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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4)

자치통감강목(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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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亥年(B.C. 130)
신해년(B.C. 130)
五年이라
[綱] 나라 세종世宗 효무황제孝武皇帝 원광元光 5년이다.
겨울 10월에 하간왕河間王 유덕劉德이 와서 조회하였다.
獻雅樂하고 對詔策하고 春正月 還而卒하다
아악雅樂을 올리고, 조서詔書로 물은 책문策問에 대답하고, 봄 정월正月에 봉국으로 돌아가서 하였다.
河間獻王 修學好古하고 實事求是注+謂務得事實, 每求眞是也.하며 以金帛으로 招求四方善書하니 得書多與漢朝等이러라
[目] 하간헌왕河間獻王(유덕劉德)이 학문을 닦고 옛것을 좋아하고 사실을 얻는 데에 힘써서 진실되고 옳은 것을 추구하였으며,注+〈“실사구시實事求是”는〉 사실을 얻는 데 힘써서 매번 진실되고 옳은 것을 찾음을 이른다. 금과 비단으로써 사방의 좋은 책을 찾으니, 얻은 책의 많음이 나라 조정과 대등하였다.
淮南王安 亦好書호되 所招致率多浮辯注+言無實用耳.이요 獻王所得 皆古文先秦舊書 周官, 尙書, 禮, 禮記, 孟子, 毛氏詩, 左氏春秋之屬注+先秦, 猶言秦先, 謂未焚書之前. 禮者, 禮經也. 禮記者, 諸儒記禮之說也.이라
당시에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도 책을 좋아하였지만 모은 것이 거의 실용적이지 못한 것이 많았고,注+〈“솔다부변率多浮辯”은〉 실용적인 것이 없음을 이른다. 하간헌왕이 얻은 것은 모두 고문古文으로 된 선진先秦시대의 옛 서적으로, 《주례周禮》와 《상서尙書》, 《예경禮經》과 에 대한 기록, 《맹자孟子》와 《모씨시毛氏詩》,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등이었다.注+선진先秦나라 이전이라는 말과 같으니, 시황제始皇帝분서焚書가 있기 전을 이른다. 는 《예경禮經》이다. “예기禮記”는 여러 유자儒者들이 에 대해 기록한 설이다.
采禮樂故事하고 稍稍增輯하여 至五百餘篇하고 被服 造次에도 必於儒者하니 山東諸儒 多從之遊注+被, 猶著也. 服, 衣服. 造次, 急遽苟且之時. 一說 “被服者, 言以儒術衣被其身也.”하니라
예악禮樂고사故事를 수집하고 점점 증보하여 5백여 편에 이르렀으며, 경황이 없을 때에도 입는 옷은 반드시 유자儒者와 같이 하니, 산동山東유자儒者들 중에 그를 따라 교유交遊하는 사람이 많았다.注+(입다)는 과 같고 은 의복이다. “조차造次”는 급하고 구차한 때이다. 일설一說에 “피복被服유술儒術을 자신의 몸에 옷을 입는 것처럼 함을 말한다.” 하였다.
是歲十月 來朝하여 獻雅樂하고 對三雍宮及詔策所問三十餘事로되 推道術而言하여 得事之中하고 文約指明注+獻王以爲 “治道非禮樂不成.” 因獻所集雅樂. 三雍宮, 辟雍‧明堂‧靈臺也. 雍, 和也, 言天地君臣人民皆和也. 對三雍宮者, 對三雍之制度, 非召對於三雍宮. 中, 去聲. 約, 少也. 指, 謂義之所趨, 若人以手指物也.하니
[目] 이해 10월에 〈하간왕河間王이〉 와서 조회朝會하며 아악雅樂을 올리고 삼옹궁三雍宮에 대한 것과 조서로 물은 30여 가지의 일에 대해 대답하였는데, 도술道術(도학道學)을 부연 설명하여 일의 합당함을 얻었고 글이 간략하면서도 가리킨 뜻이 분명하였다.注+헌왕獻王이 아뢰기를 “치도治道예악禮樂이 아니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고, 인하여 수집한 아악雅樂을 바친 것이다. 벽옹辟雍, 명당明堂, 영대靈臺이다. 은 조화롭다는 뜻이니, 천지天地군신君臣, 인민人民이 모두 조화로움을 말한 것이다. “대삼옹궁對三雍宮”은 삼옹三雍의 제도에 대해 대답한 것이지, 삼옹궁三雍宮으로 불러들여 대답하게 한 것이 아니다. (합당함)은 거성去聲이다. 은 적다는 뜻이다. 는 지향하는 의미가 사람이 손으로 물건을 가리키는 것과 같음을 이른다.
天子下太樂官하여 存肄所獻雅聲하여 歲時以備數 然不常御注+太樂官, 屬太常. 肄, 習也,러라
천자가 태악관太樂官에게 내려서 하간헌왕河間獻王이 바친 아악雅樂을 보존하고 익히게 하였는데, 세시歲時에는 숫자를 갖추어 연주하게 하였으나 항상 연주하지는 않았다.注+태악관太樂官태상太常에 속한다. 는 익힌다는 뜻이다.
正月커늘 中尉以聞한대
정월에 하간왕이 하자 중위中尉가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身端行治하여 溫仁恭儉하고 篤敬愛下하며 明知深察하여 惠于鰥寡注+端, 直也. 治, 理也. 知, 讀曰智.라하다
“하간왕은 몸이 단정하고 행실을 잘 다스려서 온화하고 인자하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공경함이 독실하고 아랫사람들을 사랑하며 지혜가 밝고 깊이 살펴서 홀아비와 과부에게 은혜를 베풀었습니다.”注+은 정직하다는 뜻이고, 는 다스린다는 뜻이다. (지혜)는 로 읽는다.
大行令 奏諡法聰明睿智曰獻이어늘 諡王曰獻王이라하다
대행령大行令시법諡法에 ‘총명聰明하고 예지睿智함을 이라 한다.’는 것을 올리자, 시호를 ‘헌왕獻王’이라 하였다.
