綱
燕上將軍樂毅以秦魏韓趙之師로 伐齊하야 入臨菑한대
目
燕이 悉起兵하야 使樂毅爲上將軍하야 幷將秦魏韓趙之師하야 以伐齊하야
戰于濟西
한대 齊師大敗
注+濟西, 濟水之西, 齊地.어늘
毅還秦韓之師
注+秦韓與齊隔遠, 故先還其師.하고 分魏師以略宋地
注+略地者, 行而取之, 用功力少. 宋地, 齊滅宋所取之地. 近於魏, 故使略之.하고 部趙師以收河間
注+河間近於趙, 故以方略部趙取之.하고 身率燕師
하야 長驅逐
注+逐北, 謂奔北者逐之. 人好陽而惡陰, 北方幽陰之地, 故軍師退敗奔走者曰北.러니
劇辛
이 曰
注+劇, 奇逆切, 姓也. 齊大燕小
로대
賴諸侯之助하야 以破其軍하니 宜及時하야 收取其邊城하야 以自益이니
今에 過而不攻하고 以深入爲名하니 無損於齊며 無益於我요 而結深怨이니
目
毅曰 齊王이 伐功矜能하고 謀不逮下하고 廢黜賢良하며 信任諂諛하야 政令戾虐한대 百姓怨懟하나니
今因其軍破而乘之면 則其民必叛이요 而齊를 可圖也라
若不遂乘之
하고 待彼悔前之非
하야 改過而撫其民則難慮矣
注+難慮, 謂難爲計慮也.라하고 遂進軍
하니 齊果大亂
하야 湣王
이 出走
어늘
毅入臨菑
하야 取寶物祭器
하야 輸之於燕
注+凡王者, 太祭祀, 必陳設文物‧軒車‧彛器等, 謂此爲祭器.한대 燕王
이 親至濟上
하야 勞軍行賞
注+勞, 去聲, 慰勞也.하고
封毅爲昌國君
注+班志 “昌國縣屬齊郡.” 封毅爲昌國君, 以其能昌大燕國也.하야 留徇齊城未下者
注+徇, 巡師宣令也.하다樂毅가 4국을 설득하여 齊나라를 멸하다
目
衛君
이 宮舍之
하고 稱臣共具
注+辟, 讀曰避. 共, 音供, 又居用切, 設也.호대 王
이 不遜
이어늘 衛人
이 侵之
한대
遂走莒
注+魯仲連傳 “湣王之魯, 夷維子從曰 ‘天子巡狩, 諸侯避舍.’ 魯人不納. 假途於鄒, 鄒君死, 欲入弔, 夷維子曰 ‘天子南面而弔.’ 鄒臣曰 ‘吾將伏劒死.’ 不敢入.” 莒, 春秋莒子之國. 漢爲莒縣, 城陽王所都.하다
楚使淖齒
로 將兵救齊
하고 因爲齊相
注+淖, 女敎‧竹角二切, 姓也.이러니
齒欲與燕分齊地
하야 乃執湣王而數之曰
注+數, 所具切, 一二而責之也. 千乘博昌之間方數百里
에 雨血沾衣
하니 王
이 知之乎
아 曰 知之
注+唐志 “千乘‧博昌二邑, 皆屬靑州.” 雨, 去聲, 自上及下曰雨.로라
嬴博之間
에 地坼及泉
하니 王
이 知之乎
아 曰 知之
注+嬴, 音盈. 班志 “嬴‧博二縣屬泰山郡.” 坼, 丑厄切, 裂也.로라
有人이 當闕而哭者어늘 求之不得하고 去則聞其聲하니
齒曰 雨血者는 天이 以告也요 地坼者는 地以告也요 當闕而哭者는 人이 以告也로대
而王
이 不戒焉
하니 何得無誅
리오하고 遂擢王筋
하야 懸之廟梁
하니 宿昔而死
注+擢, 抽出也. 宿昔, 一夕之間也.하다
樂毅聞畫邑人王蠋
의 賢
注+畫, 音獲, 又胡卦切, 齊西南近邑. 蠋, 音觸.하고 令軍中環畫三十里無入
注+環, 如字, 又音患, 繞也.하고 使人請蠋
한대
蠋
이 不往
이어늘 燕人
이 曰 不來
면 吾且屠畫
注+屠, 謂破取城郭, 誅殺其人, 如屠六畜然.호리라
蠋曰 吾聞忠臣은 不事二君이요 烈女는 不更二夫라하니
國破君亡
호대 吾不能存
하고 而又欲劫之以兵
하니 與其不義而生
으론 不若死
라하고 遂自經死
注+經, 縊也.하다
毅整軍禁侵掠
하고 禮逸民
하며 寬賦斂
하며 除暴令
하고 修舊政
하니 齊民
이 喜悅
注+掠, 音亮, 奪取也. 禮, 以禮遇之也. 逸, 遺. 逸民者, 無位之稱. 一說, 逸民者, 節行超逸也.하더라
乃遣左軍
하야 渡膠東東萊
注+膠東, 漢爲王國. 膠水之東, 爲膠東國. 膠水之西, 爲膠西國. 東萊, 春秋萊子之國. 漢置東萊郡.하고 前軍
은 循太山
하야 東至海
하야 略琅邪
注+循, 緣山而行也. 班志 “泰山在泰山郡博縣東北.” 琅邪, 音郎耶. 齊東南境上邑, 因琅邪山爲名. 其地東至海, 南距淮.하고 右軍
은 循河濟
하야 屯阿鄄
하야 以連魏師
注+阿, 卽東阿. 鄄, 卽鄄城. 皆齊地.하고 後軍
은 旁北海而撫千乘
