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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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周 赧王 31년~周 赧王 59년
丁丑年(B.C.284)
三十一年이라
燕上將軍樂毅以秦魏韓趙之師 伐齊하야 入臨菑한대
齊君地出走어늘 其相淖齒殺之하다
毅下齊七十餘城하니 封毅爲昌國君하다
悉起兵하야 使樂毅爲上將軍하야 幷將秦魏韓趙之師하야 以伐齊하야
戰于濟西한대 齊師大敗注+濟西, 濟水之西, 齊地.어늘
毅還秦韓之師注+秦韓與齊隔遠, 故先還其師.하고 分魏師以略宋地注+略地者, 行而取之, 用功力少. 宋地, 齊滅宋所取之地. 近於魏, 故使略之.하고 部趙師以收河間注+河間近於趙, 故以方略部趙取之.하고 身率燕師하야 長驅逐注+逐北, 謂奔北者逐之. 人好陽而惡陰, 北方幽陰之地, 故軍師退敗奔走者曰北.러니
劇辛注+劇, 奇逆切, 姓也. 齊大燕小로대
賴諸侯之助하야 以破其軍하니 宜及時하야 收取其邊城하야 以自益이니
此長久之利也어늘
過而不攻하고 以深入爲名하니 無損於齊 無益於我 而結深怨이니
後必悔之리라
毅曰 齊王 伐功矜能하고 謀不逮下하고 廢黜賢良하며 信任諂諛하야 政令戾虐한대 百姓怨懟하나니
今因其軍破而乘之 則其民必叛이요 而齊 可圖也
若不遂乘之하고 待彼悔前之非하야 改過而撫其民則難慮矣注+難慮, 謂難爲計慮也.라하고 遂進軍하니 齊果大亂하야 湣王 出走어늘
毅入臨菑하야 取寶物祭器하야 輸之於燕注+凡王者, 太祭祀, 必陳設文物‧軒車‧彛器等, 謂此爲祭器.한대 燕王 親至濟上하야 勞軍行賞注+勞, 去聲, 慰勞也.하고
封毅爲昌國君注+班志 “昌國縣屬齊郡.” 封毅爲昌國君, 以其能昌大燕國也.하야 留徇齊城未下者注+徇, 巡師宣令也.하다
樂毅가 4국을 설득하여 齊나라를 멸하다樂毅가 4국을 설득하여 齊나라를 멸하다
齊王 之衛한대
衛君 宮舍之하고 稱臣共具注+辟, 讀曰避. 共, 音供, 又居用切, 設也.호대 不遜이어늘 衛人 侵之한대
去奔鄒魯하야 又有驕色이어늘 鄒魯不納한대
遂走莒注+魯仲連傳 “湣王之魯, 夷維子從曰 ‘天子巡狩, 諸侯避舍.’ 魯人不納. 假途於鄒, 鄒君死, 欲入弔, 夷維子曰 ‘天子南面而弔.’ 鄒臣曰 ‘吾將伏劒死.’ 不敢入.” 莒, 春秋莒子之國. 漢爲莒縣, 城陽王所都.하다
楚使淖齒 將兵救齊하고 因爲齊相注+淖, 女敎‧竹角二切, 姓也.이러니
齒欲與燕分齊地하야 乃執湣王而數之曰注+數, 所具切, 一二而責之也. 千乘博昌之間方數百里 雨血沾衣하니 知之乎 曰 知之注+唐志 “千乘‧博昌二邑, 皆屬靑州.” 雨, 去聲, 自上及下曰雨.로라
嬴博之間 地坼及泉하니 知之乎 曰 知之注+嬴, 音盈. 班志 “嬴‧博二縣屬泰山郡.” 坼, 丑厄切, 裂也.로라
有人 當闕而哭者어늘 求之不得하고 去則聞其聲하니
知之乎 曰 知之로라
齒曰 雨血者 以告也 地坼者 地以告也 當闕而哭者 以告也로대
而王 不戒焉하니 何得無誅리오하고 遂擢王筋하야 懸之廟梁하니 宿昔而死注+擢, 抽出也. 宿昔, 一夕之間也.하다
樂毅聞畫邑人王蠋注+畫, 音獲, 又胡卦切, 齊西南近邑. 蠋, 音觸.하고 令軍中環畫三十里無入注+環, 如字, 又音患, 繞也.하고 使人請蠋한대
不往이어늘 燕人 曰 不來 吾且屠畫注+屠, 謂破取城郭, 誅殺其人, 如屠六畜然.호리라
蠋曰 吾聞忠臣 不事二君이요 烈女 不更二夫라하니