班固曰
[目] 반고班固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魯哀公 有言호되 寡人 生於深宮之中하고 長於婦人之手하여 未嘗知憂 未嘗知懼注+哀公與孔子言也, 事見荀子.라하니 信哉 斯言也
“옛날에 나라 애공哀公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은 깊은 궁궐에서 태어나고 부인들의 손에서 자라서 근심과 두려움을 알지 못한다.’注+애공哀公공자孔子에게 한 말이니, 이 내용은 《순자荀子》에 보인다. 하였으니, 이 말이 참으로 옳은 말이다.
雖欲不危亡이나 不可得也
〈이렇게 되면〉 비록 위태로움과 망함이 없고자 하나 그렇게 될 수가 없다.
是故 古人 以晏安爲鴆毒하고 無德而富貴 謂之不幸注+管敬仲曰 “宴安鴆毒, 不可懷也.”이라하니
이 때문에 옛사람들이 안락을 짐독鴆毒으로 여겼고, 이 없으면서 부귀한 것을 불행不幸으로 여겼다.注+관경중管敬仲(관중管仲)이 말하기를 “연안宴安짐독鴆毒이니, 이(연안宴安)를 그리워해서는 안 된다.” 하였다.
漢諸侯王 以百數로되 率多驕淫失道하니 何則
나라 제후왕의 숫자가 백여 명이었는데, 대부분 교만하고 방탕하여 를 잃었으니, 어째서인가?
沈溺放恣之中하여 居勢使然也
방자한 가운데 빠져서 처한 형세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夫唯大雅하여 卓爾不群 河間獻王 近之矣注+雅, 正也.로다
오직 크게 고상하고 우뚝 솟아나 범상치 않은 것은 하간헌왕河間獻王이 여기에 가까웠다.”注+는 바르다는 뜻이다.
司馬公曰
[目] 사마온공司馬溫公(사마광司馬光)이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景帝之子十有四人 栗太子廢而獻王最長하니 嚮若遵大義而屬重器焉이면 則帝王之治 復還矣注+屬, 託也. 天下者, 王者之重器.리라
경제景帝의 아들 14명 중에 율태자栗太子는 폐위를 당하여 헌왕獻王이 가장 나이가 많았으니, 지난번에 대의大義를 따라서 왕자王者중기重器를 헌왕에게 위탁하였더라면 제왕帝王의 다스림을 다시 회복했을 것이다.注+은 위탁한다는 뜻이다. 천하天下왕자王者중기重器(중요한 기물)이다.
嗟乎 天實不欲禮樂復興邪
아, 하늘은 실로 예악禮樂이 부흥하기를 원하지 않은 것인가?
抑斯人之不幸也인저
그렇지 않다면 이 사람들(백성들)의 불행일 것이다.”
通南夷하여 置犍爲郡하고 通西夷하여 置一都尉하다
[綱] 남이南夷와 통하여 건위군犍爲郡을 설치하고, 서이西夷와 통하여 도위都尉 하나를 두었다.
王恢之討東越也 使番陽令唐蒙으로 風曉南越注+風, 讀曰諷. 風曉, 微加曉告也.하니
[目] 이전에 왕회王恢동월東越을 토벌할 적에 번양령番陽令(파양령) 당몽唐蒙으로 하여금 남월南越에 넌지시 알리게 하였다.注+(넌지시 알리다)은 으로 읽으니, “풍효風曉”는 넌지시 알려주는 것이다.
南越食蒙以枸醬注+食, 音嗣. 枸, 一作蒟, 音矩. 蒟醬, 緣木而生, 其子如桑椹, 熟時正靑, 長二三寸, 以蜜藏而食之, 辛香, 調五藏.이어늘 問所從來한대 曰 道西北牂柯江注+道, 由也, 由此而來. 牂, 通作䍧, 音臧. 柯, 音歌. 牂柯者, 繫船杙也. 楚伐夜郞, 至且蘭, 椓船於岸, 因以牂柯名江. 하니 牂柯江 廣數里 出番禺城下라하니라
남월이 구장枸醬이라는 음료를 당몽에게 먹였는데,注+(먹이다)는 이다. 일본一本로 되어 있으니, 음이 이다. 구장蒟醬(구장枸醬)은 나무에 붙어서 자라니, 그 열매가 뽕나무 열매(오디)처럼 생겼고, 익었을 때에 정청색正靑色을 띄고 길이가 2, 3치인데 꿀에 담가두었다가 먹으면 매운 향기가 나서 오장五臟을 조화롭게 한다. 당몽이 이것이 어디서 났는지 묻자, 대답하기를 “서북쪽 장가강牂柯江에서 나오니,注+는 말미암다는 뜻이니, 이곳에서 왔다는 말이다. 과 통용되니 음이 이고, 는 음이 이니, 장가牂柯는 배를 묶을 때 쓰는 말뚝이다. 나라가 야랑夜郞을 정벌하고 차란且蘭에 이르러서 연안에 나무를 박아 배를 묶어두었는데, 인하여 장가牂柯로써 의 이름을 삼았다. 장가강은 너비가 몇 리나 되고 번우성番禺城(반우성)으로 흘러 바다로 나간다.” 하였다.
하여 問蜀賈人注+歸者, 歸至長安也. 한대 賈人曰 獨蜀 出枸醬하니 多持竊出市夜郞注+謂蜀賈多有竊持枸醬, 出界市賣與夜郞也. 華陽國志 “夜郞王, 竹玉三郞之後, 武帝開爲縣, 屬牂柯郡.”이라
당몽이 돌아와 땅 상인에게 묻자,注+는 〈당몽唐蒙이〉 돌아와 장안長安에 이른 것이다. 상인이 대답하기를 “촉 땅에서만 구장이 나오는데, 대부분 몰래 가지고 나와서 야랑夜郞에서 팝니다.注+ 땅의 상인들 중에 몰래 구장枸醬을 가지고 국경을 나와 야랑夜郞에서 파는 자들이 많음을 이른다. 에 “야랑왕夜郞王죽옥삼랑竹玉三郞의 후예이니, 무제武帝가 개척하여 으로 삼아서 장가군牂柯郡에 소속시켰다.” 하였다.
