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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9)

자치통감강목(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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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2권 상
漢 桓帝 永康 원년(167)~漢 靈帝 光和 원년(178)
丁未年(167)
사정전훈의 자치통감강목思政殿訓義 資治通鑑綱目 제12권 상
한 환제漢 桓帝 영강永康 원년(167)~한 영제漢 靈帝 광화光和 원년(178)
정미년丁未年(167)
≪資治通鑑綱目≫ 제12권은 丁未年 漢나라 桓帝 永康 원년(167)부터 시작해서 癸酉年 漢나라 獻帝 初平 4년(193)까지이니, 모두 27년이다.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 제12권은 정미년 한丁未年 漢나라 환제 영강桓帝 永康 원년(167)부터 시작해서 계유년 한癸酉年 漢나라 헌제 초평獻帝 初平 4년(193)까지이니, 모두 27년이다.
永康元年이라 春正月 東羌 復反이어늘 段熲 擊破之하다
나라 효환황제 영강孝桓皇帝 永康 원년元年이다. 봄 정월에 동강東羌이 다시 배반하므로 단경段熲(단경)이 격파하였다.
◑夫餘寇玄菟하다
부여夫餘현도玄菟(현도)를 침략하였다.
◑夏四月 寇三輔하다
】 여름 4월에 강족羌族삼보三輔 지방을 침략하였다.
◑五月 하다
】 5월에 땅이 갈라졌다.
◑是月晦 日食하다
】 이달 그믐에 일식이 있었다.
◑六月 赦黨人하여 歸田里하고 禁錮終身하다
】 6월에 당인黨人을 사면하여 전리田里로 돌아가게 하고 종신토록 금고禁錮하였다.
陳蕃 旣免 朝臣 震栗하여 莫敢復爲黨人言者注+爲, 去聲. 下亦爲․爲之同.러니
진번陳蕃이 면직되자, 조정의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다시 당인黨人들을 위해 말하는 자가 없었다.注+(위하다)는 거성去聲이니, 아래의 ‘역위亦爲’와 ‘위지爲之’의 도 같다.
賈彪曰 吾不西行이면 大禍不解라하고 乃入雒陽하여 說竇武及尙書霍諝等하여 使訟之注+彪, 潁川定陵人, 自潁川至雒陽, 爲西行. 諝, 私呂切.하다
가표賈彪(가표)가 말하기를 “내가 서쪽으로 낙양雒陽에 가지 않으면 큰 화가 풀리지 않을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낙양에 들어가서 두무竇武상서 곽서尙書 霍諝(곽서) 등을 설득하여 〈당인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게 하였다.注+가표賈彪영천 정릉潁川 定陵 사람이니, 영천潁川에서 낙양雒陽에 가려면 서쪽으로 가야 한다. 사려私呂이다.
武上疏曰 膺等 建忠抗節하여 志經王室하니 此誠陛下稷, 卨, 伊, 呂之佐어늘
】 이에 두무竇武가 다음과 같이 상소上疏하였다. “이응李膺 등은 충절忠節을 세워 굳게 지켜서 뜻이 왕실王室을 받드는 데 있었으니, 이는 진실로 폐하陛下후직后稷(설), 이윤伊尹여상呂尙과 같은 보좌입니다.
而虛爲姦臣賊子所誣枉하니 天下寒心하고 海內失望注+卨, 古契字.이라
그런데 근거 없이 간신姦臣적자賊子들의 무함을 당했으니, 천하天下 사람들이 상심하고 해내海內가 실망하고 있습니다.注+고자古字이다.
惟陛下 留神澄省하사 時見理出하여 以厭人鬼喁喁之心注+澄, 淸也. 省, 察也. 時, 謂卽時也. 喁, 魚容切. 喁喁, 魚口向上也, 以喩仰望如群魚然.하소서
부디 폐하陛下께서는 유념하여 밝게 살피시고 즉시 사리事理를 잘 분변하여 출옥시켜서 사람과 귀신이 우러러 바라는 마음을 만족시켜주소서.注+은 맑음이요, 은 살핌이다. 는 즉시를 이른다. 어용魚容이니, “옹옹喁喁”은 물고기의 입이 위로 향하는 것으로, 여러 사람들이 우러러 바라기를 물고기들이 입을 위로 향하는 것처럼 함을 비유한 것이다.
