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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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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年(B.C. 157)
갑신년(B.C. 157)
七年이라
[綱] 나라 태종太宗 효문황제孝文皇帝 7년이다.
夏六月 하니 遺詔短喪注+壽四十八.하다
여름 6월에 황제가 하였는데, 유조遺詔를 내려 상기喪期를 단축하게 하였다.注+향년이 48세이다.
遺詔曰
[目] 유조遺詔는 다음과 같다.
萬物之生 靡有不死하니 死者 天地之理 物之自然이니 奚可甚哀리오
“만물의 생명이 죽지 않는 것이 없으니, 죽음은 천지天地의 이치이고 만물의 법칙이니, 어찌 심히 슬퍼할 것이 있겠는가.
當今之世 咸嘉生而惡死하여 厚葬以破業하고 重服以傷生하니 吾甚不取하노라
지금 세상에 모두 사는 것을 좋게 여기고 죽는 것을 슬퍼해서 후장厚葬하여 가업家業을 파산하고 지나치게 상복을 입어 생명을 손상하니, 나는 심히 취하지 않노라.
且朕旣不徳하여 無以佐百姓이어늘 今崩 又使重服久臨注+臨, 去聲, 下同.하여 哀人父子하고 損其飮食하고 絶鬼神之祭祀하여 以重吾不徳이면 謂天下何리오
은 이미 덕이 없어서 백성들을 도와준 것이 없는데, 지금 죽음에 또다시 지나치게 상복을 입고 오랫동안 임곡臨哭하여,注+(임곡臨哭하다)은 거성去聲이니, 아래도 같다. 남의 부자父子를 슬프게 하고 그들의 음식을 줄이고 귀신鬼神의 제사를 끊게 해서 나의 부덕不徳을 더한다면 천하에서 나를 보고 무어라 하겠는가.
朕獲以眇眇之身으로 託于天下君王之上 二十有餘年矣注+眇眇, 猶言細末也.
짐이 하찮은 몸으로 천하 군왕君王의 위에 의탁한 지가 20여 년이 되었다.注+묘묘眇眇”는 세말細末(작다)이란 말과 같다.
賴天之靈, 社稷之福하여 方內安寧하여 靡有兵革注+方內, 謂四方之內.이라
하늘의 신령스러움과 사직社稷의 복에 힘입어 지금 사방이 편안하여 전쟁[병혁兵革]이 없다.注+방내方內”는 사방의 안을 이른다.
朕旣不敏하여 常畏過行하여 以羞先帝之遺德注+行, 去聲. 過行, 行有過失也. 羞, 謂忝辱也.하고 惟年之久長하여 懼于不終이러니 今乃幸以天年으로 得復供養于高廟하니 其奚哀念之有注+供, 居用切. 養, 弋向切.리오
짐이 이미 불민하여 항상 잘못된 행동을 저질러 선제先帝유덕遺德을 욕보일까 두려워하였으며,注+(행실)은 거성去聲이니, “과행過行”은 행실에 잘못이 있는 것이다. 는 〈선조先祖를〉 욕되게 함을 이른다. 행여 오래 살아서 제대로 끝을 마치지 못할까 염려하였는데, 지금 다행히 천수天壽[천년天年]를 누려 다시 고묘高廟에 공양하게 되었으니, 어찌 슬픈 생각이 있겠는가.注+(바치다)은 거용居用이고, (봉양하다)은 익향弋向이다.