夜郞 臨牂柯江하니 江廣百餘步 南越 以財物役屬之 然亦不能臣使也니라
야랑은 장가강에 닿아 있으니, 강폭이 100여 보이고, 남월이 재물을 가지고 그들을 복속시켰지만 또한 신하로 부리지는 못합니다.” 하였다.
乃上書曰
당몽이 이에 상서上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南越王 名爲外臣이나 實一州主也
“남월왕이 겉으로는 외신外臣을 칭하고 있지만 실제 한 지역의 주인입니다.
今以長沙豫章往하면 水道多絶이니
지금 장사長沙예장豫章에서 남월로 간다면 물길이 대부분 끊길 것입니다.
竊聞夜郞精兵 可十餘萬이라하니 浮船牂柯하여 出其不意하면 此制越一奇也
삼가 듣건대, 야랑夜郞의 정예병이 10여 만이나 된다고 하니, 장가강에서 배를 띄워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곳으로 나아가면 이것이 남월을 제어하는 한 가지 기이한 계책이 될 것입니다.
請通夜郞道爲置吏注+爲, 去聲, 下爲置竝同.하노이다
원컨대 야랑에 가는 길을 통하게 하고 관리를 두소서.”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위치爲置〈의 자〉도 모두 같다.
乃拜蒙爲中郞將하여 將千人하고 從筰關入注+筰, 一作筰, 竝音昨. 李文子曰 “筰關, 在沈黎郡.” 又云 “在犍爲郡界.”하여 見夜郞侯多同하여 厚賜之하고 喩以威德하여 約爲置吏注+多同, 夜郞侯之名.하니
[目] 이 이에 당몽唐蒙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하여 사졸士卒 1,000명을 거느리고 작관筰關을 따라 들어가서注+일본一本으로 되어 있으니, 모두 음이 이다. 이문자李文子가 말하기를 “작관筰關침려군沈黎郡에 있다.” 하였고, 또 “건위군犍爲郡의 경계에 있다.” 하였다.야랑후夜郞侯 다동多同을 만나 많은 선물을 주고 위엄과 덕으로 깨우쳐서 관리를 두기로 약조하였다.注+다동多同야랑후夜郞侯의 이름이다.
多同等 貪漢繒帛하고 以爲道險하여 漢終不能有라하고 乃且聽約하다
다동 등은 나라 비단이 탐나고, 또 길이 험하여 나라가 끝내 자기들의 땅을 소유하지 못할 것이라고 여겨 마침내 약조를 허락한 것이다.
還報한대 上以爲犍爲郡注+犍, 音虔.하고 發卒治道하니 數萬人卒 多物故注+卒, 士卒也. 物故, 謂死也, 言其同於鬼物而故也. 一說 “不欲斥言死, 但云其所服用之物, 皆已故耳.” 一說 “物, 無也. 故, 事也.” 言死者無所復能於事也.
당몽이 돌아와 보고하자, 야랑夜郞건위군犍爲郡으로 삼고注+은 음이 이다. 군대를 징발하여 길을 닦게 하였는데, 수만 명의 사졸 중에 죽은 자가 많았다.注+사졸士卒이다. “물고物故”는 죽음을 이르니, 귀물鬼物과 같이 오래됨을 이른다. 일설一說에는 “죽음을 직접 가리켜 말하고 싶지 않으므로 다만 그 착용하는 물건이 모두 오래되었다고 말한 것일 뿐이다.” 하고, 일설一說에는 “은 없다는 뜻이고 는 일이라는 뜻이니, 죽은 자는 일을 다시 할 수 없음을 말한다.” 하였다.
有逃亡者어늘 用軍興法誅之하니 巴蜀民 大驚恐注+縣官徵聚曰興.이라
또 도망가는 자가 있으면 으로 그들을 처벌하니, 파촉巴蜀의 백성들이 크게 두려워하였다.注+현관縣官(국가)이 징모徵募(징집徵集)하는 것을 ‘’이라 한다.
使司馬相如 責蒙等하고 因諭告巴蜀民以非上意러니 相如還報하다
사마상여司馬相如를 보내서 당몽 등을 책망하고 인하여 파촉의 백성들에게 의 뜻이 아님을 알리게 하였는데, 사마상여가 돌아와 보고하였다.
邛, 筰君長 聞南夷得賞賜多하고 欲請吏注+邛, 音窮. 邛‧筰, 皆西南夷. 晉灼曰 “南夷, 謂犍爲‧牂柯也.”어늘
[目] 당시 군장君長들이 남이南夷을 하사받은 것이 매우 많다는 소식을 듣고, 관리를 보내줄 것을 청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은 모두 서남이西南夷이다. 이 말하기를 “남이南夷건위犍爲장가牂柯를 이른다.” 하였다.
問相如한대 相如曰 邛, 筰, 冉駹 近蜀易通하니 爲置郡縣하면 愈於南夷注+冉, 而琰切. 駹, 音尨. 冉‧駹, 西南夷二族. 愈, 勝也.리이다
사마상여司馬相如에게 물으니, 사마상여가 대답하기를 “, 염방冉駹 땅에 가까워 통하기 쉬우니, 그대로 군현郡縣을 설치하면 남이南夷보다 더 나을 것입니다.注+이염而琰이다. 은 음이 이니, 이다. 는 낫다는 뜻이다.” 하였다.
乃拜相如爲中郞將하여 建節往使하고 因巴蜀吏幣物하여 以賂西夷注+晉灼曰 “西夷, 謂越嶲‧益州也.”한대 皆請爲內臣이라
이에 이 사마상여를 중랑장中郞將으로 임명하여 부절을 가지고 사신으로 가게 하고, 인하여 파촉巴蜀의 관리가 가지고 온 폐백과 물건을 서이西夷에게 주니,注+진작晉灼이 말하기를 “서이西夷월수越嶲익주益州를 이른다.” 하였다.서이西夷들이 모두 내신內臣이 되기를 청하였다.
