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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3)

자치통감강목(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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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年(B.C. 197)
갑진년(B.C. 197)
十年이라
[綱] 나라 태조太祖 고황제高皇帝 10년이다.
夏五月 太上皇커늘 秋七月 葬萬年하고 令諸侯王國으로 注+帝初居櫟陽, 故太上皇因在櫟陽. 及崩, 葬其北原, 起萬年邑, 置長‧丞.하다
여름 5월에 태상황太上皇하였는데, 가을 7월에 만년萬年에 장사 지내고 제후諸侯의 나라에 모두 태상황의 를 세우게 하였다.注+고제高帝가 당초 역양櫟陽에 살았기 때문에 태상황太上皇이 이로 인해 역양에 있었다. 태상황이 하자, 그곳의 북쪽 언덕에 장사 지낸 다음 만년읍萬年邑을 처음 만들고 을 두었다.
◑ 以周昌爲趙相하고 趙堯爲御史大夫하다
[綱] 주창周昌나라 정승으로 삼고 조요趙堯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았다.
定陶戚姬有寵하여 生趙王如意注+戚, 姓, 姬, 內官也. 位次, 婕妤下, 在七子八子之上.하고 呂后 年長益疏
[目] 정도定陶척희戚姬에게 총애를 받아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를 낳았고注+이고 내관內官이다. 위차位次의 아래이니, 의 위에 있다.여후呂后는 나이가 들어 더욱 소원해졌다.
上以太子仁弱하고 謂如意類己라하여 常留之長安하여 欲廢太子而立之하니
이 태자는 인자하고 나약하며 여의는 자신을 닮았다고 하여, 항상 그를 도성인 장안長安에 머물게 하여 태자太子를 폐하고 조왕을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大臣爭之호대 皆莫能得注+爭, 去聲, 下同.이라
대신들이 이를 간쟁하였으나 모두 허락을 얻지 못하였다.注+(간쟁하다)은 거성去聲이니, 이하도 같다.
御史大夫周昌 廷爭之彊注+廷爭, 當朝廷而諫諍.이어늘 問其說한대
어사대부御史大夫 주창周昌이 조정에서 강력히 간쟁하자,注+정쟁廷爭”은 조정朝廷에서 간쟁하는 것이다.이 그 이유를 물었다.
昌爲人吃注+吃音訖, 言之難也.이요 又盛怒하여 曰 臣口不能言이나 然臣期期知其不可注+期, 猶必也. 以口吃故, 疊語.하오니
주창은 사람됨이 말을 더듬었고,注+은 음이 이니, 말을 더듬는 것이다. 또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신이 입으로는 말할 수 없지만 신은 기~기~ 기필코 불가하다는 것을 압니다.注+(기필하다)는 과 같다. 말을 더듬기 때문에 말을 반복한 것이다.
陛下欲廢太子신댄 臣期期不奉詔호리이다 欣然而笑하다
폐하께서 태자를 폐하고자 하신다면 신은 기~기~ 기필코 조명詔命을 받들지 않겠습니다.” 하자, 이 흔연히 웃었다.
呂后聞之하고 跪謝昌曰 微君이면 太子幾廢라하니라
여후呂后가 이 소식을 듣고 무릎을 꿇고 주창에게 사례하기를 “그대가 아니었다면 태자太子는 거의 폐위되었을 것이오.” 하였다.
趙王年十歲 憂萬歲之後不全也러니
이때 조왕의 나이가 10세였으므로 은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에 그가 온전하지 못할까 걱정되었다.
符璽御史趙堯 請爲趙王하여 置貴彊相호대 及呂后太子群臣素所敬憚者注+符璽御史, 御史之掌符璽者也, 屬御史大夫. 相, 去聲.한대
부새어사符璽御史 조요趙堯가 조왕을 위해서 귀하고 권세 있는 정승을 두라고 청하면서 여후呂后태자太子, 군신群臣이 평소 존경하고 두려워하는 자에 대해 언급하였다.注+부새어사符璽御史어사御史로서 부새符璽를 담당한 자인데, 어사대부御史大夫에게 속하였다. (보좌하는 정승)은 거성去聲이다.
上問其人하니 堯以昌對어늘
이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물으니, 조요가 주창이라고 대답하였다.
上乃以昌相趙하고 而以堯代爲御史大夫하다
이에 이 주창을 조나라의 정승으로 삼고, 조요를 주창 대신 어사대부로 삼았다.
楊氏曰
[目] 양씨楊氏(양시楊時)가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以高帝之明으로 惓惓於趙王하니 其念 深矣注+惓, 逵員切. 惓惓, 猶言勤勤也.
