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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5)

자치통감강목(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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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丑年(B.C. 44)
정축년(B.C. 44)
五年이라
[綱] 나라 효원황제孝元皇帝 초원初元 5년이다.
春正月 以周子南君으로 爲周承休侯注+承休侯, 名延, 其祖父姬嘉, 武帝元鼎四年, 封爲周子南君. 承休侯國, 在潁川郡.하다
봄 정월에 주자남군周子南君
주승휴후周承休侯(희연姬延)로 삼았다.注+승휴후承休侯는 이름이 이니, 그의 조부祖父 희가姬嘉무제武帝 원정元鼎 4년(B.C. 113)에 주자남군周子南君으로 봉해졌다. 승휴후承休侯의 나라는 영천군潁川郡에 있다.
◑ 三月 帝如雍하여 祠五畤하시다
[綱] 3월에 황제가 땅에 가서 오치五畤에 제사하였다.
◑ 夏四月 有星孛于參注+參, 所今切. 天文志 “參爲白虎. 三星直者, 是爲衡石. 下有三星銳曰罰, 爲斬艾事. 其外四星, 左右肩股也.”하다
[綱] 여름 4월에 패성孛星삼성參星에 나타났다.注+소금所今이다. 《한서漢書》 〈천문지天文志〉에 “삼성參星백호白虎에 속하니, 직선인 세 별은 형석衡石이라 하고, 아래 삼각형으로 뾰족한 세 별을 이라 하는데 죄인을 베는 것을 주관하고, 그 밖에 네 별은 좌우로 어깨와 다리처럼 벌려 있다.” 하였다.
◑ 六月 以貢禹 爲御史大夫하다
[綱] 6월에 공우貢禹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罷鹽鐵官, 常平倉及博士弟子員數하다
염철관鹽鐵官상평창常平倉박사博士제자弟子 인원을 없앴다.
用禹言하여 詔太官毋日殺하고 所具 各減半注+毋日殺, 謂不得日日宰殺也. 所具, 食具也.하고 罷角抵, 齊三服官, 北假田官, 鹽鐵官, 常平倉注+假, 如字. 北假, 地名.하고 博士弟子 毋置員하고 民有通一經者 皆復注+武帝爲博士官, 置弟子五十人. 昭帝增弟子, 員滿百人. 宣帝末, 增倍之. 今不限員數, 以廣學者, 後數年以用度不足, 更爲設員千人. 復, 方目切.하고省刑罰七十餘事하다
[目] 공우貢禹의 말을 따라 조령詔令을 내려 태관太官에서 매일 짐승을 잡지 못하게 하고, 황제의 음식을 담는 기물들을 각각 반으로 줄였으며,注+무일살毋日殺”은 날마다 짐승을 잡지 못하게 함을 이른다. “소구所具”는 음식을 담는 도구이다. 씨름 놀이를 파하고, 나라 삼복三服의 관사와 북가北假전관田官염철관鹽鐵官상평창常平倉을 없앴으며,注+본음本音대로 읽으니, 북가北假지명地名이다.박사博士제자弟子를 일정한 인원수를 두지 말고 백성 중에 한 경전經典을 통달한 자가 있으면 모두 부역을 면제하고注+무제武帝박사관博士官제자弟子 50명을 두었었는데, 소제昭帝제자弟子를 증원하여 滿 100명이 되게 하였고, 선제宣帝 말년에 그 수를 곱절로 증가하였다. 인원수를 제한하지 아니하여 학자들을 늘렸었는데, 수년 뒤에 경비가 부족하므로 다시 인원수를 천 명으로 제한하였다. (부역을 면제하다)은 방목方目이다. 70여 가지의 형벌을 줄여주었다.
禹尋卒하다
얼마 후에 공우貢禹하였다.
匈奴郅支單于殺漢使者하고 西走康居하다
[綱] 흉노匈奴질지선우郅支單于나라 사자使者를 죽이고 서쪽 강거康居로 도망하였다.