除邊關하니 關益斥하여 西至沫若水하고 南至牂柯爲徼注+除邊關, 謂通關去塞也. 斥, 開廣也. 沫, 莫葛切, 或音妺. 沫水, 出蜀西南廣平徼外, 與靑衣水合, 東南入海. 若水, 一作瀘水, 出旄牛徼外, 至僰道入江. 徼, 吉弔切, 境也. 徼者, 取邀遮之義.하고
그리하여 변경의 관문을 철폐하니, 국경이 더욱 확대되어 국경선이 서쪽으로 말약수沫若水에 이르고 남쪽으로 장가강牂柯江에 이르게 되었다.注+제변관除邊關”은 관문關門을 개통하고 요새를 없앤 것이다. 은 넓힌다는 뜻이다. 막갈莫葛이니, 혹은 음이 (매)이다. 말수沫水 서남쪽 광평廣平의 국경 밖에서 발원하여 청의수靑衣水와 합류하고 동남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간다. 약수若水일본一本노수瀘水로 되어 있으니, 모우旄牛의 국경 밖에서 발원하여 북도僰道에 이르러 장강長江으로 들어간다. 길조吉弔이니, 국경이라는 뜻이다. 는 적을 막는다는 뜻을 취한 것이다.
通零關道하고 橋孫水以通邛都注+零, 一作靈. 帝鑿開靈山, 爲靈關道. 班志 “零關縣, 屬越嶲郡.” 橋孫水, 謂於孫水上作橋也. 張揖曰 “孫水, 出臺登縣, 南至會無, 入若水.”하고 爲置一都尉十餘縣하여 屬蜀하니 大說하다
영관도零關道를 개통하고 손수孫水에 다리를 놓아서 공도邛都와 통하게 하고,注+일본一本으로 되어 있다. 무제武帝영산靈山을 뚫어서 영관靈關도로道路를 닦았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영관현零關縣월수군越嶲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교손수橋孫水”는 손수孫水의 위에 다리를 놓음을 이른다. 이 말하기를 “손수孫水대등현臺登縣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회무會無에 이르러 약수若水로 들어간다.” 하였다.도위都尉 하나와 10여 을 설치하고서 에 소속시키니, 이 크게 기뻐하였다.
發卒하여 注+治阻險者, 通道令平易, 以便伐匈奴.하다
[綱] 병사를 징발하여 안문雁門의 험한 곳의 길을 닦았다.注+치조험治阻險은 길을 열어 평탄하게 함으로써 흉노匈奴를 공격하기에 편리하게 한 것이다.
◑ 秋七月 大風拔木하다
[綱] 가을 7월에 큰 바람이 불어 나무가 뽑혔다.
하다
[綱] 황후皇后 진씨陳氏가 폐위되었다.
后以祠祭厭勝媚道라가 事覺注+厭, 一葉切, 伏也. 厭勝, 若行符厭俗之爲魅, 令人蠱惑, 夭年傷性. 하여 冊收璽綬하여 退居長門宮하고 供奉如法注+皇后, 赤綬玉璽. 長門宮, 故竇太主園也, 在長安城東南. 太主獻之, 帝以爲宮.하니
[目] 황후가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의 방술을 쓰다가 일이 발각되어注+일엽一葉이니, 굴복시킨다는 뜻이다. “엽승厭勝”은 부적을 사용하여 세속 사람들을 굴복시키는 것이 도깨비짓인 것과 같아서 사람들로 하여금 미혹되게 하여 요절하고 본성(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다. 책명冊命을 내려 황후의 새수璽綬(옥새와 인끈)를 거두어 물러나 장문궁長門宮에 거처하게 하고 봉양하는 것을 황후의 법식대로 하였다.注+황후皇后는 인끈을 붉게 하고 도장을 옥으로 만든다. 장문궁長門宮은 옛날 두태주竇太主의 정원이니, 장안성長安城 동남쪽에 있었는데, 두태주가 이 정원을 바치자 황제가 궁으로 삼았다.
竇太主慙懼하여 稽顙謝어늘 慰喩之注+太主, 卽長公主嫖也, 竇太后之女, 故曰竇太主. 稽顙, 額至地也.하다
두태주竇太主(장공주長公主 유표劉嫖)가 부끄럽고 두려워하여 이마를 조아리며 사죄하자, 이 위로하였다.注+태주太主는 바로 장공주長公主 유표劉嫖이니, 두태후竇太后의 딸이므로 ‘두태주竇太主’라 한 것이다. “계상稽顙”은 이마가 땅에 닿는 것이다.
嘗置酒主家할새 主見所幸賣珠兒董偃注+見, 胡甸切, 出示之也.이어늘 使之侍飮하고
예전에 이 두태주의 집에서 술자리를 마련했을 적에 두태주가 총애하던 구슬을 파는 아이 동언董偃에게 을 뵙게 하였는데,注+(드러나다)은 호전胡甸이니, 그를 내보인 것이다.이 그에게 술 시중을 들게 하였다.
常從遊戲馳逐하여 觀鷄鞠하고 角狗馬注+從, 才用切. 鷄鞠, 鬪鷄‧蹋鞠之戲也. 鞠, 以革爲圜囊, 實以毛髮, 蹴蹋爲戲. 又有所謂擊鞠者, 以木爲毬, 騎而以杖擊之. 角, 猶校也.하니
그리하여 항상 을 따라 다니며 유희를 하고 말을 타고 달리며 투계鬪鷄와 공놀이를 구경하고 개와 말의 경기를 하는 데 참가하였다.注+(따르다)은 재용才用이다. “계국鷄鞠”은 투계鬪鷄답국蹋鞠의 놀이이다. 은 가죽으로 둥근 주머니(공)를 만들고 털을 가득 채워서 차며 노는 것이다. 또 이른바 격국擊鞠(격구擊毬)이라는 것이 있으니, 나무로 공을 만들어 말을 타고 달리며 장대로 때리는 것이다. (서로 겨루게 하다)와 같다.
大歡樂之하여 因爲主置酒宣室하고 使謁者引內偃注+宣室, 未央前殿正室也. 內, 讀曰納. 하다
이 크게 기뻐하고 인하여 두태주를 위해 선실宣室에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알자謁者로 하여금 동언을 궁중宮中으로 들이게 하였다.注+선실宣室”은 미앙궁未央宮 전전前殿정실正室이다. (들이다)은 으로 읽는다.
