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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2)

설원(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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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2)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 하고 歸而繕甲砥兵하니 楚王恐하야曰 晉人已勝智氏矣 歸而繕甲兵하니 其以我爲事乎
나라 사람이 지씨智氏를 이기고 돌아가서 갑옷을 수선하고 무기를 갈아 정비하니, 초왕楚王이 두려워하여 양공홍梁公弘을 불러서 물었다. “진나라 사람이 벌써 지씨를 이기고 돌아가서 갑옷과 무기를 수선하고 정비하니, 혹 우리와 전쟁을 하려는 것인가?”
梁公曰 이니 害其在吳乎인저 夫吳君恤民而同其勞하야 使其民重上之令하야 而人輕其死以從上使하야 如虜之戰하니이다 臣登山以望之하야 見其用百姓之信必也호니 勿已乎인저 其備之若何잇가
양공이 대답했다. “진나라는 근심하지 않아도 됩니다. 초나라의 우환은 아마 나라에 있을 것입니다. 오나라 임금은 백성을 보살피고 백성들과 수고로운 일을 함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군주의 명령을 존중하여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고 군주가 시키는 대로 따르게 하여 마치 노예를 전쟁에 내몰듯이 하고 있습니다. 이 산에 올라가 바라보면서 저들이 백성을 신뢰와 성실로 부리는 것을 보았으니, 우리를 공격하려는 마음을 그만두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침공을 방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不聽이러니 明年 襲郢하다
초왕이 따르지 않았는데, 그 이듬해에 오왕吳王 합려闔廬나라 수도 을 습격하였다.
역주
역주1 晉人已勝智氏 : 전국시대 晉나라의 趙襄子가 韓康子‧魏宣子와 함께 智氏(智伯)를 멸망시킨 일을 말한다. 智伯은 본서 권3 〈建本〉 30의 주2) 참고. 단 이 내용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다. 宋나라 葉大慶의 《攷古質疑》 권4에는 “杜預가 주석한 《春秋左氏傳》의 晉人이 智氏에게 승리한 일은 春秋 이후 27년에 있으니, 춘추 이후라고 말하는 것은 哀公 17년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闔廬가 郢에 들어간 일은 바로 定公 4년이니, 54년의 시간 차이가 있다. 더구나 지백이 망하고 吳나라가 멸망한 지 벌써 오래되었으니, 이 일은 잘못되었다.” 하였다. 또 淸나라 陳厚耀의 《春秋戰國異事》 권29에는 “진인이 지씨를 평정한 것은 합려가 郢을 습격한 뒤에 있었던 일로 楚 惠王 때에 해당하니, ‘智氏’ 두 글자는 잘못되었다.” 하였다.
역주2 梁公弘 : 춘추시대 楚 昭王의 大夫이다.
역주3 不患 : 《太平御覽》 권450의 인용문에는 ‘患’자 아래 ‘晉’자가 있다.
역주4 闔廬 : 본서 권8 〈尊賢〉 05의 주1) 참고.

설원(2)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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