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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6)

자치통감강목(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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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子年(A.D.4)
갑자년(A.D.4)
四年이라
[] 나라 효평황제孝平皇帝 원시元始 4년이다.
春正月 郊祀高祖以配天하고 宗祀孝文以配上帝注+郊祀, 祀於郊也. 宗, 尊也, 祀於明堂也. 上帝, 太微五帝也, 一曰 “昊天上帝也.”하다
봄 정월에 고조高祖교사郊祀하여 하늘에 배향하고 효문제孝文帝종사宗祀하여 상제上帝에 배향하였다.注+교사郊祀에서 제사하는 것이다. 은 높인다는 뜻이니, 명당明堂에서 높여 제사하는 것이다. 상제上帝이니, 일설에는 “이다.” 하였다.
◑改殷紹嘉公曰宋公이라하고 周承休公曰鄭公이라하다
[] 나라의 소가공紹嘉公송공宋公으로 개칭하고, 나라의 승휴공承休公정공鄭公으로 개칭하였다.
◑二月 遣大司徒宮等하여 하다
[] 2월에 대사도大司徒 마궁馬宮 등을 보내 황후皇后를 맞이해서 미앙궁未央宮으로 들어왔다.
◑遣太僕王惲等八人하여 行天下하여 觀風俗注+行, 去聲.하다
[] 태복太僕 왕운王惲 등 여덟 사람을 보내 천하天下순행巡行하면서 풍속을 관찰하게 하였다.注+(순행하다)은 거성去聲이다.
◑加安漢公莽號宰衡하다
[] 안한공安漢公 왕망王莽에게 재형宰衡이란 칭호를 더하였다.
陳崇, 張竦 奏稱莽功德하여 以爲宜恢國如周公注+竦, 敞之孫也. 恢, 大也, 成王以周公有勳勞於天下, 封以曲阜, 地方七百里.이러니
[] 처음에 진숭陳崇장송張竦왕망王莽의 공덕을 칭송하여 아뢰기를, “주공周公의 경우와 같이 봉지封地를 넓혀주어야 합니다.” 하였다.注+장송張竦장창張敞의 손자이다. 는 넓힌다는 뜻이니, 성왕成王주공周公이 천하에 큰 훈로勳勞가 있다 하여 곡부曲阜를 봉해주어 봉지封地가 700리가 되게 하였다.
至是하여 太保舜等及吏民上書者 八千餘人 復請如崇言이라
이때에 태보太保 왕순王舜 등과 관리와 백성으로서 상서上書한 자가 8천여 명이었는데, 다시 청하기를 진숭의 말과 같이 하였다.
章下有司하니 有司請益封公以新息, 召陵二縣及黃郵聚, 新野田注+新息‧召陵二縣, 屬汝南郡. 續漢志 “南陽郡新野縣, 有東鄕, 故新都, 王莽所封也. 又有黃郵聚.”하고
이 글을 유사有司에게 회부하니, 유사가 안한공安漢公에게 신식新息소릉召陵황우黃郵취락聚落신야新野전지田地를 더 봉하고注+신식新息소릉召陵여남군汝南郡에 속하였다. 《속한지續漢志》에 “남양군南陽郡 신야현新野縣동향東鄕이 있으니, 옛 신도국新都國으로 왕망王莽을 봉한 곳이다. 또 황우黃郵취락聚落이 있다.” 하였다.,
采伊尹, 周公稱號하여 加公爲宰衡하여 位上公注+宰衡, 周公位冢宰, 伊尹爲阿衡, 故采此號以尊之.하고
이윤伊尹주공周公의 칭호를 채택해서 안한공安漢公에게 재형宰衡이라는 칭호를 더하여 지위가 상공上公에 있게 하고注+재형宰衡주공周公의 지위가 총재冢宰였고 이윤伊尹아형阿衡이었으므로 이 를 채택하여 높인 것이다.,
三公言事 稱敢言之注+敢, 猶言不敢.하고
삼공三公이 정사를 말할 적에 ‘감언지敢言之’라 칭하며注+,
賜公太夫人號功顯君注+莽母也.하고
안한공의 태부인太夫人에게 공현군功顯君이란 칭호를 하사하고注+⑤ 〈안한공安漢公태부인太夫人은〉 왕망王莽의 어머니이다.,
封子男二人하여 爲侯注+安爲褒新侯, 臨爲賞都侯.하고
두 아들을 봉하여 로 삼고注+왕안王安포신후褒新侯, 왕임王臨상도후賞都侯로 삼았다.,
加后聘하여 合爲一萬萬하여 以明大禮注+三年, 有司奏 “故事聘皇后, 黃金二萬斤, 爲錢二萬萬.” 莽辭讓, 受六千三百萬. 今加三千七百萬, 合爲一萬萬.하다
황후皇后빙례聘禮 비용을 더해서 모두 1억[만만萬萬] 을 만들어 대례大禮를 밝힐 것을 청하였다.注+원시元始 3년(A.D.3)에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고사故事황후皇后를 맞이할 적에 황금이 2만 이었으니, 돈으로는 2억[만만萬萬] 이었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왕망王莽이 사양하고는 6,300만 전을 받았었다. 그런데 지금 3,700만 전을 더해서 합하여 1억 이 된 것이다.