中郞東方朔辟戟而前曰 董偃 有斬罪三하니 安得入乎注+辟, 婢亦切, 捐也. 辟戟者, 謂以戟置地也. 時, 朔陛戟殿下.잇가 上曰 何也
[目] 중랑中郞 동방삭東方朔이 창을 눕히고 앞으로 나아가 아뢰기를 “동언董偃이 참수를 받아야 할 죄가 세 가지 있으니, 어찌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注+비역婢亦이니, 버린다는 뜻이다. “벽극辟戟”은 창을 땅에 버려둠을 이른다. 당시에 동방삭東方朔殿 아래서 을 하고 있었다. 하니, 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朔曰 偃以人臣으로 私侍公主하니 一也 敗男女之化하고 亂婚姻之禮하여 傷王制하니 二也
동방삭이 아뢰기를 “동언은 신하로서 사사로이 공주를 시종하니 이것이 첫 번째 죄이고, 남녀의 교화를 무너뜨리고 혼인의 예를 어지럽혀서 왕제王制를 손상케 하였으니 이것이 두 번째 죄이고,
陛下富於春秋하사 方積思於六經이시어늘 而偃以靡麗奢侈 極耳目之欲하니 乃國家之大賊이요 人主之大蜮이니 三也注+春秋, 謂年也. 富, 言年幼也, 比之於財, 方未匱竭, 故謂之富. 思, 去聲. 賊, 猶言害也. 蜮, 短狐也, 一名射影. 貢父曰 “劉向說春秋, 蜮, 南方淫氣所生, 以應哀姜.” 然則朔正用指偃爾.니이다
폐하께서 나이가 젊으시어 육경六經에 전념하셔야 하는데 동언이 미려靡麗(화려華麗)함과 사치함을 가지고 이목의 욕심을 다하게 하였으니, 이것은 바로 국가의 큰 도적이고 임금님의 큰 해충(물여우)이니,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注+춘추春秋”는 나이를 이른다. 는 나이가 어린(젊음) 것을 말하니, 이것을 재물에 비유하면 아직 고갈되지 않은 것과 같기 때문에 라 한 것이다. (생각하다)는 거성去聲이다. (해침)은 라는 말과 같다. 가 말하기를 “유향劉向이 《춘추春秋》를 설명할 적에 남방南方음기淫氣로 태어난 것이니 에 해당한다.”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동방삭이 바로 동언을 가리킨 것이다. 하였다.
默然良久曰 吾業已設飮하니 後而自改하리라
이 한동안 침묵하다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술자리를 마련하였으니, 나중에 내 스스로 고치겠다.” 하였다.
朔曰 不可하니이다
동방삭이 아뢰기를 “안 됩니다.
夫宣室者 先帝之正處也 非法度之政이면 不得入焉
선실宣室선제先帝의 바른 처소處所이니, 법도에 맞는 정사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淫亂之漸 其變爲簒이니이다
점차 음란함에 빠지면 변란이 일어나 천자의 지위를 찬탈하는 자가 있게 될 것입니다.” 하였다.
上曰 善타하고 詔更置酒北宮하고 引偃從東司馬門入注+更, 平聲. 宮在未央宮北, 故曰北宮. 未央宮, 有東闕‧北闕, 東闕曰蒼龍. 東司馬門, 蒼龍闕內之司馬門也.하고 賜朔黃金三十斤하니
그러자 이 “좋다.”고 하고, 명령을 내려 다시 북궁北宮에 술자리를 마련하게 한 다음 동언을 데리고 동쪽 사마문司馬門으로 들어갔으며,注+(다시)은 평성平聲이다. 미앙궁未央宮 북쪽에 있기 때문에 ‘북궁北宮’이라 하였다. 미앙궁未央宮동궐東闕북궐北闕이 있으니, 동궐東闕창룡蒼龍이라 한다. “동사마문東司馬門”은 창룡蒼龍 궐내闕內에 있는 사마문司馬門이다. 동방삭에게는 황금 30근을 하사하였다.
偃寵 由是日衰
동언의 총애가 이로부터 날로 쇠하였다.
이나 是後 公主, 貴人 多踰禮制矣러라
그러나 이 뒤에 공주公主귀인貴人예제禮制를 어기는 경우가 많았다.
詔太中大夫張湯 中大夫趙禹하여 하다
[綱] 태중대부太中大夫 장탕張湯중대부中大夫 조우趙禹에게 조령詔令을 내려서 율령律令을 정하게 하였다.
使張湯, 趙禹 共定律令하니 務在深文注+深文, 謂持文法深刻.하여 拘守職之吏注+謂拘刻於因循守職, 無所改作之吏.하고 作見知法注+吏見知人犯法, 不擧告, 是爲故縱, 則以其罪罪之.하여 吏傳相監司하니 用法益刻 自此始注+傳, 音轉. 謂上下互相伺察也.러라
[目] 장탕張湯조우趙禹로 하여금 함께 율령을 정하게 하니, 법조문을 매우 가혹하게 적용하는 데 힘써,注+심문深文”은 법조문을 가지고 매우 각박하게 적용하는 것을 이른다. 직책을 맡은 관리를 구속하고注+〈“구수직지리拘守職之吏”는〉 구태의연하게 직책을 지켜서 고치는 것이 없는 관리를 구속하고 각박하게 대함을 이른다. 견지법見知法을 제정하여注+〈“작견지법作見知法”은〉 관리가 어떤 사람이 법을 범한 것을 알고도 고하지 않으면 고의로 놓아준 죄가 되니, 그럴 경우 그 죄인의 죄로 벌을 주는 것이다, 관리들끼리 서로 감찰하게 하니, 법의 적용이 더욱 각박해진 것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注+(전하다)은 음이 이니, 〈“전상감사傳相監司”는〉 위아래가 서로 감찰하는 것이다.
八月注+螟, 音銘, 食苗心蟲.하다
[綱] 8월에 충해蟲害가 들었다.注+은 음이 이니, 벼의 줄기 속을 먹는 벌레이다.
