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魏太傅侍中淸河王懌이 美風儀라 胡太后가 逼而幸之러라 然素有才能하여 輔政多所匡益하고 好學禮士하여 時望이 甚重이러니
侍中領軍將軍元叉가 恃寵驕恣하여 懌이 每裁之以法하고 衛將軍劉騰이 權傾内外하고 吏部用其弟爲郡이어늘 懌이 抑而不奏하니
叉騰
이 皆怨之
하여 乃使主食胡定自列云 懌
이 貨定
하여 使毒魏主
注+① 主食, 主御食者也. 列, 陳也.라한대
魏主가 時年十一이라 信之어늘 叉가 奉魏主하여 御顯陽殿하고 騰이 閉永巷門하니 太后가 不得出이러라
懌
이 入
커늘 叉
가 厲聲止之
한대 懌
이 曰 汝欲反邪
아 叉
가 曰 正欲縛反者耳
라하고 命宗士執懌
注+② 魏置宗師. 宗士, 其屬也.하고
騰
이 稱詔集公卿議
하여 論懌大逆
하니 衆
이 畏
하여 無敢異者
로되 唯僕射新泰公游肇
가 抗言以爲不可
라하고 終不下署
注+③ 五代志 “新泰縣, 屬琅邪郡.” 不下署, 謂不下肇署名也.러라
叉騰
이 遂殺懌
하고 詐爲太后詔
호되 自稱有疾
하여 還政魏主
라하고 幽太后於北宮
하니 魏主
가 亦不得省見
하고 裁聽傳食而已
注+④ 省, 悉景切. 見, 賢遍切.러라
太后가 不免飢寒하여 乃歎曰 養虎得噬라하더니 我之謂矣라하다
叉가 遂與太師高陽王雍等으로 同輔政하니 帝가 謂叉爲姨父러라 叉與騰이 表裏擅權하여 叉爲外禦하고 騰爲内防하여 常直禁省하여 威振内外러라
朝野가 聞懌死하고 無不喪氣하며 胡夷가 爲之剺面者數百人이요
游肇
는 憤邑而卒
하니 諡曰文貞
注+⑤ 爲, 去聲. 剺, 音黎, 劃也. 胡夷臨喪, , 而哭哀甚.이러라
目
魏相州刺史中山王熙는 英之子也라 與弟略纂으로 皆爲淸河王懌所厚러니 聞懌死하고 起兵於鄴하여 表請誅元叉劉騰이어늘 長史柳元章等이 執之하고 元叉가 遣使하여 斬之於鄴하다
熙는 好文學하고 有風儀하여 名士가 多與之遊러라 將死에 與故知書曰 太后見廢北宮하고 淸河横受屠酷하며 主上은 幼年에 獨在前殿이라 君親如此하여 無以自安이라
故帥兵民하여 欲建大義於天下라 但智力淺短하여 旋見囚執하니 上慙朝廷하고 下愧相知라
本以名義干心이라 不得不爾니 流腸碎首라도 復何言哉아
凡百君子는 各敬爾儀하여 爲國爲身하여 善勖名節하라하니 聞者가 憐之러라
熙首
가 至洛陽
하니 親故
가 莫敢視
나 前驍騎將軍刁整
이 獨收而藏之
注+① 整, 雍之孫也.하다
略亡抵故人河内司馬始賓
한대 始賓
이 與略轉依西河太守刁雙
하여 匿之經年
注+② 雙, 雍之族孫也.이러니
時에 購略甚急하여 略이 懼어늘 雙曰 會有一死요 所難遇者는 爲知己死耳니 願不以爲慮라하다
略이 固求南奔한대 雙이 乃使從子昌으로 送略渡江하니 梁이 封爲中山王하다
目
【目】 北魏 太傅 侍中 淸河王 元懌이 풍모가 근사해서 胡太后가 가까이하며 총애하였다. 그런데 원역이 본디 재능을 갖추어서 정사를 보좌하며 많은 도움을 주었고, 배우기를 좋아하고 식자들을 예우하여 당시 여망이 매우 두터웠다.
