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資治通鑑綱目(8)

자치통감강목(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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綱
癸巳年(93)
五年이라 春正月에 太傅彪卒하다
綱
◑隴西에 地震하다
綱
◑이어늘 遣兵追斬하고 滅之하다
目
竇憲이 旣立於除鞬하여 爲北單于하고 欲輔歸北庭이러니 會憲誅而止하니 於除鞬이 自畔還北이어늘 詔討斬之하고 破滅其衆하다
綱
鮮卑徙據北匈奴地하다
目
鮮卑旣據匈奴故地注+拓拔氏自北荒南徙, 蓋此時也.에 匈奴餘種十餘萬落이 皆自號鮮卑注+落, 居也, 人所聚居.하니 鮮卑由此漸盛하다
綱
冬十月에 太尉睦이 卒하니 以張酺爲太尉하다
目
酺與尙書張敏等奏호되 曹褒制漢禮하여 亂聖術하니 宜加刑誅니이다 帝寢其奏而漢禮遂不行하다
綱
梁王暢이 有罪하니 詔削二縣注+暢初封汝南王, 章帝建初二年, 徙爲梁王.하다
目
暢이 與從官卞忌로 祠祭求福이러니 忌云 神言王當爲天子라하다 有司奏請徵詣詔獄한대 帝不許하고 但削二縣注+二縣, 成武ㆍ單父也.하니
暢이 上疏하여 深自刻責하고 請還爵土어늘 上이 優詔不聽하다
綱
護羌校尉貫友 攻迷唐하여 走之하다
目
貫友攻迷唐於大小榆谷하고 夾逢留大河하여 築城塢하고 作大航하여 造河橋하여 欲以度兵注+此大河, 卽黃河, 河水至此, 有逢留之名, 在二楡谷北. 航, 寒剛切, 方舟也. 造舟爲梁, 則河橋之謂也.하니 迷唐이 遠徙하여 依賜支河曲注+賜支, 禹貢所謂析支者也, 在河關西千餘里. 河水屈而東北流, 逕於析支之地, 是爲河曲.하다
綱
南匈奴單于屯屠何 死하니 單于宣弟安國이 立하다
目
安國이 初爲左賢王하여 無稱譽러니 及爲單于에 左谷蠡王師子 以次轉爲左賢王注+師子, 其名.하다
師子素勇黠多知注+知, 讀曰智.하여 數將兵擊北庭하여 受賞賜하니 國中이 盡敬師子而不附安國이라
安國이 欲殺之러니 諸新降胡 初在塞外하여 數爲師子所驅掠하여 多怨之注+在塞外, 謂先屬北部時.라
安國이 因是하여 與同謀議하니 師子覺其謀하고 乃别居五原界하다


