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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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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3. 適齊라가 於其反也 其長子死於之間이어늘 因葬焉하다
孔子聞之하시고 曰 延陵季子 吳之習於禮者也라하시고 使子貢往而觀之하시다
其穿 深不至泉하고 其斂 以時服하고 旣葬封하니 壙墳掩坎하며 其高可隱也러라
旣封하고 左袒하야 右旋其封하야 且號者三하고 言曰 骨肉歸復于土하니 命也 若魂氣則無不之也 無不之也라하고 而遂行하다
孔子曰 延陵季子 於禮其合矣로다


연릉계자延陵季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적에 그의 장자長子 사이에서 죽자 그곳에 그대로 장사 지냈다.
공자孔子께서 이 소식을 들으시고 말씀하였다. “연릉계자延陵季子나라의 에 익숙한 사람이다.” 자공子貢을 보내어 가서 보고 오게 하였다.
무덤의 구덩이를 파는데 그 깊이는 샘물이 솟는 데까지 이르지 않았고, 은 당시 입던 옷을 입혔으며, 매장을 마치고 봉분封墳을 쌓으니, 봉분의 둘레는 구덩이를 덮을 정도였고, 높이는 기댈 수 있을 정도였다.
봉분 쌓기를 마치고 왼쪽 어깨를 드러내어 봉분을 오른쪽으로 돌면서 또 세 번 호곡號哭하며 말하기를 “너의 뼈와 살이 흙으로 돌아갔으니 이는 천명天命이다. 영혼靈魂이 가지 않는 곳이 없으며, 가지 않는 곳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그곳을 떠났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연릉계자의 아들을 매장한 일은 에 부합한다.”


역주
역주1 延陵季子 : 곧 公子季札이다. 본서 권7 〈政理〉 41의 주1) 참고.
역주2 嬴博 : 춘추시대 齊나라의 두 地名이다. 嬴은 지금의 山東省 萊蕪市 서북쪽에 있었고, 博은 지금의 山東省 泰安市 동남쪽에 있었다.

설원(2) 책은 2021.01.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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