稽首辭讓이로되 不聽이러니
[] 왕망王莽이 머리를 조아리고 사양하였으나 태후太后가 듣지 않았는데,
及起視事하여 止減召陵‧黃郵‧新野之田하고
정사를 보게 되자, 소릉召陵황우黃郵, 신야新野전지田地를 감하고
復以所益納徵錢千萬으로 遺太后左右奉共養者注+徵, 成也, 使使者, 納幣以成婚禮也. 一說 “徵, 證也, 謂納幣以爲婚姻之證也.”하다
다시 더 내린 납징納徵의 돈 천만 전을 태후의 좌우에서 공양을 받드는 자에게 선물하였다.注+은 이룬다는 뜻이니, 사자使者로 하여금 폐백을 바쳐 혼례를 이루게 한 것이다. 일설에 “은 증거이니, 폐백을 바쳐 혼인의 증거로 삼음을 이른다.” 하였다.
雖專權이나 然所以誑耀媚事太后하고
왕망은 비록 권력을 독점하였으나, 태후를 속이고 미혹시켜 잘 섬기고
下至旁側長御 方故萬端이요 賂遺以千萬數注+誑耀, 欺惑也. 長御, 太后旁側常侍者.러라
아래로 태후의 측근에서 항상 모시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뇌물을 보내기를 천만 으로 하였다.注+② “광요誑耀”는 속이고 미혹시킴이다. “장어長御”는 태후의 측근에서 항상 모시는 자이다.
知太后厭居深宮中하고 乃令太后 四時車駕巡狩四郊하여
태후가 깊은 궁중에 거처하는 데 싫증 내는 것을 알고는, 태후로 하여금 사시四時에 수레를 타고 사방 교외를 순수巡狩하여
存見孤寡貞婦하고 賜民錢帛牛酒하여 歲以爲常注+邑外謂之郊.하니라
고아와 과부, 정부貞婦들을 위로하고 백성들에게 돈과 비단, 소와 술을 하사하게 하여, 해마다 일정하게 실시하도록 하였다.注+③ 도읍 밖을 라 한다.
太保舜 奏言호되
[] 태보太保 왕순王舜이 아뢰기를
天下聞公不受千乘之土하고 辭萬金之幣하고 莫不鄕化하여
“천하에서 안한공安漢公천승千乘의 토지를 받지 않고 만금의 폐백을 사양했다는 말을 듣고는 따라서 교화되지 않는 이가 없어서,
蜀郡男子路建等 輟訟하고 慚怍而退하니
촉군蜀郡남자男子노건路建 등은 송사를 중지하고 부끄러워하여 물러갔으니,
雖文王却虞芮인들 何以加리오
宜報告天下라하니 奏可注+虞‧芮, 二國名, 竝在河之東.하다
마땅히 천하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하니, 아뢴 것을 허락하였다.注+는 두 나라의 이름이니, 모두 황하의 동쪽에 있었다.
於是 孔光 愈恐하여 固稱疾辭位하니
이 에 태사太師 공광孔光이 더욱 두려워하여 병을 칭탁하며 지위를 고사固辭하니,
詔太師毋朝하고 十日 一入省中하고
조령詔令을 내려 태사(공광)에게 조회하지 말고 10일에 한 번 궁궐에 들어오게 하며,
置几杖하고 賜餐物하고 官屬 按職如故注+言十日一入朝, 受此寵禮, 他日則常在家自養, 而其屬官依常各行職務.하다
을 설치하고 음식물[찬물餐物]을 하사하였으며, 그의 관속들은 예전과 같이 자기 직무를 수행하게 하였다.注+② 10일에 한 번 입조入朝하여 이처럼 총애하는 예우를 받고 다른 날에는 항상 집에 있으면서 스스로 요양하되, 그 관속들은 평상시처럼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게 한다는 말이다.