고제高帝의 현명함을 가지고도 조왕趙王에게 늘 연연하였으니, 그 염려함이 깊다고 하겠다.注+규원逵員이다. 권권惓惓(간절)은 근근勤勤이라는 말과 같다.
이나 卒用趙堯之策하니 可謂以金注也注+莊子 “以瓦注者巧. 以鉤注者憚. 以黃金注者殙.” 林希逸口義 “射而賭物曰注. 言以瓦爲注, 則全無利害輕重之心. 以鉤帶爲注, 則已有顧惜之意矣. 以黃金爲注, 則愛心愈重而易殙矣.”
그러나 끝내 조요趙堯의 계책을 따랐으니, 금주金注의 미혹이라고 할 만하다.注+〈“금주金注”는〉 《장자莊子》 〈달생達生〉에 “〈물건을 걸고 활쏘기를 할 때 별 가치가 없는〉 기와를 거는 사람은 아주 잘 맞히고, 〈이보다 가치가 있는〉 구대鉤帶(혁대 고리)를 거는 사람은 마음이 떨려 두려워하고, 황금을 거는 사람은 마음이 혼란하여 잘 맞히지 못한다.” 하였는데, 임희일林希逸은 《장자구의莊子口義》에서 “활쏘기를 하는데 물건을 거는 것을 라고 한다. 이 구절은 기와를 걸면 이해와 경중을 따지는 마음이 전혀 없어 〈잘 맞히고,〉 구대鉤帶를 걸면 이미 애석해하는 마음이 생기고, 황금을 걸면 아끼는 마음이 더욱 중해져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기가 쉽다는 뜻이다.” 하였다.
且呂氏以堅忍之資 濟之以深怨積怒하니 其欲甘心於如意也 久矣
그리고 여씨呂氏는 강하고 잔인한 자질로 원한과 노여움을 많이 쌓았으니, 조왕趙王 유여의劉如意에게 원한을 풀려고 한 지가 오래되었다.
一貴彊相 何足以重趙哉리오
한 명의 귀하고 권세 있는 정승이 어떻게 나라를 중하게 할 수 있겠는가.
善爲高皇計者 盍亦反諸己而已矣리오
고제를 위해서 계책을 잘 세우는 것은 또한 자신에게 돌이켜보아 원인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不以燕好之私 亂嫡妾之分하여 使貴者不凌하고 賤者不逼하면 則夫夫婦婦而家道正矣리니 豈特無母禍而已哉리오
사사로이 총애하는 여자 때문에 적처嫡妻의 구분을 어지럽히지 말아서 귀한 자가 천한 자를 능멸하지 않고 천한 자가 귀한 자를 핍박하지 않게 한다면 남편은 남편의 도리를 다하고 아내는 아내의 도리를 다하여 가도家道가 바르게 될 것이니, 어찌 단지 모후母后(여태후呂太后)의 재앙을 없게 할 뿐이겠는가.”
◑ 上 猶欲易太子어늘
[目] 이 여전히 태자太子를 바꾸려고 하였다.
於是 呂后使建成侯呂釋之 彊要留侯畫計注+班志 “建成侯國, 屬沛郡.” 釋之, 呂后次兄也.한대 留侯曰
이에 여후呂后건성후建成侯 여석지呂釋之를 시켜 유후留侯(장량張良)에게 계책을 마련하라고 강요하니,注+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건성후建成侯의 나라는 패군沛郡에 속하였다.” 하였다. 여석지呂釋之여후呂后의 둘째 오라비이다. 유후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難以口舌爭也
“이것은 구설口舌로 간쟁하기가 어렵습니다.
顧上有所不能致者 四人하니 曰東園公, 綺里季, 夏黃公, 甪里先生注+此所謂四皓也. 避秦之亂, 隱於商山. 園公, 姓唐, 居園中, 因以爲號. 夏黃公, 姓崔, 名廣, 齊人, 隱居夏里修道, 故號曰夏黃公. 甪, 音祿. 甪里先生, 河內軹人, 泰伯之後. 姓周, 名術, 京師號曰霸上先生, 一曰甪里先生. 或云 東‧綺‧夏‧甪, 四姓也. 或云 “綺里季夏, 一人也, 黃公, 一人也.”이라
다만 께서 초치招致하지 못한 네 사람이 있는데,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입니다.注+〈“사인四人”은〉 이른바 사호四皓이니, 나라의 을 피해 상산商山에 은둔하였다. 원공園公이니 원중園中에 살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를 삼은 것이다. 하황공夏黃公이고 이름이 이며 나라 사람인데, 하리夏里은거隱居하며 도를 닦았기 때문에 하황공夏黃公이라고 한 것이다. 은 음이 祿이다. 녹리선생甪里先生하내河內지현軹縣 사람인데, 태백泰伯의 후예이다. 이고 이름이 인데, 경사京師에서는 패상선생霸上先生이라고 칭하였고, 또 한편에서는 녹리선생甪里先生이라고도 칭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 , , 은 네 사람의 이다.” 하였다. 혹자는 말하기를 “기리계하綺里季夏가 한 사람이고 황공黃公이 한 사람이다.” 하였다.