今臺閣近臣 尙書朱㝢, 荀緄, 劉祐, 魏朗, 劉矩, 尹勳等 皆國之貞士 朝之良佐
지금 대각臺閣에 있는 가까운 신하 중에 상서 주우尙書 朱㝢(주우), 순곤荀緄, 유우劉祐, 위랑魏朗, 유구劉矩, 윤훈尹勳 등은 모두 나라의 바른 선비요 조정의 어진 보좌이며,
尙書張陵, 嬀皓, 苑康, 楊喬, 邊韶, 戴恢等 文質彬彬하여 明達國典注+嬀, 俱爲切, 姓也.이어늘
상서 장릉尙書 張陵, 규호嬀皓(규호), 원강苑康, 양교楊喬, 변소邊韶, 대회戴恢 등은 이 찬란하여 국가의 전고典故에 밝게 통달하였습니다.注+구위俱爲이니, 이다.
而陛下委任近習하고 專樹饕餮하사 外典州郡하고 內幹心膂注+饕餮, 音叨徹, 貪財爲饕, 貪食爲餮.하시니 宜以次貶黜하여 案罪糾罰하고
그런데 폐하陛下께서는 가깝고 친숙한 환관들에게 위임하고 탐욕스러운 자들만을 등용해서, 밖으로 주군州郡을 맡게 하고 안으로 심복의 일을 주관하게 하시니注+도철饕餮”은 도철叨徹이니, 재물을 탐하는 것을 라 하고, 음식을 탐하는 것을 이라 한다., 마땅히 차례로 이들을 폄출貶黜해서 죄를 상고하여 벌을 내리고
信任忠良하여 平決臧否하여 使邪正毁譽 各得其所注+平, 音病. 如此 咎徵 可消 天應 可待리이다
충량忠良한 신하들을 신임하여 선악善惡을 공평하게 결정해서 간사한 자와 바른 자, 비난과 칭찬이 각각 제자리를 얻게 해야 합니다.注+(공평하다)은 이다. 이와 같이 하면 나쁜 징조를 사라지게 할 수 있고, 하늘의 응험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間者 有嘉禾, 芝草, 黃龍之見注+見, 賢遍切.하니 夫瑞生 必於嘉士 福至 實由善人이라
근간에 아름다운 곡식과 지초芝草, 황룡黃龍이 나타났는데注+(나타나다)은 현편賢遍이다., 상서祥瑞가 생기는 것은 반드시 아름다운 선비에게서 말미암고 이 이르는 것은 실로 선인善人에게서 말미암습니다.
在德爲瑞 無德爲災 陛下所行 不合天意하시니 不宜稱慶이니이다
덕이 있을 때에 나타나면 상서가 되고 덕이 없을 때에 나타나면 재앙이 되는바, 폐하陛下께서 행하시는 바가 하늘의 뜻에 부합하지 못하시니, 경하慶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書奏 因以病上還城門校尉, 槐里侯印綬하고 霍諝亦爲表請한대 帝意稍解하여 使中常侍王甫 就獄訊黨人하니
두무竇武가 글을 올리면서 동시에 병을 칭탁하여 성문교위城門校尉괴리후槐里侯인수印綬를 올려 반환하였고, 곽서霍諝 또한 표문을 올려 〈당인黨人들의 출옥을〉 청하자, 황제의 뜻이 다소 풀려서 중상시 왕보中常侍 王甫로 하여금 감옥에 가서 당인들을 심문하게 하였다.
