記 晉世家》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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