[] 명당明堂벽옹辟雍, 영대靈臺를 일으키고 《악경樂經》의 과목을 세우고, 천하에 경서經書를 통달하고 재능이 특별한 선비를 초빙하였다.
奏起明堂, 辟雍, 靈臺하고 爲學者하여 築舍萬區호되 制度甚盛이러라
[] 왕망王莽이 아뢰어 명당明堂벽옹辟雍, 영대靈臺를 일으키고 학자들을 위하여 집 1만 채를 지었는데 제도가 매우 성대하였다.
立樂經하고 益博士員하여 經各五人하고
악경樂經》의 과목을 세우고 박사博士의 인원을 증원하여 마다 각각 다섯 사람이 되게 하고,
徵天下通一藝, 敎授十一人以上하고
천하에 한 경서經書를 통달한 자와 열한 명 이상을 교수敎授한 자를 불러들이고
及有逸禮, 古書, 天文, 圖讖, 鍾律, 月令, 兵法, 史篇文字
일례逸禮, 고서古書, 천문天文, 도참圖讖, 종률鍾律, 월령月令, 병법兵法, 사편史篇의 문자에 대하여
通知其意者하면 皆詣公車하여 網羅天下異能之士하니
그 뜻을 통달하여 아는 자가 있으면 모두 로 나오게 하여 천하에 재능이 뛰어난 선비를 망라하니,
至者 前後千數注+圖, 河圖也. 讖, 符命之書. 讖, 驗也, 言王者受命之徵驗也. 史篇文字, 周宣王太史史籀所作大篆書也. 籀, 直救切.러라
도성에 온 자가 전후 천 명으로 헤아려졌다.注+하도河圖이고, 부명符命의 글이다. 은 징험한다는 뜻이니, 왕자王者천명天命을 받는 징험을 말한 것이다. 사편史篇문자文字나라 선왕宣王태사太史사주史籀(사주)가 만든 대전大篆의 글자이다. 직구直救이다.
胡氏曰
[]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明堂, 辟雍, 靈臺雜見於詩, 禮, 孝經, 孟子 其制作之詳 不可得而聞矣
명당明堂벽옹辟雍, 영대靈臺는 《시경詩經》과 《예기禮記》, 《효경孝經》과 《孟子》에 뒤섞여 보이나 그 제작制作의 자세함은 들을 수가 없다.
이나 以理考之하면 王者鄕明而治하니
그러나 이치로 헤아려보면 왕자王者가 밝은 곳을 향하여 다스리는데,
古之堂 今之殿也
옛날의 명당明堂은 지금의 殿이므로
孝經 以爲宗祀之所라하고
효경孝經》에는 종사宗祀(높여 제사함)하는 곳이라고 하였고,
孟子以爲王政之堂이라하니
《孟子》에는 왕자王者가 정사하는 이라고 하였으니,
然則是天子之外朝 猶後世大朝會之正衙也注+黃帝出軍訣曰 “牙旗者, 將軍之精, 金鼓者, 將軍之氣.” 周禮司常職云 “軍旅會同, 置旌門.” 夫以旌爲門, 卽旗門也. 後世軍中遂置牙門將, 又有牙兵, 典總此兵, 以押衙爲名. 至官府早晩軍吏兩謁, 亦名爲衙, 呼謂旣熟, 雖天子正殿受朝謁, 亦名正衙.
그렇다면 이것은 천자天子외조外朝이니, 후세에 크게 조회할 때의 정아正衙와 같은 것이다.注+① 《황제출군결黃帝出軍訣》에 “아기牙旗장군將軍이고, 금고金鼓장군將軍이다.” 하였다. 《주례周禮》 〈사상직司常職〉에 “군려軍旅가 회동할 적에 정문旌門을 설치한다.” 하였으니, 깃발을 문으로 삼은 것이니 바로 기문旗門이다. 후세에 군중에서는 마침내 아문장牙門將을 배치하고 또 아병牙兵을 두어서 이 군대를 총괄하였는데, 이를 ‘압아押衙’라고 이름하였다. 그리고 관부에서 아침저녁으로 군리軍吏가 두 번 뵙는 것 또한 ‘’라 하였는데, 칭호가 이미 익숙해져서 천자天子정전正殿에서 조알朝謁을 받는 것도 ‘정아正衙’라 이름하였다.