綱
계사년癸巳年(93)
【강綱】 한漢나라 효화황제 영원孝和皇帝 永元 5년이다. 봄 정월에 태부 등표太傅 鄧彪(등표)가 졸卒하였다.
綱
【강綱】 농서隴西에 지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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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북선우北單于가 배반하였으므로 군대를 보내 쫓아가 참수하고 멸망시켰다.
目
【목目】 두헌竇憲이 어제건於除鞬을 세워 북선우北單于로 삼고는 북정北庭으로 돌아가도록 돕고자 하였는데, 마침 두헌이 주벌을 받아 중지되니, 어제건이 스스로 배반하여 북쪽으로 돌아갔다. 이에 조령詔令을 내려 토벌해서 참수하고 그 무리를 격파하여 멸망시켰다.
綱
【강綱】 선비鮮卑가 옮겨 북흉노北匈奴의 땅을 점거하였다.
目
【목目】 선비鮮卑가 흉노匈奴의 옛 땅을 점거하자注+탁발씨拓拔氏가 북쪽 변방에서 남쪽으로 옮겨온 것은 아마도 이때일 것이다. 흉노의 남은 종족 10여만 부락이 모두 스스로 선비라 일컬으니注+혜락落은 거처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선비가 이로부터 점점 강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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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綱】 겨울 10월에 태위 윤목太尉 尹睦이 졸卒하니, 장포張酺를 태위太尉로 삼았다.
目
【목目】 장포張酺가 상서 장민尙書 張敏 등과 아뢰기를 “ 마땅히 법에 따라 주살해야 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그들의 상주上奏를 회의에 회부하지 않으나, 조포가 만든 한漢나라 예禮가 끝내 시행되지 못하였다.
綱
【강綱】 양왕 유창梁王 劉暢이 죄를 지으니, 조령詔令을 내려 식읍食邑 두 현縣을 삭감하였다.注+유창劉暢은 처음에 여남왕汝南王에 봉해졌었는데, 장제 건초章帝 建初 2년(77)에 옮겨 양왕梁王이 되었다.
目
【목目】 유창劉暢이 종관 변기從官 卞忌와 함께 제사하여 복을 기원하였는데, 변기가 말하기를 “신神이 왕께서 마땅히 천자天子가 되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유사有司가 유창을 조옥詔獄으로 불러들일 것을 주청하였으나 황제가 허락하지 않고 다만 식읍食邑 두 현縣을 삭감하였다.注+“이현二縣”은 성무成武과 선보單父(선보)이다.
유창이 상소上疏하여 깊이 스스로를 책망하고 관작과 봉지를 돌려드릴 것을 청하였는데, 상上은 우대하는 조서詔書를 내리고 허락하지 않았다.
綱
【강綱】 호강교위 관우護羌校尉 貫友가 미당迷唐을 공격하여 패주시켰다.
目
【목目】 관우貫友가 대유곡大榆谷과 소유곡小榆谷에서 미당迷唐을 공격하고, 봉류대하逢留大河를 끼고서 성城과 오塢를 구축한 다음 큰 배를 만들어 하교河橋를 설치하고 군대를 거느리고 하수河水를 건너려고 하니注+여기의 대하大河는 바로 황하黃河로, 하수河水가 여기에 이르면 봉류하逢留河로 불리니, 두 유곡楡谷의 북쪽에 있다. 항航은 한강寒剛의 절切이니 배 두 척을 연결한 배이다. 배를 만들어 교량을 설치한 것은 바로 하교河橋를 말한 것이다., 미당이 멀리 옮겨가서 사지하곡賜支河曲에 의지하였다.注+사지賜支는 ≪서경書經≫ 〈하서 우공夏書 禹貢〉에 이른바 ‘석지析支’란 곳이니, 하관河關 서쪽 천여 리 지점에 있다. 하수河水가 굽이져 동북쪽으로 흘러서 석지析支의 지역을 통과하니, 이것이 하곡河曲이다.
目
【목目】 안국安國이 처음에 좌현왕左賢王이 되어서는 칭찬하는 명성이 없었는데 선우單于가 되니, 좌녹려왕左谷蠡王(좌곡려왕) 사자師子가 차례에 따라 좌현왕左賢王이 되었다.注+사자師子는 좌녹려왕左谷蠡王의 이름이다.
사자는 평소 용맹하고 약삭빠르고 지혜가 많아서注+지知(지혜)는 지智로 읽는다. 여러 번 군대를 거느리고 북흉노北匈奴의 왕정을 공격하여 상을 받으니, 국중國中에서 모두 사자를 공경하고 안국을 따르지 않았다.
안국이 사자를 죽이려 하였는데, 막 항복한 여러 호족胡族들이 전에 변방 밖에서 여러 번 사자에게 쫓기고 노략질을 당한 까닭에 그를 많이 원망하였다.注+“재새외在塞外”는 먼저 북부北部(북흉노北匈奴)에 소속되었을 때를 이른다.
안국이 이를 이용해 함께 사자를 죽이려고 모의하니, 사자가 그 계책을 알고는 마침내 따로 오원五原의 경계에 거주하였다.


역주
역주1 北單于畔 : “單于에게는 ‘畔(배반했다.)’이라고 쓴 적이 없는데, 여기에서 ‘畔’이라고 쓴 것은 어째서인가. 漢나라가 세웠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北單于는 漢나라가 세웠으므로 ‘畔’이라고 쓰고, 南匈奴는 漢나라에게 臣이라고 칭하였으므로 ‘討’라고 썼으니, ≪資治通鑑綱目≫의 명분이 엄격하다.[單于未有書畔者 此其書畔 何 漢所立也 是故北單于爲漢所立 則書畔 南匈奴稱臣於漢 則書討 綱目之名分 嚴矣]” ≪書法≫
역주2 曹褒가……어지럽혔으니 : 曹褒가 漢나라의 禮를 정할 것을 청하고 이를 撰한 것은 본서 181쪽, 184쪽에 보인다.
역주3 南匈奴單于……즉위하였다 : 屯屠何는 남흉노 8대 선우이고, 宣은 7대 선우이다. 둔도하는 胡邪尸逐侯鞮單于, 宣은 伊屠於閭鞮單于로 불린다. 둔도하와 선․안국은 사촌간이다. 아래 師子는 둔도하의 조카이다.

자치통감강목(8) 책은 2019.09.06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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