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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1)

자치통감강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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丙寅年(B.C. 355)
十四年이라
齊魏會田于郊注+田, 取禽也. 去禽獸害稼者, 故以田言之. 索隱 “郊縣, 屬沛郡.”하다
魏惠王 問齊威王曰 齊亦有寶乎 威王 曰 無有
惠王 曰 寡人 國雖小 尙有徑寸之珠照車前後各十二乘者十枚하니
豈以齊大國而無寶乎 威王 曰 寡人之所以爲寶者 與王異
吾臣有檀子者하니 使守南城則楚人 不敢爲寇注+檀, 姓也. 子, 男子之美稱. 史失其名. 集覽 “南城, 縣名, 屬泰山.”하고 有盻子者하니 使守高唐則趙人 不敢東漁於河注+盻, 與盼同. 盼, 匹莧‧披班二切. 盻子, 卽田盼也. 高唐, 齊西邑.하고 有黔夫者하니 使守徐州則燕趙之人 從而徙者七千餘家注+黔, 音鉗. 黔夫, 姓名. 索隱 “徐州, 卽薛縣也, 非九州之徐.” 有種首者하니 使備盜賊則道不拾遺注+種, 上聲. 種首, 名也. 史失其姓.
此四臣者 將照千里 豈特十二乘哉리오
惠王 有慙色하더라


병인년(B.C. 355)
[綱]나라 현왕顯王 14년이다.
나라와 나라가 교외郊外에서 만나 사냥을 하였다.注+은 짐승을 잡는 것이다. 농사에 해를 끼치는 짐승을 떠나가게 하는 것이므로 “”이라고 하였다. 에 “교현郊縣패군沛郡 소속이다.”라고 하였다.
[目]나라 혜왕惠王나라 위왕威王에게 묻기를 “나라도 보배가 있습니까?”라고 하니, 위왕威王이 말하기를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이 나라는 비록 작으나 오히려 지름이 1치 되는 구슬로 수레의 앞뒤로 각각 12을 비추는 것이 10개 있습니다.
어찌 나라 같은 대국大國이 보배가 없겠습니까?”라고 하니, 위왕이 말하기를 “과인寡人이 보배로 생각하는 것은 왕과는 다릅니다.
제 신하 중에 단자檀子라는 자가 있는데 그에게 남성南城을 지키게 하였더니 나라 사람이 감히 노략질을 못하였고注+이고 남자男子미칭美稱이다. 사서史書에 그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 《자치통감강목집람資治通鑑綱目集覽》에 “남성南城현명縣名이고 태산泰山에 속한다.”고 하였다., 반자盻子라는 자가 있는데 그에게 고당高唐을 지키게 하였더니 나라 사람이 감히 동쪽으로 황하黃河에서 고기를 잡지 못하였으며注+과 같다. 필현匹莧피반披班이다. 반자盻子는 곧 전반田盼이다. 고당高唐나라 서읍西邑이다., 검부黔夫라는 자가 있는데 그에게 서주徐州를 지키게 하였더니 나라와 나라 사람으로 그를 좇아서 이사 온 사람이 7,000여 집이나 되었고注+은 음이 이다. 검부黔夫성명姓名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서주徐州는 곧 설현薛縣이고 구주九州의 하나인 서주徐州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종수種首라는 자가 있는데 그에게 도적盜賊을 막게 하였더니 길에 떨어진 물건을 줍지 않았습니다.注+(씨앗)은 상성上聲이고 종수種首는 이름이다. 사서史書에 그 이 전하지 않는다.
이 네 신하는 장차 천리千里를 비출 것이니 어찌 다만 12뿐이겠습니까?”라고 하였다.
혜왕이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있었다.


역주
역주1 史記索隱 : 唐나라 司馬貞이 편찬한 《史記》의 주석서를 말한다.

자치통감강목(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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