其令天下吏民으로 令到注+令到, 謂詔令到日.어든 出臨三日 皆釋服하고 無禁嫁取, 祠祀, 飮酒, 食肉注+取, 讀曰娶.하며 自當給喪事服臨者 皆無跣하고 絰帶無過三寸이요 毋布車及兵器注+謂無以布衣車及兵器也.하고 毋發民哭臨宮殿中이요 殿中當臨者 皆以旦夕으로 各十五擧音하여 禮畢注+句.注+句.하고 已下棺注+謂柩已至於壙.이어든 服大功十五日, 小功十四日, 纖七日하여 釋服注+大功‧小功, 布也. 纖, 細布衣也. 旣葬, 除重服, 制大功‧小功, 所以漸卽吉耳.하라
斬衰                 齊衰                 大功                 小功斬衰 齊衰 大功 小功
      首絰            腰絰            絞帶 首絰 腰絰 絞帶
[目] 천하의 관리와 백성들로 하여금 이 조령詔令이 이르거든注+영도令到”는 조령詔令이 이른 날을 이른다. 나와서 임곡臨哭한 지 3일에 모두 상복을 벗고, 시집가고 장가들고 제사 지내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을 금하지 말며,注+(장가들다)는 로 읽는다. 본래 마땅히 상사喪事를 맡아 처리하고 상복을 입고 임곡해야 할 자는 모두 맨발로 있지 말고 는 3을 넘지 말며, 수레와 병기를 삼베로 싸지 말고注+〈“무포거급병기毋布車及兵器”는〉 삼베를 가지고 수레와 병기를 싸지 않음을 이른다. 백성들을 징발하여 궁전 가운데에서 임곡하게 하지 말 것이요, 궁전 가운데에 마땅히 임곡해야 할 자는 모두 아침저녁으로 모두 15번 슬피 곡하는 소리를 내어 가 끝나면注+여기서 를 뗀다. 그만두고,注+여기서 를 뗀다.하관下棺한 뒤에는注+〈“하관下棺”은〉 영구靈柩를 이미 구덩이에 안치함을 이른다. 대공복大功服은 15일, 소공복小功服은 14일, 가는 삼베옷은 7일을 입고서 을 벗도록 하라.注+대공大功소공小功은 삼베이고, 은 가는 삼베옷이다.
他不在令中者 皆以此令으로 比類從事注+言此詔中無文者, 皆以比類而行事.하고 霸陵山川 因其故하여 毋有所改注+因山爲藏, 不復起墳, 山下川流, 不過絶.하고 歸夫人以下至少使注+夫人已下, 有美人‧良人‧八子‧子‧長使‧少使, 皆遣歸家, 重絶人類.하라
기타 이 조령詔令 안에 들어 있지 않은 것들은 모두 이 조령을 기준해서 같은 종류끼리 비교하여 종사하고,注+조령詔令 가운데 글이 없는 것은 모두 비슷한 것끼리 비교하여 행사行事함을 말한 것이다.패릉霸陵의 산과 냇물을 옛날의 지형을 따르고 고치지 말며,注+의 형태를 따라 무덤을 만들어서 다시 봉분을 만들지 말고, 산 아래에 흐르는 냇물을 지나치게 막지 않는 것이다. 부인夫人 이하 소사少使에 이르기까지 집으로 돌려보내라.”注+부인夫人 이하에 미인美人양인良人, 팔자八子칠자七子, 장사長使소사少使가 있으니,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것은
胡氏曰
[目] 호씨胡氏(호인胡寅)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孝文 溺於小仁하여 短喪廢禮하니 信有罪矣어니와이나 行而有悖於義 雖有父令이나 不可從也어든
효문제孝文帝가 작은 에 빠져서 상기喪期를 단축하고 상례를 폐하였으니 진실로 잘못이 있지만, 자식이 이것을 행하여 에 어긋나면 비록 아버지의 명령이라도 따를 수가 없는 것이다.
況三年之喪 所以盡生者之孝心이요 又非父之所得令者也
더구나 삼년상은 살아 있는 자(자식)의 효심을 다하는 것이요, 또 아버지가 명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然則孝景之薄于君親 其罪益大矣로다
그렇다면 효경제孝景帝가 군주와 어버이에게 박하게 한 것은 그 죄가 더욱 크다.”
葬霸陵하다
[綱] 패릉霸陵에 안장하였다.
帝卽位二十三年 宮室, 苑囿 車騎, 服御 無所增益하고 有不便이면 輒弛以利民이라
[目] 황제는 즉위한 지 23년 동안 궁실宮室원유苑囿, 거기車騎복어服御를 더 늘린 것이 없었고, 백성들에게 불편한 것이 있으면 그때마다 풀어주어 백성들을 이롭게 하였다.
嘗欲作露臺하여 召匠計之하니直百金注+露臺, 以臺上不屋, 顯露爲名. 師古曰 “今新豊縣南驪山之頂, 有露臺鄕, 極爲高顯, 猶有文帝所欲作臺之處.” 直, 價也. 百金者, 用金百斤. 一金, 直萬錢.”이어늘
일찍이 노대露臺를 짓고자 해서 장인匠人을 불러 비용을 계산해보니, 값이 100이었다.注+노대露臺 위에 지붕을 씌우지 아니하여 노출시켰으므로 노대露臺라고 이름한 것이다.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지금 신풍현新豊縣 남쪽 여산驪山의 정상에 노대향露臺鄕이 있으니, 지극히 높게 드러나 있는데, 문제文帝를 짓고자 했던 곳이 아직도 남아 있다.” 하였다. 는 값이고, 백금百金은 황금 100을 사용하는 것이니, 1은 값어치가 1만 이다.
