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而議其過
한대 進諫曰 主君國廣以大
하고 民堅而衆
이어늘 國中無賢人辯士
하니 奈何
잇고
王曰 寡人國小以狹하고 民弱臣少하야 寡人獨治之어늘 安所用賢人辯士乎아
任座曰 不然
하니이다 昔者
에 하니 魯君患之
하야 召其相曰 爲之奈何
오
相對曰 夫
少好學
하고 長而嘉智
하니 主君試召使於齊
하소서
魯君曰 吾千乘主也라 身自使於齊호되 齊不聽이어늘 夫柳下惠는 特布衣韋帶之士也니 使之又何益乎리오
相對曰 臣聞之호니 乞火不得이면 不望其炮矣라호이다 今使柳下惠於齊면 縱不解於齊兵이라도 終不愈益攻於魯矣니이다
魯君乃曰 然乎인저 相卽使人召柳下惠來하다 入門에 袪衣不趨하니 魯君避席而立하야 曰 寡人은 所謂飢而求黍稷하고 渴而穿井者라 未嘗能以歡喜見子러니 今國事急하야 百姓恐懼하니 願藉子大夫使齊하노라
齊侯忿然怒曰 吾望而魯城
호니 類
亡國
하야 百姓發屋伐木以救城郭
이라 吾視若魯君類吾國子
어늘 曰不懼
는 何也
오
柳下惠曰 臣之君所以不懼者는 以其先人出周하야 封於魯하고 君之先君亦出周하야 封於齊하니이다 相與出周南門할새 刳羊而約曰 自後子孫敢有相攻者면 令其罪若此刳羊矣라하니이다 臣之君은 固以刳羊不懼矣니 不然이면 百姓非不急也리이다
齊侯乃解兵三百里하다 夫柳下惠는 特布衣韋帶之士어늘 至解齊하야 釋魯之難하니 奈何無賢士聖人乎잇가
양왕梁王이 군신群臣을 모아놓고 자기의 잘못을 비평하게 하자, 임좌任座가 간언諫言을 올렸다. “주군主君의 나라는 넓고도 크며 백성은 굳세고 많은데, 나라 안에 어진 이와 말 잘하는 이가 없으니, 어찌하시겠습니까?”
왕이 말했다. “과인寡人의 나라는 작고 좁으며 백성은 나약하고 적어서 과인寡人이 혼자 다스리는데, 어진 이와 말 잘하는 이를 어디에 쓴단 말이오?”
임좌가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옛날에 제齊나라가 아무 까닭 없이 군대를 일으켜 노魯나라를 침공하자 노군魯君이 근심하여 그의 재상을 불러 ‘어쩌면 좋겠소?’ 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재상은 ‘유하혜柳下惠는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였고 어른이 되어서는 훌륭한 지혜가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한번 불러서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십시오.’라고 건의하였습니다.
그러자 노군이 말했습니다. ‘나는 천승千乘의 임금이오. 내 친히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더라도 제나라는 나의 설득을 따르지 않을 텐데, 저 유하혜는 단지 베옷에 가죽띠를 띤 선비일 뿐이오. 그를 사신으로 보낸들 무슨 이익이 있겠소.’
재상이 대답하였습니다. ‘신臣은 듣자니, 불씨를 구하여 얻지 못하면 불을 지피는 일을 바라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유하혜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낸다면 제나라 군대의 포위를 풀지는 못하더라도 끝내 노나라를 더욱 맹렬히 공격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노군이 마침내 ‘그렇겠군요.’ 하자, 재상은 즉시 사람을 보내 유하혜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유하혜가 문으로 들어와 옷자락을 걷어 올리고는 종종걸음을 하지 않으니, 노군이 자리를 피하여 일어나 말했습니다. ‘과인은 이른바 배가 고파야 곡식을 찾고 목이 말라야 우물을 파는 사람이오. 일찍이 즐겁고 기쁜 일로 그대를 만나지 않았는데, 지금 나랏일이 위급하여 백성이 두려워하고 있소. 그대 대부大夫의 역량을 빌려 제齊나라에 사신으로 가주기를 바라는 바이오.’
그러자 유하혜는 ‘좋습니다.’ 하고는 마침내 동쪽으로 가서 제후齊侯를 만났습니다.
제후齊侯가 ‘노군은 두려워하는가?’ 하고 묻자, 유하혜는 ‘신의 임금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제후가 벌컥 성을 내며 물었습니다. ‘내가 노나라 성城을 바라보니, 아득하여 마치 멸망하는 나라와 같아서 백성들이 집을 헐고 나무를 베어다가 성곽을 수축修築하고 있었소. 나는 노군을 우리나라의 백성처럼 여기는데, 그대가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유하혜가 대답했습니다. ‘신의 임금께서 두려워하지 않는 까닭은 그의 선조가 주周나라 종실宗室에서 나와 노나라에 봉해졌고, 군주君主(제후齊侯)의 선군先君도 주나라 종실宗室에서 나와 제나라에 봉해졌기 때문입니다. 함께 주나라 도성都城의 남문南門을 나올 적에 양羊을 잡아 맹약盟約하여 「지금부터 이후로 자손 중에 감히 서로 공격하는 자가 있으면 이 양을 죽이는 것과 같은 죄를 받게 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신의 임금은 본래 양을 잡아 맹서한 일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백성들이 다급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제후는 곧 포위를 풀고 300리 밖으로 후퇴하였습니다. 유하혜는 단지 베옷에 가죽띠를 띤 선비였을 뿐인데 제나라의 포위를 풀어 노나라의 위난危難을 해결하였으니, 어찌 현사賢士와 성인聖人이 없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