명당도明堂圖(《오경도휘五經圖彙》)명당도明堂圖(《오경도휘五經圖彙》)
若呂不韋靑陽, 總章之制 劉歆世室, 重屋之說 則豈可盡信乎注+記月令 “天子春居靑陽, 夏居明堂, 秋居總章, 冬居玄堂.” 三代明堂之制, 夏曰世室, 殷曰重屋, 周曰明堂. 世室, 宗廟也, 言代代不毁也. 重屋‧正堂, 若大寢也, 四阿屋棟, 皆爲重複.리오
여불위呂不韋 같은 제도와 유흠劉歆세실世室, 중옥重屋 같은 설들을 어찌 모두 믿을 수 있겠는가.注+② 《예기禮記》 〈월령月令〉에 “천자天子가 봄에는 청양靑陽, 여름에는 명당明堂, 가을에는 총장總章, 겨울에는 현당玄堂에 거처한다.” 하였다. 삼대三代명당明堂 제도는 나라는 세실世室, 나라는 중옥重屋, 나라는 명당明堂이라 하였다. 세실世室종묘宗廟이니 대대로 훼철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중옥重屋정당正堂대침大寢과 같으니 사방의 지붕과 들보가 모두 이중으로 되어 있다.
若靈臺則詩與孟子言之하니 亦燕游之所耳
영대靈臺는 《시경詩經》과 《孟子》에 언급되어 있으니, 또한 편안히 노는 곳일 뿐이다.
若辟雍則未有明言其義也 獨詩有之하니 曰於樂辟雍이라하고
[] 벽옹辟雍은 그 뜻을 분명히 말한 것이 있지 않고, 다만
又曰 鎬京辟雍而已
또 ‘호경鎬京벽옹辟雍이다.’라고 했을 뿐이다.
夫辟 君也 和也
은 군주이고 은 화함이니,
言人君有和德이면 則天地之和應之하여 而天下之心服之也
인군人君이 있으면 천지의 화기和氣가 응하여 천하 사람들이 심복함을 말한 것이다.
此二詩者 亦言與民同樂, 建立都邑之事而已 未遽及學校之政也
이 두 또한 백성과 함께 즐거워하고 도읍을 건립한 일을 말했을 뿐이요, 대번에 학교學校의 정사에는 미치지 않았다.
況其上章 又有皇王維辟之云哉
더구나 그 위 장에 또 ‘[황왕유벽皇王維辟]’라는 말이 있음에랴.
王制 記天子諸侯之學 始有辟雍泮宮之名하니 不知何所本而云也
泮水之詩 亦未有以見其爲學校者하니
獨取匪怒伊敎之一言하여 以爲證이면 則末矣니라
유독 ‘노여워함이 아니라, 가르치심이로다.[비노이교匪怒伊敎]’라는 한마디를 취하여 〈학교의 정사에 대한〉 증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徵能治河者하다
[] 황하黃河를 잘 다스릴 자를 불러왔다.
又徵能治河者以百數하니
[] 이때에 또 황하를 잘 다스릴 자를 불러왔는데, 그 수가 백 명으로 헤아려졌다.
其大略異者 關竝注+關竝, 姓名.
그 대략 특이한 자들 중에 관병關竝은 말하기를注+관병關竝(관병)은 사람의 성명姓名이다.
河決 率常於平原東郡左右하니 其地形下而土疏惡이라
“황하가 터지는 곳이 거의 대부분 평원平原동군東郡 좌우에 일정하니, 그 지형이 낮고 흙이 성글고 나쁩니다.
聞禹治河時 本空此地注+空, 苦貢切, 虛也, 下可空同.라하니
듣자 하니, 임금이 황하를 다스릴 적에 본래 이 땅을 비워놓았다고 합니다.注+고공苦貢로 비운다는 뜻이니, 아래 “가공可空”의 도 같다.
秦漢以來 河決南北 不過百八十里 可空此地하여 勿以爲官亭民室이라하고
진한시대秦漢時代 이래로 황하가 남북으로 터진 것이 180리에 불과하니, 이 땅을 비워두어서 관정官亭민가民家로 만들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 하였다.