齊王 不用吾諫이라 吾退耕於野러니
國破君亡호대 吾不能存하고 而又欲劫之以兵하니 與其不義而生으론 不若死라하고 遂自經死注+經, 縊也.하다
毅整軍禁侵掠하고 禮逸民하며 寬賦斂하며 除暴令하고 修舊政하니 齊民 喜悅注+掠, 音亮, 奪取也. 禮, 以禮遇之也. 逸, 遺. 逸民者, 無位之稱. 一說, 逸民者, 節行超逸也.하더라
乃遣左軍하야 渡膠東東萊注+膠東, 漢爲王國. 膠水之東, 爲膠東國. 膠水之西, 爲膠西國. 東萊, 春秋萊子之國. 漢置東萊郡.하고 前軍 循太山하야 東至海하야 略琅邪注+循, 緣山而行也. 班志 “泰山在泰山郡博縣東北.” 琅邪, 音郎耶. 齊東南境上邑, 因琅邪山爲名. 其地東至海, 南距淮.하고 右軍 循河濟하야 屯阿鄄하야 以連魏師注+阿, 卽東阿. 鄄, 卽鄄城. 皆齊地.하고 後軍 旁北海而撫千乘注+旁, 去聲. 自臨淄東北至海, 北海地也. 漢置郡.하고 以中軍으로 據臨菑而鎭齊都하고 祀桓公管仲於郊하고 封王蠋之墓하니 六月之間 下齊七十餘城하야 皆爲郡縣注+下, 謂以兵威服人也.하다
荀子曰
國者 天下之利用也 人主者 天下之利勢也
得道以持之 則大安也 大榮也 積美之源也 不得道以持之 則大危也 大累也注+累, 力僞切, 事相緣及也. 有之不如無之 及其綦也하얀 索爲匹夫라도 不可得也
齊湣宋獻 是也注+綦, 音其, 謂窮極之時. 宋獻, 卽宋君偃. 赧王二十九年, 稱康王, 此稱宋獻, 國滅之後, 其臣各私爲諡, 故不同.니라
秦魏韓 會于京師하다


주 난왕 31년~주 난왕 59년
[綱]나라 난왕赧王 31년이다.
나라 상장군上將軍 악의樂毅나라, 나라, 나라,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나라를 정벌하여 로 쳐들어갔다.
나라의 임금 가 달아나자, 나라의 재상인 요치淖齒가 그를 죽였다.
악의가 나라 70여 성을 함락시키니, 나라가 악의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았다.
[目]나라가 군대를 모두 일으켜 악의樂毅를 상장군으로 삼고는 나라, 나라, 나라, 나라의 군대를 아울러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의 서쪽에서 전투를 벌였는데, 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注+제서濟西제수濟水의 서쪽으로, 나라 땅이다.
악의가 나라와 나라의 군대를 돌려보내고注+나라와 나라는 나라와 거리가 멀었다. 그러므로 그 나라의 군대를 먼저 돌려보낸 것이다., 나라의 군대를 나누어 나라 땅을 점령하도록 하였으며注+③ 땅을 점령한다는 것은 가서 취하는 것이니, 들이는 힘이 적다. 나라 땅은 나라가 나라를 멸망시키고 취한 땅이다. 나라에 가까웠으므로 나라 군대로 하여금 점령하게 하였다., 나라 군대를 배치하여 하간河間을 점거하도록 하고注+하간河間나라에 가까웠다. 그러므로 전략적으로 나라 군대를 배치하여 취하게 한 것이다.는 자신은 나라 군대를 이끌고 곧바로 말을 몰아 패잔병을 추격하였다.注+축북逐北는 패하여 도망가는 자를 쫓아가는 것을 말한다. 사람은 을 좋아하고 을 싫어하는데, 북방은 어둡고 음한 땅이다. 그러므로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는 것을 ‘’라고 하는 것이다.