[綱] 공손홍公孫弘박사博士로 삼았다.
是時 徵吏民有明當世之務 習先聖之術者하여 縣次續食하여 令與計偕注+食, 音嗣. 所徵吏民詣京師者, 令各縣, 依次第, 接續供給飮食也. 令, 平聲. 計者, 上計簿使也. 郡國每歲, 遣詣京師上之. 偕, 俱也, 令所徵之人, 與上計使者偕來也.하다
[目] 이때에 관리와 백성 중에 당시 세상의 일에 밝은 자와 선성先聖의 학술을 익힌 자를 불렀는데, 에서 차례로 음식을 계속 공급하여 하는 사자使者와 함께 오게 하였다.注+(먹이다)는 음이 이니, 조정에서 불러 경사京師(도성)에 오는 관리와 백성들에게 〈경사로 가는 길이 있는〉 해당 들로 하여금 차례대로 음식을 계속 공급하게 한 것이다. (명하다)은 평성平聲이다. 는 장부를 상계上計하는 사자使者이니, 군국郡國에서는 매년 경사에 이들을 올려 보냈다. 는 함께라는 뜻이니, 부른 사람으로 하여금 상계上計하는 사자使者와 함께 오게 한 것이다.
菑川人公孫弘 對策曰
[目] 치천菑川 사람 공손홍公孫弘이 다음과 같은 대책對策을 올렸다.
臣聞堯舜之時 不貴爵賞而民勸善하고 不重刑罰而民不犯 躬率以正而遇民信也
“신이 듣건대 요순堯舜의 시대에는 작위와 상을 내리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선행善行권면勸勉하고, 형벌을 내리는 것을 중시하지 않았는데도 백성들이 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니, 이는 군주가 몸소 바름으로써 솔선하여 백성들의 신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是故 因能任官이면 則分職治注+任, 去聲. 謂因其所能, 任之以官也. 分, 扶問切.하고 去無用之言이면 則事情得하고 不作無用之器 則賦斂省하고 不奪民時하고 不妨民力이면 則百姓富하고 有德者進하고 無德者退 則朝廷尊하고 有功者上하고 無功者下 則群臣逡注+逡, 七旬切, 却退也, 言有次第也. 不躐進, 故爲有次第.하고 罰當罪則奸邪止하고 賞當賢則臣下勸하나니 凡此八者 治之本也
그러므로 능력에 따라 관직을 맡기면 맡은 직분이 다스려지고,注+(맡기다)은 거성去聲이니, 〈“인능임관因能任官”은〉 그의 능함에 따라서 관직을 맡기는 것이다. (나누다)은 부문扶問이다. 쓸데없는 말을 없애면 일이 실제와 맞게 되고, 쓸데없는 기물器物을 만들지 않으면 세금을 걷는 것이 적어지고, 농사철을 빼앗지 않고 백성들의 힘을 방해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부유해지고, 이 있는 자가 등용되고 덕이 없는 자가 물러나면 조정이 존엄해지고, 이 있는 자가 올라가고 공이 없는 자가 내려가면 여러 신하들이 질서가 있게 되고,注+칠순七旬로 물러나다는 뜻이니, 질서가 있음을 말한 것이다. 단계를 넘어 나아가지 않기 때문에 순서가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죄에 합당하면 간사함이 그치고, 이 능력에 합당하면 신하들이 권면하니, 무릇 이 여덟 가지는 다스림의 근본입니다.
民者 業之則不爭하고 理得則不怨注+業之, 謂各得其業. 理得, 謂各申其理.하고 有禮則不暴하고 愛之則親上하나니 有天下之急者也니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각기 알맞은 생업을 얻으면 다투지 않고, 이치에 맞으면 원망함이 없고,注+업지業之”는 각기 알맞은 생업을 얻음을 이르고, “이득理得”은 각기 알맞은 이치를 폄을 이른다.가 있으면 포악함이 없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면 윗사람을 친애하니, 이것이 천하를 소유한 자의 급선무입니다.
禮義者 民之所服也 而賞罰順之 則民不犯禁矣
[目] 예의禮義는 백성들이 복종하는 것이니, 상벌이 예의를 순히 따르면 백성들이 법을 범하지 않습니다.
氣同則從하고 聲比則應注+比, 和也.하나니 今人主和德於上이면 百姓和合於下注+合, 謂與上合德也.
기운이 같으면 따르고 음성이 온화하면 응하니,注+는 조화롭다는 뜻이다. 지금 임금이 위에서 온화한 덕이 있으면 백성들이 아래에서 임금의 덕에 화합합니다.注+은 윗사람과 덕이 부합됨을 이른다.
心和則氣和하고 氣和則形和하고 形和則聲和하고 聲和則天下之和應矣
이 때문에 마음이 온화해지면 기운이 온화해지고, 기운이 온화해지면 형체가 온화해지고, 형체가 온화해지면 음성이 온화해지고, 음성이 온화해지면 천하 사람들이 조화롭게 감응합니다.
陰陽和하고 風雨時하고 五穀登하고 六畜蕃하고 山不童하고 澤不涸이니 和之至也注+五穀, 稻‧黍‧稷‧麥‧菽. 或曰 “黍‧稷‧秫‧稻‧粱.” 童, 無草木也. 涸, 胡各切, 水渴也.니이다
그러므로 음양이 조화롭고 바람과 비가 제때에 이르고 오곡五穀이 잘 익고 육축六畜이 길러지고 산이 울창하여 민둥산이 되지 않고 습지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이는 조화로움의 극치입니다.注+오곡五穀(벼), (기장), (메조), (보리), (콩)인데, 혹은 “, , (수수), , (차조)이다.”라고 한다. 은 초목이 없는 것이다. 호각胡各이니, 물이 마른 것이다.
臣聞仁者 愛也 義者 宜也 禮者 所履也 智者 術之原也 四者 治之本也注+履, 謂履而行之.라하니이다
신이 듣건대 은 사랑이요, 는 마땅함이요, 는 실천함이요, 는 방도의 근원이니, 이 네 가지는 다스림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注+는 실천하여 행함을 이른다.