韓牧 以爲可略於禹貢九河處하여 穿爲四五 宜有益이라하고
한목韓牧은 “〈우공禹貢〉의 구하九河가 있던 곳을 다스려서 4, 5군데를 뚫어놓으면 마땅히 유익함이 있을 것입니다.” 하였고,
王橫 言河入渤海하니 地高於韓牧所欲穿處
왕횡王橫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황하는 발해渤海로 유입되는데, 이 지역은 한목이 뚫고자 한 곳보다 높습니다.
往者 海溢西南出하여 寖數百里하니 九河之地 已爲海所漸矣注+漸, 如字, 又子廉切, 寖也.
지난번에 바다가 서남쪽으로 넘쳐 수백 리를 침몰시켰으니, 구하九河의 지역이 이미 바다에 잠겼습니다.注+본음本音으로 읽고 또 자렴子廉이니, 물에 잠김이다.
禹之行河水 本隨西山下東北去注+行, 謂通流也. 西山, 謂黎陽以西諸山.러니
임금이 하수河水를 흘러가게 할 적에는 본래 서산西山 아래 동북쪽을 따라가게 했었는데注+은 물이 통하여 흘러감을 이른다. 서산西山여양黎陽 서쪽의 여러 산들을 이른다.,
周譜云 定王五年 河徙라하니 則今所行 非禹之所穿也注+譜, 音補, 世統譜牒也.니이다
주보周譜》에 ‘정왕定王 5년에 황하가 옮겨갔다.’ 하였으니, 지금 물이 흘러가는 곳은 임금이 뚫은 곳이 아닙니다.注+는 음이 이니, 세통世統보첩譜牒(보첩)이다.
又秦攻魏 決河灌之하니 決處遂大하여 不可復補
나라가 나라를 공격할 적에 황하를 터서 물을 대니, 터진 곳이 마침내 커져서 다시 메울 수가 없었습니다.
宜更開空하여 使緣西山足하여 乘高地而東北入海라야 乃無水災注+更, 改也. 空, 音孔, 猶穿也.라하다
마땅히 다른 곳으로 바꾸어 뚫어서 서산西山 자락을 따라 높은 곳을 타고 동북쪽으로 흘러 바다로 유입되게 해야 마침내 수재水災가 없을 것입니다.”注+은 고침이다. (뚫다)은 음이 이니, 穿과 같다.
司空掾桓譚 典其議러니 爲甄豐言호되
[] 사공司空환담桓譚이 그 의논을 관장하였는데, 견풍甄豐에게 말하기를
凡此數者 必有一是 宜詳考驗이라야 皆可豫見이니
“무릇 이 몇 가지 방법 중에 반드시 한 가지 옳은 것이 있을 것이니, 마땅히 자세히 상고하고 징험해보아야 모두 미리 알 수 있습니다.
計定然后 擧事 費不過數億萬이요
계책이 정해진 뒤에 역사役事를 하면 비용이 수억만 에 불과하고,
亦可以事諸浮食無産業民하여 衣食縣官而爲之作이니 乃兩便注+事, 謂役使也. 言無産業之人, 端居無爲及發行力役, 俱須衣食耳, 今縣官給其衣食而使修治河水, 是謂公私兩便也.이라호되
또한 떠돌아 먹으면서 산업産業(생업生業)이 없는 여러 백성들에게 일을 시켜서 현관縣官(국가)에서 의식을 해결해주고서 그들로 하여금 〈하수河水를〉 다스리게 할 수 있으니, 바로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모두 편리한 방도입니다.” 하였으나注+역사役使를 이른다. 산업産業이 없는 사람은 한가로이 거처하여 아무 일을 하지 않거나 또는 길을 떠나 부역할 적에 모두 의복과 음식을 필요로 하니, 이제 현관縣官에서 그 옷과 밥을 지급하여 하수河水를 다스리게 하면, 이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모두 편리하다고 이른 것이다.,
但崇空語하여 無施行者러라
이때 왕망王莽이 다만 빈말을 숭상하여 시행한 것이 없었다.
[] 재형宰衡의 지위를 올려서 지위가 제후왕諸侯王의 위에 있게 하였다.
◑尊孝宣廟爲中宗하고 孝元廟爲高宗하다
[] 효선황제孝宣皇帝의 사당(묘호廟號)을 높여 중종中宗이라 하고 효원황제孝元皇帝의 사당을 높여 고종高宗이라 하였다.