이 말하기를注+기역奇逆이니, 이다., “나라는 크고 나라는 작다.
제후의 도움에 힘입어서 나라의 군대를 격파하였으니 제때에 변경의 성을 점령하여 우리의 상황을 이롭게 만들어야한다.
이것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이익이다.
지금 나라의 성읍을 지나치면서도 공격하지 않고, 내부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으로 명분을 삼고 있으니, 나라에 손해될 것이 없고 우리에게 이득될 것이 없으면서 깊은 원한을 맺게 될 것이다.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리라.” 하였다.
[目] 이에 악의樂毅가 “나라 왕은 자신의 공적과 재능을 자랑하고 계책을 세울 때에는 아랫사람과 상의하지 않으며, 어진 사람들을 파면하여 내쫓고 아첨꾼을 믿고 임용하여, 정책과 법령이 가혹하여 백성이 원망하고 있다.
지금 그 군대가 패한 것을 틈타 그 기회를 이용한다면 그 백성들이 반드시 반란할 것이니, 나라를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끝내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그가 지난 잘못을 후회하여 잘못을 고치고 백성을 위로하기를 기다린다면 좋은 계책이라고 하기 어려울 것이다.”注+난려難慮는 계책이 되기 어려움을 말한다. 하고는 마침내 진군하니, 나라가 과연 크게 어지러워져서 민왕湣王이 달아났다.
악의가 임치臨菑로 쳐들어가서 보물과 제기祭器를 취하여 나라로 수송하니注+② 무릇 왕은 큰 제사에 반드시 , , 등을 진설하는데, 이것들을 일컬어 제기祭器라고 한다., 나라 왕이 친히 제수濟水 가에까지 와서 군대를 위로하고 상을 내렸다.注+거성去聲이니, 위로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악의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아注+④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창국현昌國縣제군齊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악의樂毅를 봉하여 창국군昌國君으로 삼은 것은 그가 나라를 창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나라에 머물며 아직 함락되지 않은 성을 돌면서 굴복시키도록 하였다.注+은 군대를 돌며 명령을 선포하는 것이다.
[目]나라 왕이 나라로 갔다.
나라 임금이 궁을 비워 그를 머물게 하고는 신하를 자칭하며 물자를 공급해주었는데注+(피하다)는 라고 읽는다. 은 음이 이고, 또 거용居用이니, 설치한다는 뜻이다.나라 왕이 불손하자 나라 사람들이 그를 공격하였다.
나라와 나라로 달아나서도 여전히 교만한 기색이 있어서 나라와 나라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라가 요치淖齒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나라를 구원하게 하고는 그대로 나라의 재상으로 삼았다.注+여교女敎이고 죽각竹角이니, 이다.
요치가 나라와 함께 나라의 땅을 나누고자 하여 민왕湣王을 사로잡고서 따지기를注+소구所具이니, 하나하나 따진다는 뜻이다., “천승千乘박창博昌 사이 사방 수백 리 지역에 핏빛의 비가 내려 옷을 적실 정도였는데,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注+⑤ 《당서唐書》 〈지리지地理志〉에 “천승千乘박창博昌 두 읍은 모두 청주靑州에 속한다.”고 하였다. 거성去聲이니,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라고 한다.
사이에 땅이 갈라져 지하수가 있는 곳까지 이를 정도였는데,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注+은 음이 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 두 현은 태산군泰山郡에 속한다.”고 하였다. 축액丑厄이니, 갈라진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궁궐문에서 울어 사람들이 그 소리를 듣고는 그를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사람들이 궁궐문을 떠난 뒤에 그 울음소리가 다시 들렸다.
왕은 그 사실을 아는가?” 하니, 민왕이 안다고 하였다.
요치가 말하기를 “핏빛의 비가 내린 것은 하늘이 알려준 것이고, 땅이 갈라진 것은 땅이 알려준 것이고, 궁궐 앞에서 운 것은 사람이 알려준 것이다.
그런데도 왕이 경계하지 않으니 어찌 주벌이 없으리오?” 하고는 마침내 민왕의 늑골을 뽑고서 종묘의 대들보에 매달아두니 하루 저녁 만에 죽었다.注+은 끄집어낸다는 뜻이다. 숙석宿昔은 하루저녁 사이이다.