得其要 則天下安樂이요 不得其術이면 則主蔽於上하고 官亂於下하나니 事之情也니이다
그 요체를 얻으면 천하가 안락해지고, 그 방도를 얻지 못하면 위에서는 임금이 가려지고 아래에서는 관리들이 혼란해지니, 이것이 일의 실정實情입니다.”
策奏 天子擢爲第一하고 拜博士하여 待詔金馬門注+諸以才技徵召之人, 未有正官, 故稱待詔. 時有善相馬者東京, 作銅馬法, 獻之, 立馬於魯班門外, 更名魯班門爲金馬門.하다
[目] 대책 중에 천자가 공손홍公孫弘을 1등으로 뽑고 박사博士로 임명하여 금마문金馬門에서 천자의 명을 기다리게 하였다.注+재주와 기예로 부른 사람들은 아직 정식 관직이 있지 않았으므로 라고 한 것이다. 당시 말[]의 우열을 잘 알아보는 동방경東方京동마銅馬를 주조하여 말의 을 밝히는 방법을 올리자, 노반문魯班門 밖에 동마를 세우고, 노반문의 이름을 고쳐 금마문金馬門이라 하였다.
齊人轅固 年九十餘 亦以賢良徵이러니 仄目事固注+言深憚之.어늘
나라 사람 원고轅固는 나이가 90여 세였는데 그 또한 현량賢良으로 초빙되니, 공손홍은 눈을 내리깔고 원고를 섬겼다.注+〈“측목사고仄目事固”는 공손홍公孫弘원고轅固를〉 매우 꺼림(싫어함)을 말한다.
固曰 公孫子 務正學以言하고 無曲學以阿世하라
원고가 말하기를 “공손자公孫子는 올바른 학문學問으로 말하는 데 힘쓰고 곡학曲學으로 세상에 아첨하지 말라.” 하였다.
諸儒多疾毁固하니 遂以老罷歸하다
여러 유생들 중에 원고를 싫어하여 헐뜯는 자들이 많았는데, 마침내 연로하다 하여 그만두고 돌아갔다.
鑿山通西南夷道할새 千餘里 戍轉相餉호되 數歲不通하니 士罷餓暑濕死者甚衆注+罷, 讀曰疲.하고 夷又數反이라
[目] 당시 산을 뚫어 서남이西南夷에 길을 통하게 할 적에 천여 리에 군대가 교대로 군향을 운반하여 먹였으나, 몇 년이 되어도 길이 개통되지 못하니, 병사 중에 피로와 굶주림, 더위와 습기로 인해 죽은 자가 매우 많았고注+(피로)는 로 읽는다.이족夷族들도 자주 반란을 일으켰다.
發兵興擊하여 費以鉅萬計而無功이어늘 詔使弘視焉한대 還奏盛毁西南夷無所用하니 不聽하다
이에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느라 수만數萬의 비용이 들었는데도 이 없자, 조령을 내려 공손홍公孫弘으로 하여금 살펴보게 하였는데, 돌아와 상주하면서 서남이西南夷가 쓸모없다고 매우 비판하였으나, 이 듣지 않았다.
每朝會議 開陳其端하여 使人主自擇하고 不肯面折廷爭하니 於是 大說之
공손홍이 매번 조회에서 의논할 적에 그 단서를 개진하여 임금으로 하여금 스스로 선택하게만 하고 면전에서 강하게 간쟁하려고 하지 않으니, 이에 이 크게 기뻐하였다.
嘗與汲黯請間하여 黯先發之어든 推其後하니 天子常說하여 其言 皆聽이러라
항상 〈반드시 의논할 일이 있으면〉 공송홍이 급암汲黯과 함께 에게 한가한 틈을 내달라고 청하여 급암이 먼저 아뢰거든 공손홍이 그 뒤에서 찬동하니, 천자가 항상 기뻐하여 그의 말을 좋게 여겨서 모두 들어주었다.
嘗與公卿約議러니 至上前하여 皆倍其約하여 以順上旨어늘
공손홍이 일찍이 공경公卿들과 어떤 일을 의논하기로 약속하였는데, 의 면전에 이르자 그 약속을 모두 깨고 의 뜻을 따랐다.
汲黯 廷詰弘多詐不忠한대 謝曰 知臣者 以臣爲忠이요 不知臣者 以臣爲不忠이라하니 益厚遇之하니라
급암이 조정에서 공손홍이 속임수가 많고 불충不忠하다고 힐난하자, 공손홍이 사죄하며 말하기를 “신을 아는 사람은 신을 충성스럽다고 할 것이고 신을 알지 못하는 자는 신을 불충하다고 할 것입니다.” 하니, 이 더욱 우대하였다.
역주
역주1 冬十月……還而卒 : “《資治通鑑綱目》에 제후들의 죽음을 卒이라고 쓰지 않았는데, 河間王 劉德이 자기 封國으로 돌아가서 죽은 것을 卒이라고 썼으니, 어찌하여 〈卒이라고〉 썼는가? 그를 어질게 여겨서이다. 어질게 여긴 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雅樂을 바치고 詔策(詔書로 물은 策問)에 대답함이 어질었기 때문이니, 어질게 여기면 ‘卒’이라고 쓴다. 이 때문에 《자치통감강목》에 ‘來朝’라고 쓴 것이 9번이었으나 와서 한 일을 쓴 적이 없었는데, ‘雅樂을 바치고 詔策에 대답했다.’고 쓴 것은 특별히 기록한 것이다.[綱目不書卒諸侯 河間王德卒於國 則何以書 賢之也 其賢之 何 獻雅樂 對詔策賢也 賢之 斯卒之矣 是故入綱目 書來朝九 未有書所事者 書曰獻雅樂 對詔策 特筆也]” 《書法》
역주2 三雍宮 : 三雍이라고도 칭하는바, 太學인 辟雍과 泰山의 明堂, 기후와 재변의 조짐을 관찰하는 靈臺를 이른다.
역주3 華陽國志 : 東晉 때 常璩가 편찬한 巴蜀과 漢中의 지리지이다.