注+旁, 去聲. 自臨淄東北至海, 北海地也. 漢置郡.하고 以中軍
으로 據臨菑而鎭齊都
하고 祀桓公管仲於郊
하고 封王蠋之墓
하니 六月之間
에 下齊七十餘城
하야 皆爲郡縣
注+下, 謂以兵威服人也.하다
目
得道以持之
면 則大安也
며 大榮也
라 積美之源也
요 不得道以持之
면 則大危也
며 大累也
注+累, 力僞切, 事相緣及也.라 有之不如無之
니 及其綦也
하얀 索爲匹夫
라도 不可得也
니
齊湣宋獻
이 是也
注+綦, 音其, 謂窮極之時. 宋獻, 卽宋君偃. 赧王二十九年, 稱康王, 此稱宋獻, 國滅之後, 其臣各私爲諡, 故不同.니라
綱
연燕나라
상장군上將軍 악의樂毅가
진秦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조趙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정벌하여
로 쳐들어갔다.
제齊나라의 임금
가 달아나자,
제齊나라의 재상인
요치淖齒가 그를 죽였다.
악의가 제齊나라 70여 성을 함락시키니, 연燕나라가 악의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았다.
目
[目]연燕나라가 군대를 모두 일으켜 악의樂毅를 상장군으로 삼고는 진秦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 조趙나라의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제齊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의 서쪽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제齊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注+① 제서濟西는 제수濟水의 서쪽으로, 제齊나라 땅이다.
악의가
진秦나라와
한韓나라의 군대를 돌려보내고
注+② 진秦나라와 한韓나라는 제齊나라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군대를 먼저 돌려보낸 것이다.,
위魏나라의 군대를 나누어
송宋나라 땅을 점령하도록 하였으며
注+③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가서 취하는 것이니, 들이는 힘이 적다. 송宋나라 땅은 제齊나라가 송宋나라를 멸망시키고 취한 땅이다. 위魏나라에 가까웠으므로 위魏나라 군대로 하여금 점령하게 하였다.,
조趙나라 군대를 배치하여
하간河間을 점거하도록 하고
注+④ 하간河間은 조趙나라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전략적으로 조趙나라 군대를 배치하여 취하게 한 것이다.는 자신은
연燕나라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말을 몰아 패잔병을 추격하였다.
注+⑤ 축북逐北는 패하여 도망가는 자를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양陽을 좋아하고 음陰을 싫어하는데, 북방은 어둡고 음한 땅이다. 그러므로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는 것을 ‘북北’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하기를
注+⑥ 극劇은 기역奇逆의 절切이니, 성姓이다., “
제齊나라는 크고
연燕나라는 작다.
제후의 도움에 힘입어서
제齊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니 제때에 변경의 성을 점령하여 우리의 상황을 이롭게 만들어야한다.
