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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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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0. 孝宣皇帝之時 奢靡하니 曰 霍氏必亡하리라 夫在人之右而奢 亡之道也 孔子曰 이라하시니라 夫不遜者 必侮上이요 侮上者 逆之道也 在人之右 人必害之
효선황제孝宣皇帝곽씨霍氏들이 사치하여 재물을 낭비하니, 무릉茂陵 사람 서선생徐先生이 말했다. “곽씨는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 사치하는 것은 멸망하는 길이다. 공자孔子께서는 ‘사치하면 겸손하지 못하다.’고 하셨다.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반드시 윗사람을 업신여기고,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것은 반역하는 길이다.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남들이 반드시 모해謀害하게 된다.
今霍氏秉權하니 天下之人 疾害之者多矣니라 夫天下害之어늘 而又以逆道行之 不亡何待리오
지금 곽씨가 집권하고 있으니, 천하에 질투하여 모해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천하 사람들이 모해하려 할 텐데, 게다가 또 반역하는 도리를 행하면 멸망하지 않고 무엇을 기다리겠는가!”
乃上書言 霍氏奢靡하니 陛下卽愛之신댄 宜以時抑制하사 無使至於亡이니이다
그러고는 이내 상서上書하여 말했다. “곽씨가 사치하여 재물을 낭비하니, 폐하께서 만일 이들을 사랑하신다면 때때로 억제하시어 멸망에 이르지 않도록 하셔야 마땅합니다.”
書三上 輒報聞이러라 其後霍氏果滅하다
세 차례 상소를 올리자 그때마다 “알겠다.”는 비답批答을 내렸다. 뒤에 곽씨는 정말 멸망하였다.
等以其功封하니 人有爲徐先生上書하야 曰 臣聞客有過主人者러니 見竈直堗 傍有積薪하고 客謂主人曰 曲其堗하고 遠其積薪하라 不者 將有火患하리라
동충董忠 등은 그 으로 에 봉하여지니, 어떤 사람이 서선생을 위해 상서上書하여 말했다. “은 들으니, 어떤 나그네가 주인집을 지나게 되었는데 부엌의 구들이 곧게 만들어져 있는 데다가 곁에 땔나무를 쌓아놓은 것을 보고 나그네가 주인에게 ‘구들을 굽게 만들고 쌓아놓은 땔나무를 멀리 옮기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화재가 일어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主人嘿然不應이러니 居無幾何 家果失火하니이다 鄕聚里中人 哀而救之하야 火幸息하니이다 於是 殺牛置酒할새 燔髮灼爛者 在上行하고 餘各用功次坐호되 而反言曲堗者하니이다
그러나 주인은 잠자코 있으면서 응하지 않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집에 정말 불이 나고 말았습니다. 마을의 이웃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모두 도와 함께 불을 꺼서 다행히 불이 꺼졌습니다. 이에 주인은 소를 잡아 술자리를 마련하고 마을 사람들을 대접할 적에 머리카락이 타고 이마를 데인 자들은 윗줄에 앉히고, 나머지 사람들은 각기 공에 따라 차례대로 앉혔습니다. 그러나 구들을 굽게 만들라고 조언한 사람은 도리어 초청하지 않았습니다.
向使主人聽客之言이런들 不費牛酒 終無火患이니이다 今茂陵徐福 數上書言하야 霍氏且有變이니 宜防絶之라하니 向使福說得行이런들 則無裂地出爵之費하고 而國安平自如니이다 今往事旣已어니와 而福獨不得與其功하니이다 惟陛下察客徙薪曲堗之策하사 而使居燔髮灼爛之右하소서 書奏 上使人賜徐福帛十匹하고 拜爲郞하다
만일 지난번에 주인이 나그네의 조언을 들었더라면 소와 술을 허비하지 않았을 것이고, 끝내 화재가 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무릉 사람 서복徐福이 여러 차례 상서하여 곽씨가 장차 변란을 일으킬 것이니, 미리 방비하여 이를 단절함이 마땅하다고 했습니다. 만일 지난번에 서복의 말을 시행했더라면 땅을 분봉分封하고 작위爵位를 주는 비용이 들지 않고 나라도 예전처럼 평안하였을 것입니다. 지금 지나간 일은 그만이지만 서복만 그 공에 참여하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는 섶나무를 멀리 옮기고 구들을 굽게 만들라고 권유했던 나그네의 계책을 살피시어 머리카락을 태우고 이마를 데인 사람들의 윗자리에 앉게 하십시오.”상소를 올리자, 황제가 사람을 보내 서복에게 비단 열 을 하사하고 낭관郎官에 임명하였다.
역주
역주1 霍氏 : 霍光의 일족을 말한다. 곽광은 漢나라 河東 平陽(지금의 山西省 臨汾縣 서남) 사람으로, 霍去病의 이복동생이다. 武帝 때 奉車都尉가 되어 무제의 깊은 신임을 받았고, 무제가 죽은 뒤 어린 昭帝를 보필하였다. 燕王의 난을 기회로 上官桀‧桑弘羊 등의 정적을 제거하고 실권을 장악하여 전후 20여 년간 권력을 독점하였다. 博陸侯에 봉해졌고, 벼슬은 大司馬大將軍이었으며, 시호는 宣成이다. 《漢書 霍光傳》
역주2 茂陵徐先生 : 茂陵은 漢 武帝의 陵으로, 宣帝 때 縣을 두어 右扶風에 소속시켰다. 현재의 陝西省 興平市 동북쪽이다. 徐先生은 아래 글에서 말한 徐福으로 무릉 사람인데, 행적은 알 수 없다.
역주3 奢則不遜 : 《論語》 〈述而〉에 보인다. 단 ‘遜’이 현재의 《論語》에는 ‘孫’으로 되어 있는데, 통용한다.
역주4 董忠 : 漢나라 穎川 陽翟 사람이다. 漢 宣帝 地節 4년(66)에 霍光의 아들 霍禹가 선제를 폐위하려고 음모를 꾸미자, 동충이 이를 알고 고발하여 그 공으로 高昌侯에 봉해졌다. 《漢書 霍光金日磾傳》
역주5 不錄 : 살피지 않았다는 말이다. 곧 초청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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