郅支單于自以道遠하고 又怨漢擁護呼韓邪而不助己하여 困辱漢使者江乃始等하고 遣使求侍子하다
[目] 질지선우郅支單于나라와 길이 멀다고 생각하였고, 또 나라가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를 옹호하고 자기를 돕지 않는 것을 원망해서 나라 사자使者강내시江乃始 등을 곤궁하게 하여 욕을 보이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황제를 모시고 있는 자기 아들을 돌려보낼 것을 요구하였다.
議遣衛司馬谷吉送之注+谷, 姓也.러니
나라에서는 의논하여 위사마衛司馬 곡길谷吉을 보내어 그를 돌려보내기로 하였는데,注+이다.
貢禹, 匡衡 以爲郅支 鄕化未醇하고 所在絶遠하니 宜令使者 送其子하여 至塞而還이라호되
공우貢禹광형匡衡이 이르기를 “질지선우는 귀의하여 복종하는 마음이 순수하지 못하고 저들이 있는 곳이 매우 머니, 사자使者에게 질지선우의 아들을 전송하여 변방까지만 갔다가 돌아오게 해야 한다.” 하였으나,
願送至庭이어늘 許之注+庭, 郅支單于庭也.러니
곡길이 질지선우의 왕정王庭까지 전송하러 갈 것을 원하였으므로 이를 허락하였다.注+질지선우郅支單于왕정王庭이다.
旣至 郅支殺之하다
도착하자, 질지선우가 곡길을 죽였다.
自知負漢하고 又聞呼韓邪益彊하고 恐見襲擊이러니 康居王數爲烏孫所困하여 遣使迎郅支하여 欲與合兵取烏孫하다
질지선우는 스스로 나라를 배신했음을 알고 또 호한야선우가 더욱 강성해졌다는 말을 듣고는 습격을 당할까 두려워했는데, 마침 강거왕康居王이 자주 오손烏孫에게 곤궁을 당하고는 사자使者를 보내어 질지선우를 맞이해서 함께 병력을 연합하여 오손을 점령하고자 하였다.
郅支數怨烏孫하여 遂引兵西러니 衆寒道死하고 餘三千人注+道死, 死於道上也.이러라
질지선우는 자주 오손을 원망하였으므로 마침내 병력을 이끌고 서쪽으로 출동하였는데, 병사들이 추위로 도중에 죽고 겨우 3천여 명만 남았다.注+도사道死”는 길 위에서 죽은 것이다.
康居王 以女妻郅支하고 甚尊敬之하여 欲倚其威以脅諸國이러니
강거왕康居王은 딸을 질지선우에게 시집보내고 질지선우를 몹시 존경해서 그의 위엄을 빌어 여러 나라를 위협하고자 하였다.
郅支數擊烏孫하여 至赤谷城하니 烏孫西邊 空虛不居者五千里注+西域傳 “烏孫國, 治赤谷城, 西至康居蕃地五千里.” 若云空虛者五千里, 則自赤谷以西皆不居矣, 此已抵其國都, 不得居西邊也. 陳湯傳, 作且千里, 當從之.러라
질지선우가 여러 번 오손을 공격하여 적곡성赤谷城에 이르니, 오손의 서쪽 변방이 텅 비어서 거주하지 않은 곳이 5천 리(거의 천 리)에 이르렀다.注+한서漢書》 〈서역전西域傳〉에 “오손국烏孫國치소治所적곡성赤谷城인데, 서쪽으로 강거康居의 오랑캐 땅에 이르기까지 5,000리이다.”라고 하였으니, 만약 텅 비어 있는 땅이 5,000리라고 한다면 적곡성赤谷城 서쪽이 모두 사람이 거주하지 않는 것이니, 이는 이미 그 국도國都에 이르러 서쪽 변방에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한서漢書》 〈진탕전陳湯傳〉에는 ‘거의 천 리가 된다.’고 하였으니, 마땅히 이를 따라야 한다.
역주
역주1 周子南君을……삼았다 : 漢 武帝 元鼎 4년(B.C. 113)에 周나라 후손인 姬嘉를 周子南君으로 봉하여 周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자치통감강목(5)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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