지금 제齊나라의 성읍을 지나치면서도 공격하지 않고,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명분을 삼고 있으니, 제齊나라에 손해될 것이 없고 우리에게 이득될 것이 없으면서 깊은 원한을 맺게 될 것이다.
目
[目] 이에 악의樂毅가 “제齊나라 왕은 자신의 공적과 재능을 자랑하고 계책을 세울 때에는 아랫사람과 상의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들을 파면하여 내쫓고 아첨꾼을 믿고 임용하여, 정책과 법령이 가혹하여 백성이 원망하고 있다.
지금 그 군대가 패한 것을 틈타 그 기회를 이용한다면 그 백성들이 반드시 반란할 것이니, 제齊나라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끝내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그가 지난 잘못을 후회하여 잘못을 고치고 백성을 위로하기를 기다린다면 좋은 계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
注+① 난려難慮는 계책이 되기 어려움을 말한다. 하고는 마침내 진군하니,
제齊나라가 과연 크게 어지러워져서
민왕湣王이 달아났다.
악의가
임치臨菑로 쳐들어가서 보물과
제기祭器를 취하여
연燕나라로 수송하니
注+② 무릇 왕은 큰 제사에 반드시 , , 등을 진설하는데, 이것들을 일컬어 제기祭器라고 한다.,
연燕나라 왕이 친히
제수濟水 가에까지 와서 군대를 위로하고 상을 내렸다.
注+③ 노勞는 거성去聲이니, 위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악의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아
注+④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창국현昌國縣은 제군齊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악의樂毅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은 것은 그가 연燕나라를 창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제齊나라에 머물며 아직 함락되지 않은 성을 돌면서 굴복시키도록 하였다.
注+⑤ 순徇은 군대를 돌며 명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目
위衛나라 임금이 궁을 비워 그를 머물게 하고는 신하를 자칭하며 물자를 공급해주었는데
注+① 피辟(피하다)는 피避라고 읽는다. 공共은 음이 공供이고, 또 거용居用의 절切이니, 설치한다는 뜻이다.제齊나라 왕이 불손하자
위衛나라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였다.
추鄒나라와 노魯나라로 달아나서도 여전히 교만한 기색이 있어서 추鄒나라와 노魯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마침내
거莒로 갔다.
注+② 거莒는 춘추시대 의 나라이다. 한漢나라 때에 거현莒縣으로 삼았으니, 의 도읍이다.
초楚나라가
요치淖齒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제齊나라를 구원하게 하고는 그대로
제齊나라의 재상으로 삼았다.
注+③ 요淖는 여교女敎의 절切이고 죽각竹角의 절切이니, 성姓이다.
요치가
연燕나라와 함께
제齊나라의 땅을 나누고자 하여
민왕湣王을 사로잡고서 따지기를
注+④ 수數는 소구所具의 절切이니, 하나하나 따진다는 뜻이다., “
천승千乘과
박창博昌 사이 사방 수백 리 지역에 핏빛의 비가 내려 옷을 적실 정도였는데,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
注+⑤ 《당서唐書》 〈지리지地理志〉에 “천승千乘과 박창博昌 두 읍은 모두 청주靑州에 속한다.”고 하였다. 우雨는 거성去聲이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우雨라고 한다.
“
영嬴과
박博 사이에 땅이 갈라져 지하수가 있는 곳까지 이를 정도였는데,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
注+⑥ 영嬴은 음이 영盈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영嬴과 박博 두 현은 태산군泰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탁坼은 축액丑厄의 절切이니, 갈라진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궁궐문에서 울어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사람들이 궁궐문을 떠난 뒤에 그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
요치가 말하기를 “핏빛의 비가 내린 것은 하늘이 알려준 것이고, 땅이 갈라진 것은 땅이 알려준 것이고, 궁궐 앞에서 운 것은 사람이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도 왕이 경계하지 않으니 어찌 주벌이 없으리오?” 하고는 마침내 민왕의 늑골을 뽑고서 종묘의 대들보에 매달아두니 하루 저녁 만에 죽었다.
注+⑦ 탁擢은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숙석宿昔은 하루저녁 사이이다.
[目]
악의樂毅가
획읍畫邑 사람
왕촉王蠋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注+① 획畫은 음이 획獲이고, 또 호괘胡卦의 절切이니, 제齊나라 서남쪽의 가까운 읍이다. 촉蠋은 음이 촉觸이다. 군대로 하여금 획읍의 주위 30리를 에워싸 출입을 못하게 하고는
注+② 환環은 본음대로 읽고, 또는 음이 환患이니, 에워싼다는 뜻이다. 사람을 보내 왕촉을 초청하였다.