皆以上侮嫚士故 逃匿山中하여 義不爲漢臣注+嫚, 與慢同.이니이다
이들은 모두 께서 선비들을 업신여기기 때문에 산중으로 도망가서 의리상 나라의 신하가 되기를 거부하였습니다.注+(업신여기다)은 과 같다.
이나 高此四人하시니 今令太子 爲書卑詞하고 安車固請이면 宜來注+古者, 高車立乘, 安車坐乘. 宜來, 謂宜應其來.리니
그러나 께서는 이 네 사람을 존경하시니, 지금 태자太子로 하여금 겸손한 내용으로 편지를 쓰고 안거安車를 보내 간청하면 마땅히 올 것입니다.注+옛날에 고거高車(높은 수레)는 서서 타고 안거安車는 앉아서 탔다. “의래宜來”는 마땅히 올 것이라는 말이다.
來以爲客하여 時從入朝하여 令上見之하면 則一助也리이다
그들이 오면 빈객賓客을 삼아서 수시로 태자를 따라 입조入朝하게 해서 이 보시도록 하면 조금 도움이 될 것입니다.”
於是 呂后使人奉太子書招之하니 四人至하여 客建成侯家하다
이에 여후가 다른 사람을 시켜 태자의 편지를 받들고 가서 모셔오게 하니, 네 사람이 와서 건성후의 집에 묵었다.
九月 代相國陳豨反이어늘 帝自將擊之하다
[綱] 9월에 나라의 상국相國 진희陳豨가 반란을 일으키자, 황제가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공격하였다.
以陽夏侯陳豨 爲代相國하여 監趙代邊兵注+豨, 喜‧希二音.하다
[目] 처음에 양하후陽夏侯 진희陳豨나라의 상국相國으로 삼아 나라와 나라 변경에 주둔한 군사들을 감독하게 하였다.注+ 두 가지 음이 있다.
豨常慕魏無忌之養士注+魏無忌, 信陵君也.러니
진희는 항상 위무기魏無忌가 선비들을 기른 것을 흠모하였다.注+위무기魏無忌신릉군信陵君이다.
及告歸過趙 賓客隨之者 千餘乘注+告, 休暇也. 漢律, 二千石有予告, 有賜告. 予告者, 在官有功最, 法所當得也. 賜告者, 病滿三月當免, 天子優賜其告, 使得帶印綬, 將官屬, 歸家治病.이라
그가 휴가를 받아 고향에 돌아가다가 나라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를 따르는 빈객賓客의 수레가 천여 이나 되었다.注+는 휴가이다. 나라 법률에, 에게는 여고予告사고賜告가 있으니, 여고予告는 관직에 있으면서 이 가장 많아 법에 따라 마땅히 휴가를 받아야 할 것을 말하고, 사고賜告는 병이 3개월이 되어서 마땅히 면직免職하게 될 상황이면 천자天子가 우대하여 휴가를 주어 인수印綬를 차고 관속官屬을 거느리고 집에 돌아가 병을 치료하는 것이다.
周昌 求見上하여 言豨賓客甚盛하고 擅兵數歲하니 恐有變일까하노이다
나라 상국相國인〉 주창周昌을 알현할 것을 요구하여, “진희의 빈객이 너무 많고 병권兵權을 독점한 지가 여러 해이니 변란을 일으킬까 걱정됩니다.” 하였다.
令人覆案豨客諸不法事注+覆, 審也.한대 多連引豨
이에 이 사람을 시켜 진희의 빈객들이 저지른 여러 가지 불법적인 일들을 조사하게 하였는데,注+은 살핀다는 뜻이다. 진희와 관련된 일이 많았다.
豨恐하여 遂反이어늘 自擊之할새
이에 진희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반란을 일으키니, 이 직접 가서 공격하였다.