甫詰曰 卿等 更相拔擧하여 迭爲脣齒하니 其意如何
왕보가 힐문詰問하기를 “ 등이 번갈아 서로 선발하여 천거해서 입술과 이처럼 서로 의지하니, 그 의도가 무엇인가?” 하자,
范滂曰 滂 欲使善善同其淸하고 惡惡同其汙하니 謂王政之所願聞이요 不悟更以爲黨이라
범방范滂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선한 사람을 좋게 여겨 그 깨끗함을 함께하려 하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여 그 더러움을 함께 미워하려 하였으니, 이는 왕정王政(조정朝廷)이 듣기 원하는 바라고 생각하였고 다시 을 이룬다고 여길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身死之日 願埋滂於首陽山側하여 上不負皇天하고 下不愧夷齊注+伯夷․叔齊, 餓死首陽山.하라하니 甫愍然爲之改容하여 乃得幷解桎梏하다
이 몸이 죽는 날 내 시신이 수양산首陽山 곁에 묻혀 위로는 황천皇天을 저버리지 않고, 아래로는 백이伯夷숙제叔齊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란다.”注+백이伯夷숙제叔齊수양산首陽山에서 굶어 죽었다. 왕보가 가엾게 여겨 용모를 고치고는 마침내 당인들의 질곡桎梏을 모두 풀어주었다.
膺等 又多引宦官子弟한대 宦官하여 請帝以天時宜赦라하니 遂赦改元하고
이응李膺 등이 또 환관의 자제子弟를 연루시켜 논박하는 일이 많자, 환관들이 두려워해서 천시天時가 마땅히 사면을 해야 할 때라고 황제에게 청하니, 마침내 사면하고 하였다.
黨人二百餘人 皆歸田里하여 書名三府하여 禁錮終身하다
당인黨人 200여 명을 모두 전리田里로 돌려보내고서 삼공부三公府에 명단을 기록하여 종신토록 금고禁錮(관직에 나오지 못하게 하는 형벌)하게 하였다.
往候霍諝而不謝어늘 讓之한대 滂曰 昔 叔向 不見祁奚하니 吾何謝焉注+晉范宣子囚叔向, 祁奚請而免之, 不見叔向而歸, 叔向亦不告免焉而朝.이리오
滂歸注+滂傳 “滂南歸, 始發京師.”할새 汝南, 南陽士大夫迎之者 車數千兩이요 鄕人殷陶, 黃穆 侍衛於旁하여 應對賓客이어늘 滂曰 是重吾禍也라하고 遂遁還하다
범방이 돌아갈 적에注+〈“방귀滂歸”는〉 ≪후한서後漢書≫ 〈범방전范滂傳〉에 “범방이 남쪽으로 돌아가면서 처음 경사京師를 출발할 적에”라고 하였다., 그를 환영하는 여남汝南남양南陽의 사대부들의 수레가 수 천 이었고, 고향 사람인 은도殷陶황목黃穆은 곁에서 시위侍衛하면서 빈객賓客들을 응대하였다. 범방이 말하기를 “이렇게 하는 것은 나의 가중加重시키는 것이다.” 하고는, 마침내 도망쳐 고향으로 돌아갔다.
詔書下擧鉤黨注+擧, 劾也. 鉤黨者, 相鉤引其黨與也.하니 郡國所奏 多至百數로되 唯平原相史弼 獨無所上注+相, 息亮切, 下相有同.이라
】 처음에 조서詔書를 내려 구당鉤黨(당여黨與를 끌어모은 것)을 한 자들을 탄핵하게 하니注+는 탄핵함이다. “구당鉤黨”은 서로 자신의 당여黨與를 끌어모으는 것이다., 군국郡國에서 아뢴 자가 많게는 100명으로 헤아려졌으나, 오직 평원상 사필平原相 史弼만은 홀로 아뢴 자가 없었다.注+(태수太守에 해당하는 관직)은 식량息亮이니, 아래 “상유相有”의 도 같다.
詔書迫切州郡하여 髡笞掾史注+言詔書督迫州郡 至於髡笞掾史하니 從事坐傳舍하여 責曰注+靑州從事坐平原傳舍, 而責弼也. 靑州六郡 其五有黨이어늘 平原 何治而得獨無注+六郡, 謂濟南․平原․樂安․北海․東萊․齊國.