齊나라 충신忠臣 王蠋이 자결하다
왕촉이 가지 않자
연燕나라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들이 장차 획읍을 도륙할 것이다.”
注+③ 도屠는 성곽을 파괴하고 그곳의 사람을 죽이기를 마치 을 도살하듯이 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왕촉은 “내가 듣자니,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烈女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다.
제齊나라 왕이 나의 간언을 채용하지 않아 내가 초야로 물러나 밭을 갈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죽었는데 내가 살 수가 없고, 또 군대로 위협하고자 하니, 의롭지 못하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
注+④ 경經은 목을 맨다는 뜻이다.
악의가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을 금지하고 숨어 사는 어진 백성을 예우하며
부세賦稅를 경감하고 가혹한 법령을 제거하며 옛 정책을 보완하니,
제齊나라의 백성들이 기뻐하였다.
注+⑤ 약掠은 음이 양亮이니, 탈취한다는 뜻이다. 예禮는 예우한다는 뜻이다. 일逸은 빠뜨린다는 뜻이다. 일민逸民은 지위가 없는 자를 일컫는다. 일설에 의하면, 일민逸民은 지조와 행실이 뛰어난 자이다.
그리고는
좌군左軍을 파견하여
교동膠東과
동래東萊로 건너가도록 하고
注+⑥ 교동膠東은 한漢나라 때에 제후왕의 나라가 되었다. 교수膠水의 동쪽이 교동국膠東國이고, 교수膠水의 서쪽이 교서국膠西國이다. 동래東萊는 춘추시대 내자萊子의 나라이다. 한漢나라 때에 동래군東萊郡을 두었다.,
전군前軍은
태산太山을 따라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낭야琅邪를 점령하도록 하고
注+⑦ 순循은 산을 따라서 간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태산泰山은 태산군泰山郡 박현博縣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낭야琅邪는 음이 낭야郎耶이다. 제齊나라 동남쪽 국경 가에 있는 읍으로, 낭야산琅邪山으로 인해 이름을 삼았다. 그 땅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 회수淮水에 이른다.,
우군右軍은
황하黃河와
제수濟水를 따라
아阿와
견鄄에 주둔하여
위魏나라 군대와 연결하도록 하고
注+⑧ 아阿는 곧 동아東阿이고 견鄄은 곧 견성鄄城이니, 모두 제齊나라 땅이다.,
후군後軍은
북해北海를 근거로
천승千乘을 다스리도록 하고
注+⑨ 방旁(의지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임치臨淄 동북쪽으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곳까지가 북해北海의 땅이다. 한漢나라 때에 군郡을 두었다.,
중군中軍을
임치臨菑를 근거로
제齊나라의 도성을 수비하도록 하였으며,
환공桓公과
관중管仲을 교외에서 제사하고 왕촉의 묘를 보수하게 하니, 6개월 사이에
제齊나라 70여 성을 굴복시켜 모두
군현郡縣으로 삼았다.
注+⑩ 하下는 군대의 위력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目
“국가라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이로운 그릇이고, 임금이라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이로운 권세이다.
올바른 방법을 얻어 유지하면 크게 편안하고 크게 영화로워서
미덕美德을 쌓는 근원이 되지만, 올바른 방법을 얻어 유지하지 못하면 크게 위태롭고 크게 해를 끼치게 되어
注+① 누累는 역위力僞의 절切이니, 일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있는 것이 없느니만 못하게 될 것이니, 극에 이르러서는 필부가 되기를 바라더라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다.
齊나라 湣王과 宋나라 獻王이 이러한 사람들이다.”注+② 기綦는 음이 기其이니, 궁극의 시점을 말한다. 송宋나라 헌왕獻王은 송宋나라 임금 언偃이다. 난왕赧王 29년에서는 강왕康王이라고 부르고 여기서는 송宋나라 헌왕獻王이라고 불렀는데, 나라가 멸망한 뒤에 그의 신하들이 각자 사사로이 시호를 지었으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
綱
[綱]
진秦나라,
위魏나라,
한韓나라가
에서 회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