◑置西海郡하다
[] 서해군西海郡을 설치하였다.
自以北化匈奴하고 東致海外하고 南懷黃支호되 唯西方未有加注+莽自奏曰 “越裳氏重譯獻白雉, 黃支自三萬里貢生犀, 東夷王度大海, 奉國珍, 匈奴單于順制作, 去二名.”라하여
[] 왕망王莽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북쪽으로는 흉노匈奴를 교화하고 동쪽으로는 해외海外에까지 이르고 남쪽으로는 황지黃支를 회유하였으나, 오직 서쪽 지역은 교화가 가해지지 않았다고 여겨注+ 황지국黃支國에서는 3만 리 먼 곳에서 살아 있는 무소를 바쳤고, 동이왕東夷王대해大海를 건너와서 나라의 진귀한 보물을 바쳤고, 흉노匈奴선우單于는 중국의 전장典章 제도制度를 순히 따라 두 의 이름을 없앴습니다.” 하였다.,
乃遣使하여 多持金幣하고 誘塞外羌하여
마침내 사신을 보내 많은 금과 폐백을 가지고 가서 변방 밖의 강족羌族들을 유인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게 하였다.
使言太皇太后聖明하고 安漢公至仁하여 天下太平하고 五穀成熟하여
태황태후太皇太后성명聖明하고 안한공安漢公이 지극히 인자하여, 천하가 태평하고 오곡五穀이 잘 성숙해서
或禾長丈餘하고 或一粟三米하고 或不種自生하고 或不蠶自繭하며
혹 벼가 한 길[]이 넘게 자라고 혹 낱알 하나에 쌀이 세 개가 들어 있고 혹 곡식을 심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생기고 혹 누에를 치지 않았는데도 저절로 고치가 매달려 있으며,
四年以來 羌人 無所疾苦하니 願獻地內屬注+四年以來, 謂自莽輔政以來也.하노이다
4년 이래로 우리 강족羌族이 곤궁한 바가 없으니, 땅을 바쳐 안으로 속국屬國이 되기를 원합니다.”注+② “사년이래四年以來”는 왕망王莽이 정사를 보필한 이래를 이른다.
乃奏하여 以爲西海郡하고 增法五十條하여 犯者 徙之하니 以千萬數
이에 아뢰어 이곳을 서해군西海郡으로 삼고 50조항의 법을 증가하여 죄를 범한 자를 이곳으로 이주시키니, 이주한 자가 천이나 만으로 헤아려졌다.
民始怨矣러라
이에 백성들이 왕망을 원망하기 시작하였다.
更定官名及十二州界하다
[] 관명官名과 12의 경계를 고쳐서 정하였다.
分京師하여 置前煇光, 後承烈二郡注+前煇光, 蓋領長安以南諸縣, 後承烈, 蓋領長安以北諸縣也.하고
[] 경사京師를 나누어 전휘광前煇光(전휘광)과 후승렬後承烈의 두 을 설치하고注+전휘광군前煇光郡장안長安 이남以南의 여러 을 관할하였고, 후승렬군後承烈郡장안長安 이북以北의 여러 을 관할하였다.,
更公卿大夫元士官名位次 及十二州名注+更, 工衡切.하여 分界郡國所屬하여 罷置改易하니
, 대부大夫원사元士관명官名위차位次, 12의 명칭을 바꾸어서注+(고치다)은 공형工衡이다. 군국郡國에 소속된 것을 나누어 경계 지어 파하기도 하고 설치하기도 하여 바꾸니,
天下多事하여 吏不能紀矣러라
천하에 일이 많아져서 관리들이 제대로 기록하지 못하였다.
역주
역주1 太微五帝 : 太微는 별의 이름으로 三垣의 上垣이다. 북두칠성의 남쪽, 軫星과 翼星의 북쪽에 있는데, 열 개의 별이 五帝의 자리가 되는바, 이것을 中樞라 하여 사방에 울타리 모양의 별자리가 있다.
역주2 昊天上帝 : 玉皇上帝를 가리킨다.