侍中 領軍將軍 元叉가 태후의 총애를 믿고 교만 방자하자 원역이 매번 그를 법으로 재단하였고, 衛將軍 劉騰의 권력이 내외를 압도하고, 吏部가 그의 아우를 郡太守로 임용하자 원역이 이를 막고 上奏하지 않았다.
이에 원차와 유등이 모두 그를 원망하여 마침내
에게 “원역이 자기에게 뇌물을 주어 魏主(元诩)를 독살시키려 하였다.”라고 자복하게 하였는데,
注+① 主食은 임금의 음식을 주관하는 사람이다. 列은 진술함이다.
당시 열한 살이었던 魏主가 이를 그대로 믿거늘, 원차가 魏主를 받들어 顯陽殿으로 나가고, 유등이 永巷門을 폐쇄하니 호태후가 나올 수 없었다.
원역이 궁중으로 들어오려 하자 원차가 큰 목소리로 저지하였다.
注+② 北魏가 宗師를 설치하였는데 宗士는 그 소속이다. 원역이 말하기를 “너가 반역을 꾀하려는 것이냐.”라고 하자, 원차가 말하기를 “마침 반역자를 잡아들이려는 참이다.”라고 하고, 宗士에게 명하여 원역을 붙잡아두도록 하였다.
유등이 詔命이라 칭하고 公卿을 모아 의논하도록 해서, 원역이 대역죄로 논죄하니, 뭇사람들이 두려움에 떨어 감히 이견을 내지 못하였는데 僕射 新泰公 游肇가 처분이 옳지 않다고 반박하며 끝내 서명하지 않았다.
注+③ ≪五代志≫에 “新泰縣은 琅邪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不下署”는 游肇가 서명을 하지 않은 것이다.
원차와 유등이 마침내 원역을 살해하고 호태후의 조서를 허위로 만들어 “병이 있어 魏主에게 권한을 돌려보낸다.”라고 하고 호태후를 北宮에 유폐시키니,
注+④ 省(안부 드리다)은 悉景의 切이다. 見(뵙다)은 賢遍의 切이다.
추위와 굶주림을 면치 못한 호태후가 탄식하며 말하기를 “호랑이를 키우다 잡아먹힌다더니 나를 두고 한 말이구나.”라고 하였다.
원차가 마침내 太師 高陽王 元雍 등과 함께 정사를 보좌하였고 황제는 원차를 이모부라 불렀다. 원차와 유등이 안팎에서 권력을 독차지해서 원차는 조정 밖의 공격을 방어하고 유등은 조정 내를 방비하며, 언제나 궁중에 숙직하여 그 위세가 안팎에 떨쳤다.
조야가 원역의 죽음을 듣고 상심하지 않는 이가 없었으며 胡族과 夷族 중에 얼굴에 칼자국을 낸 사람이 수백 명이었다.
游肇가 비통에 젖어 卒하였는데 시호를 文貞이라 하였다.
注+⑤ 爲(위하다)는 去聲이다. 剺는 음이 黎이며 그음이다. 胡族과 夷族은 상가에 조문할 때 얼굴에 칼자국을 내어 깊은 슬픔을 표하였다.
目
【目】 北魏 相州刺史 中山王 元熙는 元英의 아들이다. 아우 元略, 元纂과 함께 모두 淸河王 元懌의 후대를 받았는데 원역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鄴城에서 병사를 일으켜서 表文을 올려 元叉와 劉騰을 주벌할 것을 요청하자, 長史 柳元章 등이 그들을 붙잡았고, 원차가 사신을 보내 鄴城에서 그들을 참수하였다.