역주4 軍興法 : 軍興은 원래 국가에서 병력을 소집하고 재물을 징발하여 軍用에 제공함을 이르는바, 軍興法은 후세에서 作戰할 때의 명령과 제도로, 준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특징이다.
역주5 晉灼 : 西晉 河南 사람이다. 尙書郞을 지냈으며, 《漢書》에 주석을 달았다.
역주6 冉駹은……종족 : 訓義에 ‘冉과 駹은 西南夷의 두 종족’이라고 하였으나, 本文에는 지역 개념으로 되어 있는바, 이들이 사는 지역을 가리킨 것으로 보인다. 지역 개념으로 쓸 때에는 둘로 나누지 않고 하나로 통합하여 쓴 경우가 많다.
역주7 張揖 : 魏나라 淸河 사람으로 字가 稚讓인데 太和(227~232) 연간에 博士를 지냈으며, 저서로 《廣雅》가 있다.
역주8 治雁門阻險 : “‘험한 곳의 길을 닦았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비난한 것이다. 馬邑에서의 속임수는 漢나라가 변경의 틈(분쟁)을 열어 놓은 것이다. 스스로 돌이켜보아 정직하지 못하니, 길을 닦은 이 일은 下策(가장 나쁜 계책)을 사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써서 비난한 것이다.[書治阻險 何 譏也 馬邑之詐 漢有以開邊隙矣 自反不縮 出此下策 故書譏之]” 《書法》
역주9 皇后陳氏廢 : “‘皇后 陳氏를 폐위했다.’고 쓰지 않고, ‘皇后 陳氏가 폐위되었다.’고 쓴 것은 황후가 실제로 죄가 있기 때문이다. 孝景帝의 薄后는 죄가 없었으므로 ‘皇后 薄氏를 폐위했다.’고 썼고, 지금 陳氏는 죄가 있으니 〈잘못을 저질러〉 스스로 폐위된 것으로 글을 쓴 것이다. 이는 ‘后를 폐위시킨 자가 있지 않고, 后가 스스로 폐위되었다.’고 말한 것과 같으니, 이는 《春秋》에 ‘梁나라가 망했다.’고 쓴 것과 뜻이 같다.[不曰廢皇后陳氏 而曰皇后陳氏廢者 后實有罪故也 孝景薄后無罪 故書曰廢皇后薄氏 今陳氏有罪 則以自廢爲文 若曰后非有能廢之者 后自廢也 此與春秋書梁亡同意]” 《書法》
역주10 厭勝 : 符籍이나 呪術 등을 사용하여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고 吉祥을 얻는다 하며, 또 자신이 미워하는 사람을 요절하게 하고 미치게 하는 등의 方術이다.
역주11 媚道 : 여인들이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하여 무당의 방술로 자기를 좋아하게 하는 방도이다.
역주12 陛戟 : 殿 아래 섬돌 양측에서 창을 들고 侍衛함을 이른다.
역주13 蜮(역)은……射影이다 : 蜮은 蜮射 혹은 射蜮이라고도 한다. 물속의 蜮이라는 괴물이 사람의 그림자를 보고 모래를 입으로 뿜으면 그 사람이 병에 걸려 심하면 죽기까지 한다는 고대의 전설에서 유래한 것이다. 《搜神記 권12》
역주14 劉貢父 : 北宋 新喩 사람으로 이름은 攽(반)이며, 貢父(공보)는 字이다. 王安石의 新法을 비판하다 좌천되기도 하였다. 역사에 밝아 司馬光을 도와 《資治通鑑》의 〈漢紀〉를 집필하였다.
역주15 哀姜 : 春秋시대 魯나라 莊公의 부인이며, 閔公의 嫡母로 음란한 행실이 있었고, 민공을 시해하는 데 참여하였다.
역주16 定律令 : “蕭何가 律令을 정한 것은 《資治通鑑綱目》에 쓰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찌하여 썼는가? 武帝의 律令은 高祖에 비할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蕭何定律令 不書 此何以書 帝之律令 非高帝比也]” 《書法》
역주17 以公孫弘爲博士 : “앞서 董仲舒를 江都의 相으로 삼은 것을 쓸 적에는 먼저 ‘賢良하고 方正하여 直言極諫하는 선비를 천거했다.’고 썼었다. 이때 관리와 백성 중에 當世의 사무에 밝고 先聖의 학술에 익힌 자를 불러 策問해서 公孫弘의 對策이 1등이 되어 마침내 博士로 삼았는데, 어찌하여 쓰지 않았는가? 이것은 생략한 것이다. 생략한 것은 어째서인가? 걸맞지 않기 때문이다. 先聖의 학술을 공손홍이 어찌 알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鼂錯도 直言極諫에 있어 또한 걸맞지 않은데, 어찌하여 直言極諫이라고 썼는가? 그 걸맞고 걸맞지 않은 것을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公孫弘은 儒者로 이름나서 先聖의 학술을 익힌 자와 유사함이 있었다. 《資治通鑑綱目》에서 혐의를 분별하고 은미함을 밝혀서 공손홍을 삭제한 것은 先聖의 門에서 그를 끊은 것이다.[前書以董仲舒爲江都相 則首書擧賢良方正直言極諫之士 於是徵吏民明當世之務 習先聖之術者 策問之 弘對第一 遂以爲博士 則曷爲不書 略之也 其略之 何 不稱也 先聖之術 弘何足以知之 然則鼂錯之於直言極諫 亦不稱矣 則何以書直言極諫 其稱不稱易見也 弘以儒名 有似於習先聖之術者 綱目別嫌明微 削之者 絶之於先聖之門也]” 《書法》
역주18 上計 : 秦漢시대 지방관들이 매년 境內의 戶口, 賦稅, 盜賊, 獄訟 등의 항목을 적은 장부를 중앙에 보고하는 것을 말한다.
역주19 待詔 : 천자의 詔命을 기다린다는 뜻으로, 천자의 비답이나 조칙 등의 문장을 작성하는 일을 맡은 관원의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待詔는 正官이 아닌 고문직이었다.
역주20 (門)[方] : 저본에는 ‘門’으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의 註에 의거하여 ‘方’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4)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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