역주3 迎皇后 入未央宮 : “‘맞이하여[迎] 未央宮으로 들어왔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王莽의 권세가 지극했기 때문이다. 예전에 皇后를 ‘聘’이라고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왕망의 딸에 이르러서는 ‘聘’이라고 썼고, 황후를 ‘迎’이라고 쓴 적이 있지 않았는데 왕망의 딸에 이르러는 ‘迎’이라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皇后를 ‘迎’이라고 쓴 것은 여기에서의 1번뿐이다.[書迎入未央宮 何 莽伉也 故皇后未有書聘者 至莽女則書聘 皇后未有書迎者 至莽女則書迎 終綱目 皇后書迎者一而已矣]” 《書法》
역주4 敢은……같다 : 敢은 ‘어찌 감히……하겠습니까?’의 뜻이므로 不敢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역주5 文王이……더하겠습니까 : 虞와 芮는 殷나라 말기의 두 나라 이름이다. 이들 두 나라 군주는 서로 田地를 다투어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였는데, 서로 말하기를 “西伯(文王)은 仁者이니, 가서 질정하지 않겠는가.” 하고 함께 周나라에 조회하러 갔다. 경내에 들어가니 밭을 가는 자들이 서로 밭두둑을 사양하고 길 가는 자들이 길을 양보하였으며, 도읍지에 들어가니 남자와 여자가 길을 달리하고 머리가 흰 노인들이 물건을 들고 다니지 않았으며, 조정에 들어가니 士는 大夫가 되는 것을 사양하고 대부는 卿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다. 두 나라 군주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 감탄하여 서로 말하기를 “우리들은 小人이니, 君子의 조정을 밟을 수 없다.” 하고는 마침내 서로 사양하여 다투던 田地를 空閒地로 만들고 물러가니, 천하에서 이 말을 듣고 西伯에게 귀의한 자가 40여 개국이었다.[虞芮之君 相與爭田 久而不平 乃相謂曰 西伯 仁人也 盍往質焉 乃相與朝周 入其境 則耕者讓畔 行者讓路 入其邑 男女異路 班白不提挈 入其朝 士讓爲大夫 大夫讓爲卿 二國之君 感而相謂曰 我等小人 不可以履君子之庭 乃相讓 以其所爭田 爲閒田而退 天下聞而歸之者 四十餘國] 《孔子家語》, 《小學》
역주6 起明堂……異能之士 : “成帝의 篇(본서 제7권 상 綏和 원년)에 ‘詔令을 내려 辟雍을 세우라고 하였는데 만들기도 전에 파했다.’라고 쓴 것은 애석하게 여긴 것이다. 그리고 이때에 ‘明堂과 辟雍과 靈臺를 일으켰다.’고 쓴 것은 王莽이 아뢰어 이렇게 한 것이니, ‘명당과 벽옹과 영대를 일으켰다.’라고 쓴 것이 이때에 처음 시작되었다.[成帝之篇 詔立辟雍 未作而罷書 惜之也 於是 書起明堂辟雍靈臺 則莽奏爲之 書起明堂辟雍靈臺始此]” 《書法》
역주7 公車 : 漢나라 때 지방 선비들이 중앙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에 응시할 적에 公家(국가)의 수레에 태워 서울로 이송하던 일을 이른다. 여기서 유래하여 중앙에서 치르는 과거시험에 응시하는 것을 지칭하게 되었다.
역주8 靑陽 總章 : 明堂에 다섯 개의 방이 있는데, 동쪽에 위치한 방을 靑陽이라 하고, 서쪽에 위치한 방을 總章이라 한다.
역주9 詩經에……뿐이다 : 辟雍은 太學의 이름으로 ‘辟廱’, ‘璧廱’으로도 표기하는바, 《詩經》 〈大雅 靈臺〉에 “아, 질서 정연하게 종을 침이여, 아! 즐거운 벽옹에서 하도다.[於論鼓鍾 於樂辟廱]”라고 보이는데, 이는 文王이 종과 북의 음악이 있음을 즐거워한 것으로 백성들이 즐거워한 말(노래)을 서술한 내용이라 한다. 또 〈大雅 文王有聲〉에 “鎬京의 辟廱에 서쪽에서 동쪽에서 하며 남쪽에서 북쪽에서 하여 생각하여 복종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우리 왕이 훌륭한 君主이시다.[鎬京辟廱 自西自東 自南自北 無思不服 皇王烝哉]”라고 보이는데, 이는 武王이 鎬京으로 국도를 옮겨 강학하고 禮를 행함에 천하가 저절로 복종함을 밝힌 것이라 한다.
