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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2)

자치통감강목(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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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卯年(B.C. 246)
을묘년(B.C. 246)
秦王政元 楚十七 燕九 魏三十一 趙二十 韓二十七 齊十九年이라
나라 왕 원년, 나라 고열왕考烈王 17년, 나라 왕 9년, 나라 안희왕安釐王 31년, 나라 효성왕孝成王 20년, 나라 환혜왕桓惠王 27년, 나라 왕 19년이다.
鑿涇水爲渠하다
[綱] 나라가 경수涇水를 파서 수로水路를 만들었다.
欲疲秦하야 使無東伐하야
[目] 나라가 나라를 지치게 만들어 동쪽으로 정벌을 못하게 하려고 하였다.
乃使水工鄭國으로 爲間於秦注+鄭國能治水, 故曰水工.하야 鑿涇水호대 自仲山爲渠하야 竝北山하야 東注洛이러니
이에 수공水工 정국鄭國나라에 간첩으로 보내어注+정국鄭國치수治水에 능하였으므로 수공水工이라고 하였다.경수涇水를 파게 하되 중산仲山에서부터 수로를 만들어 북산北山을 따라 동쪽으로 낙수洛水에 흘러들어 가게 하였다.
中作而覺하야 欲殺之注+班志 “涇水出安定郡涇陽縣西幵頭山, 東至馮翊陽陵縣入渭.” 師古曰 “仲山, 卽今九嵕之東仲山也.” 竝, 與傍通, 近也, 倚也. 師古曰 “洛水, 卽馮翊漆沮水.” 中作, 謂用功中道, 事未竟也. 覺, 露也, 韓之謀露也.어늘 曰 臣 爲韓延數年之命이어니와 然渠成이면 亦秦萬世之利也라한대
공사하는 중간에 발각되어 정국鄭國을 죽이고자 하였는데,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경수涇水안정군安定郡 경양현涇陽縣의 서쪽 견두산幵頭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풍익馮翊 양릉현陽陵縣에 이르러 위수渭水로 흘러든다.”고 하였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중산仲山은 곧 지금 구종九嵕동중산東仲山이다.” 하였다. 과 통하니, 가깝다는 뜻이고, 기댄다는 뜻이다.
안사고가 말하기를 “낙수洛水는 곧 풍익馮翊칠저수漆沮水이다.” 하였다. “중작中作”은 공사의 중간, 일이 완성되기 전을 말한다. 은 드러난다는 뜻이니, 나라의 계책이 탄로난 것이다.
정국이 말하기를 “신이 나라를 위해 몇 년의 운명을 연장해주었지만, 수로가 완성되면 또한 나라의 영구한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였다.
乃使卒爲之하야 注塡閼之水하야 漑舃鹵之地하니 四萬餘頃이라
이에 그로 하여금 마침내 수로를 완성토록 하여 막혔던 물길을 끌어다 개펄에 물을 대니, 4만여 이었다.
收皆畝一鍾하니 由是 益富饒注+注, 引也. 閼, 讀曰淤, 於據切. 塡閼, 謂壅泥也. 漑, 灌也. 舃, 與潟同, 鹵也. 鹵, 亦作滷, 醎滷也. 言引淤濁之水, 灌醎鹵之田, 更令肥美也. 頃, 田百畝也. 古者, 百步爲畝. 秦漢以降, 二百四十步爲畝. 饒, 有餘裕也.하다
수확이 매 마다 1이나 되었는데, 이로 인해 나라가 더욱 부유해졌다.注+는 끌어다 댄다는 뜻이다. (진흙)는 로 읽으니, 어거於據이다. “전어塡閼”는 막혔다는 뜻이다. 는 물을 댄다는 뜻이다. 과 같으니, 개펄이다. 라고 쓰니, 짠물이 밴 개펄이다. 흙탕물을 끌어다 개펄의 밭에 물을 대어 다시 비옥해지도록 했음을 말한다. 은 밭 100묘이다. 옛날에 100보를 1묘라고 하였는데, 진한秦漢 이후로는 240보를 1묘라고 하였다. 는 여유가 있는 것이다.
역주
역주1 : 토지 면적의 단위이다. 100畝를 1경이라고도 하고, 12묘 반을 1경이라고도 한다.
역주2 : 토지 면적의 단위이다. 秦나라 때에는 5尺을 1步라 하고, 240보를 1묘라고 하였다.
역주3 : 용량의 단위이다. 杜預의 설에 의하면, 6斛 4斗가 1鍾이라고 한다.

자치통감강목(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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