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趙武靈王
이 北略中山之地
하야 至房子
注+略者, 巡行之名. 按行, 邊境也. 班志 “房子縣屬常山郡.”하고 遂之代
하야 北至無窮
注+戰國策 “武靈王曰 ‘昔先君襄王與代交地, 城境封之, 名曰無窮之門, 所以詔後而期遠也.’”하고 西至河
하야 登黃華之上
注+黃華, 西河側之山名.하고
與肥義
로 謀胡服騎射
하야 以敎百姓曰
注+騎, 去聲, 下同.
愚者所笑를 賢者察焉하나니 雖驅世以笑我라도 胡地中山을 吾必有之호리라하고
今寡人이 作敎易服이어늘 而公叔이 不服하니 吾恐天下議之也일까하노라
制國有常하니 利民이 爲本이요 從政有經하니 令行이 爲上이라
明德
은 先論於賤而從政
은 先信於貴
注+德欲其下及, 故先論於賤. 卑賤者感其德, 則德廣所及可知矣. 法行自貴近始, 故先信於貴. 貴近者奉法, 則法之必行可知矣.니
公子成이 再拜稽首曰 中國者는 聖賢之所敎요 禮樂之所用이요 遠方之所觀赴요 蠻夷之所則效也어늘
今王이 舍此而襲遠方之服하야 變古道逆人心하니 臣願王은 熟圖之也하소서 使者以報한대
王이 自往請之曰 吾國이 東有齊中山하고 北有燕東胡하고 西有樓煩秦韓之邊하니
無騎射之備
면 則何以守之哉
注+胡, 北狄也. 其國在匈奴之東者曰東胡. 漢雁門郡樓煩縣, 樓煩胡所居地.리오
先時
에 中山
이 負齊之彊
하야 侵暴吾地
하야 引水圍鄗
注+先, 悉薦切. 鄗, 音霍, 趙邑.하니 微社稷之神靈則鄗幾於不守也
라
先君이 醜之하시니 故寡人이 變服騎射하야 欲以備四境之難하며 報中山之怨이어늘
而叔이 順中國之俗하고 惡變服之名하야 以忘鄗事之醜하니 非寡人之所望也로다
公子成이 聽命이어늘 乃賜胡服以朝하고 而始出令焉하다
目
[目]
조趙나라
무령왕武靈王이 북쪽으로
중산中山 지역을 순행하여
방자房子에 이르렀고
注+① 약略은 순행巡行을 나타내는 명칭이고, 행行은 변경邊境을 뜻한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방자현房子縣은 상산군常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드디어
대代에 가서 북쪽으로
무궁無窮에 이르고
注+② 《전국책戰國策》 〈조책趙策 이二〉에 “무령왕武靈王이 ‘옛날에 선군先君 양왕襄王이 대代와 인접한 지역의 경계에 성城을 쌓아 국경으로 정하고 이름을 무궁지문無窮之門(끝없이 영토를 확장하는 문)이라 한 것은 후세에 알려 원대함을 기원한 것이다.’라고 말하였다.”고 하였다., 서쪽으로
하수河水에 이르러
황화산黃華山의 정상에 올랐다.
注+③ 황화黃華는 서하西河 옆의 산 이름이다.
비의肥義와 함께
호복胡服과
기사騎射를
백성百姓에게 가르칠 것을 모의하며 말하기를
注+④ 기騎(기병)는 거성去聲이고 아래도 같다.
“어리석은 사람이 웃는 바를 현명한 사람은 살피니, 비록 세상 사람을 몰아 나를 비웃더라도 오랑캐 지역의 중산中山을 내가 반드시 차지하겠다.”라고 하고,
드디어 호복胡服을 입었는데, 나라 사람들이 모두 따르려고 하지 않았다.
공자公子 성成이 병을 핑계 대고 조회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왕王이 사람을 시켜서 그를 청하며 말하기를 “집에서는 어버이의 말을 듣고 나라에서는 임금의 말을 듣습니다.
지금 과인寡人이 복장을 바꾸는 것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공숙公叔(公子 성成)이 따르지 않으니 나는 천하天下가 이 일을 의논할까 염려됩니다.
나라를 통제하는 데 원칙이 있으니 백성을 이롭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고, 정사를 처리하는 데 원칙이 있으니 명령이 행해지는 것이 으뜸이 됩니다.
덕을 밝히는 것은 천한 사람에게서 먼저 의논해야 하고 정사를 처리하는 것은 귀한 사람에게서 먼저 신임을 얻어야 합니다.
注+⑤ 덕德은 아래까지 미치고자 하므로 먼저 천한 사람에게 논의되어야 한다. 비천한 사람이 그 덕德을 느끼면 덕德이 넓게 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법法은 집행을 귀하고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므로 먼저 귀한 사람에게 신뢰를 받아야 한다. 귀하고 가까운 사람이 법을 지키면 법이 반드시 시행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라건대 공숙을 흠모하는 뜻으로 호복胡服으로 바꾸는 공적을 이루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공자 성이 두 번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중국中國은 성현聖賢이 가르친 곳이고 예악禮樂이 쓰이는 곳이며, 먼 지방에서 보러 오는 곳이며 만이蠻夷가 본받는 곳입니다.
지금 왕王이 이를 버리고 먼 지방의 복장을 이어받아 옛 도道를 변화시키고 인심人心을 거스르니, 신臣은 바라건대 왕은 심사숙고하여 도모하소서.”라고 하고, 사자使者에게 보고하게 하였다.
왕이 스스로 가서 청하며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동쪽으로는 제齊나라와 중산中山이 있고, 북쪽으로는 연燕나라와 동호東胡가 있고, 서쪽으로는 누번樓煩과 진秦나라와 한韓나라의 변경이 있습니다.
기사騎射의 준비가 없으면 어떻게 지킬 수 있겠습니까.
注+⑥ 호胡는 북쪽 오랑캐이다. 그 나라가 흉노匈奴의 동쪽에 있으므로 동호東胡라 하였다. 한漢나라 안문군雁門郡 누번현樓煩縣이 있는데, 누번樓煩이라는 오랑캐가 호胡가 거주한 곳이다.
옛날에
중산中山이
제齊나라의 강함을 등에 업고 우리 땅을 침범하여 포학하게 하며 물을 끌어당겨
곽鄗을 포위하였는데
注+⑦ 선先은 실천悉薦의 절切이다. 호鄗은 음이 곽霍이니 조趙나라 읍邑이다.,
사직社稷의 신령함이 아니었으면
호鄗은 거의 지키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선군先君이 이를 부끄럽게 여겼으므로 과인寡人이 호복으로 바꾸어 기사騎射를 편리하게 하여 사방 국경의 어려움을 대비하며 중산中山의 원한을 갚고자 합니다.
그런데 공숙이 중국中國의 풍속을 따르고 복장을 바꾼다는 명분을 싫어하여 호鄗의 일에 대한 부끄러움을 잊고자 하니 과인이 바라는 바가 아닙니다.”라고 하였다.
공자 성이 명을 따르니 마침내 호복胡服을 하사하여 조회에 나오게 하고 비로소 변복의 명령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