이에 또다시 조서를 내려 주군州郡을 심하게 독촉하여 연사掾史들의 머리를 깎고 볼기를 쳤다.注+〈“조서박절주군 곤태연사詔書迫切州郡 髡笞掾史”는〉 조서詔書를 내려 주군州郡을 독촉해서 연사掾史의 머리를 깎고 볼기를 치게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전사傳舍(객사)에 앉아서 사필을 책망하기를注+〈“종사좌전사책從事坐傳舍責은”〉 청주종사靑州從事평원平原전사傳舍에 앉아서 사필史弼을 책망한 것이다.청주靑州의 여섯 중에 다섯 군에는 당인黨人이 있는데, 어떻게 다스렸기에 평원군平原郡만 홀로 당인이 없는가?”注+육군六郡”은 제남濟南, 평원平原, 낙안樂安, 북해北海, 동래東萊, 제국齊國을 이른다. 하자,
弼曰 先王 疆理天下하여 畫界分境하시니 水土異齊하고 風俗不同注+齊, 才細切.이라 他郡 自有 平原 自無 胡可相比리오
사필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선왕先王천하天下를 나누어 다스려서 구획하여 경계를 나누시니, 수토水土가 다르고 풍속風俗이 똑같지 않습니다.注+(같다)는 재세才細이다. 다른 에는 당인이 본디 있으나 평원군에는 본디 없으니, 어찌 서로 견줄 수 있겠습니까.
若承望上司하여 誣陷良善이면 則平原之人 戶可爲黨이니 有死而已언정 所不能也로라
만약 상사上司의 뜻을 받들어서 선량한 사람을 무함한다면 평원平原 사람은 집집마다 당인黨人이 될 것이니, 인 내가 죽을지언정 이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從事大怒하여 卽擧奏弼이러니 黨禁中解하니 所脫者甚衆注+後靈帝建寧二年, 復治鉤黨令, 故云黨禁中解也.이러라
청주종사가 크게 노하고 즉시 사필을 탄핵하여 아뢰었는데, 이때 마침 당금黨禁이 중간에 풀리니, 당화黨禍를 벗어난 자들이 매우 많았다.注+뒤에 영제 건녕靈帝 建寧 2년(169)에 다시 구당鉤黨을 한 사람을 다스리라는 법령이 내려졌으므로 당금黨禁이 중간에 풀렸다고 말한 것이다.
竇武所薦楊喬 容儀偉麗하고 數言政事하니 帝愛其才貌하여 欲妻以公主한대 喬固辭不聽하고 遂不食而死하다
두무竇武가 천거한 양교楊喬가 용모와 행동거지가 훌륭하고 화려하며 자주 정사政事를 말하니, 황제는 그의 재주와 용모를 사랑하여 공주公主를 그에게 시집보내고자 하였다. 그러나 양교는 굳이 사양하여 응하지 않고는 마침내 굶어 죽었다.
秋八月 巴郡하다
】 가을 8월에 파군巴郡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고 말하였다.
郡人 欲就池浴이라가 見池水濁하고 因戲相恐하여 此中 有黃龍이라한대 語遂行하니
】 처음에, 에 사는 사람들이 못에 가서 목욕을 하려 하다가 못 물이 흐린 것을 보고는 농담으로 서로 상대방을 두렵게 하며 말하기를 “이 못 속에 황룡黃龍이 있다.” 하였는데, 이 말이 마침내 세상에 떠돌아다녔다.
太守欲上之어늘 郡吏傅堅 諫曰 此走卒戲語耳라한대 不聽하다
태수太守가 이 일을 조정에 올리고자 하자, 의 관리인 부견傅堅이 간하기를 “이것은 하인들의 농담일 뿐입니다.” 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大水海溢하다
】 홍수가 지고 해일海溢이 있었다.
◑冬十月 寇三輔어늘 하다
】 겨울 10월에 강족羌族삼보三輔를 침범하므로 장환張奐사마 동탁司馬 董卓을 보내 격파하였다.
論功當封이러니 以不事宦官이라 不果하고 拜董卓爲郞中하다
장환張奐이 공로에 따라 마땅히 봉작封爵을 받아야 했는데, 환관宦官을 섬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봉하지 않고 동탁董卓낭중郞中으로 제수하였다.
隴西人이라 性粗猛有謀하니 羌, 胡畏之러라
동탁은 농서隴西 사람인데 성품이 거칠고 사나우며 지모가 있으니, 강족羌族호족胡族들이 두려워하였다.