역주10 우리……삼다 : 《詩經》 〈大雅 文王有聲〉에 “豐水가 동쪽으로 흐르니 禹임금의 공적이로다. 四方이 함께 모여 우리 왕을 군주로 삼으니 우리 왕이 훌륭한 군주이시다.[豐水東注 維禹之績 四方攸同 皇王維辟 皇王烝哉]”라고 하였고, 뒤이어 “鎬京의 辟廱에 서쪽에서 동쪽에서 하며[鎬京辟廱 自西自東]”라고 하였는바, 胡氏는 辟雍을 太學의 이름으로 보지 않고 군주가 온화하여 백성들과 화락함을 읊은 내용을 강조한 것으로 보았다.
역주11 禮記……없다 : 《禮記》 〈王制〉에 “天子가 諸侯에게 명하여 가르치게 하고 그런 뒤에야 학교를 만드니, 小學은 公宮 남쪽 왼편에 있고 太學은 郊에 있는바, 天子의 太學을 辟雍이라 하고 諸侯의 太學을 頖宮이라 한다.[天子命之敎 然後爲學 小學在公宮南之左 大學在郊 天子曰辟雍 諸侯曰頖宮]” 하였는데, 鄭玄의 注에 “辟은 밝음이며 雍은 화함이니, 임금은 이 太學 안에서 雍和를 높이고 밝히며 道藝를 익혀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諧和(和合)를 밝게 통달하게 하였다. 頖이란 말은 班이니 政敎를 반포하기 위한 것이다.[辟 明也 雍 和也 君則尊明雍和於此學中 習道藝 使天下之人 皆明達諧和也 頖之言班 所以班政敎也]” 하였다.
역주12 泮水의……된다 : 〈泮水〉의 詩는 《詩經》 〈魯頌 泮水〉로, 여기에 “즐거운 泮水에서 잠깐 마름을 뜯노라. 魯侯가 이르시니 그 말이 성하고 성하도다. 그 말이 성하고 성하니 그 소리가 밝고 밝으시도다.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고 웃으시니 노여워함이 아니라 가르치심이로다.[思樂泮水 薄采其藻 魯侯戾止 其馬蹻蹻 其馬蹻蹻 其音昭昭 載色載笑 匪怒伊敎]”라고 보이는데, 《集傳》에 “泮水는 泮宮의 물이다. 諸侯의 學宮과 鄕射의 집을 泮宮이라 이르니, 그 동쪽과 서쪽, 남쪽에 물이 있어 형체가 半璧과 같은데, 辟雍의 반이 되기 때문에 泮水라 이르고 宮을 또한 泮宮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그러나 胡氏는 “辟雍과 泮宮이 太學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다.” 하고 ‘노여워함이 아니라 가르치심이로다.’ 하는 한 句를 들어 諸侯의 學宮으로 보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역주13 升宰衡 位在諸侯王上 : “이는 특별한 禮이니, ‘升’이라고 쓴 것은 命이 오히려 위에서 나온 것이다. 王莽의 권력으로도 오히려 命이 위에서 나온 것은 어째서인가. 이때에 平帝가 아직 나이가 어려서 太后가 마음대로 명하였으니, ‘升’이라고 쓴 것은 태후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태후를 배척하지 않았는가. 폄하하기를 重한 자에게 반드시 하였으니, 이렇게 하면 충분히 비판함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此 殊禮也 書曰升 命猶自上出也 以莽之權 而猶自上出 何 於是平帝尙幼 太后專之 書升 所以病太后也 然則曷爲不斥太后 貶必於其重者 如是 足以示譏矣]” 《書法》
역주14 王莽이……바쳤고 : 越裳氏는 중국의 南方에 있는 國名으로 지금의 越南 지역이다. 《後漢書》 〈南蠻傳〉에 “交阯의 남쪽에 越裳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周公이 攝政한 지 6년에 禮樂을 제정하여 천하가 화평하니, 越裳氏가 세 마리의 코끼리를 타고 거듭 통역하여 조회 와서 흰 꿩을 바쳤다.[交阯之南有越裳國 周公居攝六年 制禮作樂 天下和平 越裳以三象重譯而獻白雉]”라고 보인다. 거듭 통역한 것은 周나라에 이르기까지에는 여러 나라를 경유해야 하므로 여러 번 통역을 거쳤음을 말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6) 책은 2019.03.1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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