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孟嘗君
이 怨秦
하야 與韓魏攻之
하야 入函谷關
하니 秦昭王
이 謂丞相樓緩公子池曰
注+昭王, 卽昭襄王. 三國之兵
이 深矣
라
寡人
이 欲割河東而講
注+河東, 大河之東, 非郡名. 講, 古項切, 和解也.하노라 對曰 講亦悔
요 不講亦悔
리이다
王曰 何也오 對曰 王이 割河東而講하시면 三國이 雖去나 王必曰 惜矣라
三國이 且去어늘 吾特以三城從之라하시리니 此는 講之悔也요
王이 不講하시면 三國이 入函谷하야 咸陽이 必危니
吾愛三城而不講이라하시리니 此는 不講之悔也니이다
王曰 鈞吾悔也니 寧亡三城而悔언정 無危咸陽而悔也라하고 乃使公子池로 以三城講於三國하다
目
戰國이 以詐力相侵伐이 二百餘年에 兵出未嘗有名이라
秦昭王이 欺楚懷王而囚之하야 要之割地호대 諸侯熟視하고 無敢以一言問秦者어늘
惟田文이 免相於秦하야 幾不得脫하고 歸而怨之하야 借楚爲名하야 兵至函谷하니
秦人
이 震恐
하야 割地講解
하야 僅乃得免
하니 自山東難秦
으로 未有若此其壯者也
注+難, 去聲, 猶難疑答問之難, 謂以文告之辭責之也.라
夫兵은 直爲壯 曲爲老니 有名之兵을 誰能禦之리오
使田文能奮其威면 則是役也에 齊可以霸어늘 惜其聽蘇代之計하야 臨函谷而無攻하야 以求楚東國하니 而出師之名이 索然以盡이라
由此觀之컨대 秦惟不遇桓文이라 是以橫行而莫之制耳니
目
[目]혹인或人이 진秦나라 왕王에게 말하기를 “전문田文이 진秦나라의 승상이 되었으니, 반드시 제齊나라를 우선시하고 진秦나라를 나중으로 하여 진秦나라가 위태할 것입니다.”라고 하니, 왕이 전문을 가두어 죽이려고 하였다.
전문이 사람을 시켜 왕의
행희幸姬에게 풀어줄 것을 요구하니, 행희가 전문의
호백구狐白裘를 달라고 하였는데, 전문은 이미 그것을
진秦나라 왕에게 바치고 없었다.
注+① 호백구狐白裘는 여우의 겨드랑이 흰 털을 모아 만든 가죽옷으로 아름답고 구하기 어려운 것이다.
전문의 문객門客 중에 개처럼 도둑질을 잘하는 자가 있어 호백구를 훔쳐 바치니 행희가 왕에게 말하여 보내게 하였다.
전문이 관문關門에 도착하니, 관법關法에 닭이 울어야 객客을 내보내게 되어 있었는데, 때는 아직 이르고 추격하는 자는 장차 이르게 되었다.
문객 중에 닭 울음을 잘 내는 자가 있어 흉내를 내니 들의 닭들이 모두 울었으므로, 전문이 마침내 탈출하여 돌아올 수 있었다.
目
[目]
맹상군孟嘗君이
진秦나라를 원망하여
한韓나라와
위魏나라와 함께 공격하여
함곡관函谷關으로 들어가니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승상丞相 누완樓緩과
공자公子 지池에게 말하기를
注+① 소왕昭王은 바로 소양왕昭襄王이다. “세 나라의 군대가 깊이 쳐들어왔다.
과인寡人이
하동河東을 떼어주고
강화講和하고자 한다.”
注+② 하동河東은 대하大河의 동쪽이지 군명郡名이 아니다. 강講은 고항古項의 절切이니 화해和解함이다.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강화를 해도 후회하고, 강화를 하지 않아도 후회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왕王이 말하기를 “무엇 때문인가?”라고 하니, 대답하기를 “왕이 하동을 떼어주고 강화하면 세 나라가 비록 가더라도 왕王은 반드시 ‘아깝다.
세 나라가 어차피 갈 것인데 내가 괜히 세 성城으로 따라주었다.’라고 하실 것이니, 이는 강화하고 하는 후회입니다.
왕이 강화하지 않으면 세 나라가 함곡관에 들어와 함양咸陽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입니다.
