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魏奚斤與夏平原公定으로 相持於長安이러니 魏主欲乘虛伐統萬하여 五月에 發平城하고 命將軍陸俟督諸軍鎭大磧하여 以備柔然하다
魏主至拔隣山
하여 築城
하고 捨輜重
하고 以輕騎三萬
으로 倍道先行
注+拔隣山在黑水東北. 北史, 捨作舍, 當從之, 讀如字.하니
群臣咸諫曰 統萬城堅하니 非朝夕可拔이라 不若與步兵攻具一時俱往이니이다
帝曰 用兵之術이 攻城最下니 必不得已然後에 用之라 今以步兵攻具皆進이면 彼必懼而堅守니
若攻不時拔하여 食盡兵疲하고 外無所掠이면 進退無地니 不如以輕騎直抵其城이라
彼見步兵未至하고 意必寛弛니 吾羸形以誘之하면 彼或出戰이니 則成擒矣리라
吾軍去家二千餘里하고 又隔大河하니 所謂置之死地而後生者也라 以攻城則不足하고 決戰則有餘矣니라 遂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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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北魏의 奚斤이 夏나라의 平原公 赫連定과 함께 장안에서 서로 대치하였다. 魏主가 빈틈을 타서 統萬을 치고자 하여, 5월에 魏主가 평성을 출발하고 장군 陸俟에게 명령을 내려서 여러 군대를 감독하게 하였으며 大磧에서 진수하면서 柔然을 대비하게 하였다.
魏主가 拔隣山에 도착하여 성을 쌓고서 輜重을 남겨두고
注+① 拔隣山은 黑水의 동북쪽에 있다. ≪北史≫ 〈魏本紀〉에 “捨는 舍(남겨두다)로 썼다.”라고 하였는데, 마땅히 이것을 따라야 하니 본음대로 읽는 글이다. 경무장한 기병 3만 명을 데리고서 두 배나 빠른 속도로 앞장서서 행군하였다.
여러 신하들이 모두 간언하기를 “통만성은 견고하니 아침저녁 사이에 빼앗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병․공성 기구와 일시에 함께 가는 것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황제가 말하기를 “군사를 사용하는 술법 가운데 성을 공격하는 것이 가장 下策이니, 반드시 부득이하게 된 후에야 이 방법을 사용한다. 지금 보병과 공성 기구를 가지고 함께 나아간다면 저들은 반드시 두려워하고서 굳게 지킬 것이다.
만약 공격하여 적시에 탈취하지 못하여 식량이 다하고 병사는 피로해지며 외부에 약탈할 것이 없으면 나아가거나 물러날 곳이 없을 것이니, 경무장한 기병을 거느리고 곧장 그 성으로 가는 것만 못하다.
저들이 우리의 보병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을 보고 마음이 반드시 느긋해지고 해이해질 것이니, 우리가 연약한 모습으로 그들을 유혹하면 저들이 혹시 나와 싸울 것이니, 그렇게 하면 사로잡을 수 있다.
우리 군사는 집과의 거리가 2천여 리이고 또 大河로 막혀 있으니 이른바 ‘死地에 놓은 뒤에야 살아난다.’는 것이다. 〈3만의 경무장 기병으로〉 성을 공격하면 부족하지만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면 여유가 있다.”라고 하고, 마침내 떠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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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目] 北魏의 군사들이 승세를 틈타 夏主를 쫓아서 성의 북쪽에 이르니, 夏主는 〈성에 들어가지 못하여〉 마침내 上邽로 달아났다. 魏主가 변복 차림으로 달아나는 사람을 쫓아서 그 성에 들어가니, 夏나라 사람들이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서 여러 성문을 모두 닫았다.
魏主는 拓跋齊 등과 함께 夏나라 궁전 안으로 들어가서 부인의 치마를 얻어서 그것을 창날 끝에 매고 그것을 타고서 성가퀴에 올라서 겨우 탈출해 나왔다.
다음 날 統萬城에 들어가서 夏나라 親王과 公․卿․校尉 및 부녀자들을 잡았는데 1만 명 정도였으며, 말이 30여만 필이고, 소와 양이 수천만 마리이고, 府庫에 있는 진귀한 보물․수레․깃발․기물은 이루 다 헤아릴 수가 없었다. 장수와 병사에게 차등을 두어 나누어주었다.