墨子曰 惡
라 是非吾用務也
니라 古有無文者
하야 得之矣
니 夏禹是也
라 卑小宮室
하고 損薄飮食
하며 土階三等
하고 라 當此之時
하야 無所用
하야 而務在於完堅
하니라
殷之
은 大其先王之室
하고 而改遷於
하야 茅茨不剪
하고 하야 以變天下之視
하니 當此之時
하야 文采之帛
을 將安所施
리오 夫品庶非有心也
요 以人主爲心
하니
苟上不爲
면 下惡用之
리오 二王者
는 以
身先於天下
라 故化隆於其時
하고 成名於今世也
니라 且夫錦繡絺紵
는 亂君之所造也
라 其本皆興於齊
하니 景公喜奢而忘儉
이로되 幸有晏子以儉
之
라 然猶幾不能勝
하니 夫奢安可窮哉
아
紂爲
하고 宮牆文畫
하며 雕琢刻鏤
하고 錦繡被堂
하며 金玉珍瑋
하고 婦女優倡
과 鐘鼓管絃
을 流漫不禁
하야 而天下愈竭
이라 故卒身死國亡
하야 爲天下戮
하니 非惟錦繡絺紵之用耶
아 今當凶年
하야 有欲予子
者
하야 不得賣也
니 珍寶而以爲飾
하고 又欲予子一
粟者
호되 得珠者
는 不得粟
하고 得粟者
는 不得珠
면 子將何擇
고
禽滑釐曰 吾取粟耳니 可以救窮이니이다 墨子曰 誠然이면 則惡在事夫奢也리오 長無用이니 好末淫은 非聖人所急也라 故食必常飽라야 然後求美하고 衣必常暖이라야 然後求麗하며 居必常安이라야 然後求樂이라 爲可常하고 行可久인댄 先質而後文이니 此聖人之務니라 禽滑釐曰 善하니이다
금활리禽滑釐가 묵자墨子에게 물었다.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갈포葛布를 어디에 쓰시렵니까?”
묵자가 대답했다. “아, 이것은 내가 힘쓸 일이 아니다. 고대에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사람이 있어서 이 도리를 터득하였으니, 하우夏禹가 이분이다. 집은 낮고 작으며, 음식은 줄이고 변변찮으며, 세 층의 흙 계단만 쌓고, 의복은 작은 베 조각을 이어 만들었다. 이런 때에는 보불黼黻을 쓸 곳이 없어서 완전하고 견고한 데에 힘썼다.
은殷나라의 반경盤庚은 선왕이 이룩한 왕실王室을 확대하고 도읍을 바꾸어 은殷으로 옮겨서 띠로 이은 추녀의 끝을 가지런하게 자르지 않고 떡갈나무 서까래를 깎아 다듬지 아니하여 천하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켰다. 이런 때에 화려한 비단을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백성[품서品庶]은 주견이 없어, 임금이 좋아하는 것으로 마음을 삼는다.
만일 윗사람이 하지 않으면 아랫사람이 어찌 그것을 쓰겠는가. 앞의 두 제왕帝王은 자신이 천하 사람들에게 솔선하였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교화가 크게 행해지고, 지금까지 아름다운 명성이 전해진다. 게다가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갈포葛布는 혼란한 군주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 근원은 모두 제齊나라에서 시작되었으니, 제 경공齊 景公이 사치를 좋아하여 검소함을 잊었으나, 다행히 안자晏子가 있어서 검소의 도리를 경계하여 권면하였다. 그러나 거의 완전히 극복하지 못하였으니, 사치하는 풍조를 어찌 그치게 할 수 있겠는가.
은주殷紂는 녹대鹿臺‧조구槽丘‧주지酒池‧육림肉林을 만들고, 궁궐 담에 그림을 그리며, 기둥과 들보를 아름답게 조각하고, 수놓은 비단이 당堂을 덮으며, 금옥金玉 같은 진보珍寶가 그득하고, 미녀와 광대, 종고鐘鼓와 관현악기管絃樂器를 질탕하게 울리고 방종한 생활을 금하지 않아 천하의 재력이 더욱 고갈되었다. 그 때문에 끝내 자신은 죽고 나라는 멸망하여 천하 사람들의 치욕을 받았으니, 수놓은 비단과 곱게 짠 갈포葛布를 써서 사치한 일에 기인한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 흉년을 당하여 어떤 이가 너에게 수후隨侯의 구슬을 주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팔아서는 안 되니, 진보珍寶로 여겨 장식품을 만들어라.’ 하고, 또 어떤 이가 너에게 한 종鍾의 곡식을 주려고 하되, 구슬을 얻은 자는 곡식을 얻을 수 없고, 곡식을 얻은 자는 구슬을 얻을 수 없다고 하면, 자네는 어떤 것을 선택하겠느냐?”
금골리가 말했다. “저는 곡식을 취하겠으니, 곡식은 곤궁을 구제할 수 있습니다.”묵자가 말했다. “진실로 그렇다면 어찌 사치를 일삼을 필요가 있겠는가. 사치하는 물건은 영원히 쓸데없는 것이다. 말단의 향락적인 것은 성인이 긴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므로 먹는 것은 반드시 항상 배가 부른 뒤에야 맛있는 음식을 찾고, 입는 것은 반드시 항상 몸이 따뜻한 뒤에야 화려한 옷을 찾으며, 거처는 반드시 항상 편안한 뒤에야 안락한 거처를 찾는 것이다. 항상 할 수 있고 오래갈 수 있는 것을 고려한다면 질박함을 먼저 추구하고 문식을 뒤에 강구하여야 한다. 이것이 성인이 힘쓸 일이다.”금골리가 말했다. “좋은 말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