[目]악의樂毅획읍畫邑 사람 왕촉王蠋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注+은 음이 이고, 또 호괘胡卦이니, 나라 서남쪽의 가까운 읍이다. 은 음이 이다. 군대로 하여금 획읍의 주위 30리를 에워싸 출입을 못하게 하고는注+은 본음대로 읽고, 또는 음이 이니, 에워싼다는 뜻이다. 사람을 보내 왕촉을 초청하였다.
齊나라 충신忠臣 王蠋이 자결하다齊나라 충신忠臣 王蠋이 자결하다
왕촉이 가지 않자 나라 사람들이 “오지 않으면 우리들이 장차 획읍을 도륙할 것이다.”注+는 성곽을 파괴하고 그곳의 사람을 죽이기를 마치 을 도살하듯이 한다는 말이다. 하였다.
왕촉은 “내가 듣자니, 충신忠臣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고 열녀烈女는 두 남편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다.
나라 왕이 나의 간언을 채용하지 않아 내가 초야로 물러나 밭을 갈게 되었다.
나라가 망하고 임금이 죽었는데 내가 살 수가 없고, 또 군대로 위협하고자 하니, 의롭지 못하게 사는 것이 죽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고는 마침내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다.注+은 목을 맨다는 뜻이다.
악의가 군대를 정돈하여 침략을 금지하고 숨어 사는 어진 백성을 예우하며 부세賦稅를 경감하고 가혹한 법령을 제거하며 옛 정책을 보완하니, 나라의 백성들이 기뻐하였다.注+은 음이 이니, 탈취한다는 뜻이다. 는 예우한다는 뜻이다. 은 빠뜨린다는 뜻이다. 일민逸民은 지위가 없는 자를 일컫는다. 일설에 의하면, 일민逸民은 지조와 행실이 뛰어난 자이다.
그리고는 좌군左軍을 파견하여 교동膠東동래東萊로 건너가도록 하고注+교동膠東나라 때에 제후왕의 나라가 되었다. 교수膠水의 동쪽이 교동국膠東國이고, 교수膠水의 서쪽이 교서국膠西國이다. 동래東萊는 춘추시대 내자萊子의 나라이다. 나라 때에 동래군東萊郡을 두었다., 전군前軍태산太山을 따라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러 낭야琅邪를 점령하도록 하고注+은 산을 따라서 간다는 뜻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태산泰山태산군泰山郡 박현博縣 동북쪽에 있다.”고 하였다. 낭야琅邪는 음이 낭야郎耶이다. 나라 동남쪽 국경 가에 있는 읍으로, 낭야산琅邪山으로 인해 이름을 삼았다. 그 땅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고 남쪽으로 회수淮水에 이른다., 우군右軍황하黃河제수濟水를 따라 에 주둔하여 나라 군대와 연결하도록 하고注+는 곧 동아東阿이고 은 곧 견성鄄城이니, 모두 나라 땅이다., 후군後軍북해北海를 근거로 천승千乘을 다스리도록 하고注+(의지하다)은 거성去聲이다. 임치臨淄 동북쪽으로부터 바다에 이르는 곳까지가 북해北海의 땅이다. 나라 때에 을 두었다., 중군中軍임치臨菑를 근거로 나라의 도성을 수비하도록 하였으며, 환공桓公관중管仲을 교외에서 제사하고 왕촉의 묘를 보수하게 하니, 6개월 사이에 나라 70여 성을 굴복시켜 모두 군현郡縣으로 삼았다.注+는 군대의 위력으로써 사람을 굴복시키는 것을 말한다.
[目]순자荀子가 말하였다.
“국가라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이로운 그릇이고, 임금이라는 것은 천하에서 가장 이로운 권세이다.
올바른 방법을 얻어 유지하면 크게 편안하고 크게 영화로워서 미덕美德을 쌓는 근원이 되지만, 올바른 방법을 얻어 유지하지 못하면 크게 위태롭고 크게 해를 끼치게 되어注+역위力僞이니, 일이 서로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있는 것이 없느니만 못하게 될 것이니, 극에 이르러서는 필부가 되기를 바라더라도 될 수가 없을 것이다.