十二月 注+壽, 三十六.하다 尊皇后曰皇太后라하고 太后臨朝하다
】 12월에 황제가 하였다.注+향년이 36세였다. 황후皇后(두후竇后)를 높여 황태후皇太后라 하고, 태후太后임조臨朝하였다.
竇后旣立 御見甚稀注+見, 賢遍切.하고 唯采女田聖等 有寵이러니 后素忌忍이라 帝梓宮尙在前殿이로되 遂殺田聖하다
】 처음에, 두후竇后가 세워졌을 적에 황제를 뵙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고注+(알현하다)은 현편賢遍이다., 오직 채녀采女전성田聖 등이 총애를 입었다. 두후竇后는 평소 시기가 많고 잔인하여, 황제의 재궁梓宮()이 아직 정전正殿에 있는데도 마침내 전성田聖을 죽였다.
遣使하여 迎解瀆亭侯宏하여 詣京師注+賢曰 “解瀆亭, 在今定州義豐縣東北.”하다
사자使者를 보내 해독정후 유굉解瀆亭侯 劉宏을 맞이하여 경사京師로 오게 하였다.注+이현李賢이 말하기를 “해독정解瀆亭은 지금 정주 의풍현定州 義豐縣 동북쪽에 있었다.” 하였다.
竇武召侍御史河間劉儵注+儵, 式竹切.하여 問以國中宗室之賢者한대 儵稱孝王曾孫宏注+孝王, 名間, 肅宗子也. 宏祖淑, 父世封解瀆亭侯.이어늘
두무竇武시어사侍御史하간河間 사람 유숙劉儵(유숙)을 불러 국중國中종실宗室 중에 어진 자를 묻자注+식죽式竹이다., 유숙은 효왕孝王증손 유굉曾孫 劉宏을 추천하였다.注+효왕孝王은 이름이 이니, 숙종肅宗(장제章帝)의 아들이다. 유굉劉宏조부祖父유숙劉淑부친父親유장劉萇(유장)이 대를 이어 해독정후解瀆亭侯해졌다.
武白太后하여 定策禁中하고 以儵守光祿大夫하여 持節奉迎宏하니 時年十二러라
두무는 태후太后에게 아뢰어 금중禁中에서 음밀히 황제를 정하고[정책定策] 유숙을 로 삼고서 을 가지고 가서 유굉을 맞이하게 하니, 이때 유굉의 나이가 12세였다.
역주
역주1 地裂 : “땅이 갈라지는 것은 작은 변고가 아니다. 和帝 永元 7년(95)에 한 번 쓴 뒤로 이때 다시 보인다. 그러므로 ≪資治通鑑≫에는 이것을 쓰지 않았으나 ≪資治通鑑綱目≫에는 특별히 썼으니, ≪자치통감강목≫이 끝날 때까지 땅이 갈라졌다고 쓴 것이 3번이다.[地裂非小變也 自和帝永元七年一書 於是再見 故通鑑不書 綱目特書之 終綱目 書地裂三]다” ≪書法≫
역주2 改元 : 연호를 延熹에서 永康으로 고친 일을 이른다.
역주3 范滂은……않았다 : 霍諝가 표문을 올려 黨人들의 사면을 청한 것에 감사하지 않은 것이다.
역주4 晉나라……조회하였다 : 范宣子는 춘추시대 晉나라 執政大臣인 范匄이며, 叔向은 당시 名臣인 羊舌肸의 자이고, 祁奚 역시 명신이었다. 숙향의 아우인 羊舌虎가 죄에 걸려 죽임을 당하자, 범선자가 숙향을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致仕하고 있던 기해가 범선자를 타일러 석방하게 하였으나, 숙향을 만나보지 않고 그대로 가버렸고, 숙향 또한 기해에게 고맙다고 인사하지 않고 그대로 조회에 나갔다.(≪春秋左氏傳≫ 襄公 21년)
역주5 靑州從事 : 從事는 從事史라고도 하는데 州刺史의 막료인 佐史의 하나로 자사의 辟召를 통해 임명된다. 이는 別駕從事, 治中從事, 兵曹從事 등으로 구분된다. 특히 별가종사와 치중종사가 屬吏의 長이 된다. 별가종사는 자사가 部를 순행할 적에 자사를 수행하며 자사의 측근으로 활동하였다. 치중종사는 州의 屬吏의 선발과 諸曹의 일을 주관하였다.(安作璋ㆍ熊鐵基, ≪秦漢官制史稿≫, 齊魯書社, 1984) ≪綱目釋義≫에는 종사는 中都官으로 관리들 중에 법을 범한 자를 살펴 적발하는 것을 주관한다고 하였다.