내가 세 성城을 아껴 강화하지 않았구나.’라고 하실 것이니, 이는 강화하지 않고 하는 후회입니다.”라고 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모두 나의 후회이니 차라리 세 성城을 잃고 후회할지언정 함양을 위태롭게 하는 후회는 않겠다.”라고 하고, 마침내 공자公子 지池로 하여금 세 성城으로 세 나라에 강화를 하였다.
目
[目] 처음에
맹상군孟嘗君이
서주西周에서 군사와 식량을 빌리려고 하였는데,
소대蘇代가
서주西周를 위하여 맹상군에게 말하기를 “
군君이
초楚나라를 공격한 지 9년
注+① 구자九字는 잘못되었으니, 육六이나 오五가 되어야 한다.에
완宛과
섭葉의
이북以北을 빼앗아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강하게 하였고
注+② 완宛은 음이 원鴛이다. 섭葉은 식섭式涉의 절切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두 현縣은 남양군南陽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지금 다시
진秦나라를 공격하여 그들을 이롭게 하려고 합니다.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는 남쪽으로 초楚나라에 대한 근심이 없고 서쪽으로 진秦나라에 대한 걱정이 없으면, 제齊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군君이
폐읍敝邑(西周)으로 하여금
진秦나라와 깊게 화합하게 하면서
注+③ 폐읍敝邑은 주周나라이다.군君이 공격하지 않고 또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이 낫겠습니다.
注+④ 공격하지 않는 것은 모두 출병하여 진秦나라에 가서는 공격하지 않음이다. 군사와 식량을 빌리지 않는 것은 진秦나라에 약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음이다.
군君이 함곡관에 도착하여 공격하지 않고
注+⑤ 임臨은 군대가 그 지역에 이르렀음을 말한다., 폐읍으로 하여금
군君의 뜻으로
진秦나라
왕王에게 말하기를 ‘
설공薛公은 반드시
진秦나라를 깨트려서
한韓나라와
위魏나라를 강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진秦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왕이
초楚나라 왕으로 하여금
동국東國을 떼어
제齊나라에 주게 하고
注+⑥ 동국東國은 바로 이다.,
진秦나라도
’라고 하게 하십시오.
진秦나라는 군대가 패배하지 않고 동국으로 스스로 화를 면할 수 있다고 하면 진秦나라는 반드시 하려고 할 것입니다.
초楚나라 왕이 풀려나오면 반드시 제齊나라에 고마워할 것이고, 제齊나라는 동국을 얻으면 더욱 강해질 것이니, 설薛이 대대로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맹상군이 그 계책을 따르려고 하니, 마침 공자公子 지池가 와서 강화하여 드디어 군대를 철수하였는데, 진秦나라가 끝내 초楚나라 회왕懷王을 풀어주지 않았다.
目
[目]
소씨蘇氏(蘇轍)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注+① 소씨蘇氏는 이름이 철轍이고 송宋나라 미산眉山 사람이다.
“戰國시대에 속임수와 무력으로 서로 침략하고 정벌한 것이 200여 년 동안 출병出兵을 한 것이 일찍이 명분이 있은 적이 없었다.
秦나라 昭王이 楚나라 懷王을 속여서 가두고 그에게 땅을 떼어 달라고 요구하였으나, 諸侯들은 익히 보기만 할 뿐 감히 한마디도 秦나라에 따지는 자가 없었다.
오직 田文이 秦나라에서 정승을 그만두고 거의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뻔하다가 돌아와 원망하면서 楚나라를 공격한다는 명분으로 韓나라와 魏나라의 병사와 함곡관에 이르렀다.
秦나라 사람들이 놀랍고 두려워서 땅을 떼어 주고 講和하여 겨우 위험을 벗어났으니, 山東의 나라들이 秦나라를 어렵게 여긴 이래로 이처럼 씩씩하였던 일이 없었다.
注+② 난難은 거성去聲이니, 의문을 설명하고 물음에 답한다고 할 때의 난難과 같다. 문고文告(文德으로 고유告諭)의 말로 따지는 것을 이른다.
무릇
명분 있는 전쟁을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전문으로 하여금 그 위엄을 떨치게 하였으면, 이 전쟁에서 齊나라는 霸者가 되었을 것인데, 아깝게도 蘇代의 계책을 들어서 함곡관에 가서도 공격하지 않고 楚나라에 東國을 요구하였으니 군사를 출동시킨 명분이 남김없이 사라졌다.
동국을 이미 얻을 수 없었고 회왕이 끝내 秦나라에서 죽었다.
이로 말미암아 살피건대 秦나라는 오직 齊나라 桓公과 晉나라 文公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였고, 이 때문에 秦나라가 橫行하는데도 막지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