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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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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年(62)
五年이라 春二月 驃騎將軍蒼 하다
東平王蒼 自以至親輔政하여 聲望日重이라하여 意不自安하여 前後累上疏하여
稱自漢興以來 宗室子弟 無得在公卿位者하니 乞上驃騎將軍印綬하고 退就藩國이라하여 辭甚懇切注+上, 時掌切, 下同.이라
至是 帝乃許蒼還國호되 而不聽上將軍印綬하고 以驃騎長史 爲東平太傅하고 掾爲中大夫하고 令史爲王家郎注+百官志 “將軍長史一人秩千石, 掾屬二十九人秩比四百石至比二百石, 令史及御屬三十一人百石.” 帝特爲蒼, 置掾史員四十人. 王國太傅秩二千石, 中大夫比六百石, 郞二百石.하다
冬十月 帝如鄴이라가 是月 還宮하다
◑十一月 北匈奴冦五原, 雲中이어늘 南單于擊却之하다
◑安豐侯竇融하다
年老하니 子孫 縱誕하여 多不法이라 長子穆 尙内黄公主注+內黃縣, 屬魏郡.러니 矯稱陰太后詔하여 令六安侯劉盱去婦하고 以女妻之注+六安國, 屬廬江郡.하다
盱婦家上書言狀한대 帝大怒하여 盡免穆等官하고 諸竇爲郎吏者 皆將家屬歸故郡注+竇氏, 故扶風平陵人.하고 獨留融京師러니 尋薨하다
後數歲 穆等 復坐事하여 與子勳, 宣으로 皆下獄死하다 久之 詔還融夫人하여 與小孫一人으로 居雒陽하다


임술년壬戌年(62)
나라 현종 효명황제顯宗 孝明皇帝 영평永平 5년이다. 봄 2월에 표기장군 유창驃騎將軍 劉蒼이 사직하고 번국藩國으로 돌아갔다.
동평왕 유창東平王 劉蒼은 자신이 황제의 지친至親으로서 정사를 보필하여 명성과 명망이 날로 중해진다고 여겨서 마음에 스스로 편안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전후에 여러 번 상소上疏하여 말하기를
나라가 일어난 이래로 종실宗室의 자제들이 공경公卿의 지위에 있었던 경우가 없었으니, 원하건대 표기장군驃騎將軍인수印綬를 반환하여 올리고 물러나 번국藩國에 나아가고자 합니다.” 하였는데, 말이 매우 간절하였다.注+(올리다)은 시장時掌이니 아래도 같다.
이때에 이르러 황제가 마침내 유창에게 번국藩國으로 돌아갈 것을 허락하였으나 장군將軍인수印綬를 반환하여 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표기장사驃騎長史동평왕東平王태부太傅로 삼고 중대부中大夫로 삼고 영사令史왕가王家낭관郎官으로 삼았다.注+후한서後漢書≫ 〈백관지百官志〉에 “장군將軍장사長史 1명은 천석千石이고, 연속掾屬 29명은 비사백석比四百石에서 혹은 비이백석比二百石에 이르고, 영사令史어속御屬 31명은 백석百石이다.” 하였다. 황제가 특별히 유창劉蒼을 위하여 40명의 연사掾史를 둔 것이다. 왕국王國태부太傅이천석二千石이고 중대부中大夫비육백석比六百石이고 낭관郞官이백석二百石이다.
】 겨울 10월에 황제가 업현鄴縣에 갔다가, 이달에 환궁하였다.
】 11월에 북흉노北匈奴오원五原운중雲中을 침략하자, 남선우南單于가 격퇴하였다.
안풍후 두융安豐侯 竇融하였다.
두융竇融이 연로하니, 자손들이 방종하고 허탄하여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많았다. 맏아들 두목竇穆내황공주内黄公主에게 장가들었는데注+내황현內黃縣위군魏郡에 속하였다., 음태후陰太后조령詔令을 사칭하여 육안후 유우六安侯 劉盱로 하여금 부인을 버리고 자신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게 하였다.注+육안국六安國여강군廬江郡에 속하였다.
유우의 부인의 집에서 상서上書하여 이러한 내용을 아뢰자, 황제가 크게 노하여 두목 등의 관직을 모두 면직시키고 낭관郎官으로 있는 여러 두씨竇氏들을 모두 가솔을 거느리고 고군故郡(고향)으로 돌아가게 하였다.注+두씨竇氏는 예로부터 부풍 평릉扶風 平陵 사람이다. 오직 두융만 경사京師에 머물게 하였는데, 두융이 얼마 후 하였다.
몇 년 뒤에 두목 등이 다시 어떤 사건에 연좌되어 아들 두훈竇勳, 두선竇宣과 함께 모두 하옥되어 죽었다. 황제는 오랜 뒤에 조령詔令을 내려 두융의 부인을 돌아오게 해서 손자 1명과 낙양雒陽에 거주하게 하였다.


역주
역주1 罷歸藩 : “‘就國(封國으로 나아가다.)’이라고 쓴 것은 많으나 ‘歸藩’이라고 쓴 적은 있지 않았는데, ‘歸藩’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특별히 쓴 것이다. 특별히 쓴 것은 어째서인가. 東平王 劉蒼을 어질게 여긴 것이다. 유창과 같은 자는 漢나라의 藩臣이 될 만하므로 驃騎將軍이 된 뒤로 卒할 때까지 6번 쓴 것이다.[書就國多矣 未有書歸藩者 書歸藩 何 特筆也 其特筆 何 賢蒼也 若蒼者 可以爲漢藩矣 故自爲驃騎至卒 六書之]다” ≪書法≫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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