齊나라 湣王과 宋나라 獻王이 이러한 사람들이다.”注+는 음이 이니, 궁극의 시점을 말한다. 나라 헌왕獻王나라 임금 이다. 난왕赧王 29년에서는 강왕康王이라고 부르고 여기서는 나라 헌왕獻王이라고 불렀는데, 나라가 멸망한 뒤에 그의 신하들이 각자 사사로이 시호를 지었으므로 같지 않은 것이다.
[綱]나라, 나라, 나라가 에서 회합하였다.


역주
역주1 臨菑 : 齊나라의 수도이다. 菑水 가에 있어서 이러한 이름을 얻게 되었다.
역주2 田地 : 齊나라 湣王의 성명이다.
역주3 濟水 : 河南省 濟源에서 발원하여 山東省을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강이다. 여기의 제수는 지금의 산동성 濟南의 서북쪽으로 흐르는 제수를 가리킨다.
역주4 劇辛 : 본래 趙나라 사람이다. 燕나라 昭王이 郭隗의 건의를 받아들여 黃金臺를 짓고 겸손한 말과 후한 폐백으로 어진 인재를 초청하니, 燕나라로 가서 장군에 발탁되었다.
역주5 : 배
역주6 文物 : 禮服, 旌旗, 儀仗 등의 물건을 말한다.
역주7 軒車 : 장막을 친 수레이다. 大夫 이상이 탔다.
역주8 彛器 : 옛날 宗廟에서 사용하던 靑銅으로 만든 鍾, 鼎, 尊, 罍, 俎, 豆와 같은 제기를 총칭하는 말이다.
역주9 史記……하였다 : 《史記》 〈魯仲連傳〉에는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齊나라 민왕이 魯나라로 가자 이유자가 말채찍을 잡고서 따라가서 魯나라 사람들에게 “그대들은 우리 임금을 어떻게 대우할 것입니까?”라고 물었으니, 魯나라 사람들이 “우리는 열 개의 太牢로 그대의 임금을 모시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유자가 말하기를 “어떤 예법을 근거로 우리 임금을 대우하는 것입니까? 우리 임금께서는 천자이십니다. 천자가 순수하면 제후는 자신의 궁궐을 비워 천자를 머물게 하고, 성문과 궁문의 열쇠를 내어주고, 옷깃을 여미고 식판을 들고서 대청 아래에서 천자의 식사를 살피고, 천자가 식사를 마쳐야 비로소 물러나 정사를 처리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니, 魯나라 사람들이 성문을 걸어 잠그고 민왕을 들이지 않았다. 魯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薛나라로 가려고 鄒나라에 길을 빌렸다. 이때에 마침 鄒나라의 임금이 죽었기에, 민왕이 들어가 조문을 하려고 하였다. 이유자가 상을 당한 鄒나라 임금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천자가 조문할 때에 주인은 반드시 관의 위치를 반대로 뒤집어 남쪽에다 北面을 하도록 설치함으로써 천자가 南面하여 조문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라고 하니, 鄒나라의 신하들이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들은 장차 칼날에 엎어져 죽으리라.”라고 하였다. 그래서 민왕이 감히 鄒나라에 들어갈 수 없었다.
역주10 莒子 : 莒의 군주가 子의 작위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莒子라고 하였다. 莒는 西周시대 제후국의 이름으로, B.C. 431년에 楚나라에 멸망하였다.
역주11 城陽王 : 漢 高祖의 손자이고 齊나라 悼惠王 劉肥의 아들인 劉章(B.C. 200~B.C 177)이다. 呂后에 의해 朱虛侯에 봉해졌다가, 나중에 周勃, 陳平 등과 함께 呂氏들을 베어 죽이는 데 공을 세워 城陽王에 봉해졌다. 지금 山東省 莒縣에 유장의 묘가 남아 있다.
역주12 : 피
역주13 六畜 : 말, 소, 양, 닭, 개, 돼지이다.
역주14 국가라는……사람들이다 : 《荀子》 〈王霸〉에 보인다.
역주15 京師 : 東周의 도읍인 洛陽을 가리킨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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