역주6 黃龍見 : “建和 원년(147)에 ‘黃龍이 譙縣에 나타났다.’고 썼었는데, 여기서 ‘黃龍이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의심하는 말이니, 그 말이 이와 같다고 말한 것과 같다. 이 때문에 光武帝 연간에 郡國에 甘露가 내렸을 적에 ‘말했다’고 썼고(中元 元年(56)), 桓帝 때에 巴郡에 黃龍이 나타났을 적에 ‘말했다’고 썼고(이해), 北齊 靑州에 河水가 맑아졌을 적에 ‘말했다’고 썼다.(陳나라 壬午年(562))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용이 나타났다.’고 쓴 것이 13번인데, 오직 平帝 때에 ‘越嶲郡에서 올렸다.’고 쓴 것과 여기서 ‘巴郡에서 말했다.’고 쓴 것은 모두 의심하는 말이다.[建和初元 書黃龍見譙矣 此書曰言黃龍見 何 疑辭也 若曰其言如此云耳 是故光武郡國甘露降 則書言(中元元年) 桓帝巴郡黃龍見 則書言(是年) 齊靑州河水淸 則書言(陳壬午年) 終綱目 書龍見十有三 惟平帝書越嶲郡上 此書巴郡言 皆疑之之辭也]다” ≪書法≫
역주7 張奐……擊破之 : “‘張奐이 보냈다.’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장환에게 功을 돌린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환관을 잘 섬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 功을 내치고 董卓에게 상을 주었으니, 그 사사로움이 심하다. 이에 ≪資治通鑑綱目≫에서 ‘장환이 보냈다.’고 특별히 쓴 것이니, 漢나라를 나쁘게 여긴 것이다. 이 때문에 동탁이 침입한 羌族들을 격파했을 적에 ‘장환이 보냈다.’고 썼고, 田神功이 史朝義를 격파했을 적에 ‘李光弼이 시켰다.’고 썼으니(唐 肅宗 寶應 원년(762)), 이는 모두 보낸 자에게 공을 돌린 것이다.[書張奐遣 何 歸功奐也 乃以不事宦官 黜其功而賞董卓 其私甚矣 此綱目特書張奐遣 病漢也 是故董卓之破羌寇也 書張奐遣 田神功之破史朝義也 書李光弼使(唐肅宗寶應元年) 皆歸功遣之者也]다” ≪書法≫
역주8 帝崩 : “賀善의 贊에 말하였다. ‘桓帝가 즉위한 지 22년 동안 延熹 2년(159) 이전에는 기록한 내용이 대부분 梁冀에 관한 것이었다.(「策書로 太尉 李固를 면직했다.」고 쓴 것은 양기가 전횡했기 때문이고, 「定策한 功을 논했다.」고 쓴 것은 양기가 功을 자랑했기 때문이고, 「皇后를 세웠다.」고 쓴 것은 양기가 거만했기 때문이고, 「策書로 太尉 杜喬를 면직했다.」고 쓴 것은 양기가 부추겼기 때문이고, 「淸河王을 강등시키고 李固와 杜喬를 죽였다.」고 쓴 것은 양기가 무함했기 때문이고, 「淸河를 〈甘陵이라고〉 고쳤다.」고 쓴 것은 양기가 사사로이 〈청하를 싫어했기〉 때문이고, 「〈孫壽를〉 襄城君에 봉했다.」고 쓴 것은 양기가 〈손수를〉 총애하였기 때문이고, 「張陵이 〈양기를〉 탄핵하여 아뢰었다.」고 쓴 것은 양기가 예를 범했기 때문이고, 「〈양기에게〉 특별한 예를 가하고 〈네 縣을〉 더 봉해주었다.」고 쓴 것은 양기가 교만했기 때문이고, 「陳龜를 불러 돌아오게 했다.」