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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3)

자치통감강목(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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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卯年(295)
五年이라 夏六月 하다
深五寸이라
◑冬十月 하다
焚累代之寶及二百萬人器械하다
索頭分其國하여 爲三部하다
一居上谷之北, 濡源之西하니 祿官 自統之注+濡, 乃官切. 水經註 “濡水從塞外來入塞, 其發源之地, 遠在北荒中. 至後魏太武帝時, 置禦夷鎭於濡源之西北.” 上年拓跋弗卒, 叔父祿官立, 弗, 悉祿弟, 綽之子也.하고 一居代郡參合陂之北하니 使兄子猗㐌統之注+參合陂, 在代郡參合縣. 後漢‧晉省參合縣, 拓跋魏復置縣, 屬梁城郡. 兄卽沙漠汗. 猗, 於宜切, 㐌, 音駞.하고
一居定襄之盛樂故城하니 使猗㐌弟猗盧統之하다 代人衛操與從子雄 及同郡箕澹으로 往依拓跋氏하고
說猗㐌, 猗盧하여 招納晉人注+箕澹, 姓名.한대 猗㐌悅之하여 任以國事하니 晉人附者稍衆이러라


乙卯年(295)
[] 나라 孝惠皇帝 元康 5년이다. 여름 6월에 동해에 우박이 내렸다.
[] 깊이가 5이었다.
[] 荊州, 揚州, 兗州, 豫州, 靑州, 徐州에 홍수가 졌다.
[] 겨울 10월에 무기고에 불이 났다.
[] 累代의 보물과 2백만 병사의 병기를 소실하였다.
[] 索頭部(鮮卑 拓跋部)가 그 나라를 나누어 세 로 만들었다.
[] 하나는 上谷의 북쪽 濡源(난원)의 서쪽에 거주하니 拓跋祿官이 직접 통솔하였고,注+乃官이다. ≪水經註≫에 “濡水는 변방 밖에서 흘러와 변방으로 들어오니, 발원지는 멀리 북쪽 변방 가운데에 있다. 後魏(北魏) 太武帝 때에 이르러 禦夷鎭濡水 발원지의 서북쪽에 설치하였다.”라고 하였다. 上年(몇 년 전)에 拓跋弗이 죽고 숙부인 拓跋祿官이 즉위하였으니, 탁발불은 拓跋悉祿의 아우이고 拓跋綽의 아들이다. 하나는 代郡 參合陂의 북쪽에 거주하니 의 아들인 拓跋猗㐌(탁발의타)로 하여금 통솔하게 하였고,注+參合陂代郡 參合縣에 있었다. 後漢나라 때에는 삼합현을 없앴는데, 拓跋氏 나라가 다시 을 설치하여 梁城郡에 소속시켰다. 은 바로 拓跋沙漠汗이다. 於宜이고, 이다.
하나는 定襄盛樂 옛 성에 거주하니 탁발의타의 아우 拓跋猗盧로 하여금 이들을 통솔하게 하였다. 지역의 사람 衛操從子衛雄과 같은 사람인 箕澹과 함께 가서 拓跋氏에게 의탁하고는
탁발의타와 탁발의로를 설득해서 나라 사람들을 불러 받아들이게 하니,注+箕澹은 사람의 성명이다. 탁발의타가 그를 좋아해서 그에게 國事를 맡겼는바 나라 사람 중에 귀부하는 자가 점점 많아졌다.


역주
역주1 東海雨雹 : “≪資治通鑑綱目≫에 우박이 내린 것이 24번인데 이 뒤로는 쓴 것이 없으니, 이는 史官이 빠뜨린 것이다.[綱目書雹二十四 自是無書者矣 史失之也]” ≪書法≫
역주2 荊……徐州大水 : “이는 큰 이변이다. 홍수가 거의 천하의 절반에 이르렀다. ≪資治通鑑綱目≫이 끝날 때까지 홍수가 몇 州에 이어진 것이 11번인데 이보다 많은 적은 있지 않았다.[大異也 水殆半天下矣 終綱目 水連數州者十一 未有多於此者]” ≪書法≫
역주3 武庫火 : “이때에 累代의 보물과 2백만 병사의 병기를 소실하였으니, 큰 이변이다. ≪資治通鑑綱目≫에 무기고에 화재가 났다고 쓴 것이 1번이고(漢나라 安帝 元初 4년(117)) 무기고에 불이 났다고 쓴 것이 3번이니(漢나라 桓帝 延熹 4년(161), 이해(293), 唐나라 玄宗 天寶 10년(751)), 이해보다 더 심한 적은 없었다.[於是焚累代之寶及二百萬人器械 大變也 綱目書武庫災一(漢安帝元初四年) 武庫火三(漢桓帝延熹四年 是年 唐玄宗天寶十載) 莫甚於是年矣]” ≪書法≫

자치통감강목(13) 책은 2020.12.04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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