上曰 百金 中人十家之産也注+中, 謂不富不貧.
이 말하기를 “100금은 중등의 백성 열 집의 재산이다.注+은 부유하지도 않고 가난하지도 않음을 이른다.
吾奉先帝宮室 常恐羞之하니 何以臺爲리오하다
내가 선제先帝의 궁실을 받들어 사용하는데 항상 욕되게 할까 두려우니, 어찌 를 만들겠는가.” 하고 중지하였다.
身衣弋綈注+衣, 於旣切. 弋, 逸職切, 黑色也.하고 所幸愼夫人 衣不曳地注+曳, 引也. 不曳地, 謂衣之長, 不被地也.하고 帷帳 無文繡하여 以示敦朴하여 爲天下先하다
황제는 몸소 검은 비단 옷을 입고注+(입다)는 어기於旣이다. 일직逸職이니, 검은색이다. 총애하는 신부인愼夫人도 옷이 땅에 끌리지 않게 하였으며,注+는 끈다는 뜻이다. “불예지不曳地”는 옷의 길이가 땅에 닿지 않음을 이른다.유장帷帳(휘장)에 문수文繡를 없애어 질박함을 보여서 천하의 솔선이 되었다.
治霸陵호되 皆瓦器 不得以金銀銅錫爲飾하며 因其山하여 不起墳하다
패릉霸陵을 다스리되 모두 질그릇을 사용하였고, 금은金銀과 구리, 주석으로 아름답게 꾸미지 못하게 하였으며, 의 형태를 따라 무덤을 만들어서 봉분을 만들지 않았다.
吳王 詐病不朝한대 賜以几杖注+几, 所以凭而坐. 杖, 所以倚而行. 禮, 大夫七十而致事, 若不得謝, 則賜之几杖, 所以養其身體也.하고 群臣袁盎等 諫說雖切이나 常假借納用焉注+謂假借以辭色, 納其言而用之.하고 張武等 受賂金錢이라가注+金錢, 金及錢也.
孝景帝 劉啓孝景帝 劉啓
이로되 更加賞賜하여 以愧其心하여 專務以徳化民이라
오왕吳王이 거짓으로 병을 핑계 대고 조회에 오지 않자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였으며,注+(안석)는 기대어 앉는 것이고, (지팡이)은 의지하여 걷는 것이다. 대부大夫가 70세에 치사致事를 하는데, 만약 사퇴할 수가 없으면 군주가 안석과 지팡이를 하사하니, 안석과 지팡이는 신체를 길러주는 것이다. 신하들 중에 원앙袁盎 등의 간하는 말이 비록 간절하였으나 항상 말소리와 얼굴빛을 너그럽게 해서 포용하여 받아들이고,注+〈“상가차납용언常假借納用焉”은〉 말소리와 얼굴빛을 너그럽게 해서 그의 말을 받아들여 따름을 이른다. 장무張武 등이 뇌물로 과 돈을 받았다가 발각되었으나注+금전金錢과 돈이다. 다시 을 더 주어 그의 마음을 부끄럽게 해서 오로지 으로 백성을 교화함에 힘썼다.
是以 海內安寧하고 家給人足하여 後世 鮮能及之러라
이 때문에 해내海內가 편안하였으며 집안이 넉넉하고 백성들이 풍족하여 후세에 능히 미칠 자가 적었다.
太子啓卽位하여 尊皇太后曰太皇太后라하고 皇后曰皇太后라하다
[綱] 태자太子 유계劉啓가 즉위하여 황태후皇太后를 높여 태황태후太皇太后라 하고, 황후皇后황태후皇太后라 하였다.
◑ 九月 有星孛于西方하다
[綱] 9월에 패성孛星이 서쪽에 나타났다.
◑ 長沙王著卒하니 無子하여 國除注+著, 陟慮切, 漢書, 作差.하다
[綱] 장사왕長沙王 오저吳著가 죽으니, 아들이 없어 나라가 없어졌다.注+척려陟慮이니 《한서漢書》에는 ‘’로 되어 있다.
