目
[目] 王彌가 도망하고 흩어진 병졸들을 거두어 모아 군대의 기세가 다시 크게 진작되니,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보내어 郡縣을 공격해서 함락하고 마침내 許昌으로 쳐들어갔다.
張軌가
督護인
北宮純을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京師를 호위하게 하였는데,
注+北宮은 複姓이다. 왕미가
轘轅으로 쳐들어와서
伊水 북쪽에서
官軍을 패퇴시키고 마침내
洛陽에 이르렀다.
注+伊北은 伊水의 북쪽이다.
王衍이 군대를 감독하여 출전하였는데, 북궁순이 용사 백여 명을 모집하여 적진을 돌격하니, 왕미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建春門을 불태우고 동쪽으로 달아났다.
왕연이 左衛將軍 王秉을 보내어 추격하게 해서 七里澗에서 싸워 또다시 왕미를 패퇴시켰다.
왕미가
平陽郡으로 달아나니,
注+平陽은 郡의 이름이니, 司州에 속하였다. 漢王 劉淵이
侍中을 보내어 교외에서 왕미를 맞이하게 하고 명령하기를 “내가 친히 장군의 관사에 행차하여 자리를 청소하고 술잔을 씻어서 공경히 장군을 기다리겠다.”
注+行(행차하다)은 下孟의 切이니, 〈“親行”은〉 親臨한다는 뜻이다. 하였다.
왕미가 도착하자, 유연은 그를 司隷校尉로 제수하였다. 황제가 詔令을 내려 장궤를 西平郡公으로 봉하니, 장궤는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이때 각 州郡의 使者들 중에 京師에 오는 자가 없었는데, 장궤만이 홀로 계속하여 공물을 바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