至邯鄲하여 喜曰 豨不南據邯鄲而阻하니 吾知其無能爲矣注+阻, 恃也.로다
한단邯鄲에 이르러 기뻐하며 말하기를 “진희가 남쪽으로 한단을 점거하지 않고 장수漳水를 막고 있으니, 나는 그가 큰일을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겠다.”注+ 하였다.
奏常山亡二十城하니 請誅守尉라한대 上曰 守尉反乎 對曰 不注+不, 讀曰否.니이다
[目] 주창周昌이 아뢰기를 “상산군常山郡에서 20개 성을 잃었으니, 이곳의 군수郡守군위郡尉를 죽이소서.” 하자, 이 말하기를 “군수와 군위가 반란을 일으켰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아닙니다.”注+(아니다)는 로 읽는다. 하였다.
上曰 是力不足이니亡罪注+亡, 無通.라하고
그러자 이 말하기를 “이것은 병력兵力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니, 죄가 없다.”注+(없다)는 와 통한다. 하였다.
令昌으로 選趙壯士可將者러니 白見四人이어늘
그리고 주창으로 하여금 나라 장사壯士 중에서 장수를 시킬 만한 자를 선발하게 하니, 에게 아뢰어서 네 사람을 불러 보게 하였다.
封各千戶하여 以爲將注+白見, 告白於天子而召見之也.하니 左右諫曰 封此何功이니잇고 上曰 非汝所知
이 이들을 각각 천호千戶에 봉하고 장수로 삼자,注+백견白見”은 천자天子에게 아뢰어서 불러 보게 한 것이다. 좌우의 신하들이 간하기를 지금 이들을 봉하신 것은 무슨 공로가 있어서입니까?” 하니, 이 이르기를 “이것은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다.
趙代地皆豨有 吾徵天下兵호대 未至하니
나라와 나라 지역이 모두 진희陳豨의 소유가 되었고 내가 천하에 군대를 징발하였으나 아직 온 자가 없다.
今獨邯鄲中兵耳 吾何愛四千戶하여 不以慰趙子弟리오
지금 나에게는 오직 한단邯鄲의 병사들이 있을 뿐이니, 내 어찌 4천 호를 아껴서 나라 지방의 자제子弟들을 위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였다.
又聞豨將皆故賈人하고 上曰 吾知所以與之矣注+與, 猶待也. 言知所以與之之術也.라하고 乃多以金購之하니 豨將 多降하니라
은 진희의 장수들이 모두 옛날 장사꾼이었다는 말을 듣고 말하기를 “내가 이들을 상대할 방법을 알았다.”注+는 상대한다는 말과 같으니, 〈“지소이여지知所以與之”는〉 상대할 방법을 알겠다는 말이다. 하고는 대부분 금을 가지고 진희의 장수들을 매수하니, 진희의 장수들 중에 항복하는 자가 많았다.
역주
역주1 皆立廟 : “‘모두 廟를 세웠다.[皆立廟]’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옛 법이 아님을 비난한 것이다. 이로부터 惠帝가 高祖에 대해서, 孝景帝가 太宗(文帝)에 대해서, 孝宣帝가 世宗(武帝)에 대해서 〈廟를 세우는 것이〉 마침내 일반적인 일이 되었다. 이에 《資治通鑑》에서는 쓰지 않았는데, 《資治通鑑綱目》에서는 이것을 모두 쓴 것이다.[書皆立廟 何 譏非古也 自是惠帝於高祖 孝景於太宗 孝宣於世宗 遂爲故常矣 於是通鑑不書 綱目皆書之]” 《書法》
역주2 婕妤(첩여) : 漢나라 武帝 때에 처음 설치된 宮中 女官의 명칭인데 倢伃로도 쓴다.
역주3 七子와 八子 : 이 또한 秦漢 시기 宮中 女官의 명칭이다.
역주4 (章)[漳] : 저본에는 ‘章’으로 되어 있으나, 《漢書》 〈高帝本紀〉에 의거하여 ‘漳’으로 바로잡았다.
역주5 二千石의 관리 : 秩이 二千石으로 중앙의 九卿과 지방의 郡守에 해당한다. 石은 연봉으로 지급되는 곡물의 양이나, 실제로 그 양을 받지는 않았다. 품계의 서열은 二千石, 六百石, 二百石, 百石을 기준으로 나뉘며, 二千石 이상은 최고관원이며 六百石 이상은 大夫로 황제가 임명하는 칙임관이며, 二百石 이상은 長史라 불리는 奏任官이다.
역주6 阻는……뜻이다 : 阻는 원래 험한 요새나 강물로, 이곳에 의지하여 적을 막기 때문에 믿는다고 한 것이다.

자치통감강목(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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