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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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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06. 內治未得이면 不可以正外 本惠未襲이면 不可以制末이라 是以春秋 하니라
하야 以遭亂世하야 繼先王之體로되하고 諸侯背叛하니라 欲申先王之命하야 一統天下호되 不先廣養京師하야 以及諸夏하고 諸夏以及夷狄이라
內治未得이어늘 忿則不料力 權得失하고 興兵而征强楚라가 師大敗하야 撙辱不行하야 大爲天下戮笑하니라 이라 故內治未得이면 不可以正外 本惠未襲이면 不可以制末이니라


국내國內정치政治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국외國外의 일을 바로잡을 수 없고, 근본根本적인 은혜가 두루 미치지 않으면 지엽枝葉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춘추春秋》에 경사京師선순위先順位로 하고 제하諸夏후순위後順位로 하였으며, 제화諸華를 선순위로 하고 이적夷狄을 후순위로 하였다.
주 혜왕周 惠王 때에 이르러 혼란한 시대를 만나 선왕先王의 계통을 이었으나 강대한 나라는 을 칭하고 제후들은 왕실을 배반하였다. 선왕의 을 펴서 천하를 하나로 통합하려고 하였으나 먼저 경사京師의 역량을 널리 배양하여 점차 확대하여 제하諸夏에 미치게 하고 제하에서 점차 확대하여 이적夷狄에 미치게 하지 못하였다.
국내의 정치가 잘 다스려지지 않았는데 분노하면 힘을 헤아리지도 않고 득실得失을 고려하지도 않은 채 군대를 일으켜 강대한 초나라를 정벌하였다가 군대가 크게 패하여 굴욕을 당하고 선왕의 명을 실행하지 못하여 천하 사람들의 큰 비웃음을 샀다. 다행히 제 환공齊 桓公을 만나 왕실의 안정과 제후의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러므로 국내의 정치를 잘 다스리지 못하면 국외의 일을 바로잡을 수 없고, 근본적인 은혜가 두루 미치지 않으면 지엽적인 일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역주
역주1 先京師而後諸夏 先諸華而後夷狄 : 《春秋》의 記事 원칙을 말한 것으로, 京師의 인물을 먼저 쓰고 諸夏의 인물을 뒤에 쓰며, 諸華의 인물을 먼저 쓰고 夷狄을 뒤에 쓴 것을 말한다. 여기의 경사는 魯나라를 빌려 말하였고, 제하와 제화는 周代에 分封한 中原의 諸侯國을 말한다. 《春秋公羊傳》 成公 15년에 “《춘추》는 자기 나라를 안으로 삼고 제하를 밖으로 삼으며, 제하를 안으로 삼고 이적을 밖으로 삼았다.[春秋內其國而外諸夏 內諸夏而外夷狄]” 하였다.
역주2 周惠王 : 춘추시대 東周의 天子로, 이름은 閬이다. 釐王의 아들이다. 蔿國과 邊伯 등의 땅을 빼앗고 膳夫의 녹봉을 몰수하자, 다섯 大夫가 난을 일으켜 燕나라와 衛나라 군대를 불러 혜왕을 공격하니, 혜왕은 鄭나라로 달아나 櫟에 머물렀다. 다섯 대부가 혜왕의 아우 王子 頹를 세웠는데, 뒤에 정나라가 虢公과 연합하여 왕자 퇴와 다섯 대부를 죽이고 혜왕을 맞아 복위시켰다. 《春秋左氏傳 莊公 19년》
역주3 强楚稱王 : 춘추시대 楚 武王 35년(B.C. 702)에 초나라가 周 王室에 자기의 尊號(王號)를 봉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왕실이 허락하지 않자 楚王 熊通이 노하여 스스로 楚 武王이 되었다. 《史記 楚世家》
역주4 幸逢齊桓公 以得安尊 : 齊 桓公이 미약한 周 王室을 위해 ‘尊王攘夷’를 명분으로 북쪽의 夷狄을 토벌하여 中原을 넘보는 일을 막고 남쪽의 강성한 楚나라를 억제하여 왕실을 안정시키고 王의 권위를 높였다. 당시 제후국 중에 齊나라가 가장 강대하여 霸者가 되었고, 惠王은 환공에게 侯伯의 지위를 내렸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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