高祖賢文王芮하여 制詔御史호되 長沙王忠하니 其定著令注+漢約, 非劉氏, 不王, 高祖以吳芮至忠. 故著令, 使特王之.하라하여 傳國數世러니 至是乃絶하다
[目] 처음에 고조高祖문왕文王 오예吳芮를 어질게 여겨 어사御史에게 제조制詔(천자의 명령)를 내려 “장사왕長沙王(오예吳芮)이 충성스러우니, 법령을 정하여 〈그를 우대하는 제도를〉 만들라.”注+나라 약속에 유씨劉氏가 아니면 왕 노릇 하지 못하였는데, 고조高祖오예吳芮가 지극히 충성스럽다 하여 조령詔令을 만들어 특별히 왕 노릇 하게 한 것이다. 하여, 여러 에 걸쳐 나라를 전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마침내 끊겼다.
역주
역주1 帝崩 : “賀善의 賛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文帝는 三代 이래로 어진 군주였는데, 첫 번째로 옛일을 변경한 것이 두 가지이니, 肉刑을 없앤 것과 詔令을 내려 喪期를 단축하게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모두 큰일인데, 《資治通鑑綱目》에 어찌하여 始(처음)라고 쓰지 않았는가? 肉刑을 없앤 것은 그래도 사람을 차마 상하게 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喪期를 단축한 것은 古禮를 폐하여 후세를 그르침이 큰 것인데, 여기에서 ‘처음[始]’이라고 쓰지 않은 것은 어째서인가? 《자치통감강목》의 뜻은 오로지 文帝만 죄책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누구를 죄책한 것인가? 그 뒤를 이은 군주(景帝)와 신하들을 죄책한 것이다. 문제가 일찍이 詔令을 내려 자신의 陵인 霸陵을 다스릴 적에 金銀과 銅錫으로 꾸미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晉나라 愍帝 때에 도둑이 패릉을 도굴하여 金帛을 많이 얻었고, 당시에 오히려 그 나머지를 거두어 內府(내탕고)를 채웠으니, 그렇다면 薄葬의 제도는 경제가 일찍이 결행하여 따르지 않은 것이다. 더구나 〈君父에 대한〉 삼년상은 臣子들이 자신의 마음을 다해야 하는 것이니, 만일 경제가 여기에서 아버지의 명령대로 따르는 것만이 효도가 아니라는 뜻으로 결단하여, 한결같이 古禮를 따랐다면 후세에 또한 누가 감히 문제의 잘못된 명령을 뒤따랐겠는가. 《자치통감강목》에 이 때문에 ‘처음’이라고 쓰지 않은 것이니, 책임이 오로지 문제에게만 있지는 않은 것이다.’[賀善賛曰 文帝三代以來賢主也 而首變古之事二焉 除肉刑也 詔短喪也 二者皆大節 綱目曷爲不書始 肉刑之除 猶曰有不忍之心云爾 短喪則廢古禮 誤後世之大者 其不書始 何也 綱目之意 不專罪帝也 然則尙奚罪 罪其嗣君與臣子爾 帝嘗詔治霸陵 不得以金銀銅錫爲飾 然晉愍之世 盜發霸陵 得其金帛甚多 當時猶收其餘 以實內府 則薄葬之制 景帝蓋未嘗果從也 況三年之喪 臣子所以自盡其心者 使景帝於此 斷以從令非孝之義 一由古禮 後世亦孰敢踵其失哉 綱目所以不書始 責不專在文帝也]” 《書法》
역주2 絰帶 : 首絰과 腰帶로, 군주와 부모를 위한 喪服의 한 종류인데, 머리에 쓰는 것을 首絰, 허리에 차는 것을 腰帶 또는 腰絰이라 하였다.
역주3 장례한……것이다 : 무거운 상복[重服]은 군주와 父母의 삼년상을 가리킨다. 상복에는 斬衰와 齊衰의 삼년복, 期年服, 大功 9월, 小功 5월, 緦麻 3월이 있는데, 삼년상으로부터 삼베의 굵기가 점점 가늘어진다. 吉服은 凶服인 喪服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禮服이나 平常服을 이르는데, 삼년상일 경우 大祥에 脫喪하여 상복을 벗지만 한 달간 흰옷을 입다가 禫祭와 吉祭를 지나게 되면 완전히 吉服을 입는다.
역주4 人類를……것이다 : 황제를 모시던 여인들을 돌려보내어 시집가게 해서 자녀를 生育하여 人類를 끊지 않게 함을 말한 것이다.
역주5 (十)[七] : 저본에는 ‘十’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 〈外戚傳〉에 의거하여 ‘七’로 바로잡았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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