고 쓴 것은 양기가 그를 미워했기 때문이다.) 2년 이후로 기록한 내용은 대부분 宦閹들에 관한 것이었다.(「五侯를 봉했다.」고 쓴 것은 환관이 모의에 참여하였기 때문이고, 「單超(선초)를 車騎將軍으로 삼았다.」고 쓴 것은 환관에 대한 총애가 지나쳤기 때문이고, 「楊秉을 논죄하여 〈左校에서〉 노역하게 했다.」고 쓴 것은 환관이 탐욕스럽고 방종했기 때문이고, 「선초가 卒했다.」고 쓴 것은 부의를 보내고 장송한 것이 제도에 지나쳤기 때문이고, 「皇甫規를 하옥했다.」고 쓴 것은 환관이 그를 원수로 여겨 모함하였기 때문이고, 「馮緄이 면직되었다.」고 쓴 것은 환관이 미워하였기 때문이고, 「朱穆이 卒했다.」고 쓴 것은 그가 환관을 미워하다가 죽었기 때문이고, 「李膺 등이 논죄를 당하여 〈左校에서〉 노역하였다.」고 쓴 것은 그들이 환관을 탄핵하여 아뢰었기 때문이고, 「成瑨을 죽이고 李膺 등을 체포했다.」고 쓴 것은 환관들이 미워하였기 때문이다.) 그 나머지는 災變과 변방의 일을 쓴 것 외에는 사사로운 은혜를 갚은 것이 아니면 놀고 사냥하는 것을 일삼고 세금 거두는 것을 급히 한 것이다. 무릇 세 번 황후를 세웠는데 두 명은 굶어 죽었다. 비록 일찍이 지진이 있고 일식이 있다 하여 세 차례 賢良을 천거하게 하고 한 차례 處士를 불렀으나, 이따금 모두 문식만 갖춘 것이었다. 여러 淫祀를 없앤 것으로 말하면, 황제에게 훌륭한 견해가 있는 듯하다. 그러나 거듭 老子에게 제사하였으니, 그렇다면 이 또한 어쩌다가 그렇게 한 것일 뿐이다. 이것이 桓帝가 桓帝가 된 이유이다.’[賀善贊曰 桓帝卽位二十二年 自延熹二年以前 所書多爲梁冀(書策免太尉固 冀專也 論定策功 冀伐也 立皇后 冀伉也 策免太尉喬 冀忤也 貶淸河 殺李杜 冀誣也 改淸河 冀私也 封襄城君 冀嬖也 張陵劾奏 冀犯也 殊禮增封 冀泰也 徵陳龜還 冀惡之也) 二年以後 所書多爲宦閹(書封五侯 宦官與謀也 單超將軍 宦官寵過也 楊秉論作 宦官貪縱也 卒單超 贈送過制也 獄皇甫規 宦官仇陷也 免馮緄 宦官所惡也 卒朱穆 憤疾宦官也 膺等輸作 劾奏宦官也 殺成瑨捕膺等 宦官所疾也) 其餘自書災變邊事外 非報私恩 則事遊畋 急征斂 凡三立后 兩不食死 雖嘗三以震食擧賢 一徵處士 往往皆具文 其壞諸淫祀 若有見者 然再祀老子 則亦偶然而已 此桓之所以爲桓也]” ≪書法≫
역주9 守光祿大夫 : 보통 알려진 行守職은 관직이 관품보다 낮을 경우에는 行職을, 관직이 품계보다 높은 경우에는 守職을 주었다. 그러나 漢代 行守職은 이와 좀 다르다. 行職은 해당 관직에 관리가 부재시 임시로 다른 관리가 해당 직을 겸임하는 것이다. 이는 관직이 관리의 秩보다 낮거나 높거나 동등한 경우 모두 포함된다. 守職은 1년 동안 임시로 관직을 맡아서 그 재능을 시험해보고 합당하면 그 관직에 임명하는 것이다.(大庭脩, ≪秦漢法制史の硏究≫, 倉文社, 1982)
역주10 (其)[萇] : 저본에는 ‘其’로 되어 있으나, ≪資治通鑑≫에 의거하여 ‘萇’으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9)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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