원희는 文學을 좋아하고 기풍이 있어서 名士들이 많이 그와 교류하였다. 죽음에 앞서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胡太后가 北宮에 유폐당하고, 淸河王(元懌)이 뜻밖에 도륙을 당하고 主上은 어린 나이에 홀로 正殿 위에 놓여 있다. 임금께서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어 스스로 편안히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군사와 백성을 이끌고 천하에 大義를 세우려 하였는데, 다만 지혜가 짧고 힘이 부족해 이내 구속되고 말았으니 위로는 조정에 부끄럽고 아래로는 벗들에게 무안하다.
본디 명분과 의리를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구한 것이어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던 것이니, 비록 창자가 땅에 흘러내리고 머리가 부서진다 해도 무슨 말을 하겠는가.
모든 군자들은 저마다의 태도를 신중히 하여, 국가를 위하고 자신을 위해 명예와 절의를 힘쓰길 바란다.”라고 하였는데, 이 말을 들은 이들이 모두 가슴 아파하였다.
원희의 首給이 洛陽에 이르자 친구들이 감히 찾아보지 못하였으나, 前 驍騎將軍 刁整이 홀로 시신을 수습하였다.
注+① 刁整은 刁雍의 손자이다.
元略이 도망하여 친구인 河内 사람 司馬始賓을 찾아갔는데, 사마시빈이 원략과 함께 西河太守 刁雙을 찾아가 1년 남짓 숨어 지냈다.
注+② 刁雙은 刁雍의 族孫이다.
당시 조정에서 현상금을 걸고 매우 다급하게 원략을 찾아나서, 원략이 두려움에 떨자 조쌍이 말하기를 “반드시 한 번은 죽게 되어 있고, 얻기 어려운 것은 知己를 위해 죽는 일이니, 부디 염려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원략이 남쪽으로 도망가겠다는 태도를 견지하자, 조쌍이 從子 刁昌에게 원략을 전송해 長江을 건너보냈다. 그러자 梁나라가 원략을 중산왕에 책봉하였다.
目
【目】 예전에 柔然의 佗汗可汗이 伏名敦의 아내 候呂陵氏를 아내로 맞아들여 伏跋可汗과 郁久閭阿那瓌 등 여섯 아들을 낳았다.
注+① 伏名敦은 豆崙可汗의 이름이다.
伏跋이 可汗의 지위에 오른 뒤 어린 아들 郁久閭祖惠를 갑자기 잃어버렸는데, 무당 地萬이, “조혜가 지금 하늘나라에 있으니, 내가 불러낼 수 있다.”라고 하며, 큰 호수 가에 장막을 설치한 뒤 天神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조혜가 갑자기 장막에 나타나며 “언제나 하늘나라에 있었다.”라고 하였다.
복발이 크게 기뻐하여 지만을 聖女라 부르며 그녀를 아내로 받아들여 可賀敦으로 삼고, 그녀의 말을 믿었다. 그러자 그녀가 국정에 간여하여 어지러워졌다.
注+② 可는 음이 榼이다. 柔然의 군주를 可汗이라 하고 그 正室을 可賀敦이라 한다.
조혜가 다소 장성하여 모친에게 말하기를 “나는 일찍이 지만의 집에 있으니 하늘나라라는 말은 지만이 나에게 시킨 것이다.”라고 하자, 조혜의 모친이 이 사실을 복발에게 알렸지만 믿지 않았다.
이윽고 지만이 조혜를 모함해서 죽이자, 후려릉씨가 大臣 具列 등을 보내 지만을 살해하였다. 복발이 구렬을 죽이려 했으나, 때마침 阿至羅가 침략해와서 복발이 그들을 공격했다가 패하고 돌아왔다.
注+③ 阿至羅는 虜의 별종으로, 北河 동쪽에 살며 대대로 北魏에 더부살이하였다. 일설에 “阿至羅는 高車種이다.” 하였다.
후려릉씨가 대신들과 함께 복발을 살해한 뒤 그 아우 아나괴를 세워 可汗으로 삼았는데 아나괴가 왕위를 계승한 지 10일 되는 무렵 그의 族兄 郁久閭示發이 그를 공격하였다. 아나괴가 전투에 패하여 北魏로 도망가자 시발이 후려릉씨를 살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