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說苑(1)

설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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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원(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21. 子産相鄭 謂子産曰
內政毋出하고 外政毋入하라
夫衣裘之不美 車馬之不飾 子女之不潔 寡人之醜也
國家之不治 封疆之不正 夫子之醜也니라
子産相鄭하야 終簡公之身토록 內無國中之亂하고 外無諸侯之患也하다
子産之從政也 擇能而使之하니
善斷事하고 善決而文하고 知四國之爲하며 而辨於其大夫之族姓班位能否하고 又善爲辭令하다
善謀하야 於野則獲하고 於邑則否
有事 乃載裨諶하고 與之適野하야 使謀可否하야 而告馮簡子斷之하고 使公孫揮爲之辭令하다
이어든 乃受子太叔行之하야 以應對賓客이라
是以鮮有敗事也하니라


자산子産나라에서 재상 노릇을 할 때 간공簡公이 자산에게 말했다.
궁중宮中에 관한 일은 밖에 내어다 처리하지 말고, 궁중 밖의 정무政務는 궁중에 들여서 처리하지 마시오.
의복衣服이 아름답지 못함과 거마車馬가 잘 꾸며지지 않은 것과 자녀子女품행品行고결高潔하지 않은 것은 과인寡人의 수치가 될 것이오.
국가國家가 잘 다스려지지 못함과 영토領土의 경계가 바르게 지켜지지 못함은 그대의 수치가 될 것이오.”
자산이 정나라의 재상이 되어 간공이 죽을 때까지 안으로는 국내國內에 혼란한 사태가 없었고, 밖으로는 제후諸侯가 침입하는 환난이 없었다.
자산이 정사를 처리할 때 현능賢能한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켰다.
풍간자馮簡子는 큰일의 결단을 잘하고, 자태숙子太叔은 판결을 잘하면서 문사文辭가 있고, 공손휘公孫揮는 사방 제후국諸侯國의 정황을 알며 게다가 그 나라 대부大夫의 가족 성씨와 관직‧작위와 재능 따위를 명백히 알고 또 외교外交응대應對를 잘하였다.
비심裨諶은 계책을 잘 내었는데 야외野外에서 계책을 세우면 딱 들어맞고 북적대는 에서 계책을 세우면 맞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으면 비심을 수레에 태우고 함께 야외에 가서 계책의 가부可否를 정하여 풍간자에게 말해주어 결단하고 공손휘에게 외교의 응대를 정하게 하였다.
이것이 완성되면 마침내 자태숙에게 주고 집행하여 외국外國빈객賓客을 응대하게 하였다.
이 때문에 실패하는 일이 드물었다.


역주
역주1 簡公 : 춘추시대 鄭나라 군주로, 이름은 嘉이다. 즉위 초에 여러 公子의 政變과 晉‧楚의 침공으로 나라가 혼란스러웠으나 子産을 중용하여 국가의 안정을 이루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8~11‧16‧18‧24~31년, 昭公 元‧3~8‧10‧12년》‧《史記 鄭世家》
역주2 馮簡子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이다. 子産이 집정할 때 국가의 큰일을 함께 결단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31년》
역주3 子太叔 : 춘추시대 鄭나라 正卿이다. 이름은 游吉, 자는 太叔, 존칭으로 子太叔‧世叔이라고 한다. 典故에 밝고 應對에 능하였다. 《春秋左氏傳 昭公 20‧30년》
역주4 公孫揮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로 자는 子羽이다. 外交辭令에 능하여 行人(外交官)이 되었다. 《春秋左氏傳 襄公 24‧26‧30‧31년》
역주5 裨諶 : 춘추시대 鄭나라 大夫이다. 子産이 집정할 때 정사에 관한 文辭의 초안은 늘 맡아 작성하였고, 국가의 큰일에 대한 계책도 잘 마련하였다. 《春秋左氏傳 襄公 29‧31년》‧《論語 憲問》‧《淮南子 說山訓》

설원(1)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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